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농사 일지. 택배용 작물을 포장하며…

- 김융희

하늘은 자꾸 짙푸르러 높아만 가며, 청록의 산색은 얿어지면서 더욱 멀어져간다. 벌써 가을이 한창이다. 서툰 농사꾼의 장포에는 여름 내 내 힘겹게 자란 작물들의 결실이 한창 익어가고 있다. 금년 여름은 파종에서 개화기까지 줄곧 지루한 장마가 계속되었다. 악천후의 수렁속 잡초들과 사투를 벌였던 작물의 결실은 너무도 볼품없이 초라하다. 줄곧 곁에서 성장을 지켜본 내겐 이같은 결실이 너무 애처롭고 한없이 대견스러워 보인다.

주위의 가까운 지인들을 떠올리며 나는 미리 익은 작물들을 수확해 포장을 서두른다. 이렇게 수다를 떨며 서두르는 나를 지켜보면서 “이처럼 시시한 작물을 누구에게 보내냐”며, 한사코 말리지만 막무가내 계속하는 내가 아내는 한심해 보이나 보다. 염려를 넘어 이상해(?) 보이는지 “지금 제 정신이냐”며 불평인 아내는 “이따위 농사 내년엔 절대로 짖지를 않겠다”고 한다. 이런 비틀리고 갈라지며 쪼그라드는 결실을 일부러라도 만들었다는 말인가? 아니면 내가 돌기라도 했단 말인가? 우리는 자존심까지 건드리며 작은 말다툼을 했다.

늘상 여유롭게 나누어 먹었던 상추 열무등의 채소류를 금년엔 구경하기조차 어려웠다. 우리 손자들에게 인기였던 참외 도마도는 꽃도 피워보지 못했고, 마디 호박이나 오이도 진즉이 녹아 흔적도 없이 문드러져 버렸다. 가지는 흰 반점에 찢겨 터지고 오그라들었으며, 명색이 맛좋은 오이고추도 매끈하게 두툼 토실하지 않고 크다 말고 굽어 엉성하다. 무성한 잡초에도 강한 노각이 볼품 없이 크다 말았고, 늙은 호박들도 마찬가지, 잘 익었다싶은 호박을 갈라보면 겉은 멀정한데 속에는 벌레집의 겉과 속이 완전 다르다. 이 모두가 거의 석 달을 끊임없이 내린 장마 비 때문이다. 이리 자란 작물들을 고르며 나는 포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대형 마트의 채소 진열장을 구경은 했고, 일반 시장의 잘 가꿔 맵시 좋은 각가지 작물들을 전혀 모른봐는 아니다. 분명 아내의 이유있는 설득이요 불평이다. 겉을 보면 영낙없이 시장의 쓰레기장에서나 볼 수 있는 정말 한심스러운 고추, 가지, 노각, 쩌먹는 단호박, 둥근 호박들을 신문지에 곱게 싸서 작은 상자에 체우고 있다. 조금의 빈 공간엔 올밤을 주워 몇 알씩 넣었다. 정성이라도 보여야겠기에 손길을 잡아보지만 마음뿐이다. 공연한 짖에 “주면서 욕먹는다”는 아내의 비아냥 대는 말이 계속 맴돌며 마음에 걸린다.

그렇지만 이런 것들이 내미는 나의 마음을 부추겨 접을 수 만은 없다. 수확한 작물은 볼거리가 아닌 먹거리인 것이다. 볼거리라면 볼품이 중요하겠지만 먹거리는 내용이 더 중요한 것, “보기 좋은 것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내가 거둔 작물의 내용이라면 나는 떳떳하다. 보기 좋은 버섯을 탐내다간 큰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 지나친 비유같지만, 아내와 악을 쓰며 다투다보니 오가는 거친 말들이 지나친 비유도 하게 만든다. 물론 보기도 좋으면서 내용이 알차면 더 이상 바랄게 뭐 있겠는가. 그렇지 않는 것들이 주위에 많기에 문제인 것일 뿐.

모양새는 볼품 없이 얄궂어도 내용이 알차고 탐스런 것들도 많다. 오늘날 시장의 상품들을 보면 겉보기를 위한 포장이 지나치다. 상하지 않고 시들지 않기 위해 각가지 조처로 인한 더 큰 피해들 말이다. 염려와 한심스러운 것들도 너무나 많다. 챙기는 상술의 발달은 지금을 “시각의 시대”로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정말 먹거리가 볼거리로 변하지 않았나 싶다. 이런 일들이 시장의 상품만이 아닌, 농부가 가꾸는 작물에서도 똑같은 현상이다. 인공이 자연을 압도하는 것이 현실이다. 농사를 지으며 밝히기도 민망스러운 일들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볼거리가 아닌 진실의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사가 필요하다.

내 먹거리를 위해 조그만 텃밭을 일구며 서툰 농사로 유기농이 아닌 자연농사를 하고 있다. 나는 채소만이라도 손수 재배한 것을 먹고 싶다. 참살이의 먹거리 생산이 절실하지만 결코 쉽지가 않다. 특용 작물은 재배 기술도 없지만 쳐다보지를 않고 오직 일반 작물만을 기르고 있다. 나는 작년부터 농사에 관한 중대 결심을 했다. 절대로 신품종이나 수입품종의 작물을 결코 배제하며, 오직 오래전부터 전해져 길러온 재래의 토종 작물만을 취급한다. 특히 별 볼 일 없다며 버려져 잡초 취급을 당하고 있는 여러 야생의 채소들을 나는 작물로 귀하게 취급하여 계속 애용하겠다.

현대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대부분이 음식물 때문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재래의 토종 작물은 건강에도 좋은 우리의 참먹거리인 것이다. 봄이면 달래, 냉이며, 민들레, 고드빼기, 쑥 등등… 봄나물들에 이어 취, 고사리, 다래잎등의 산나물, 머위, 돌미나리, 씀바귀, 질경이, 비름, 방아나물들…그 외의 상추, 쑥갓, 근대, 아욱, 토란, 고춧잎, 들깻잎, 고구마순들… 여기에 무, 배추, 갓, 시금치……. 이처럼 재래 토종의 채소류는 많기도 하려니와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모두가 우리의 신토불이 먹거리들이다. 그리고 농사꾼에겐 특용 작물에 비해 힘들지 않고 돈도 들지 않는 토종 재배 농법이다. 이런 먹거리가 우리의 건강에도 좋은, 그야말로 우리의 안성맞춤 먹거리가 토종 작물인 것이다.

이처럼 무진장의 좋은 먹거리를 외면하며, 이름도 괴상한 각가지 수입품종을 재배하며 약보다 몸에 좋은 식품이라고 야단 법석을 떨고 있는 것이 우리 농사의 현실이다. 민들레가 치커리로 이름을 바꿔 신품종으로 태어나 애용되면서 민들레는 쓰다며 내밷는 입맛들이, 왜 그리 쓴 커피는 맛있다고 좋와들 하는지를 나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 이름도 발음하기 어려우며 내용도 잘 모르는 쓰디쓴 커피를 마시며 문화인인 척, 커피숖에선 취급도 않는 달고 맛있는 맥심 믹스 커피를 좋와하면 촌놈 취급을 하는 현대인들. 외국 것은 쓸수록 좋지만, 우리 것은 써서는 안되는 현실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 답답하다. 그리고 우리의 중요한 먹거리를 약으로만 판단하려 드는 현실이 참으로 답답하다.

흐뭇한 마음으로 수확한 먹거리들을 포장하면서 결코 흐뭇한 마음을 지키지 못함이 아쉽다.

그러나 너무 마음 아파는 하지 말자. 망가진 밭자락에선 지금 무, 배추, 갓, 파등의 가을 채소들이 탐스럽게 열심히 자라고 있다. 참깨, 들깨, 콩들도 결실이 영글고 있다. 배, 복숭아등의 우리집 과일들은 맛을 보지 못했지만, 대추가 익어가고 있으며, 다래에 이어 알밤 떨어지는 소리가 계속 들려오고 있다. 내년 여름 내 내 먹거리를 제공할 비름이며 씀바귀등도 씨앗들을 담뿍 달고 서있다.

계속 불평하며 투덜덴 아내는 너무 짜잔해 보인 작물들을 보면서 짜증이 났을 것이고, 때깔 좋은 먹거리를 상용하는 도시인들에게 부실한 먹거리를 드려서 행여 실망을 끼칠까 싶은 그의 염려지심에서 말리는 것일 뿐, 결코 배푸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 나의 아내임을 나는 잘 안다. 이런 작은 배려들이 무리없이 잘 통했으면 좋겠다. 오랜만의 농사 일지를 쓰다보니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아 다음으로 미루며 오늘은 이만 끝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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