봄봄이 사는 마을

우리의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며

- 봄봄(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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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

그때는 몰랐다.
우리가 모임을 시작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 ‘위클리 수유너머’에 글을 쓰게 될 줄을 말이다. 2003년 2월 28일이었다. K는 사람을 보는 안목이 있었다. 당시 전주에 살면서 결혼하지 않은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 직장 여성 일곱 명을 모았다. 결혼을 꿈꾸는 친구도 있었고, 연애 중인 친구도 있었고,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친구도 있었다. 나처럼 결혼이 삶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우리의 공통점이라면 그들은 모두 거절하지 않을 사람이었다는 점, 각자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가 있었다는 점, 그럼에도 10년을 함께 해 온 것을 보면 다들 무던한 사람이었다는 점. 비혼모임 ‘비비(비혼들의 비행)’는 그렇게 시작했다.

‘비비’가 작은 소모임에서 1인 가족 네트워크로 구성된 ‘비혼여성공동체’라고 스스로 칭하기까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공부와 돌봄이었다. ‘비비’의 둘레 안에서 자신을 성장시키고 서로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기를 바랐던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씩 필요한 책들을 골라서 읽었다. 고백하자면, 수유너머 멤버들이 낸 책도 열심히 읽었다. 당시 전주 너머 서울까지 가는 길은 멀었다. 10년이 지났고, 지난봄 수유너머R에서 ‘글쓰기의 최전선’ 강좌를 들었다. 꽃이 피고 나서 여름이 들이밀 때까지 16주 동안 집에서 수유너머로 가는 길은 멀고도 피곤했지만, 그 연으로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매주 제출해야 하는 과제물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며 선생님, 저의 글쓰기는 혁명 그 다음날, 그러니까 강좌가 끝난 그 다음날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변명하듯 위로하듯 말했는데, 말은 현실이 되었다.

지난 10년, ‘비혼’과 ‘공동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독특한 형태의 ‘비비’를 궁금하게 지켜보았고 우리에게도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다. 비혼에 대한 조금씩 다른 생각들을 좁혀서 나와 비비, 그리고 공동체 경험을 함께 나누고 확장해 갈 공간을 마련하기로 했다. 2010년 6월 15일, 집 근처에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공간 비비)’ 간판을 걸고 문을 열었다. 우리는 이 작은 공간에서 여성들이 숨겨진 자기 욕망을 비워 내고, 비슷한 사람들이 비스듬히 기대 쉴 수 있는, 이야기와 나눔이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한다. 그즈음 직장을 정리한 K와 J, 그리고 Y가 그곳으로 시시각각 출근하고 있다.

우리의 이야기는 여기서 다시 시작하련다. 같은 임대아파트, 다른 집에서 각자 살고 있는 우리는 아침이면 ‘공간 비비’로 같이 출근했다가 저녁이면 각자 자신의 집으로 같이 퇴근한다. 단체도 아니고 조합도 아니고 직장이라 부르기엔 좀 헐렁한 ‘공간 비비’에서의 생활과, 단독 세대주이고 결혼은 하지 않았고 주부도 아니고 아줌마도 아니고 어머님도 아니고 할머니도 아닌 언젠가는 ‘아가씨 할머니’가 될, 이 사회에서 이 상황을 설명할 단어로 ‘비혼’을 선택한 이들이 시시때때로 아파트에서 헤쳐 모이는 사소하고 소소한 일상을 모아서, 앞으로 ‘비비’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아주 조금씩 소개하고자 한다. 기대는 많이 말고 조금만 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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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비비’에 차려진 밥상

응답 4개

  1. 봄봄말하길

    ㅋㅋ 벌꿀님.. 반가워요^^
    저도 간간히 그동네 구경하고 있어요.
    오늘도 참 볕이 좋습니다.

  2. 벌꿀말하길

    오랫만에 위클리 들어왔는데 반가운 곳 이야기가 똭.
    잘 읽을게요. 봄봄님.

  3. 봄봄말하길

    글쓰기 동안 헤집어 놓은 마음들을 잘 다독여야 하겠지요. ^^
    쓰면서 정리되고 성찰하기를 바라면서.

    요즘 햇빛과 바람빛이 서로 다퉈 창가에 스민답니다.
    적당한 기대, 감사하구요.

  4. y-말하길

    혁명의 다음날 이어지는 글쓰기란 말이 정말 좋네요.
    첫번째 사진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창으로 들어오는 햇살같이 조용하고 강렬하네요.

    적당히 – 기대하고 있을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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