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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출산율이 낮아진다고 한다. 레알? 내 주변에는 결혼과 출산이 넘쳐나는데?

- 말자 2

어느 결혼 이야기 – 5. 마지막

언제부터인가 인터넷 연예 기사에서 ‘민폐 하객’이라는 단어가 보이기 시작했다. 연예인 결혼식장에 주인공보다 더 예쁘게 차려입고 온 여자 연예인을 부르는 말이다. 민폐 하객은 흰색 옷을 입고 가는 하객을 가리키기도 한다. 결혼식장에서 순백은 신부만이 가질 수 있는 색으로 암묵적 합의가 이루어졌나 보다.

다른 의미로, 나 역시 민폐 하객이었다. 처음으로 누군가의 초대를 받아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였다. 친구 언니의 결혼식이었다. 예식 2주일 전부터 ‘무엇을 입고 갈 것인가?’로 고민한 끝에 나의 옷장에는 마땅한 옷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고르고 또 골라 새로 옷을 사 입었다. 그래서 신부보다 더 예쁜 민폐 하객이 되었던 것이냐고 물으신다면, 아니다. 민폐는 예식 시작 직후 시작되었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식장에 걸어 들어오는 신부를 본 순간, 아니 그 아버지의 얼굴을 본 순간 나는 다시는 없을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들의 모습이 나와 나의 아버지로 생생하게 보이는 환상을 체험한 것이다. 순간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훌쩍훌쩍 콧물 들이키는 소리가 식장에 울렸다. 몇몇 사람들이 눈을 흘기며 나를 보았다. 함께 갔던 친구는 나를 잡아채어 식장으로부터 끄집어냈고 그녀에게 한참 동안 혼났다.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그날로부터 일주일 정도는 ‘나도 언젠가는 아빠와 손을 잡고 예식장에 들어서겠지? 아빠와 함께 했던 추억들이 떠오르고 아빠의 눈을 마주보면 눈물이 나올 거야. 우린 서로를 꼭 끌어안을 거야. (여기에서 의문이 든다. 아니 의문이 아니다. 당시의 나는 이상한 사람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나는 결혼식을 사랑의 결실, 혹은 새로운 출발이 아니라 아빠와의 이별로 보았던 것일까?) 결혼식에서 신부가 너무 울면 안 된다는데, 어쩌지?’ 등등의 생각과 온갖 공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물론 이후의 생각과 공상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결혼을 한다고 해도 아버지와 애틋한 눈빛 교환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제는 딸의 결혼에 마냥 ‘얼씨구나 신난다!’하며 생글생글 웃는 아버지 얼굴이 그려진다.

나만 이러한 민폐 하객이었던 것은 아니다. 종종 결혼식장에서 눈시울이 붉은 친구들을 본다. 친한 친구 무리 가운데 처음 결혼하는 이의 결혼식에서는 유독 눈물을 보이는 친구들이 많다. 여자들에게 결혼식이 주는 울림이 분명 있는 듯하다. 나의 부족한 언어 능력으로 그 감정을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추억, 떠나보냄, 동질감, 감동 등등의 여러 감정이 뒤섞이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은 나처럼 굵은 눈물방울을 분수처럼 쏟아내며 콧물을 들이키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그날의 민폐 이후 수많은 결혼식에 참석했다. 친한 친구의 결혼식도 있었고 어떻게 내 전화번호를 알아 연락했는지 궁금한 이들로 부터 초대를 받기도 했다. 당시에는 친해 결혼식에 참석했지만 지금은 소식조차 모르는 이들도 있다. 한 번의 이혼 이후 다시 시작하는 커플들의 결혼식도 갔다. 양가 어머니의 한복 빛깔부터가 다른 부유한 집안의 결혼식에 다녀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우울감 속에서 헤매보기도 했고, 결혼식장을 빌리지 못해 자신이 일하는 카페 사장님의 배려로 그 카페에서 결혼한 친구의 결혼식도 보았다. 또 다시 살짝 눈물을 흘리며 본 결혼도 있고, 신랑 신부의 노래에 깔깔 웃기도 했다. 지루한 결혼도 있었고, 황당한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뜬금없는 초대, 비슷한 주례사, 비슷한 뷔페 음식(!), 의미가 사라진 결혼식 등등, 날씨 좋은 주말 오후에 재미없는 쇼의 관객으로 앉아있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결혼식에 대한 불평을 쓰게 되었다.
그래서 너의 결혼식은 어떻게 할 건데?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부끄럽지만 대안은 없다. 고민해보고 적당히 타협하고 또 싸우면서 하게 되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만 있다. 어렵다.

여름 내, 결혼식이 없었다. 물론 결혼식에 대한 불평도 줄었다.

그리고 어제 오후, 오랜만에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잘 지내니?

다음 주에는 또, 청첩장 받으러 간다.
가을, 결혼식의 계절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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