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일기

0.시작 : 쓸데없는 일 사서 하기

- 송이

1.

나는 우리 집 고양이를 다양한 이름으로 부른다.

Camera 360

 

 

 

 

 

 

 

 

 

석류(본명)
이쁜이
애기
꼬맹이
석선생

고양이를 부르는 이름으로 애정을 알 수 있다면 나는 석류를 예뻐한다. 고양이 2살이면 인간 나이로 24살 청년인데 아장아장 걸으며 엉덩이를 씰룩거리니 아기처럼 보인다. 석류는 덩치가 크다. 엄마가 오십 평생 저렇게 큰 고양이는 처음 봤다면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고양이 크기가 아닌 것 같으니 시골에서 버섯 농사를 짓는 사촌 언니네 집에 보내는 게 어떠냐고 몇 번이나 물어볼 정도다. 그런데 내 눈에는 아무리 봐도 크지가 않다. 인간과 고양이의 크기를 비교하면 안 되겠지만 나보다 너무 작은 꼬맹이 같다. 물론 골목을 걷다가 석류의 1/4만한 객관적으로 작은 고양이, 석류의 1/2만한 보통 고양이들을 보면 일반적인 고양이의 크기, 정상분포의 중심에 속할 것 같은 고양이의 크기를 깨닫고 흠칫한다. 석류는 고양이이지만 특별한 고양이, 내 기준에선 고양이의 보편 척도다. 나도 모르게 모든 고양이를 석류를 기준으로 파악한다.

지지난달 어느 새벽, 내 부주의 때문에 석류가 가출에 성공했다. 이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일 테니 그냥 모른 척 내버려 두고 자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집에 석류 화장실이 두 개나 있고, 작은 쇼핑백에 장난감과 샴푸, 손톱깎이와 치약이 있고, 방구석에는 석류가 들어가서 뒹굴고 바닥을 긁어 놓아 만신창이가 된 박스가 있고, 먹다 남은 사료가 반 포대 넘게 있어서 그랬는지, 결국 집 나간 석류를 찾아 나섰다. 두 시간쯤 집 밖을 살펴보다 결국 건너편  2층집 지붕 위에서 나를 발견하고 냐옹 냐옹 우는 석류를 보았다. 평소에 잘 주지 않는 캔 간식을 미끼로 삼십 분 동안 석류를 유인해서 낚는 데 성공했다. 석류를 낚아서 번쩍 안고 엉덩이를 백대쯤 때려 준 다음에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석류는 엉덩이에 불이 나서 우는지, 자유를 향한 대탈출이 좌절되어 우는지, 자길 찾은 게 기뻐서 우는지 서럽게 한참을 울다가 박스에 들어가 그루밍을 했다. 마치 집 밖에 나간 적 없던 것처럼 시치미를 뚝 떼고 뻔뻔하게.

2.

고양이와 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몰라서 힘들었다. 고양이에 관한 책도 한 권 보고, 인터넷에서 자료도 찾았지만 글로 배운 고양이와 눈앞에 있는 고양이는 다른 존재였다. 덜컥 임신하고, 갑작스런 진통으로 준비도 안 되었는데 출산을 해버린 미혼모처럼 부주의한 자신을 탓하고 고양이와 사는 데 적응하기 바빴다. 그 다음에는 같이 사는 남동생이 고양이를 싫어해서 힘들었다. 내가 석류를 이쁜이, 애기, 꼬맹이라고 부를 때 동생은 숨 쉬는 쓰레기, 쓰레기, 화상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동생이 석류를 뭐라고 생각하거나 말거나 신경도 안 쓰지만, 처음에는 쓰레기라는 말에 눈물이 찔끔 나고, 동생이 싫은 소리를 할까 봐 석류를 내 방 밖으로 내보내지도 못했다. 이 고비를 넘겼더니 이제는 엄마가 ‘너무 크다, 작으면 귀엽기라도 할 텐데 징그럽다, 너 하나 건사도 못 하는데 어떻게 고양이를 데리고 사냐’라고 자꾸 이야기해서 힘들어졌다. 이건 아직 극복하지 못했다. 그래, 나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도 못하는 잉여 인간인데 고양이를 기르는 사치를 부릴 용기는 어디서 나왔는지.

같이 사는 동생, 떨어져 사는 엄마가 들볶으니 괜히 세상이 나와 고양이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 것 같다. 할 줄 아는 건 아무 것도 없으면서, 먹고, 자고, 싸기만 하고 빈둥거리면 쓰레기라고 욕을 먹고, 고양이 주제에 귀엽지 않게 덩치가 너무 커서 키울 맛 나지 않는다는 소리를 듣는 석류를 보니 ‘내 새끼’라 화가 나는 건지, 아니면 인간에게 별 쓸모없고, 예쁘지도 않다고 어떤 생명체의 존재 가치를 깎아 내리는 게 화가 나는 건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동생과 엄마에게 고양이가 사실은 정서적인 만족감을 주고, 따지고 보면 쓸모가 있다고, 가만 보면 예쁘다고 설명하고 싶지도 않다. 왜 잘 알지도 못하고 별 관심도 없으면서 타인의 삶에도, 고양이의 삶에도 간섭하고 싶어하는 것일까.

3.

누굴 만나든 혼자 일을 저지르든, 뭐라도 해야 사건이 벌어지고 아는 것도 생긴다.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되며 겪고, 알고, 느끼게 된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인기척과 다른 묘기척이 있다. 타인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집에 있는 것, 타인이 마치 없는 것처럼 다른 방에 있는 것, 조용한 빈집에 나 혼자 있는 것, 이 세 가지 상황과 고양이와 나 둘만 있는 것은 다르다. 사람이 아닌 생명체는 독특한 존재감, 정적, 위안을 준다.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인간에 비하면 턱없이 작고, 인간보다는 체온이 살짝 높고, 보들보들한 털이 수북히 난 고양이가 자기 몸을 내 몸에 착 붙이고 누워 있으면 쓸모없는 생물 둘이서 서로를 위로해 준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이대로도 좋다는 생각도 든다.

<묘한 일기>에서는 이런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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