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전력의 수난 시대에 나의 스친 생각들

- 김융희

봄 날씨는 비가 내리면서 여름에 다가가며, 가을엔 비가 내리면서 차츰 겨울로 다가 간다.여름 내내 줄곧 내렸던 비는 가을에도 종종 내려 마치 하늘을 씻기라도 한 듯, 쪽빛 하늘이 더욱 푸르러 보인다. 여름도 오기 전, 지난 봄에는, 원전의 갑작스런 고장과 불량 부품의 무더기 사용으로 가동이 중단되면서, 가장 수요가 많은 여름철 전력 수요 차질로 인한 파동을 크게 우려했다. 소수 개인들의 이익을 위해 전 국민의 안전을 담보로 도적맞는 꼴이라니… 기계의 고장이야 늘상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관계자들의 서류 조작과 납품 비리로 불량 부품이 무더기 사용되어 가동이 중단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현실이 되었다.

“안전을 위해선 원전은 없어야 한다”고 우리들 모두 공감하면서도 부족한 전력 수요를 위해 어쩔수 없는 무리한 사용 강행이 현실이다. 어떻든 우려했던 지난 여름을 무사히 넘기게 되어 퍽이나 다행스럽다 싶었는데, 모든 일들이 전부 만족할 수 없는 것이 세상일이고 보면, 다가온 겨울 추위를 막아줄 전력 수급에 얽힌 지금의 여러 사태를 보면서 착잡한 마음이다.

지금 말썽인 송전탑 설치 문제에 얽힌 사정을 나는 잘 알지 못해 꼭, 적당히 할 말은 없다. 다만 전기로 인한 여러 문제들이 발생되고 있는 때에, 역시 대중 교통의 온 냉방과 같은 에너지 사용에 따른 작은 문제들을 생각해 본다. “여름엔 추워 죽겠고 겨울엔 더워 죽겠다”면 누가 믿을 수 있을까? 그러나 대중 교통인 전철, 버스, 열차의 어데서도 늘 직면한 현실이다. 냉 온방을 줄이거나 안해도 견딜만함에도 높게 틀어 놓으면 노약자 어린이등, 취약자들은 견디기가 몹시 고통스럽다. 그런데도 참고 견딘 것이 취약자들의 현실이다. 정말 못견디게 힘들어하며 겨우 조절을 부탁해보면 담당자에게 외면 당하기 일수다. 겨우 받아들인다 해도 곧 승객쪽에서 버략이 떨어진다. 냉방을 해라! 그래서 약자들은 말을 못하고 힘들어도 참고 견디는 것이 대수요 미덕인 것이다. 대중을 위한 써비스라며, 또는 내 것이 아니라며 함부로 낭비해선 안될 일이다. 약자를 위한 배려는 더욱 지켜저야할 의무이며 정당한 써비스이다. 승객측 냉방을 주장한 이들을 보면 열도 많고 목소리도 큰 힘센 자들이다. 그리고 자기 위주의 남을 배려할 아량이 없어 보인다. 그들은 기온에 거슬러도 건강에는 별 무리가 없지만,. 소노약자는 외부 환경에 매우 민감하다. 더운 날씨에 더운 기온은 별 탈이 없지만, 더운 날씨에 냉방은 아주 취약한 이들에게는 늘 탈나기 십상이다. 그런데도 사정은 전혀 반대여서 참으로 딱하고 안타깝다. 더우면 시원해야 하고 추위엔 따뜻한 생활, 이런 것을 위헤 개발된 것이 온 냉방기구들이다. 조금은 귀찮고 힘들더라도 부채를 사용하고 선풍기를 이용하면서 보내는 생활은 어떨까? 이런 실천은 분명 경제적이고 건강에 유익한 참살이를 위한 좋은 길일 것이다. 가정에서도 일 년에 한, 두 번 켤지라도 꼭 달아야하는 냉방기. 좀더 참고 견디며 사는 삶도 필요하다.

고객을 맞기 위해 하루 종일 아낌없이 전기를 펑펑 쓰면서도 부족해 더 많은 전기료를 부담하면서 고객의 편의를 위해 문까지 활짝 열어둔 수 많은 영업집들, 영업을 위해 이처럼 문을 열어두고 영업을 하면 벌금을 물어야 한다. 전기 소비를 줄이기 위한 정책이요 시행이다. 그러면서 공중 변소에선 개인의 손 씻는 것까지 공공 요금을 부담하면서 무제한 사용하는 짖이며, 추워 죽겠는데도 에너지를 펑펑 써데며 냉방기를 틀고 있는 대중 교통들의 무차별 써비스 정신이 꼭 필요하며 불가피한 일일까? 물론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에 시달리다 버스나 전철에 오르면 그렇게 시원한 냉방이 좋을 수가 없다. 그러나 좋은 것이라며 아무런 기준도 원칙도 없어선 안된다. 정당하게 요금을 지불하면서 자기 영업을 위해 전기를 많이 쓴것에는 벌금을 물리면서, 누구를 위한 배려인지도 알 수 없는 낭비를 계속하며, 뚜렷한 주인이 없어 내 것이 아니라며 마구 낭비를 하는 행위는 어떻게 다른가? 반드시 적절하면서도 합당한 조절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대중들도 너무 시원해 좋은 것만 따르지 말고, 약간의 참고 견디는 의지가 있어야 할 것이다. 고갈되어 가는 에너지 절약을 위해서도 그렇고, 건강을 지키는 데도 올바른 유익한 길이기 때문이다.

공중변소를 들렸더니 와글거리는 굉음이 계속된다. 손을 말리는 전기드라이어의 소음이다. 우리보다 잘사는 독일에서의 공중변소는 드라이어는 물론 화장지도 없었다. 편리보다는 자기 일은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것일 터. 내가 사용한 독일의 오성급 호텔 화장실에서도 우리 관공서에 거의 설치된 비데를 볼 수 없었다. 소비의 미덕이 아닌 절제와 절약 정신이 절실하다. 현대 문명을 누리며 사는 오늘의 우리들, 이성과 의지를 발휘하지 않으면 위기와 재앙은 반드시 각오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더구나 점점 상승해가는 지구의 온난화와, 우리들이 의존하고 있는 화석 원료의 에너지 고갈을 생각하면 더욱 심각한 문제로 아주 절실하다. 21세기를 맞아 현대 문명을 누리며 사는 오늘의 우리들이 이같은 의식을 저바리고 이성과 의지를 발휘하지 않으면 위기와 재해 재앙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내가 늘 통과하는 열차 역사 부근에 설치된 시민을 위한 운동기구들이 비를 맞고 있는 모습이 쓸쓸하다. 수없이 곁을 지나다니며 보았지만, 설치된 기구를 이용해 운동하는 것을 나는 아직 한 번도 구경하지를 못했다. 열 대도 넘는 제품의 값도 만만찮을 것이다. 저 사용도 되지 않는 운동기구는 누구를 위한 설치이며, 경비는 어떻게 조달되는 것일까? 지금 원전 비리로 전력난에 비상이라는 나라꼴을 보면서, 사용자도 없이 비를 맞으며 녹이 슬고 있는 운동기구들을 보는 마음이 편치를 않다. 운동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시골은 저런 운동기구가 아니라도 건강관리를 할 수 있는 더 좋은 방법과 길은 많다. 나는 서울 가면 시원한 은행에서 흘힌 땀을 식힌 적이 있다. 그러나 볼 일도 없이 점포에 들러 땀을 식히는 일이 마음에 찔려 가능한 자제한다. 우리 집에서도 시원한 에어컨을 마음껏 틀면서 지냈으면 좋겠다. 그런 내가 아무리 더웁고, 돈이 많아도 아마 우리 집에는 에어콘을 설치하지는 않을 것이다. 배푸는 배려라며 이낌없이 쓰면서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의식과 관행, 그러면서 기회만 되면 자기들의 잇속을 속속들이 챙기는, 그래서 “원전 마피아”란 말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세상을 바라보는 이 촌노의 마음은 늘 우울하고 착잡하다.

매우 사소한 일에 냉담하고 외면하는 이들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현대의 기술을 믿으며, 그렇게 비관할 필요가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기우라며 외면하기 보다는 좀더 배려하며 대처하는 지혜가 우리들의 할 일이다. 여름철 무더위에도 냉방을 자제해야 하며, 산업체도 절전을 단행해야 하는, 그리고 비상의 대책을 맡는 정부의 시책들이 필요하다. 마피아란 별명까지 얻은 원전 비리의 이렇궁 저러쿵 내막이나 사정을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도, 관심도 없다. 다만 지금 송전탑 설치 문제로 찬반의 격돌을 보면서 멍청하게 멀끔히 지켜봐야만 하는 것이 안타깝고 민망스러웠다. 그래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었일까를 잠깐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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