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콜트콜텍 투쟁에서의 예술

- 조지훈

노동의 결합양상에 대한 보고서

이 글은 석 달 전쯤 있었던 우연한 계기로 이루어진 콜트콜텍 조합원들과의 인터뷰 내용에 대한 일종의 딱딱한 보고서다. 많은 내용을 담기보다는 “예술과 노동의 결합양상”이라는 다소 거창한 테마로 다음의 세 가지 문제만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① 투쟁전술로서의 예술의 효과 ② 예술이 노동자들에게 미친 정서적 효과 ③ 노동자들의 예술실천의 경험.
무엇보다 먼저 실제로 말해지고 있는 것만큼 예술이 노동운동에 어떤 전술적인 가치가 있는지, 운동을 하고 있는 당사자들의 입장에서 듣고자 했다. 그래야지 만이 예술과 노동의 결합에 대한 과장된 수사를 줄이고 직접적인 경험의 양상에 대해서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투쟁을 전개해나가고 있는 콜트콜텍 조합원들에게 예술은 정말 쓸모 있는 전술이었는지, 만약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지점에서 쓸모가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1. 파급력 확대의 기재로서의 예술

인터뷰 결과 조합원들은 무엇보다 예술가들과의 결합으로 인한 파급력의 확대를 중요한 성과로 생각하고 있다. 예술가들과 결합을 하게 되면서, 그 이전에 금속노조 중심의 사람들에게 주로 알리고 전파되었던 것들이 보다 다양하고 젊은층의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런데 예술가들과의 결합은 주로 문화연대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어서 조합원들이 처음부터 특정한 파급력을 기대하고 결합을 시도했다고 볼 수는 없다.
처음에는 오히려 기존의 조합원의 인맥으로 만나기 어려웠던 젊은층의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를 할 수 있었던 지점에서 주로 의미를 찾았지만, 시간이 갈 수 록 예술가들이 끌어 모으는 새로운 사람들의 파급력을 인터뷰를 한 조합원 모두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즉, 예술가들과의 결합 자체가 투쟁에서 중요한 전술적 효과를 갖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효과는 기존의 투쟁방식에서 새로운 전술을 추가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래서 이미지를 부드럽게 만들어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또 하나의 방법이라기보다는, 기존의 투쟁에서 막혔던 지점을 갱신해나가는 차원의 효과라고 볼 수 있다. 이전에는 노동조합 중심의 강경투쟁이 사측에 압박을 가할 수 있었고, 그래서 사측과의 협상을 가능하게 할 수 있었던 주요 전략이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강경투쟁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인시위를 해도, 분신을 시도해도, 단식을 해도, 송전탑 위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해도 더 이상 사측이 협상을 시도하지 않고 무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미디어에서 노사분규를 주요하게 보도하지 않는 것과 맞물려서 점점 더 노조를 고립시키게 된다. 이는 정리해고제의 도입 이후 노동유연화가 보다 가속화된 결과 사측이 보다 쉽게 정규직 노동자를 해고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과, 기업이 국제적으로 공장을 운영하게 되는 경향이 증가하면서, 노사분규가 발생하게 되면 현지 공장을 폐업하고 해외로 이전시키는 경향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콜트콜텍 조합원들에 따르면, 사측은 노동조합의 활동을 분쇄하기 위해 현지 공장을 폐쇄하고 해외로 이전 시킨 것이기 때문에, 기존의 투쟁방식으로 협상을 끌어내는 것은 어려웠다. 따라서 기존의 노동조합 차원에 국한된 투쟁이 아닌 새로운 투쟁방식이 필요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콜트콜텍의 상황을 알려서, 광범위한 연대를 얻어낼 필요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술가들과의 결합으로 인해 하나의 출루를 찾은 것이다. 미디어에서도 보도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의 연대를 끌어낼 수 없었던 것을, 예술가들과의 결합으로 어느 정도 이루어낸 것이다.

2. 예술을 통한 정서적 환기

앞서 언급한 전술적 효과 내지는 운동의 직접적인 필요성을 제외하고, 조합원들이 예술과 결합해서 얻게 된 중요한 지점을 정서적 안정과 치유로 꼽는다. 인터뷰를 한 조합원 모두 예술가들의 작품을 접하면서 많은 위로가 되었다고 말한다. 투쟁하는 공간이 워낙 고립되어 있기도 하고, 또한 조합원들이 주로 중년을 넘어가는 나이의 남성이고 해서 외로움을 많이 타는데, 예술가들이 들어오면서 많은 위로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예술가들과의 소통을 통한 것이기도 하지만, 예술가들의 작품 자체에서 주는 치유도 있었다. 이는 한 조합원의 같은 경우 공장에 그려진 벽화를 인터뷰어에게 사진까지 보여주면서 설명하는 것에서도, 강한 인상을 남겼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다소 공식적인 태도로 답변을 했었는데, 유독 인상 깊었던 작품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감상적인 태도를 보였다. 어떤 작품이 가장 좋았다고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인터뷰어에게 보여준 공장 4층 벽에 그려진 벽화에 대해서 깊은 애착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그에게 작품들이 단순히 장식이나 투쟁의 수단이나 넘어서는 정서적인 효과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용역들의 침탈로 작품이 부숴졌다는 사실 에 대한 분노보다는, 자신이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작품이 사라짐에 대한 아쉬움의 정서가 더 많이 묻어나왔다. 예술이 조합원들에게 어떤 정서적 환기를 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예술을 통한 정서적 환기가 부수적인 것이 아님을, 또 다른 조합원과의 인터뷰에서 7여 년 간 싸움을 전개해나가면서 가장 힘든 상대는 콜트콜텍 고용주뿐만 아니라, 끝날 것 같지 않는 싸움에서 타협하고 지게 되는 자기 자신이라고 말하는데서 짐작해볼 수 있었다. 싸움으로 인한 육체적인 피로가 아니라, 정신적인 황폐화가 지금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는데, 예술이 정신적으로 힘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데 이때 정신적으로 힘이 되었다는 것은 노동운동을 힘차게 할 수 있게 격려하는 종류의 것이라기보다, 투쟁하는 가운데 놓치고 지나치기 쉬운 다양한 감수성들을 표현해내는 데 방점이 찍힌다고 할 수 있다. 조합원들이 문화연대와 함께 기획한 콜트콜텍 유랑문화제에 참여해본 바에 따르면, 섭외된 음악가들이 노동운동 판의 민중가수보다, 보다 평범하고 일반적인 인디 음악가들이었고, 이들이 부른 노래들도 대부분 직설적이고 사회비판적인 성격의 것이라기보다, 일상의 소소함과 아픔, 기쁨, 사랑과 슬픔 등의 정서들을 노래한 곡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그리고 조합원들이 반응을 보이고 많은 환호를 보냈던 음악가들도 민중가요만큼이나 인디음악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음악 뿐 만이 아니라 다른 예술영역에서도 다양한 정서적 환기에 대한 말을 들을 수 있었다.

3. 아마추어적 실천으로서의 예술의 경험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예술을 접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노동자 스스로가 작업을 하기도 했다. 콜트콜텍 조합원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시, 미술, 퍼포먼스 등등 직접 작품을 만드는 등의 활동도 했고, 심지어 밴드를 결성하여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기도 한다. 수용자만이 아닌 생산자로서 예술을 실천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특히 콜밴이라는 이름의 콜트콜텍 노동자 밴드를 구성한 조합원들의 양상에 한정 지어서 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어떤 주어진 상황 속에서 일회적으로 작품을 만들거나 음악을 하는 경우보다, 지속적으로 예술적 활동을 하는 그룹을 조명할 때야 비로소 예술 실천의 주체로서의 노동자가 어떻게 자기활동을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했던 콜밴 소속의 두 명의 조합원 모두 밴드를 시작하게 된 동기를 킹스턴루디스카라는 밴드의 한 음악가의 조언에서부터 찾고 있다. 그가 기타를 만들면서 어떻게 한번도 기타를 쳐볼 생각이 없었느냐고 조합원들에게 질문을 했었던 것이 밴드를 구성하게 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음악을 연주하기 위한 악기를 만들지만, 실제로는 음악과는 거리가 먼 자신들의 상황에 대한 반성적 인식도 있었지만, 또 하나 중요한 동기로 투쟁을 알리기 위한 수단이라는 전략적 사고도 함께 있었다.
흥미로웠던 점은 인터뷰를 했던 콜밴 소속의 조합원 모두 음악을 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여건상 음악을 하지 못했던 것도 있지만, 감성적으로도 노래를 부르고 음악을 직접 연주하는 취미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인터뷰 결과 젊었던 시절에 음악을 해보고 싶었다는 꿈도 없었고, 기타 공장에서 일하면서 한번쯤은 음악을 해봐야겠다는 의지도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밴드를 구성해보라고 조언을 했던 음악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실제로 밴드활동을 하게 된 까닭으로, 파급력을 노린 전략적 사고만이 아니라면, 이런저런 음악가들과 만나면서 흥미가 생긴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기타노동자가 아닌 기타연주자로 음악을 해보겠어 라는 강한 의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음악가들과의 연대에 의해 음악을 직접적으로 많이 접하게 되어 호감을 느낀 상태에서 전략적 필요성과 맞물려서 밴드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직접 그들의 공연을 본 결과, 콜밴의 연주 실력이 아주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얻는다. 짐작컨대 그 이유는 투쟁하는 기타 노동자들이 직접 밴드를 구성하고 기타를 연주한다는 맥락 때문일 것이다. 투쟁 사업을 벌이기도 빠듯한 형편에서 연습을 하고, 합을 맞추고 공연을 한다는 것이 특히나 같은 노동자들에게 힘을 주는 측면이 있고, 또 한 편으로는 기타만 묵묵하게 만들어오던 노동자들이 직접 기타로 음악을 연주한다는 사실에서 오는 호소력이 있었던 것이다.
서로 합이 맞지 않고 연주가 종종 틀린다는 것에서 콜밴의 맴버들이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우선적으로 이들이 자신들의 아마추어적 활동에 대한 긍정을 볼 수 있다. 한 조합원은 자신들의 트레이드마크를 “안 틀리면 재미가 없다”로 설명하면서, 비록 자신들의 연주가 틀리고 부족하더라도 배짱을 가지고 무대에 올라간다고 말을 한다. 그럴 수 있는 이유가 자신들의 공연을 관람하는 주요 청중들이 자신들의 처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틀리더라도 그것을 완성도가 있는 공연이라는 측면에서 평가하기보다는, 틀리면 틀리는 데로 웃고 재미있어 하는 청중들의 적극적인 반응에 있다. 본인들의 부족한 연주 실력에 답답해하면서도, 그런 답답함을 긍정할 수 있는 것은 능동적인 청중들의 공감에 있었던 것이다.

사실상 반쯤은 권유에 의해서 또한 반쯤은 투쟁사업의 필요에 의해서 구성된 밴드였지만, 이들을 움직이는 동력에서 음악을 하는 즐거움을 빼놓을 수가 없었다. 특별히 연습 초기에는 사람들이 합주를 한다는 사실 자체에 재미를 느끼고 밤늦게까지 연습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음악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와서 레슨을 두 시간 씩 하고, 다시 일주일 동안 연습을 하는 과정 속에서 점점 연주의 합이 맞춰지는 것을 즐거워했었던 것이다. 또 그렇게 연습한 곡을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또 다시 즐거움을 얻어서 연습을 하는 순환이 있었다. 다만 공연을 더해갈 수록 신곡을 연주해야 하는데, 이때마다 점점 더 어려운 곡을 연습해야 하는 것에서 오는 부담감은 어느 정도 있는 것으로 보였다.

4. 투쟁의 일환으로서의 예술
이렇게 우연하게 계기로 시작되어 어려운 상황에서도 진행되고 있는 밴드를 계속해서 할 것인지를 물었을 때, 콜밴 멤버의 조합원들은 투쟁이 끝나는 날까지 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밴드를 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확실하지 않게 답변을 했다. 밴드를 하지 않는 다른 조합원에게 혹시 콜밴처럼 음악을 하거나, 같이 연대하고 있는 예술가들처럼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예술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부정적인 답변을 들었다.
분명 투쟁하는 가운데 예술가들과 결합하고, 직접 밴드를 만들어 음악을 하기도 했지만, 그래서 그런 과정에서 보고 듣는 즐거움, 직접 만들고 연주하는 즐거움도 분명히 누렸음을 알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련의 예술적 활동들이 어디까지나 투쟁의 일환이라는 분명한 경계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자신들의 형편상 예술가들과 결합을 하는 것 까지는 가능하지만, 그걸 초과해서 자신들 또한 예술가가 될 수 있고, 그러고 싶다는 욕망을 강하게 피력한 사람은 없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밴드를 만들어서 지속적으로 공연을 하는 조합원들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태도임을 알 수 있다. 이들에게 예술은 다양한 의미를 지니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직복직을 위한 투쟁이라는 보다 선차적인 목표 하에 배치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터뷰 내용들을 모아보자면 조합원들에게 더 큰 열망은 원직복직으로 맞추어져 있는 것이고, 당연한 말이지만 자신들의 입지점을 어디까지나 콜트콜텍 본사와 맞서 투쟁하는 조합원으로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다양한 예술적 경험들이 어느 정도 투쟁의 양상을 바꾸어놓은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과 같은 배치에서는 그러한 다른 경험들이 원래의 목표를 상회시킬 만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분명 원직복직을 위한 투쟁으로 환원되지 않은 예술에 대한 경험이 존재하지만, 그러한 경험들만으로 자신들의 무게를 조합원보다도 예술가 쪽에 더 실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이다.

5. 예술이라는 선입견

마지막으로 논의를 정리하기보다는 인터뷰어의 선입견을 드러내는 것으로 마치고자 한다. 인터뷰어가 “예술과 노동의 결합”이라는 테마에서 기대했던 것은 노동운동의 예술화였다. 80년대의 운동의 표상처럼 엄숙하고 윤리적인 성격보다는 예술과의 결합으로 인해 보다 기발하고 즐거운 그러면서도 창조적인 어떤 것이기를 기대했다. 물론 실제로 콜트콜텍 투쟁현장에 그런 가벼운 요소가 있는 것은 분명했다. 아마도 무거운 성격만 있었다면 접근조차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뷰어는 7년간의 처절한 투쟁이라는 이들의 무게에 짓눌려서, 조심스럽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인터뷰어의 흥미는 예술이 어떻게 기존의 운동의 분위기나 상황을 바꾸었는지에 대한 것이었는데, 실제로 질문은 예술이 진짜로 노동운동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의심스러운 어조로 이루어졌던 것이었다. 예술과의 결합으로 인해 기존의 운동으로부터 변했을 것이라는 기대와 실제로 언급되는 것만큼 예술이 운동에 쓸모가 있었는지에 대한 회의가 공존하는 상태로 인터뷰가 진행되었던 것이다. 인터뷰어의 복잡한 마음과 달리 조합원들의 답변은 간단명료했다. 예술이 분명 운동의 양태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경험을 주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처럼 운동을 하고 있는 상황을 이전의 공장에서 일했던 상황보다 긍정할 수는 없다. 예술과의 결합 혹은 수많은 연대로 인해 변화된 지금의 삶을 더욱 밀고나가서, 새로운 주체를 형성하는 것(예컨대 예술을 한다거나, 아니면 해고된 노동자들끼리 협동조합을 만든다거나)이 이들의 관심사가 아니라,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는 것이 목표였던 것이다.

이 지점에서 인터뷰어의 심각한 오해가 있었다. 결국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에 다시 노동자의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구나 라는 오해를 말이다. 이들에게 복직투쟁은 다시 노동자의 삶으로 돌아가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인터뷰한 조합원들 중에는 공장에 취직하지 않고 기타 수공업 제작으로 먹고살 수 있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조합원은 이미 정년퇴직 나이라 실제로 공장에 복귀할 수 없는 사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 상대하고 싶지 않은 고용주의 공장 밑에서 일할 생각을 하느냐에 대한 질문에 조합원들은 “자존심 때문에”라고 답변했다. 다시 공장에 들어가서 제 발로 나오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은 고용주가 우리를 해고한 것은 잘못된 행동이었다는 것을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다. 이미 이들의 투쟁은 경제적인 것을 넘어서 있었다.

인터뷰어의 선입견은 노동운동에서 복직투쟁이라는 쟁점을 경제적인 것으로 환원했다는 점에 있었다. 따라서 노동운동이 예술과 결합하여 경제적인 것을 초과하는 어떤 다른 것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조합원들에게 투쟁이 끝나도 계속 밴드활동 등의 예술을 할 것이냐는 질문 안에는, 예술과 결합된 노동운동을 통해 새로운 욕망이 불어넣어지지 않았는가라는 기대가 깔려 있었다. 이런 기대에는 한편으로는 노동운동을 경제적인 것으로 단순화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에 대한 지나친 기대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이러한 선입견은 우선은 인터뷰어 본인의 것일 거다. 하지만 동시에 기존의 노동운동 경험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심지어 학생운동에도 참여하지 않았던, 그렇지만 촛불집회를 통과하면서 변화된 예술적이고 축제적인 운동에서 처음으로 노동운동을 접했던 20~30대의 젊은이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러한 “젊은이들(인터뷰어 본인을 포함하여)”이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보아야할 지점은 예술에 대한 열광이나 운동의 변화된 지점에 대한 지나친 강조보다는, 노동운동에 얽혀있는 경제적인 것을 초과하는 지점을 읽어내고, 그러한 맥락에서 예술은 어떤 의미를 갖는 건지를 질문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