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봄이 사는 마을

1. 우리의 경제

- 봄봄(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

 

 

Q : 사랑도, 우정도, 결혼도, 공동체도 돈 때문에 헤어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A : 그렇군요. 돈 아니어도 헤어질 일은 많죠. 돈은 있어도 문제, 없어도 문제인데 그 ‘많거나 적은 돈’ 때문이라기보다는 많을 때는 어떻게, 적을 때는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그 운용의 주체가 헤어짐을 맞는 거겠죠.

Q :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A : 언감생심이죠. 결혼으로부터도 자유롭기 힘든데요. 우리는 비혼여성공동체이거든요. 다만 돈에 대한 나의 윤리를 세우고 지키려고 노력해요.

Q : 가난하게 살 수 있어요?

A : 글쎄요. 당신이 말하는 가난의 척도가 궁금해요. 하물며 우리도 구성원 모두 그 척도가 다 다르거든요. 통장의 잔고에 얼마 이상 남아있지 않으면 불안한 친구도 있고, 한 푼 남아있지 않아도 덜 걱정하는 친구도 있고, 늘 잔고를 계산하는 친구도 있죠. 가난이 목표이거나 지향점은 아니니까요.

Q : 뭐 먹고 살아요?

A : 밥 먹고 살아요. 쌀과 김치, 부식거리는 시골 부모님 댁에서 가져와요. 먼 훗날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다면 그건 그때 가서 얘기해요. 가끔 술도 먹어요. 오늘은 멀리서 친구가 와서 한턱 거하게 술을 사고 갔어요. 정말 멋진 친구죠. 가끔 영화도 보고, 가끔 책도 사고, 옷은 좀 자제하고 있어요.

Q : 그곳은 어떻게 운영해요?

A : 잘 하죠. 회비를 꼬박꼬박 내주시는 회원이 몇 명 있고요. 생활요가, 영어읽기, 타로 등 지도와 상담을 요하는 프로그램은 별도의 참여비를 받아요. 그런데 이렇게 저렇게 맞추어 봐도 손익계산은 안 맞아요. 간혹 J와 K가 외부강사활동을 통해 돈을 벌어오기도 하죠. 그러면 나는 착실하게 장부에 적는 총무 담당이에요.

Q : 아파트 관리비는 어떻게 내요?

A : 월급 받아요. 우리가 주고 우리가 받지만, 아주 조금. 관리비는 낼 수 있어요.

Q : 잔고가 없을 때 월급은 어떻게 줘요? 갑자기 목돈이 필요할 때는 또 어떻게? 보험은? 연금은?

A : 그래요. 살다보면 참 돈이 많이 필요하더라고요. 지금까지도 그래왔고요. 이 질문은 나중에 답할게요. 우선 제 얘기 좀 들어보실래요? 어찌 보아도 계산은 안 맞을 거예요.

 

결국 그들이 묻고 싶은 질문은 ‘그러니까 돈은 어디서 나오나요?’ 같은 것이었다. 아, 지난 3년 동안 우리의 돈은 어디서 나왔을까?

 

“난 수수료 쓰는 거 반대에요!”

“나는 피곤하네. 그냥 써.”

총무를 맡고 있는 나로서는 J와 K가 없을 때 조용히 처리한다. 되도록이면 수수료를 안 쓰려 노력하고 부득이한 경우에는 그냥 쓴다. 지난 3년 동안 수입과 지출을 맞춰보지만 아직까지 딱 맞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전 직장에서 프로젝트 정산을 잘 해냈던 J가 없을 때, 남거나 모자라는 돈은 ‘기타항목’을 만들어 세탁한다. 그리고 동의는 K에게 구한다. K는 J가 총무를 맡고 싶다는 것을 알지만, 맡으면 잘 할 것이라는 것도 알지만, 너무 잘 할까봐, 너무 딱딱 맞출까봐, 대충 맞추는 내가 총무를 맡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나는 수입과 지출을 맞추는 것보다, 잔고 걱정보다, 월급 걱정보다 적금 넣는 것에 더 관심이 많다. 소규모 우리의 경제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이하 ‘공간 비비’)는 내가 시시각각 출근하는 곳이다. 비혼모임 ‘비비’(비혼들의 비행의 준말)의 구성원 중 세 명이 10년 이상씩 다니던 정규직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공간을 마련한다고 했을 때 비비를 격려하고 지지하던 많은 사람들이 반신반의했다. J와 K의 단체 활동 경험으로 보아 무엇이든 잘 해내리라 믿으면서도 분명한 것은 대안적 삶에 대한 우려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들은 ‘너희들 돈은 좀 있니?’라고는 차마 물어보지 못하고 ‘쉽지는 않을 거야!’라고 에둘러 말했다.

2010년, 이제 직장을 그만두어야겠다고, 친구들과 함께 뭘 좀 같이 해보아야겠다고 가족에게 말했을 때 형제들은 그 ‘뭘 좀’이 궁금했고 엄마는 ‘같이’에 방점을 찍었다. 형제들에게는 비혼모임에 관해 설명했지만, 내 삶의 다른 행로에 대한 이해를 받기보다는 결혼도 안 해, 남편도 없어, 이제는 직장도 안 다녀, 돈도 벌지 않게 되는 나라는 존재는 ‘뜨거운 감자’이거나 ‘따뜻한 외면’쯤 되었을까. 나의 목표는 ‘폐는 끼치지 말자’가 되었다. 평생 이렇다 저렇다 말씀이 없는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한 유일한 말, ‘네가 알아서 해라’를 곱씹으며 ‘걱정하지 말아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피력했다. 그리고 엄마의 당부가 있었다. ‘합자(合資)는 하지 마라.’ 합자라…….

 

돈을 버는 것이 중요한 때가 있었다. 20대 이후 자립은 삶의 중요한 근간이 되었다. 자식을 위해 죽어라 일하는 부모와 그것에 부응하여 죽어라 공부하는 오빠들이 싫었다. 그러니까 돈은 언제 벌려나, 부모의 몸은 닳아지고 헤졌다. 나는 돈을 벌어야한다는 명백한 진리를 찾은 것처럼 경제활동에 몰두했다. 일을 해서 나의 노동이 자아실현의 과정을 거쳐 돈으로 환산되고, 그것을 내 손아귀에 쥐는 쾌감을 느꼈다. 그 돈으로 욕망을 구체화하는 것이 즐거웠다. 돈의 환산과 돈의 쓰임, 그리고 돈의 축적이 삶을 윤택하게 하고 생기를 불러왔다. 전주에 올라와 살면서 2년에 한번 꼴로 여덟 번 이삿짐을 싸고 풀기까지 싱크대가 있는 입식 부엌을 원했고, 시간마다 갈지 않아도 되는 기름보일러를 원했고, 잘 고장 나지 않는 도시가스를 원했고, 깨끗한 욕실과 빨래를 널 수 있는 햇빛 쏟아지는 베란다를 원했다.

욕망이란 여기에 있는 나를 다른 곳으로 이끌고 갔다. 거기에 돈이 필요했다. 그런데 돈을 벌려면 직장을 그만두지 말았어야 했다. 돈은 거기서 얼마든지 벌 수 있었다. 15년 전에 비하면 얼마나 많아진 월급인가. 그러나 가치가 변화하듯 욕망도 변화한다. 입사해서 3년마다 한 번씩 승진을 했다. 나이도 어리고 여직원이었고 쉽지는 않은 처사였다. 하지만 누가 봐도 당연한 승진이었음을 자명하듯 죽어라고 일했다. 팀장이 되고부터는 들쑥날쑥 하는 팀원들을 돌보고 리더로서의 역할에 온 마음을 다 썼다.

남직원들은 들어오자마자 얼마 안 있어 ‘주임’이라는 직함을 달아주는데 웃기지도 않았다. 나이가 동갑이면서 한참 후배로 들어온 타부서 남직원은 얼렁뚱땅 말을 놓으려 했지만 그 속셈이 너무 빤히 보여 나는 절대 말을 놓지 않았다. 남녀차별의 문제를 떠나서 하나의 조직 안에서 제 역할을 하며 성장하는 게 나에게는 직장인의 윤리처럼 중요한 문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나의 포지션을 지키고 그 포지션에 맞게 월급 값을 해야 했다. 주임, 대리를 거쳐 과장이 되었다.

그 이후는 반복에 지나지 않았다. 날마다 발행하는, 생활정보신문을 만드는 나의 하루 공정 과정은 이렇다. 아침에 출근해 신문을 보며 잘못된 부분이 없나를 살피며 한숨을 돌린다. 음, 오늘은 위에 가서 깨질 일은 없겠군. 고로 팀 아이들에게 야단칠 일도 없겠군. 요일과 날짜를 바꿔 내일자 판형을 만든다. ‘다른 이름으로 저장’했을 뿐 내일자 신문은 오늘과 별반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안 해봐도 안다. 아무도 모를 소심한 ‘달라짐’ 작업을 하고 점심을 먹는다. 시간대별로 있는 마감작업을 거치고, 간혹 마감시간이 넘어서 원고를 가져오는 얍삽한 영업사원의 요구를 일갈하고 나면 최종마감을 거쳐 퇴근준비를 한다. 당직자별로 잔업을 한다. 퇴근해서 시내로 진출한다. 어둠에 몸을 파묻고, 어느 누구도 아닌 익명성의 안온함으로,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스크린을 본다. 집에 돌아와 그 밤 인쇄소에서 전화가 오지 않기를 바라며 잠에 든다.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지라도, 내가 변하면 모든 것이 변한다(발자크)’는 말은 한계가 있었다. 회사 홈페이지에 짧은 글을 써보기도 했다. 점점 밋밋해져가는 직장생활에 활력은 되었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날마다 새롭게, 또 새롭게. 지면의 혁신은 개인의 의지로는 불가능했다. 모든 것은 돈과 관련되었다. 회사도 돈이 되는 지면을 원했다. 컴퓨터 전체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5년 동안 건의했지만 회사에는 그것보다 더 급한 불이 많았다. 돈이 너무 많이 들었다. 나태한 팀장들을 질책하며 근무순환제를 말했을 때, 나는 어디 부서로 가서 일하면 잘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지만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언니는 딱 조직스타일이에요.’ 그것은 나도 안다. 하지만 나는 성장이 동원되는, 다른 정상이 필요했다. 한 단계 한 단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그래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달라지는 것을 느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따복따복 나오는 월급은 버려야 하는 패에 지나지 않았다. 네 번째 승진이 있기 전, 다른 손에 쥔 패는 비혼여성공동체 ‘비비’였다. 그럭저럭 한 달을 보내면 의례껏 나오는 월급을 받으며 회사가 원하는 역할을 수행해내는 나의 모습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더 새로운 것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팀원들을 잘 보살피는 팀장의 역할만을 착실하게 해내는 여직원은 내가 그린 그림이 아니었다. 이런 조직체계에서의 안착이 아니라 이와 다른 형태를 꿈꿨다. 나에게 다른 삶에 대한 욕망이 생겼고 그것을 선택할 시점이 왔다.

 

자, 이제 당신의 마지막 질문을 떠올린다.

Q : 잔고가 없을 때 월급은 어떻게 줘요? 갑자기 목돈이 필요할 때는 또 어떻게? 보험은? 연금은?

A : 그래요. 그럴 때도 있었죠. 궁리를 하다보면 방법은 있더라고요. 대출은 받지 않았어요. 우리가 갑과 을의 관계도 아니고요.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도 아니고요. 우리는 비혼여성공동체 ‘비비’와 그 경험을 함께 나누고자 마련한 ‘공간 비비’를 별도로 운영해요. 말하자면 통장이 따로 있다는 거죠. 거금의 개인회비를 내는(공간지기 세 명은 당분간 50% DC해서 내요.) 비비 통장과 늘 잔고가 부족한 공간 비비 통장이 있죠. 그래서 모임 통장에서 모자란 월급은 대체했어요. 합의는 했냐고요? 당연하죠! 강한 반대의견을 주장하는 이가 없다는 게 미덕이라면 미덕이죠. 하지만 이런 일은 되도록이면 발생하지 않도록 고전분투하고 있죠. 그러니까 공간지기 세 명은 비비의 테두리 안에서 서로 도움과 나눔을 주고받는 형국이죠.

 

비혼의 삶은 결혼만 안했을 뿐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함을 더 절실히 느끼는, 삶의 한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돈이 있는 자는 돈을 나누고, 능력이 있는 자는 능력을 나누고, 사람이 있는 자는 사람을 나누고, 마음이 있는 자는 마음을 나누면 된다. 나눌 것이 없다고는 말하지 말라. 아주 고요히 자신에게 집중하다 보면 분명 찾을 수 있다. 삶의 방식이 제도와 주류에서 벗어나고, 일반화와 보편성에서 멀어질수록 그것을 채울만한 사람들을 많이 알고 지내면 된다. 또한 도움을 받을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상대방의 마음을 받는 것, 그 마음을 이해하는 것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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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살아야 함을 절실히 느끼는 삶의 한 방식

 

조금 이해가 되셨나요? 그래도 우리의 돈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하시죠?

돈은 조금 나왔다. 그래서 지금은 조금 쓰는 연습을 하고 있다. 연습은 계속 진행 중이다. 삶의 큰 욕망은 바뀌었고, 작은 욕망은 조절하고 있다. 안정된 직장을 다니고, 적령기에 결혼을 하는 평범하고 주류적인 삶은 내 것이 아니었다. 비혼으로서도 괜찮은 삶을 살고자 노력하고 그것을 공동체와 더불어 실현하고자 한다. 삶의 큰 축이 바뀌면 일상은 전복한다. 전복된 일상이 다 흩어지기 전에 무늬를 맞춰야 한다. 자잘한 욕망들을 가지런히 놓고 정리해야 한다. 큰 집에서 작은 집으로 이사할 때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을 선택해야 하듯이 돈을 쓰는 규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적금도 넣고, 보험도 넣고, 연금도 넣을 수는 없었다. 적금을 버렸다. 책도 맘껏 사고 동시에 옷도 철철이 살 수는 없었다. 책은 한 달에 얼마 이상을 사지 않는 것으로 정한다. 중고서적도 이용한다. 가장 절제가 어려운 것을 남겨놓는다.

욕망의 크기를 잰다. 옷은 버렸다. 오래전에 사놓고 잘 입지 않던 옷들을 꺼내서 입는다. 옷이 많은 친구는 봄맞이 창고 대 개방을 한다. 이 옷은 너다, 저 옷은 너다, 확실한 취향대로 잠바는 J, 티는 K, 꽃무늬 스카프는 내가 가져간다. 생일선물로 뭐 받고 싶으냐고 물어보면 옷을 사달라고 한다. 그런데 봄바람이 불고 꽃이 날린다. 스커트가 사고 싶다. 옷장 가득한 스커트의 수를 샌다. 음, 많군. 한 번도 입지 않고 철을 보낸 옷도 발견한다. 하지만 버렸는데 쉽게 버려지지 않는 카드가 있다. 봄바람은 무섭다. 꽃은 떨어진다. 글이 안 써질 때면 데스크탑의 창을 바꿔 꽃무늬 스커트를 클릭하고 클릭한다. 욕망을 갑자기 억제하면 분출한다. 설사하지 않게, 체하지 않게 마음도 잘 다스려야 한다. 천천히 조금씩, 그래도 스스로 괜찮을 만큼, 견딜 수 있을 만큼의 도량이 되려면, 불행하다 느껴지지 않으려면 성찰이 동반되어야 한다. 무소유의 세계는 법정스님의 세계로 남겨놓고 싶을 만큼, 욕망을 조절하는 일은 도를 닦듯 마음을 닦는 일이다.

 

전주에서 서울로 일주일에 한 번씩 글쓰기를 배우러 간다.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간다. 직장을 다닐 때 같았으면 그 어떤 고민도 없이 결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일주일에 한 번씩 16차 월차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돈이 있어도 시간이 안 된다. 그런데 시간이 많으면 돈이 없는 일이 대부분이다. K는 비비가 긴 여행을 위해 모으고 있는 적금 중에서 나의 서울행 경비를 지원하자고 J에게 제안한다. J는 무조건 오케이다. 나는 100% 편한 마음으로 받기는 어렵지만 거절하지 않고 받기로 한다. 왜냐하면 일단 마음은 받아야 한다. 그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둘레가 더 튼튼해 질 것이다. 돈 쓰기를 좋아하는 J는 (자신의) 능력을 보유하고 있고, 돈 없이도 잘 살아갈 K는 (도와줄) 사람을 보유하고 있다. 나는 J와 K를 보유하고 있다. 이것으로 엄마에게 합자가 아님이 설명이 될까. 이 밤,  J가 내일 서울에 가지고 갈 쿠키를 구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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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가 구워준 쿠키

덧, 위 글은 지난봄 수유너머 글쓰기의 최전선 강좌에 과제로 제출한 것임을 알립니다.

2013.10. 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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