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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벌거숭이>박상훈 감독 인터뷰

- 숨(수유너머R)

0. 반성문

“반성문이에요. 제 인생의 반성문. ”

박상훈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반성문이라고 말했다,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반성을 한 사람의 얼굴이 왜 개운하지 않을까. 잘못했다고 말한다고 잘못했던 일이 사라지진 않는다는 걸 가슴을 치고 반성해본 사람은 안다. <벌거숭이> 영화를 보면서 속이 답답했던 이유 중에 하나는 반성의 속성 때문이다.  되돌릴 수도 없고 벗어날 수도 없는 죄를 반성하는 것은 뫼비우스의 띠를 무한대로 맴도는 것과 같다.

영화는 음울하다. 한 방을 외치는 무능력하고 못난 가장 박일래. 유일한 생계 수단인 점포를 담보로 빌린 돈을 사기로 날리고 부인과 아이에게 농약을 먹여 죽인 후 자신도 약을 먹는다. 하지만 다음날 혼자 깨어난다. 박일래는 죽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하는 자다. 자살 시도는 번번이 실패하고 그는 유령처럼 세상을 떠돈다.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죄를 짓지 않더라도 누구나 자신의 잘못이 죄가 되는 경험을 한다. 박감독은 영상 공동체를 꾸려서 활동하다가 “순식간에 자신의 실수로 말아먹고” 도망치듯 나갔다. 이러다 죽어야지 하고 시골로 갔다. 박감독은 정신적 충격을 크게 입고 시골을 떠돌면서 가끔 귀기를 느끼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그것이 다른 세계일 뿐이라고 말한다. 영화 속 박일래는 자신의 죄를 극복할 수도 단죄할 수도 없다. 그는 가해자이자 죄를 지은 자이다.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사과나 반성, 섣부른 속죄는 공허하다.  점점 자기의 죄에 잠식당한다. 죄의 무게로 가슴에 구멍이 생기면 그 동안 보이지 않았던 세계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는 승인 받지 못한 세계-원망, 상처, 복수, 회한, 절망이 넘치는 세계 속에 발을 들여놓는다. 유령의 세계에 속한 자가 된다.

“참 이상한 이야기긴 한데, 귀기나 음기가 없으면 인간의 형상, 생명의 모든 부분이 불가능했다고 봐요. 진화와 관련해서 예를 들면 물 위로 올라온 물고기가 포유류가 되잖아요. 물 아래에서 큰 물고기들한테 쫓겨나서 갈 데가 없어서 위에 올라오는 거죠. 거기서 온 원망과 상처, 비명들이 쌓여서 다리가 생겼다고 봐요. 그래서 음기의 세계가 없으면 우리가 어떤 미래나 그런 것들도 발견할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박상훈 감독은 이 보이지 않는 세계가 우리 세상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의 삶은 희미한 어둠 속에서 우글거리는 이 세계를 지반 삼아 서 있다. 그의 반성문은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한 후 합리적인 해결책으로 손쉽게 나아가지 않는다. 대신 어둠 속에 비틀거리며 방황하는 박일래의 뒤를 쫓는다. 감독 자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1. 전환

박상훈 감독은 애정이 많았던 영상 공동체 실패 후 가출하듯 “죽어야지” 하며 시골로 갔다고 했다. 하지만 그 일은 그에게 어떤 전환을 가져다주었다. “귀기”를 느끼며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세계를 보는 동시에 시골의 어르신들에게 배웠다. 그곳 어르신들이 세상을 대하는 호흡은 감독이 알던 것들과 굉장히 달랐다.

돈이 없으면 죽을 것 같기도 하는 불안감이 그곳에서 버티면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돈이 떨어질 때가 되면 돈벌이가 찾아왔다. 돈이 쌓이면 빠질 일이 생겼다. 약간 아쉬울 때도 있지만 돈, 명예를 위해 움직이지 않고도 충분히 살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 영화 작업도 방향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 지금의 영화 배급 방식도 할머니들을 보고 생각한 것이다. 할머니들은 텃밭에서 기른 배추, 상추, 고추를 때마다 장에 나가서 팔고 그 돈으로 하루하루 먹고 살아간다.

“영화를 만들어서 대박 치겠다 그게 아니라 내가 한 만큼 받고 그걸로 영화 작업 조금씩 하고. 이러면서 살면 될 거 같다는 생각이 있어요.”

박감독은 영상 공동체를 할 때부터 돈 없이 영화를 찍는 법을 추구했고 그런 시스템을 어느 정도 배웠다. 시골로 나온 후에는 마을 영화를 계속 찍으며 구체적인 방법을 익혀 갔다. 프로젝트를 받아서 진행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취재해서 재밌는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바꾸고 마을 분들과 영화로 만들었다. 마을 영화는 돈이 많이 안 들었다. 그렇게 지원 받아 남는 돈으로 영화 <벌거숭이>를 찍고 생활하는 데 썼다. 마을회관에 한 번 들어가면 3개월에서 반년 정도를 났다. 촬영은 얼마 안 하고 마을 근처를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하곤 했다. 하루에 담배 한 갑, 소주 한 병 살 돈만 있으면 됐다. 돈 없어도 찍는 방법을 구체화시킨 실험이 영화 <벌거숭이> 였다. 돈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잉여만 싹 빼고 나면 돈은 언제든 안 부족해요. 돈이 떨어지면 정신도 불안해지고, 어떻게 하나 되게 힘들었는데. 몇 번 테스트 해봤어요. 돈이 떨어져도 조금 참고 있으면 돈이 들어와요. 돈 벌 일이 들어오거나. 돈이 있으면 쓸 일이 터져버리고.”

 

2. 작업

워낙 없는 처지지만 기다리지 않는다. 없어도 일단 하고 본다. 투자, 지원을 거부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기다린다고 제작 지원이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건 시간 낭비 같다. 가지고 있는 돈으로 조금씩 영화를 찍고 돈이 떨어지면 돈을 번다. 그리고 또 찍는다. <벌거숭이> 촬영에만 2년이 걸렸다. 스텝들이 계속 바뀌었다. 이번에 참여했다가 다음에 바빠서 못하면 또 거기 새로운 누가 와서 메웠다. 룰을 정하기보다 상황에 맞춰서 룰을 만들었다.

작업을 함께하는 스텝이나 배우들은 시절 인연처럼 만나서 같이 작업하고 헤어지기도 했다. 처음에 불만은 있었지만 박상훈 감독의 작업 방식을 이해하니까 여기까지 같이 온 사람들이 남았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사람들을 보면 영화 현장 일을 계속하는 사람들이다. “창작하는 사람들, 배우들도 마찬가지예요. 창작할 수 있는 사정은 안 되고 기다리자니 내 능력만으로 조건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막연한 공허에 있는 것보다 이게 나은 거죠.”

 

“막연한 공허”에서 벗어나 계속 창작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가 발견한 것. 박상훈 감독은 자신의 작업을 일종의 M.T이고 어드벤쳐라고 말한다. 2,3일씩 밤을 새서 촬영하지 않는다. 돈을 많이 들이지 않는 대신 시간에 여유를 두고 놀면서 쉬면서 영화를 찍는다. 4, 5시간 촬영하다가 낚시를 하러 가거나 노래방 기계를 틀어 놓고 노래를 한다. 산책하며 이야기를 한다. 영화를 모르는 사람이 도와주러 오면 영화를 찍으면서 워크숍도 함께한다.

하지만 여유롭고 만만한 분위기만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방식이 너무 과격하고 진취적이라서 멤버들이 힘들어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요구를 한다. 한 장면 촬영에 2, 30분 롱테이크로 끊지 않고 그대로 찍는다. 박일래가 석탑에 빨랫줄로 목을 매는 장면은 40초를 넘겨서 촬영했다. 주연배우는 숨이 넘어갈 뻔했다고 한다. 숙박도 모텔에서 해결할 수 있는데 창고나 마을 회관을 개조한다. 천막 하나 사서 나무를 베고 샤워장을 만들고 창고를 청소한다. 박일래 가족이 살던 폐가도 촬영지에 원래 있던 폐가 그대로다. 청소만 새로 해서 폐가에 있던 가재도구들 그대로 가져다 썼다. 처음에 많이 낯설어 하지만 지나보면 재밌어 한다. 하여튼 전쟁터 같은 느낌이란다. “저 스스로 무언가 할 때 에너지를 많이 써요. 에너지를 조금 쓰는 사람이 저랑 있으면 힘들죠. 리더가 에너지를 많이 쓰면 어쩔 수 없이 따라는 가야 하는데 자기 습에 그런 게 없던 친구들은 힘들어해요.” 삐지기도 하고 불만인 친구들도 없을 순 없다. 하지만 이런 게 되는구나 하면서 신기해한다. “나중에는 패밀리 같은 느낌이 많이 남아서 다른 제작팀들하고 달리 시간이 오래 지속되는 거 같아요.”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주연배우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진 아마츄어다. 그래서 연기가 어색하다. 마을 분들이 잠깐씩 나오는 조연과 엑스트라로 출연했다. 박감독의 아버지도 한 장면 등장했다. 장편이고 호흡이 너무 기니까 주연은 전문 배우가 맡은 거라고 말하는 박감독. 한 달 안에 할 수 있으면 신경 쓰지 않고 주연도 비전문 배우에게 맡겼을 태세다. 그는 일반 관객의 눈에 어설퍼 보이는 비전문 배우의 연기가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

“독특한 분위기가 있잖아요. 그게 적응이 되면 괜찮죠. 문제는 영화적 분위기를 잘 조성해 주는 거에요. 영화의 전체적 분위기가 원래 그런 영화다 하고 어설픈 거랑, 잘 디렉팅된 영화다 하면서 그런 게 튀어나오는 건 다르잖아요. 어떤 판을 잘 까냐가 중요한 거 같아요.”

세련되고 매끈한 영화를 만들고 싶지는 않느냐는 질문에 간단하게 대답한다.

“네, 별로 관심없어요.”

 

3. 배급과 감독

박감독은 매우 바쁘다. 싸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그이지만 상영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어 압박감이 크다. 원래 지방 도로를 타고 다니며 여기저기 천천히 움직이기를 좋아하는데 워낙 바쁘니까 근래에는 고속도로만 타고 다닌다. 어제는 부산에, 오늘은 서울에 있는 식이다. 지금까지 광주, 대구, 부산을 갔고 강릉, 전주, 대전에 가야 한다. 영화를 찍을 때도 전국을 돌았지만 배급하고 극장 섭외하느라 돌아다닌 것까지 합하면 총 다섯 바퀴째다. 마지막 다섯 번째에는 추석이 끼어서 택배가 늦어져 전단지를 들고 극장을 돌고 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처럼 온라인 홍보를 주로 하는데 옛날식으로 하고 싶었다.

“옛날 극장은 멀티플렉스나 여러 관에서 상영하는 게 아니라 극단이 필름 하나 들고 다니면서 상영했거든요. 거기에서 착안을 해가지고. 70년대까지는 그렇게 했어요. 이렇게 하면 오히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할 이야기가 많아지니까 낫다는 생각도 들어요. 요새 온라인 홍보 말고는 독립영화가 홍보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까.”

영화<벌거숭이>는 영화진흥원으로부터 2천만 원의 배급 지원금을 받았다. 박감독은 이 돈이 없었다면 극장에 걸 생각도 안 했을 거라고 한다. 보통 제작비 10억짜리 상업영화라고 하면 마케팅과 배급에 드는 비용이 5, 6억원 이상인데 독립영화라고 해도 2천만 원의 배급지원금은 턱없이 적은 돈이다. 그래서 발로 뛰고 정성을 들이고 시간을 쏟는다. 그는 감독이 영화를 찍기만 하는 자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나리오, 촬영, 편집부터 영화의 순환구조, 유통과 배급, 상영하는 작업까지 모두 감독의 일이라고 본다.

“감독 일의 반은 비지니스고 사람 설득이에요. 가서 얼굴 보고, 없으면 편지 쓰고. 지원금을 받았기 때문에 개봉관이 5개가 안 되면 돈을 도로 뱉어야 해요. 지금은 12개 관이 잡혀있어요. 쭉 한 씩 찾아가서 설명했어요. 제가 인지도 있는 감독이 아니고, 독립배급을 했을 때 마케팅을 어떻게 해결할 거냐 하는 문제도 있고. 극장 입장에서 제 영화를 상영하기 어려운 점을 제가 먼저 말을 하고, 그에 따른 대안도 같이 이야기했어요.”

박감독이 배급까지 발로 뛰는 것은 그 나름 터득한 생존법이기도 하다. 영화의 수익은 다음 작업을 위해 쓰여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독립영화 자체가 수익이 워낙 적기 때문에 감독이 직접 배급, 비용을 줄여 다음 작품을 위한 비용을 마련한다. 이런 기반이 있어야 지원금이나 투자를 받기 위해서 시나리오를 고치고 휘둘리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감독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영화의 방향을 찾아가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독립영화제작 지원금을 매번 탈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단 한 번, 운이 좋으면 두 번 오는 기회를 잡으려고 기다리는 건 무모하다.

“미술할 때부터 예술가들이 쓰러져가는 걸 많이 봐왔어요. 지원금을 받는 건 좋은데 그거에 의지해서 예술가로 평생을 가야한다는 건 자기가 자기 목숨 내놓는 거죠.”

박감독은 시나리오가 좋고 영화가 잘 나와도 실패하고, 못 만든 영화가 대박을 치기도 하는 게 영화판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의지해서 자기 작업을 진행해 나가는 건 도박에 목숨을 거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다.

 

4. 앞으로의 작업

“한국적인 언어를 만들고 싶어요. 한국적인 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땅의 언어를 제 영화로 만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요새는 고전 영화밖에 안 봐요. 옛날 한국 영화들만 쭉 보고. 옛날에는 묘한 매력이 있더라구요. 여기 아니면 안 되는 것들이 있어요. 90년대 코리안 뉴웨이브 그런 게 들어오면서 분위기가 싹 바뀌었거든요. 그 전에는 4, 50년 동안 명맥을 잘 유했는데. 뭔가 한국적인, 한국만이 하던 게 있었어요. 그땐 사회가 약하니까 세계에서 인정을 받을 수는 없었어요. 그때 영화를 보면 감독이 가졌던 예술적인 일관성이 있어요.”

박상훈 감독이 말하는 한국적인 언어의 느낌이 잘 다가오지 않아 작품을 하나 추천해 달라고 했다. [장마](유현목 감독, 1979년) 그의 말로는 [아큐정전]보다 멋진 작품이란다. 빨치산하고 6.25 참전 국군과 빨치산을 각각 자식으로 둔 할머니들의 이야기다. 두 할머니가 서로 자식을 비교하고 질시하면서 싸우게 되는 이야기다. “되게 재밌어요. 한국이니까 저게 되는구나. [노다지](정창화 감독, 1961년) 같은 영화나 임권택 감독님 영화도 그래요. 한국이니까 저게 되는 거지 싶은 게 있어요. 요새 사극들은 한국이니까 나오는 그런 느낌은 아니잖아요, 같은 사극이어도. 이 느낌 아시겠어요?”

그가 말하는 그 느낌을 알 듯 모를 듯해서 재차 질문하고 들은 이야기를 여기 옮겨 놓는다. 아직 그에게도 언어가 없다. 일본은 비장미, 중국은 대륙성이나 중앙 이런 것들로 잡히지만 한국은 그런 게 없단다. 아무래도 근대로 들어서면서 없어진 것 같기도 하고 만들 일이 없었던 것도 아닌가 싶단다.

“오늘날도 강남부터 저기 당진의 시골마을까지 80년이 같이 흐르더라구요. 지금이라고 해서 딱 21세기만 있는 게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저 고대까지 같이 흐르는 거죠. 돌아다니면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아요. 가는 곳마다 시간 차가 있고 시대 차가 있고. 너무 고상해지네.(웃음) 순박하면서도 어설프고 조잡한 뭔가예요. 박일래 가족 같은. 걔네들이 약간 더 동글동글해지면 되는데.”(웃음)

 

*영화와 상영정보는 blog.naver.com/mere_life에서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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