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대 과학

천동설 대 지동설

- 박성관

0. 「과학 대 과학」 연재를 시작하며

나는 자연과학을 좋아한다. 그러나 전문가는 아니다. 이름을 붙이자면 나는 아마추어 과학자다. 아마추어란 amateur라는 단어의 생김새에서 얼추 연상할 수 있듯이 “연인이라는 뜻의 라틴어 amator에서 유래된” 단어다(제임스 N. 가드너, [생명 우주]). 그러니까 아마추어 과학자란 자연과학과 연인 관계인 사람이라는 뜻이다. 혹은 과학 애호가(愛好家)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애호가라… 참 좋은 말이다.

나는 자연과학 애호가로서 앞으로 <과학 대 과학>이라는 제목으로 여러 가지 흥미로운 문제들에 대해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자연과학이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이 시절에, 토론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겠는가! 여러분이 내 얘길 듣고 경탄이나 열광을 할지, 분노와 조소만을 퍼부을지, 그건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다만 바라기는, 이 연재를 통해 이 세상에 더 많은 과학 애호가들이 탄생하기를…

 

1. 천동설은 틀리고 지동설이 맞다고?

나는 전문 천문학자가 아니다. 그러나 천문학을 좋아한다. 당연하고도 자연스런 일이다. 천문학이란 무엇인가? 천체(天)가 운행하며 빚어내는 온갖 무늬(文)들에 대한 지혜가 아닌가! 그러니 137억년 전에 태어난 우주, 그중에서도 46억년 전에 태어난 태양계 내의 지구에 살고 있는 주민으로서 어찌 내가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이 우주의 무늬, 그 패턴에 관심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 나는 천문학 애호가요, 천문의 연인이다.

천문학과 관련하여 우리가 제일 먼저 배우는 핵심적인 지식은 무엇인가? 학교 교과서나 수많은 대중 과학서들은 이렇게 가르친다. 17세기에 서유럽에서 과학 혁명이 발발하여 기존의 잘못된 천동설이 타파되고 올바른 지동설이 확립되었다고. 종교와 이데올로기에 지배당하던 천동설 대신, 인류는 드디어 관측 사실과 엄밀한 수학에 의해 인도되는 지동설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인들에게는 그야말로 상식 중의 상식에 속하는 지식이다. 여러분도 너무나 잘 알고계실 것이니 굳이 주를 달 필요도 없을 것…..이지마는, 간단히 확인하는 차원에서 아무 거나 검색해 보기로 한다.

“이후 티코 브라헤, 갈릴레오 갈릴레이, 케플러와 뉴턴 같은 학자들이 천체 관측 자료를 바탕으로 지동설의 증거를 하나씩 찾아내었다. 이로 인해 과학적으로 우주관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터가 마련되었고, 과학적 이론이 점점 자리를 잡아 지동설이 옳다는 것이 증명되었다.”(「두산백과」)

우리가 수도 없이 들었던 이야기다. 정말이지 두 번만 더 들으면 100번째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나는 10여년 전부터 이러한 가르침에 심각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지동설이 옳다는 게, 그게 증명되었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그럴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그 뒤 이런저런 책을 읽고 생각을 굴려본 끝에 결론을 내렸다. ‘천동설은 사실이 아니고 지동설이 사실’이라는 것은 틀린 견해라고, 적어도 자연과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이 얘기를 듣고 당신은 광속으로 내가 어떤 사람일지 상상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이 사람 대체 뭐하는 사람이지? 그러면서 당신이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 관계로 허겁지겁 두 가지를 미리 말해 두고자 한다.

첫째는 내가 이런 견해에 도달했을 때, 나도 크게 놀랐다는 것이다. 당근 그렇지 않았겠는가! 그러니 당신이 나를 아무리 이상한 사람으로 여기더라도, 나는 당신을 이상하게 보지 않을 것이다. 둘째, 나는 내 견해의 근거를 자연과학에서 가져올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내가 자연과학 서적들을 읽는 과정에서 그런 견해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조금 뒤에 보시겠지만, 이번 주에 내 견해를 지지하도록 끌어댈 과학자들은 최무영 교수와 스티븐 호킹이다. 이들이 어떻게 ‘천동설은 사실이 아니고 지동설이 옳다’는 우리의 상식을 보기 좋게 배반하는지, 기대하시라.

 

약 12, 13년 전 무렵, 그러니까 2000년 즈음에 나는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과학이라는 신천지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꽤나 근사하면서도 유머러스하고 또 신기한 세계였다. 날마다 새로운 빛깔의 느낌표들이 그 꽃밭에서 피어올랐다. 헌데 조금 더 들어가면 갈수록, 하나를 알면 세 개를 몰랐었다는 걸 알게 되는 야릇한 상황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의문 한 가지가 풀리면 서너 가지 새로운 의문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딸려 올라왔다. 근사한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독서 욕구가 줄어들기는커녕, 더 읽고 싶은 책이 세 권, 다섯 권 불어나는 식으로 말이다. 느낌표의 개수와 물음표의 개수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형국! 그렇게 급속 증식되던 물음 중의 하나는 바로 이것이었다.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는 걸 어떻게 알지? 태양도 멈춰 있는 게 아닐 텐데 말이야. 태양계 행성들이 태양을 고정된 중심으로 삼아 돌려면 태양이 고정되어 있어야 하는 거 아냐? 근데 그럴 리가 없잖아….?%!*&

그때는 과학 관련해서 몰라도 너무 몰랐기 때문에 그저 이 물음을 반복하기만 했다. 같은 데서만 맴돌뿐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길을 알지 못했다. 같이 공부를 하던 친구들(대부분 인문학을 하는 친구들이었다)은 이런 나의 질문에 별 반응이 없었다. 어쩌면 짜증 내는 동료들도 있었더랬는데, 내가 기억에서 그들을 지워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소위 자연과학을 전공한, 그것도 물리학 박사를 받은 한 친구가 이런 얘기를 해주었다. 사실 뉴턴도 그런 류의 문제를 고민했다고. 그게 바로 뉴턴의 유명한 물통 실험이라고. 아마도 그 순간, 나는 과학자들을 나와 거리가 먼 천재들로만 여겼던 게 나의 오해일지도 모른다고 느꼈던 것 같다. 작지만 훗날 돌아보면 의미 있는 방향 전환이었다. 그 뒤 10여년 정도 자연과학을 공부하면서 나는 과학자들 중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중에는 내가 품은 물음들에 대해 비과학적인 질문이라고 내치는 게 아니라, 그거 아주 좋은 질문이라고 동감해 주는, 그러면서도 자신은 이러저러하게 생각한다고 이야기해 줄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내게 그 대표적인 인물은 바로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리처드 파인만이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물리학 교과서, 빨간 책으로 더 잘 알려진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승산)의 저자다. 이 책을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파인만은 그 어떤 주제든 간략하면서도 명쾌하게 설명해내는 천재다. 그런 다음 그는 종종, 말도 안 되어 보이는 질문, 또는 말만 되지 현실적으로는 거의 무의미할 것 같은 질문, 혹은 질문을 위한 질문에 불과해 보이는 그런 질문을 불쑥 던진다. 그런 질문을 던질 독자들도 있을지 모른다며 말이다. 그러고 나서는 거의, 반드시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 간다. “그거 아주 좋은 질문이다.” 그리고 차근차근 설명을 해 준다. 나는 그런 파인만에게 그만 반해버렸다. 물론 그가 온갖 희한한 질문들에 대해 모두 완벽한 답을 해 주는 건 아니다. 자연과학이 모든 물음에 완벽히 답할 수 있는 건 아니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그렇지만 그는 최소한 그런 질문 자체를 반(反) 과학적이라며 무시하거나 봉쇄하지는 않았다. 자연과학의 현 수준이 그 질문에 대해 부족하게나마 어떻게 생각하는지, 앞으로의 과제는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지 등의 얘기를 해 준다. 앞으로 나의 글에서도 그는 자주 등장할 것이다. 되풀이해서 말하건대, 내 주장의 근거는 거의 전부 과학 분야에서 취할 것이며, 그것도 대부분 파인만이나 과학 교과서 등 소위 주류 과학서에서 취할 것이다.

원래의 화제로 돌아가기 전에 물통 실험에 대해 조금 덧붙이기로 하자. 우선 그 뉴턴의 물통 실험이라는 건 저 유명한 [프린키피아]의 아주 앞 부분에 나온다(아이작 뉴턴, [프린키피아] 제 1권의 p.13~16). 그리고 나는 나중에, 뉴턴의 물통 실험이 내가 품었던 질문과 근본적으로는 관련이 있지만 조금 초점이 다른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참고로 관심 있을 분들을 위해 소개하자면, 브라이언 그린의 [우주의 구조]에 보면 물통 실험의 내용이 아주 잘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의 I부 2장 <회전하는 물통과 우주: 공간은 물리적 실체인가?>를 보시라(장 제목만 봐도 벌써 내용이 짐작되지 않는가?). 또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 1권 16장을 보면 16-1 <상대성 이론과 철학자들>에도 관련 대목이 나온다. 이 주제는 대단히 흥미롭고도 문제적이지만, 오늘은 길게 다룰 수 없으니 결론적인 얘기만 두 가지 하려 한다. 첫째는, 내가 품었던 바로 이 의문이 뉴턴에게도 만만치 않은 문제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는 뉴턴이라는 희대의 천재가 그렇게도 고심하고 그래서 마침내 도달한 그 결론이, 적어도 현대 물리학에서는 틀린 것으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물리학은 물론이고 자연과학 전체에서도 최대의 천재로 꼽히는 뉴턴의 결론이 틀렸다니…… 우째 그런 일이! 아니, 그 이전에 그걸 밝혀낸 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 과연 그 분이 누구시겠는가? 그는 바로바로 뉴턴 못지않은 천재로 꼽히는 20세기 최대의 과학자, 바로 아인슈타인이다.

 

원래 우리가 하던 이야기 주제로 다시 돌아가보자. 단, 이번에는 좀 더 과학스럽게, 예컨대 다음과 같이 표현해보면 더 좋겠다. 현재의 천문학에 따르면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초속 30Km의 속도로 움직인다(이것이 바로 지구의 공전 속도 초속 30Km다). 당신이 어딘가에 앉아서 이 글을 읽고 있는 중이더라도, 그래서 스스로는 정지해 있다고 생각하고 또 신체적으로도 분명히 그렇게 느낄지라도, 당신은 최소한 초속 30Km로 운동 중이다. 놀랍지 않은가? 그런데도 우리는 전혀 그걸 느낄 수가 없으니 말이다. 하긴 이게 불가능하지만도 않은 것이, 시속 500Km로 날고 있는 비행기(이번엔 초속이 아니라 시속이다) 안에서도 우리는 잠을 잘 수 있지 않은가! 그것도 종종 쿨쿨 자기까지 한다. 그런데 이런 의문을 가져본 적 있는가? 만일 내가 시속 200Km로 내달리는 총알택시에 실려 납치당하고 있다면 나는 실제로 얼마만한 속도로 이동당하고 있는 것일까? 총알택시의 비행(에 가까운) 방향에 따라, 어떤 경우에는 초속 30Km보다 작은 속도일 것이고, 어떤 경우에는 그보다 큰 속도일 것이다. 나의 실제 속도는 얼마인가?

이제 우리 스케일을 좀 키워보자. 사실 지금까지의 얘기는 태양이 멈추어 있다고 가정한 차원에서의 얘기일 뿐이었다. 차원을 우리 은하계 전체로 넓혀보자. 우리 은하계를 기준으로 보자면 태양계는 초속 250Km의 속도로 움직인다(우리는 다시 초속으로 돌아왔다). 정말 어마무지하게 빠르다. 그럼 이럴 경우 지구의 속도와 태양, 나아가 달이나 다른 행성들의 이동 속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아니, 그런 불덩어리나 돌텡이들은 둘째 치고 나 혹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떤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실제로 말이다.

더 나아가 우주 전체로 스케일을 최대한 키워보자. 그럼 어떻게 되겠는가? 대답을 확인할 필요도 없다. 우주 전체에 은하가 1000억 개는 있으니까, 그 규모는 말 그대로 천문학적으로 크다. 그러니 지구의 속도는 ….. 그렇다! 천문학적인 속도로 질주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다시 묻는다? 나의, 아니 우리 지구의 실제 속도는 얼마인가?

지금까지 나는 주로 지구의 실제 속도가 얼마냐는 식으로 이야기를 해 왔다. 그렇지만 앞 부분에서도 말했듯이 내 본래 의문은 그와는 조금 달랐다. 나의 소박한 질문은, 우주가 유한한지도 무한한지도 모르는데, 우주에 어떤 고정된 배경이나 기준점이라는 걸 설정할 수도 없을 터인데, 대체 무엇이 움직인다는 걸 과학적으로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아마도 자연과학 애호가나 과학 전문가들 중에는, 우주는 경계를 갖지 않지만, 그러면서도 유한하다는 식의 견해를 제시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내 주변의 어떤 사람이 그렇게 하면서, 우주와 관련하여 유한-무한의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이야기하였다(이와 관련하여 최근에 읽은 좋은 책 한 권을 소개한다. 도널 오셔, 전대호, [푸엥카레의 추측](까치, 2009)). 그런 견해에 대해 짧게만 말해 두자면, 그건 모델이지, 객관적 사실은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오래 전에 철학자 칸트가 이미 정리해 주었듯이, 우주가 유한하냐 무한하냐는 질문에 대답하려는 순간 우리는 이율배반에 빠진다. 언젠가는 지금까지 상상치도 못하던 해답에 우리가 도달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현재까지는 그렇다. 게다가 요즘 천문학 관련 서적에 가장 빈번하게 제시되는 우주론에 따르면 우주의 개수는….. 뭐라고? 우주의 개수라니….! 우주는 전체이고 따라서 그 정의상 하나인데, 무신 그런 우주에 개수 따위가 가능하단 말인가? 물론 그렇다. 아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래야 했다. 그런데 요즘 천문학에서 말하는 걸 보면 우리의 그런 사고 방식 자체도 죄다 뜯어고쳐야 할 듯하다. 우주가 하나가 아니며, 그 개수도 무려 10의 500승 개라고 한다. 브라이언 그린의 신작 제목을 보라 [멀티 유니버스: 우리의 우주는 유일한가?](김영사).

 

앞서 얘기했지만 뉴턴도 나와 같은 의문 앞에서 깊이 고민했다. 그래서 그가 도달한 결론이(어쩌면 요청되었던 것일 테지만) 바로 절대 시간과 절대 공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과 공간이라는 게 그렇게 간단히 절대적인 게 될 리가 없다. 라이프니츠나 하위헌스(호이겐스를 요즘 한국에서는 이렇게 표기한다)를 비롯한 당대의 일급 학자들로부터 절대 시간이나 절대 공간에 대한 비판이 불벼락처럼 쏟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턴이 시간과 공간의 절대성을 고집해야 했던 것, 나아가 칸트가 상정한 가장 중요한 선험적 범주 중 두 가지가 바로 시간과 공간이었던 것은, 바로 이 문제와 관련된다.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조르다노 브루노까지도 마주치게 된다.

어떤 사람은 내 의문을 듣더니 이렇게 가르쳐 주었다. 정확히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게 아니라, 지구와 태양의 공전 중심을 중심으로 태양도, 지구도 공전하는 것이라고. 단지 그 공전 중심이 태양에 너무나 가깝기 때문에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공전한다고 대략 표현하는 것이라고. 그런데 이런 말을 듣고서도 내 의문은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 그 공전 중심이라는 걸 어떤 고정점처럼 생각하는 것은 여전히 절대 공간을 상정하는 하나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공간의 절대성을 과학적으로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느냐는 나의 질문은 조금도 대답을 받지 못한 것이다.

나의 질문은 한동안 답보 상태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다른 “과학 책들”, 다른 “과학자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순간 나는 뜨겁게 달궈지기 시작했다. 어디 여러분도 한번 읽어보시라.

코페르니쿠스

그러나 현대 이론에서는 코페르니쿠스와 그 이전의 천문학자들 사이의 문제는 단지 편의의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모든 운동은 상대적인 것으로, 위의 두 진술 사이에 차이점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구는 하루에 한 번씩 회전한다”도 맞고, “하늘이 지구 둘레를 하루에 한 번씩 돈다”라고 말해도 된다. 두 진술은 똑같은 것이어서, 마치 우리가 어느 일정한 길이를 6피트라고 부르든, 2야드라고 부르든 상관없는 것과 똑같은 뜻이다.”(버트런드 러셀, 김영대 역 [상대성 이론의 참뜻](사이언스북스, 1997). p.17).

누구의 말일까? 저 유명한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말이다. 러셀은 철학자로 유명하지만 연구의 초기에는 수학자로 날렸던 사람으로 역시나 비슷한 이력을 가진 화이트헤드와 [수학적 원리](Principia Mathematica; 1910~1913) 전 3권을 지었던 수학자였다([수학적 원리]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는 역시나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 책은 약 10년에 걸쳐 쓰여진, 2천여 페이지나 되는 대저이다. 2천여 페이지나?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1+1=2임을 증명하는 데에만 “무려 362쪽이 들었다. …. 꼬마들도 다 아는 것을 증명하는 데 362쪽이 들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원래 이 책은 그 세 권으로 완결되는 게 아니라 이후에도 더 많은 권수가 추가될 예정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이런 책을 누가 읽고, 아니 누가 출판해 주려고나 하겠는가? 실제로도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부에서도 고개를 가로저어 결국 화이트헤드와 러셀이 출판 비용을 대어서야 겨우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던 책이다. 이 무지막지한 책을 읽은 사람은 세상에 단 세 명 있다고 한다. 그중 한 사람은 불완전성 정리라는 위대한 업적을 달성한 쿠르트 괴델이고, 나머지 두 사람은 바로 화이트헤드와 러셀이다. 저자들이니 그 책을 읽은 사람에 포함시킬 수 있다는 셈법에 의해서다. 어쨌거나 그런 러셀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를 해설하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이 얘기 정도로는 의구심만 뭉게뭉게 피어오를 독자들을 생각해서 하나 더 인용해보자.

“이론을 만들어 나갈 때 적절한 개념과 가설에서 출발할 텐데, 이것은 임의 요소니까 어떤 개념을 선택할지, 기본원리를 어떻게 출발할지에 따라서 여러 가지 다른 이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선택한 개념이나 기본원리가 과연 정당한지 검토하지만, 일반적으로 감각 기관과 관측을 통해 연결할 때 현실성이 있는 이론이 단 하나뿐일 이유는 없습니다.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이론들이 감각 경험과 연결되어서 똑같은 현실성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구중심설이냐 태양중심설이냐 하는 문제에서 여러분은 지구중심설은 틀렸고 태양중심설이 옳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네요. 그러나 사실 두 가지 모두 훌륭한 이론 체계라 할 수 있습니다. 기본 원리는 다르지만 관측을 통해 감각 경험과 연결하면 두 가지 모두 현실성이 있습니다. 행성의 운동에 대해서 여러분은 태양중심설이 친숙하겠지만 지구중심설로도 잘 설명할 수 있습니다.”([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

최무영 교수 역시 저명한 물리학자다(저명하다는 데 강조점이 있는 게 아니라, 최 교수 역시 주류의 이론에 반하는 희한한 이설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 주시기 바란다). 앞서 인용된 러셀과 비슷한 취지의 얘기다.

당신은(과학을 전공한 사람들을 포함하여) 이렇게 의문을 제기하거나, 심지어는 분통을 터뜨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구중심설은 과학 대신 종교(혹은 미신)에 기반한 거고, 태양중심설은 과학(혹은 사실)에 기반한 거 아닌가!.’ ‘과학은 사실과 그에 대한 해석의 문제지, 단지 편의의 문제가 아닌지 않은가!’. ‘그럼 지구중심설이 사실이고 태양중심설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단 말인가!’

하긴 겨우 인용문 두 개 보고 어떤 결론을 내리는 건 너무 섣부른 짓이다. 나로서도 좀 없어 뵌다는 느낌이 없잖아 드는 관계로,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2010년 저서에서도 한 구절 뽑아보기로 한다. 옛 말에 삼세번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천체들에 관한 우리의 관찰 자료들은 지구가 멈춰 있다는 전제 하에서 설명할 수도 있고 태양이 멈추어 있다는 전제 하에서 설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코페르니쿠스의 모형은 우리 우주의 본성에 관한 철학적 논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 모형의 진정한 장점은 단지 태양이 멈추어 있는 기준 틀에서 운동 방정식들이 훨씬 더 간단하다는 것뿐이다.”(스티븐 호킹, 전대호 역 [위대한 설계]).

아니, 과학자들이 우리를 단체로 물 먹이려고 작정을 했나, 대체 왜들 이러는 거지?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게 정말 사실이 아니란 말인가? 그런데 왜 나는 이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지? 아니 아니 침착해야 해. 혹시 이 글의 필자가 여러 가지 책에서 아주 극단적인 부분만을 뽑아내서 교묘한 궤변을 늘어놓는 것인지도 모르지. 그런데 정말 지동설과 천동설은 단지 모델일 뿐인가? 진짜 답은 뭐지?

 

이렇게 생각할 당신에게 나는 이렇게 권해드리고 싶다. 정말 답이 뭐냐고 묻기 전에, 스스로, 당신 스스로 한번이라도 생각해보시라고. 그 과정이 없는 한, 설령 올바른 대답이 우연히 얻어걸릴지라도 그건 소가 뒷걸음질치다가 쥐 잡은 격일 뿐이라고. 근대인들이 비웃는 중세인들의 모습, 즉 진짜 진리는 뭐냐고 신부님들께 물으며 절대적으로 의존했던 그들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고(중세인들이 정말 그랬는지는 별도로 하고 말이다).

오늘은 처음 치고 너무 많은 이야기를 했다. 물론 여기서 좀 더 들어가면 훨씬 더 흥미진진한 풍경이 펼쳐지지만 그건 다음 주로 미루기로 하자. 그 사이에 내가 한 이야기나 앞서 인용된 과학자들의 말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보시면 좋겠다. 책이나 인터넷을 뒤져본다면 더욱 훌륭할 것이고. 그리고 나보다 더한 과학 애호가, 천문학 애호가들도 많으실 텐데, 부디 이것저것 많이 가르쳐 주시기 바란다. 비난이든 가르침이든 뭐든 좋다. 이곳이 과학을 둘러싼 온갖 이야기들이 백가쟁명하는 난장이 되어버린다면, 그거야말로 내가 정말 바라는 바이다.

 

응답 3개

  1. Hwan말하길

    아마추어~! 대개 아마추어같이 왜그래~!하면서 프로보다 못한 것으로 말하곤 했는데, 정말 멋진말이었네요.ㅎㅎ

    전문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과학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건 말도 안되죠~! 과학을 좋아하는 또 하나의 사람으로서, 이 연재가 계기되어 같이 쭈욱 공부해 나가고 싶은 욕망이 ㅋㅋㅋ

  2. 그림말하길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 :)

  3. Sun Lee말하길

    “정말 답이 뭐냐구 묻기 전에, 스스로, 당신 스스로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시라고” 라는 구절이 제일 와 닿는 건 왜일까요?
    ㅋㅋ
    전 자연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 중에 하나이지만 흥미진진하게 읽어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앞에 적은 인용구가 가장 마음에 와 닿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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