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밀양과 신자유주의 대항 운동으로서의 점거(1)

-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박은선 (리슨투더시티 디렉터)

*이 글은 신자유주의 태제 안에서 밀양 어르신들의 점거 운동의 의의와 방법론을 살피는 글로서  1, 2회에 나누어 걸쳐 연재할 계획이며 위클리 수유너머,urban drawings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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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금곡 헬기장의 움막. 10월2일 철거 시도 이후 힘겹게 공간을 지키고 있다. 사진 Takesi Hirokawa]

밀양의 점거

밀양의 할매들은 남한 사회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 나는 이 말이 과장된 수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저항은 한국 사회의 대 전환점이다. 과연 한국 사회는 ‘탈성장’이라는 키워드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탈성장은 한국 사회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 믿었지만 우연과 함께 변화가 찾아왔다. 그들의 싸움으로 탈성장과 탈핵이라는 의제를 우리가 사고하게 되었다. 또한 그들의 점거는 우리가 잊고 있는 ‘땅’과 ‘공간’의 영속성을 다시 사고하게 한다.

이번 서울시 정책 호감도 조사에서 ‘원전 하나 줄이기’라는 정책이 가장 호응이 컸다고 한다. 놀라운 일이다. 우리나라 인구의 25%가 모여 사는 서울이 조금 변했다고 볼 수 있다. 공룡도시 서울의 전력 소비량은 우리나라 전체의 10.9%를 차지하는 반면 전력 자급률은 3.3%에 불과하다. 이기적인 도시 서울에 이런 대 변곡점이 그려진 데는 안타깝게도 이웃 나라 일본의 후쿠시마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원자폭탄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은 일본에서 원전을 그렇게 많이 지은 것 자체가 모순이지만 인류는 이미 알고 있었던 일, 예언되어 있던 미래를 맞이한 것 뿐이다. 최근의 헐리우드 좀비 영화 ‘월드 워 Z’에서 징후적인 대사가 나오는데 ‘인간은 눈앞에 보여야만 믿는다. 그것은 인간의 속성일 뿐이다’라고 좀비의 출현을 예측하고도 믿지 않은 인류를 진단한다. 사람들이 처참히 좀비로 변해야만 비로소 믿기 시작한 게다. 비록 좀비 영화지만 지금의 인류를 정확히 묘사한다. 우리는 핵의 끔찍함을 이미 히로시마에서 체르노빌에서 보고도 깨달은 바가 없었다. 일본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 한국은 바로 옆의 나라에서 그런 최악의 불행에 빠졌을 때야 조금씩 각성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도 대부분은 후쿠시마의 재앙이 자기에게 닥친 미래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얼마나 더 불행해져야만 하는 것인가? 4대강은 대운하라는 것, 물이 고이면 썩는다는 상식적이고 단순한 사실을 국민들은 믿지 않았고 물이 다 썩고 낙동강의 고유종이 다 절멸해야 조금씩 믿기 시작했다. 우리는 얼마나 우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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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의 어르신들은 우리에게 핵과 원전 송전탑이라는 테제를 이해하게끔 만든, 탈성장에 대해 사고하게 만든 주체들이다. 한국 사회가 이토록 에너지와 핵에 대해 사고했던 때가 있던가 묻게 된다. 그들의 저항은 사실 우리에게 다가올 핵의 재앙 시간을 늦춰 주는, 신자유주의의 고삐 풀린 시간을 중지시키고 있다.  필자는 2009년 겨울 4대강 공사가 시작되던 때부터 강의 현장에 가기 시작해서 지금도 낙동강 상류 내성천에서, 낙동강을 지키기 위한 여러 활동을 하고 있는데, 4대강 활동을 하면서 낙동강에서는 단 한 번도 4대강의 참혹한 파괴에 반응하는 농민들을 만날 수 없었던 게 가장 이상했다. 자칭 보수라고 스스로를 칭하는 사람들은 너무 쉽게 그들의 땅을 포기했다.  한편으로 그들은 쉽게 땅과 강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데, 국가와 싸운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고, 또 한미 한유럽 FTA 때문에, 농협의 이자 놀이 때문에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가난해지기 때문이다. 남한강에는 두물머리의 젊은 농부들이 자기가 농사짓는 땅을 지킨다고 정말 치열하게 살았지만 낙동강에서는 한 번도 자기 강을 자기 땅을 지키겠다는 농부를 보지 못했고  반짝이며 굽이굽이 흐르던 낙동강은 그렇게 삽시간에 사라졌다.  만일 낙동강에서 단 한두 명의 농부라도 4대강 공사에 끝까지 저항했더라면 우리나라의 운명 자체가 바뀌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밀양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자기 땅과 밭을 지키려고 굳게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선조가 물려준 땅을 아이들에게도 물려 주려고 몸에 피멍이 들고, 변변찮은 차가운 천막에 겨우 몸을 피신하며 국물도 없이 딱딱하게 굳은 김밥을 세끼 내내 먹으며 버티고 있다. 아예 먹을 것 없이 고립된 곳도 있다. 바짝 마른 칠순 팔순의 할매들이 지키고 있는 초라한 비닐 움막은 지금 우리나라의 운명이 달린 장소다. 지나친 수사가 아니라 이 공간의 유무에 따라 앞으로 밀양의 싸움이, 송전탑 싸움이, 원전 싸움이 영향을 받을 테다. 그들의 저항을 지킬 수 있는 이 작은 공간은 너무나 소중하다. 비바람과 기온차에 크게 영향 받는 인간의 몸은 새벽에 내리는 이슬을 피할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을 우리도 알고 한국전력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이 이를 악물고 악랄하게 철거하려고 한다. 그런데 점거란 정말 오래된 저항의 방식이 아니던가? 그리고 매번 자본주의와 대결에서 실패를 거듭하던 방법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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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알리체 창시자 프랑코 베라르디, ‘비포’(Franco Berardi Bifo)는 거리나 공장 즉 물리적 공간의 점거 방식에 대해 강한 회의를 표하는 철학자이다. 그는 2000년대 이후 세계 곳곳의 금융자본의 횡포에 대해 저항하는 거리의 움직임들이 권력을 강하게 강타하지 못했다고 진단한다. 왜냐하면 거리, 공장의 점거 방식은 부르주아가 영토화 된 사회에서 유효하지만 지금의 금융자본 권력은 탈영토화 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티뱅크, 유럽은행, 골드만삭스 같은 금융 세력들이 실질적으로 세계 권력을 움직이는 지금 그의 주장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기호의 알고리즘을 점거하는 전술은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반신자유주의 운동에 중요한 제안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2009년 이후의 점거 운동들 용산, 두리반, 마리, 아현동 점거 혹은 쌍차나 콜트콜텍의 현대차 비정규직의 점거, 강정마을과 내성천 밀양의 점거가 소수의 사례를 제외하고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모든 점거 운동이 무효했다고 보기가 힘들다. 대항 세력들은 계속 점거를 시도한다. 기호자본주의 시대에서 우리는 이 움직임들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신자유주의의 탈영토성과 영토성

비포는 2000년대 인터넷 세대의 거리 공장 점거 운동 실패의 예를 열거하며 말한다. “근대 유럽의 경제 분야를 통제했던 부르주아는 강하게 영토화 된 계급이었지만 지금 유럽 정치 기계의 고삐를 쥐고 있는 금융 계급은 영토나 물질적 생산에는 어떠한 애착도 갖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금융 계급의 권력과 부는 디지털 금융 총체적 추상화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프랑코 베라르디, 봉기, 유충현옮김,갈무리,2012, 61p) 즉 신자유주의의 권력이 영토를 벗어나 기호와 언어 숫자로서 우리 삶을 착취하고 있는데 기호자본에 대항하는 오큐파이 운동이 부르주아지 시대의 권력의 장소인 주코티 공원이나 거리 점거로 표현된 것은 모순이라는 거다. “금융 권력은 물리적 건물에 있지 않으며 숫자들, 알고리듬들, 그리고 정보 간의 추상적 연결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현재의 권력 형식에 맞설 수 있는 행동의 형식을 발견하려면, 우리는 인지 노동이 금융 투기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언어적 자동기제를 창출하는 주요한 생산력임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위키리크스의 예들을 따라 우리는 우리 모두를 노예화하는 기술-언어적 자동기제를 해체하고 다시 쓰는 장기-지속의 과정을 조직해야 한다.(IBID 63p)” 라며 위키리크스나 해커집단 아노미무스 그리고 스노든의 정보 공개 활동 즉 비장소적인 공간의 점거에서 가능성을 타진한다. 요컨대 신자유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금융화(capitalization)이고, 금융 권력은 탈영토화 되었으며 금융자본에 대항하기 위하여 거리나 건물 점거의 방식보다는 기호의 알고리즘 점거하는 것이 유효하다는 것이다. 지난 뉴욕과 유럽의 오큐파이, 2008년 한국의 촛불, 최근의 터키의 집회는 비포의 분석대로 그다지 강한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는 공간을 점유하는 직접행동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금 혼란에 빠지기는 했지만 아랍의 봄, 튀니지 혁명의 결과 광장에서의 군중 궐기로 시작한 평등과 자유에 대한 민중의 요구는 이집트, 튀니지, 리비아에서는 정권을 바꾸었으며 국가를 압박하였다. 그 외에도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점거 운동이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다. 에이프릴 카터는 [직접행동]에서 “공간의 점거는 직접행동의 한 방법으로, 직접행동은 통상적으로 민주주의 결손(democratic deflect) 그리고 시민이 느끼는 좌절감에 대한 반응으로서 나타난다.” 고 설명한다. 그 예로는 인도의 마헤슈와르 시 근처 나르마다 댐 건설 예정지를 시골 아낙네들이 검거하고, 브라질에서는 무토지 농민들이 휴경지에 들어가 농사를 짓는다. 중국의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고 공장을 점거하고, 남아프라카이의 타운쉽 거주 도시 빈민들은 민영화된 식수와 전력을 무단으로 연결해 사용하고 있다. (에이프릴 카터, 직접행동, 조효제 옮김, 교양인 2005, 32p)

점거(sit-in)의 정확한 사전적 의미를 추려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민중의 오랜 저항의 결과로 만들어진 용어로서 그 배경과 문화에 따라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위키피디아에서는 점거는 대개 평화적인 시민 불복종운동의 한 종류로서 전략적인 장소에 머물러 그들이 강제 퇴거될 때까지 혹은 그들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앉아 있는다고 설명한다. 기호자본주의(semio capitalism), 금융자본주의시대에도 왜 이런 형태의 점거는 끊이지 않는 것일까? 그 원인을 대략 두 가지로 보고자 한다.

첫째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는 ‘금융’으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금융화는 신자유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설명해 줄 수는 없다.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가 서술하듯 신자유주의의 양상은 국가마다 그리고 지리적으로 상이한 경제적, 정치적, 심리적 이데올로기인데다 신자유주의는 남반구와 북반구, 개도국과 선진국 간에 경제구조가 다르다고 분석한다. 신자유주의는 지리적 축적의 문제이다. 로자 룩셈부르그는 소위 시초축적이란 자본주의 초기에 나타나는 현상일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전체를 관통하며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했는데, 17세기 이래 유럽의 식민지들은 아직도 유럽과 미국에 착취를 당하고 있다. 특히 북반구의 유럽과 미국의 신자유주의 성향과 개발도상국가의 신자유주의 양상이 상이하게 나타나는데 1인당 국민 총소득 기준 1만 달라 이하의 국가들의 경우는 아직 GDP에서 제조업, 건설 토목업이 GDP에서 금융 서비스 산업보다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GDP에서 금융, 서비스업 등 비물질 노동의 비율이 75% 에서 80% 이상인 서유럽, 미국에서는 금융독재권력이 신자유주의 핵심이라는 것이 설득력이 있을지언정 비물질 노동 비율이 60%대에 그치는 개발도상국가나 40%에 머무는 저개발국가에게도 동일하게 보기 힘들다. 즉 유럽의 부유함을 위해 지난 4세기 동안 착취당해 온 지역들에서는 금융, 열악한 산업 노동의 문제, 그리고 비민주적인 정치체제의 문제, 공통재의 파괴 문제가 늘 고착되어 있다. 그러므로 거리의 투쟁, 물리적인 공간을 점유하는 방법에 대해서 남반구와 개발도상국에서는 좀 더 풍부하게 사고해야 한다. 특히 한국이나 중국 같은 나라들은 GDP 대비 아직 공통재 수탈에 기반한 토목 건설이 자본 증식에 중요 부분을 차지한다. 2008년 기준으로 한국에서 GDP 중 건설 사업 비중은 7.5%인데, 이는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치다. 건축 분야에 92조, 토목용으로 52조, 총 155조를 토건에 투자했고, 토건과 관련된 지하경제를 감안한다면, 진짜 움직이는 돈은 GDP의 20%에 달한다 (우석훈, 디버블링, 신빈곤시대의 정치경제학, 개마고원, 2011). 그렇기 때문에 한국과 같은 개발도상국이나 공격적 개발국가에서는 공간에서의 저항 형식을 띨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북미자유협정(NAFTA)에 대항하여 봉기한 치아파스의 사파티스타는 신자유주의에 대항하여 선조부터 살아온 땅을 지킨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터키 이스탄불에 체류했다가 우연히 탁심(Taksim) 광장 개발 반대 시위에 참여하게 되었다. 터키 봉기의 원인은 여러 개인데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권위주의 이슬람 정권에 대한 항의, 쿠르드족에 대한 파시즘적 행태에 대한 항의 등 복합적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게지 공원’(Gezi Park)이라는 공통 공간을 보호하려는 일차적 원인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즉 신자유주의적 막개발에 대한 저항, 공통재를 보호하기 위한 운동이었다. 자율주의자 마이클 하트는 공통재를 지구, 그리고 지구와 관련된 모든 자원들, 즉 토지, 삼림, 물, 공기, 광물 등을 가리키며 이는 ‘common’에 ‘-s’를 붙인 ‘the commons’라는 말로 공유지를 지칭했던 것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공통적인 것은 아이디어, 언어 정동 같은 인간 노동과 창조성의 결과물을 가리키기도 한다. (마이클 하트, 공통적인것과 코뮤니즘, 34p, 자본의 코뮤니즘 우리의 코뮤니즘, 연구공간L 엮음, 2012) 게지 공원은 이스탄불의 거의 하나 남은 공원인데다 좌파들의 오랜 집회 장소였으며, 고대 성벽이 지나가는 곳이었다. 터키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부동산 투기, 뉴타운 열풍이 불면서 시내의 오래된 집시 마을을 강제 철거하고, 게지 공원 철거 반대 시위 한 달 전에는 시내의 유서 깊은 극장을 폭력적으로 강제 철거했다. 분노한 시민들은 공원에 모여들었는데 폭력적인 경찰의 대응으로 시위가 전국으로 번져 2명이 사망하고 수천의 시민들이 체포되었다. 터키의 시위를 두고 딱히 이겼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게지 공원에 탁심 광장의 사람들은 바뀌었다. 그들은 우리를 다시 하나로 만들어 준 터키 수상에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게지 공원과 탁심  광장에서 터키의 시민들은 공동체적 감각이 무엇인지 느끼게 되었다. 그들은 지금 민회를 계속하고 있으며 구속자들의 석방과 참된 민주주의와 문화를 위해 계속 싸우고 있다.1S9A4207 co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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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에 계속-

photographed by takeshi hiroka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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