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일기

1-1. 고양이를 키우자

- 송이

석류를 입양하기까지의 과정을 두 편으로 나누었습니다.

1-1은 고양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한 일
1-2는 고양이를 데리러 가는 길(다음 주 연재)
CAM00450
갑자기 고양이를 키우겠다고 생각했다. 한쪽 어금니를 야금야금 갉아먹다가 어느새 신경으로 파고들어 갑자기 시작된 치통처럼 잠들어 있다가 깨어난 것 같기도 했고, 길을 걷다가 새똥을 맞은 것처럼 어디서 툭 떨어진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꼭 고양이였다. 개도 아니고, 거북이도, 금붕어도, 고슴도치도 아니고 고양이였다. 나는 고양이의 얼굴을 좋아했다. 동그란 눈망울로 뭔가를 갈구하듯 나를 바라보는 것보다 까맣고 가는 눈동자로 흘겨보고 고개를 돌리는 것이 좋았다. 부비고 기다려 주는 것보다 딴청을 피우며 그루밍에나 몰두하고 본체만체 옆에 가만히 있어 주는 게 좋았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 사랑과 관심을 요구하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모르는 언어로 말하고 특별히 사랑해 주길 바라지 않으면서 같이 지낼 수 있는 동거 생명체가 필요했다. 이런 조건에 맞다고 생각했던 게 고양이였다.
내게는 베드로가 예수를 세 번 부인하듯 고양이를 모른 척했던 기억이 있다.  21살 가을, 어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며칠 길고양이 한 마리에게 참치와 꽁치 통조림을 줬는데 알고 보니 올망졸망 주먹만한 새끼가 넷이나 딸려 있었다. 고양이 다섯 마리의 먹이 값을 셈해보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결국 우리 엄마가 대학생 딸 하나에 고양이 다섯 마리까지 거두는 꼴이 된다. 나흘만에 길고양이 급식을 중단했다. 그 사이에 고양이와 나 사이에 약속이 생긴 듯 며칠동안 엄마 고양이가 현관 앞에서 밥을 달라고 울었다. 나는 고양이와 마주칠까 무서워서 외출을 삼갔다. 고양이들은 집 마당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고, 고양이를 발견한 집주인 아줌마가 빗자루를 매섭게 휘두르며 침입자를 쫓았다. 아줌마는 누가 도둑고양이에게 밥이라도 준 거 아니냐며 학생은 혹시 아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뜸을 들이다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쫓겨난 고양이 가족과 마주칠까봐 집으로 향하는 골목길로 들어서는 게 두려워졌다. 벌써 오 년이 흘렀다. 내가 누군가를 돌보고 같이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충분히 착각할 수 있을 만한 시간이다. 그래서 2013년 4월 3일 수요일 오후 2시 10분에 <고양이 입양 계획>을 다이어리에 쓰기 시작했다.
고양이를 들이는 데에는 크게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펫샵이나, 개인에게서 돈을 주고 분양을 받는 것이다. 러시안 블루나 샴, 노르웨이안 숲, 페르시안 등 일명 족보가 있는 고양이들을 이렇게 데려온다. 두 번째는 동물보호단체에서 구조하는 유기묘, 길냥이들을 입양하는 것이다. 인터넷에 있는 애묘 카페에서 개인이 구조한 고양이를 입양할 수도 있다. 마지막은 길에 돌아다니는 고양이들을 강제로 포획하는 것이다. ‘냥줍’(고양이를 주웠다)이라고도 한다. 예쁜 고양이라든지, 보기 드문 특이한 종의 고양이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고, 동물이 상품이 되어 가격이 책정되고 거래되는 방식과 구조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인터넷 카페에서 사람들이 구조한 유기묘를 살펴보았다.
고양이를 세 마리 키우고 있던 지인 한 명은 내게 고양이 사진을 찬찬히 잘 살펴보다 보면 그중에 마음이 가고, 끌리는 고양이가 있을 거라고 말했다. 길에서 자라는 고양이들에게는 저마다 사정이 있다. 유기되어 어느 집에서 잠시 머물며 새로운 가족을 찾는 경우도 있었고, 어느 대학교 법학과에서 학우들이 고양이를 같이 돌보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게 되어 돌봐 줄 사람을 찾기도 했다. 이렇게 각자 사연이 있는데, 그중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가장 딱해 보이는 고양이를 선택해야 하는지, 내 눈에 얼굴이 제일 예쁜 애를 골라야 하는지 게시판을 살펴볼수록 어느 한 고양이를 택하는 게 힘들어졌다.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가도 한참을 생각하며 메뉴를 고르는데, 십 년은 같이 살 고양이를 결정하려니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일 자체가 부담이 되었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게 뭔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어떤 한 가지를 고른다는 의미보다는 다른 것들을 버린다는 의미가 더 크다. 그러다 보면 선택하지 않은 것들과 선택하지 않은 이유에 더 마음이 쓰이고 괜히 내가 상처를 받는다. 선택하는 일은 점점 불가능해진다.
그러다가 한 동물보호단체와 인연이 닿게 되며 다행히 남이 골라 주는 고양이를 데려올 수 있게 되었다. ‘이것도 인연이다’라고 생각하며 그 쪽에서 맺어 주는 고양이를 그냥 데려오겠다 생각하니 선택하는 책임을 피할 수 있게 되어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내가 고양이랑 살고 싶다고, 고양이를 가지고 싶다고 주문대로 척척 입맛에 맛는 고양이를 만들어 주는 게 아니기 때문에 기다려야 했다. 당장 데려올 수 있는 고양이가 있었지만 남매 한 쌍을 같이 입양해야 했다. 두 마리는 내게 버거워서 거절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는 동안 서서히 고양이를 잊고, 고양이와 같이 살겠다는 마음도 시들해져 갔다. 그런데 갑자기 연락이 왔다. 북한산에서 절밥을 얻어먹으며 지내던 고양이인데, 북한산 국립공원에서는 이렇게 떠도는 고양이들을 안락사 시킨다고 한다. 밥을 얻어먹는 절에서 지낼 수도 있지만, 고양이가 겁이 많아 개를 무서워해서 그 절에서 살 수는 없고 꼼짝없이 안락사를 당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고양이에 대해서 거의 잊어 가던 차에 느닷없이 연락이 와서 처음에 내가 부탁했던 것이었지만 당황했다. 이제 와서 ‘한 달쯤 지나니 마음이 바뀌었네요.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라고 할 수도 없고, 잘 살다가 국립공원의 방침 아래 안락사를 당한다는데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 내가 결정해야 할 일을 남의 손에 맡긴 죄이고, 운명이라 생각하며 이 고양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이때까지도 사정만 전해 들었지 어떻게 생긴지는 몰랐다. 유기묘나 길고양이들도 작고, 어리고, 예쁜 아이들이 입양이 잘 된다. 어차피 데려올 것이지만 영화를 보기 전에 예고편을 챙겨 보거나 시놉시스를 읽듯 뭐라도 좀 볼 수 있길 바랐지만 결국 동물병원으로 고양이를 데리러 가는 그 순간까지 볼 수 없었다. 5월 18일 금요일 저녁에 북한산 자락에 있는 동물병원으로 고양이를 데리러 가기로 했다. 막상 모든 것이 결정되니 바짝 긴장이 되어 혓바닥이 간질거렸다.

CAM00429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