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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반시대

‘새로운’ 콜트콜텍, 새로운 ‘콜트콜텍’

- 지안

*이번 동시대 반시대 기획인 <콜트콜텍 2탄>은 수유너머N에서 콜트콜텍 농성장을 방문하고 네 분의 노동자들을 인터뷰한 것을 토대로 쓴 글입니다. (글 안에서 모든 쌍 따옴표는 직접 인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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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노예들을 채찍으로 두들겨 패고 하는 건 꼭 저항에 부딪혀. 저항에 부딪히지만은, (사람들이) 정신을 빼앗겨 버리면 저항에 안 부딪혀. (근데) 지금 정신을 빼앗으려고 하고 있다는 거지.”-방종운(콜트 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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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본 인천에는 공장이 많았다. 광역버스를 타고 갔는데, 창문으로 보이는 도로 양 옆으로 공장들이 계속 스쳐갔다. 이 속에 콜트 공장도 있었겠지만 철거되고 지금은 사라졌다. 공장이 없어졌는데, “콜트가 (더 이상) 뭐 가지고 싸우겠느냐”고 누군가 말했다지만, 여기 콜트 공장 터 맞은편에 천막을 치고 “분명 콜트는 공장을 돌릴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정리해고라는 무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루 이틀 일하고 사표 쓰더라도” 내 손으로 사표를 쓰겠다는, “(박영호 사장을) 상대로 이기고 하루라도 일을 하고 왔다는 뿌듯함”을 성취하겠다는, 그런 종류의 “노동자의 자존심”을 말하는 사람들이다.
<콜트콜텍> 정리해고 노동자들이 공장을 침탈당한 것은 올해 겨울, 2월이었다. “2월 1일 날 (공장을) 나올 때는 순식간에 자다가 (용역들에게) 쫓겨난” 것이라고 한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콜트콜텍 아저씨들은 지금은 완전히 공사가 끝나 주유소로 변해버린 ‘인천 콜트 공장’ 맞은편에 세운 천막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한 눈에 보아도 열악해 보이는 환경이었지만 이 날 아저씨들은 끝없이 우리에게 먹을 것을 대접해주었다. ‘수박, 김치전, 점심밥, 아이스크림….’ 내가 이렇게 퍼주셔도 괜찮은 거냐고 묻자 아저씨들은 “먹이고 나면 그만큼 받게 되어있어. 그걸 아니까 주는 거야”라며 웃었다.

1. 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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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기에 천막은 온갖 잡동사니가 모여 있는 창고 혹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전시장 같았다. 천막 앞에는 콜트 공장에서 열렸던 전시회에도 전시되었던 작품인 상덕 작가의 <코끼리>가 떡하니 서있었다. <코끼리>는 장승처럼 천막보다도 제일 앞에 세워져있었지만, 처음엔 우리 중 누구도 그것이 그 작품, <코끼리>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리고 이 푸른 색 고철 덩어리가 그 <코끼리>이었다는 것을 알아채고 나서야 다른 것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천막 밑 천장에는 철골 부분에 주렁주렁 뭐가 매달려있기도 하고 천막에 걸린 빨랫줄에는 마치 빨래처럼 무언가 다닥다닥 걸려있기도 했다. 이 와중에 마당인 듯 자리하고 있는 천막 옆 공간에는 제각기 다른 모양의 의자들, 테이블들, 피켓들, 작품들이 널려있었다. 그리고 상추나 뭐 그런 것들이 심겨진 화분이 줄줄이 놓여있고, 주워왔다는 토끼집도 있었다. 뒤뜰처럼 보이는 잔디 깔린 담에는 색 색깔의 바람개비들이 줄줄이 꽂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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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이 재밌게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했지만 공장의 대체물로서 천막은 그다지 훌륭한 장소는 아니다. 춥고, 더운, 열악한 환경을 떠나서 예전에 사람들이 모여들던 코뮨으로서의 농성장으
로 기능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여러 작가들이 ‘스쾃’(주거공간으로의 점거)하기도 했던 공장이라는 곳은 그야말로 “열린 공간”이었다고 한다. 콜트콜텍의 장점 중 하나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젊은 사람들이 계속 결합하고 모인다는 것이다. 공장에서 투쟁하던 시기에는 특히나 여러 사람들이 계속 모여들었다고 하는데, 아저씨들은 그 이유를 같이 “밥 해먹는 거”로 꼽았다. 천막 뒤편에는 주방 공간이 있었는데, 나는 천막에서 밥을 해서 먹는다는 생각을 못하고 왔었기 때문에 오자마자 만들어주신 점심밥을 먹으며 약간 놀라웠었다. 함께 음식을 만들고, 매끼 밥을 먹으며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특별한 일이다. “근데 우선 여기가 왜 좋았냐면 (공장/천막에서) 밥이란 걸 먹을 수 있고, 다른 데 가도 밥 해먹는데 거의 없거든. 근데 밥 먹으면서 대화의 창을 넓혀갈 수 있지” 실제로 공장에서 천막으로 쫓겨난 것에 분노하는 가장 큰 지점 또한 여러 사람이 모여들고, “뭔가를 공유하던” 코뮨이 해체되었다는 것 같았다. “예, 작가들 있을 때 진짜 재밌었어요. 서로 ‘이제 작업한다.’ ‘왜 안하냐’ ‘우리 꺼 이것 좀 해달라’ ‘그거보다 이것 먼저 해달라’ 막 해가면서 괴롭히기도 하고.” 공장 침탈 이후, 지금은 스쾃 했던 작가들이 작업실을 옮길 수밖에 없게 되면서 연대의 강도는 변할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들은 “공유”하던 것을 잃어버린 부분을 가장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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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공간이 바뀌면서 투쟁 방식도 바뀌었다. 콜트콜텍은 일단 공장(현 주유소) 앞을 투쟁의 거점으로 삼긴 했지만 사장을 직접 압박할 수 있는 곳으로 공간을 이동해야 하지 않은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이때 고민의 과정에서 투쟁의 방향과 목적은 내부(공장)를 향한 지키는 행위에서 외부를 향하는 알리는 행위로 바뀌었다. 콜트콜텍은 화요일, 수요일, 금요일마다 행사가 있는데, 예전에는 그것들이 공장에서 주로 이루어졌다면 지금 그것들을 천막에서 진행하기에는 어려우니 아예 “유랑”의 형식으로(유랑 문화제), 밖으로 사람들을 찾아나가고 있다. 즉 이들은 “외부로 알리는 투쟁”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2. 얼굴

“우리는 투쟁을 해도, 뭘 만들어도 진짜 딱딱하게 만들고 ‘투쟁, 투쟁’ 이런 것만 외치고서 하는데, 작가들이 오면서 그림으로 하니까 투쟁가가 안 들어가도 이게 투쟁하는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 (…) 사람들 굳어있던 얼굴들이 환하게 피는 얼굴이 되가지고 이런 것들이 많이 달라지는, 많이 배워가는 거죠” -김경봉 조합원(콜텍 해고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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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사이에서 콜트콜텍 아저씨들, 왜 이렇게 인물 좋고 말씀도 잘하시느냐는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다. 내가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내자 아저씨들은 웃으면서 ‘다들 다른 곳에 비해 그렇다고 하더라’는 답을 했다. 이렇게 “환하게 피는 얼굴”을 가능하게 했던 배경에는 작가들과의 스쾃 생활과 작가들이 끌고 들어온 예술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 같다. 확실히 아저씨들은 작가들이 스쾃해온 뒤로 공간을 구성하는 사람들 자체가 변하면서 분위기가 많이 풀렸다는 말을 전했다. 작가들이 이주해오고 나서 “공장에 있던 버려진 작업복들, 철골들, 쓰레기들을 가지고 ‘쓰레기 쟁탈전’을 벌이더라고”. 그리고 그것들이 후에 전시회의 작품들로 변하는 것을 보며 아저씨들은 동일한 사물들이 달라지는 과정을 목격한다. “참 노동만 하는 사람들이 이런 예술이라는 거에 대해 접해보면서 참 좋더라.” 그러니까 예술은 콜트콜텍에서 ‘투쟁, 투쟁’이라는 방식과는 다른 어떤 결을 창조했다. 그리고 그 흔적은 천막 앞에 세워진 <코끼리>에도 남아있었지만 그보다도 아저씨들 개개인의 분위기에서 존재하고 있었다. 콜트콜텍의 큰 기획들이 재밌고 신나지만 분명 7년의 장기투쟁을 겪고 있는 콜트콜텍은 매우 힘겨운 상황일 것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콜트콜텍에서 어떤 환함을 느끼는 이유는, 내가 자꾸 다시 천막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는 것 같다.

3. 싸움

콜트콜텍은 이제 연극을 한다. <구일만 햄릿>이라는 작품이 그것인데, 콜트콜텍 노동자 아저씨들이 배우로 출연한다. 그 이전에도 콜트콜텍 현장에서는 노동자들이 밴드를 결성해 노래를 불렀고, 현장에 결합한 예술가들이 공동으로 전시회를 했으며, <콜트 불바다>라는 음악 페스티벌도 열었다. 게다가 이 현장을 대상으로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들, <공장>과 <기타이야기>도 있다. 사실 이런 큰 기획보다도 노동과 예술의 만남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납득되었던 때는 아저씨들이 만든, 황당할 정도로 미적인 (콜트콜텍 고추장 홍보) 피켓을 보았을 때였다. 확실히 이 현장에서는 예술만이 가지고 있는 어떤 공기가 끊임없이 일상을 떠다니는 듯하다. 매주 화요일에 열리는 ‘콜트콜텍 노동자와 함께하는 야단법석’에 놀러온 한 금속노조 조합원이 콜트콜텍은 오면 기분이 너무 좋다고 한 적이 있다. 그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콜트콜텍의 기획들이 말랑말랑하고 ‘예술적인’ 것들이라는 점.
그런데 한편 ‘이 연극은 싸움이 될까? 그들의 연극 <구일만 햄릿>은 싸움인건가?’ 라는 생각도 든다. 이런 새로운 유형의 투쟁방식에 대해 방종운 지회장은 언젠가 “혁명을 해야 하지 않냐” “약하지 않냐”라고 하는 말들을 들은 적이 있다고 한다. 왜 아니었겠는가. 한참동안 그런 말들을 많이 들었을 것이다. “투쟁, 투쟁”하는 방식과 <콜트 불바다 음악 페스티벌>의 방식 사이의 간격, 이런 변화 양상에 대해 네 분의 아저씨들은 시민들을 포섭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 것을 긍정적인 지점으로 꼽았다. 그러니까 이런 기획들이 “거리감을 자꾸 좁혀나가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거리감을 자꾸 좁혀나가는” 효과를 가진 이 투쟁방식에 대해, 대중운동이 얼마만큼 효과가 있을까라는 의문도 든다. 그러니까 현장에 대한 대중들의 참여는 일회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닐까? 이인근 지회장님은 연대에 대해서 “책임지는 것”이라고 표현하셨다는 데, 그렇다면 콜트콜텍의 기획들은 책임 없는 ‘재밌다’는 단발적인 경험들만 낳는 것은 아닐까? 콜트콜텍을 인터뷰하고 여러 행사에 참여한 다음에 고민했던 것은 어떻게 콜트콜텍과 우리의 연대가 ‘싸움’이 될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콜트콜텍의 현장에서 예술의 역할이 마치 SNS와 동일한 투쟁의 전략인 것 뿐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투쟁 방식의 변화과정과 이유가 어떠했던 간에 예술은 여기서 계속 생산되고 있다. 나에게 문제는 예술이 진짜 싸움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거였다. 예술이라는 말랑말랑한 무기가 실질적인 부분에서 사측을 압박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을까? 앞으로 내가 고민할 것은 그런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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