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탈핵희망버스 후기: 미래를 저당잡은 전기는 필요하지 않다

- 백희원(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5일 밤

지난 10월 5일, 6일 탈핵희망버스를 타고 밀양에 다녀왔습니다. 2일, 추수철을 겨냥한 듯 행정대집행이 시작되었고 7,80대 고령의 주민들을 상대로 경찰 병력이 3천 명이나 투입되었다고 했습니다. 먼저 발걸음 한 이들의 당부를 꼭꼭 씹으며 버스에 올랐습니다. 밤에는 겨울처럼 춥고 낮에는 여름처럼 덥고, 현장은 전쟁터니까 조심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피켓도 거의 부서졌다기에 함께 내려오지 못한 이들 몫까지 만들었습니다.

자정을 넘겨 도착한 밀양에는 별들이 밤하늘 가득 그렁그렁했습니다. 공기가 맑은 것도 있지만 대도시와는 달리 전기 불빛이 거의 없는 까닭이겠지요. ‘서울은 훤한 불금이겠지?’ 머릿 속에 익숙한 풍경을 그려보았습니다. 그런데 8년 째 밀양의 주민들은 전기 문제 때문에 목숨을 건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막상 당신들은 많이 사용하지도 않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어둠 속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운 좋게 노숙하지 않고 마을회관에서 눈을 붙일 수 있었습니다.

 

6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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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틑날 아침의 빛에 드러난 마을은 그림같이 아름다웠습니다. 주황빛 감이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들. 잘 익은 벼가 출렁이는 논들. 송전탑이 들어서면 초토화 되어버릴 풍요로움을 만끽하고 있으니 주민 분들의 고통을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오래도록 아끼고 더불어 살며 이토록 곱게 일궈온 땅일 텐데, 송두리 채 이웃과 함께 하루아침에 잃게 되었으니. 사형선고와 다를 게 없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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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가 여든이 다 되셨다는 주민분의 안내를 받아 109번 공사장을 향한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거의 다 올랐구나 싶을 때 쯤 경찰들과 마주쳤습니다. 어이가 없을 만큼 많은 수의 경찰들이 높은 산 속에 새까맣게 들어차있었습니다. 그들은 다짜고짜 우리를 막았습니다. 불법 채증을 하는 경찰 측 카메라가 대충 눈으로 훑어만 봐도 열 개는 되어보였습니다. 무슨 근거로 통행권을 침해하느냐는 질문에 한 마디도 대답을 못하는 주제에 끝끝내 길을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핫팩과 음식을 전달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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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수 없이 우리는 길이 아닌 길로 들어서는 수밖에 없었어요. 네 발로 기듯 바위와 나무를 헤치고 산을 올랐습니다. 그렇게 또 경찰을 만나고 말았어요. 3천 명이라는 숫자가 실감이 났습니다. 전쟁도 아닌데, 마을 하나를 아예 포위하고 있구나. 대체 뭐가 그리 찔리기에? “위험합니다! 내려가세요!”라는 말이 그렇게 뻔뻔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를 멀쩡한 길에서 내쫓은 게 누군데? 주민들을 산 속에 고립시킨 게 누군데, 삶의 가장자리로 밀어낸 게 누군데?

결국 경찰과의 대치로 시간을 보내다 금곡 헬기장 앞에서 행정대집행이 초읽기에 들어갔다기에 급히 하산했습니다. 기자 한 분만 주민 분들을 만나고 오셨는데 누군가 “할매들 건강은요?” 하고 묻자 “건강은 늘 안 좋으시죠.”라는 대답이 씁쓸한 웃음과 돌아왔습니다. 그게 다였습니다.

 

6일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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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곡 헬기장은 송전탑 공사 자재가 드나드는 곳입니다. 방패를 세운 경찰들이 빼곡히 집결해 있었습니다. 기자회견에 이어 현장 집회가 열렸습니다. 움막 앞에 앉아 공무원들의 침탈을 기다리며(?) 발언을 통해 밀양에 연대하러 온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유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밀양이 여러 가지 문제를 감당하고 있기 때문일 테지요.

이를테면 인간으로서, 고령의 주민들을 상대로 폭력과 모욕이 난무하는 참상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모여든 마음은 아마 거의 공통이었던 것 같습니다. 주민들을 지켜주기는커녕 위협하는 공권력. 산 속에서 노숙하며 턱 없이 많은 수의 용역, 공무원, 경찰들과 대치하다가 부상을 입고, 실신해 실려 나가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건강한 젊은이도 견디기 힘든 폭력이 고령의 주민 분들께 자행되고 있는데 당장 그만두라고 외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멍투성이가 된 주름진 팔목을 어떻게 보고만 있겠어요.

그리고 시민으로서, 국가의 전력 시스템 문제가 걸려있는 공사가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채, 사회적 합의 없이 이토록 졸속 처리 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기에 모여든 이들도 많았습니다. 용산, 4대강, 강정……. 밀양 송전탑 공사의 맥락을 들여다보면 이 아픈 이름들이 자연히 떠오릅니다. 국가가 나서 공익이라는 허언으로, 존중받아야 할 개인의 삶과 공통의 영역들을 짓밟아 버린 경우들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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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밀양의 영어철자는 Miryang 입니다)

한편 며칠 간 계속 움막 침탈을 시도했다던 공무원들이 도통 나타나지 않아 집회는 길어졌습니다. 놀랍도록 입담 좋고 세련된 농담을 시종일관 구사하시던 마을 주민분의 사회에 속없이 계속 웃다가 “할매” 한 분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할매께서는 손을 잡으며 연신 고맙단 말씀을 하셨습니다. 울고 계시진 않았는데, 옅은 색 눈동자에 가늠하기 어려운 슬픔과 억울함이 잔뜩 고여 있어 어쩐지 대신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먼 데서 우리 마을을 지키러 와줘서 고맙다”는 말씀에는 “밀양에서 우리 모두를 지켜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이라도 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신고리원전과 초고압 송전탑으로 다음세대에 위험을 떠넘기며 전력 문제를 수습하려는 정부와, 보상금은 필요 없으니 사회적 공론화로 문제 해결하자며 대안을 제시하는 밀양의 주민들을 나란히 봤을 때, 정말로 미래를 생각하는 쪽이 어느 쪽인지는 너무 자명하게 드러나니까요.

전력을 어디서 얻고 어떻게 관리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 도달할 수 있는 미래는 없습니다. 그러니 밀양 송전탑 문제는 더더욱 우리 모두의 문제, 특히 미래를 감당해야 할 청년, 청소년의 문제입니다. 사실 이것이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가 연대를 결심한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가는 귀가 먹어 잘 안들리신다는 할매께 낱낱이 설명드릴 수는 없었지만요. 그러나 같은 당사자의 심정으로, 밀양의 친구로 현장에 함께하고 서울에서 연대하는 행동이 이런 마음을 어떤 말 보다 잘 전하는 듯 했습니다.

 

6일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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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학생, 직장인, 그러니까 보통사람 같은 “외부세력”의 눈이 신경 쓰이긴 했던 걸까요? 퇴근 시간이 다 되도록 공무원들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만들어 간 손피켓은 쓸 일이 없어서 움막에 챙겨두었습니다. 같은 시간, 서울 대한문 앞에서 열린 집회에 많은 이들이 모였다는 소식이 들려왔어요. 우리는 스피커폰에 마이크를 대고 서울과 통화했습니다. 함성 소리 속에 있을 아는 얼굴들을 떠올리며 이 쪽에서도 힘껏 함성을 질렀습니다. 땡볕이 가신 하늘엔 어느덧 노을이 드리우고 있었고 저녁으로 받은 꼬마김밥은 꿀맛이었습니다.

일정에 맞춰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한나절 내내 너무 멋지게 집회를 진행하신 주민 분께 인사를 드리자, 멋쩍은 웃음소리와 함께  “아이고 이제 할매들 또 다 울 텐데 어떻게 달래나.”하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발길을 멈칫하게 한 그 말은 호소가 아니라, 헤어짐 앞에서 저도 모르게 흘러나온 걱정에 가까웠습니다.  그 말은 연대인원이 빠진 밤의 현장을, 주민들이 겪어 온 공포를 상상하게 했습니다.

 

6일 밤

버스에 몸을 싣자마자 민망하게도 피곤이 몰려왔습니다. 종일 움막 앞에 앉아있던 것 말곤 한 일도 없는데. ‘오늘 뭘 했지? 뭘 더 할 수 있을까?’ 곱씹으며 금세 잠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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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후기를 쓰는 지금, 서울의 우리가 밀양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희망버스 참가는 물론이고 농활대로도 밀양에 함께할 수 있어요. 직접 친구들을 모아가도 좋겠습니다. 또 페이스북의 “밀양의 친구들” 그룹에 가입해서 다른 이들이 밀양을 위해 하는 자발적 행동을 보고 동참하거나 영감을 받아 새로운 일을 꾸며볼 수도 있고요. 도울 거리 할 거리를 챙겨 대한문 앞에서 단식 중이신 밀양 주민 분들을 지지방문해도 좋고, 매주 화요일 저녁에 대한문 앞에서 열릴 밀양을 위한 촛불 문화제에 참여하셔도 좋겠습니다. 밀양 초고압 송전탑 문제를 모르거나 언론의 왜곡된 정보로만 접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전하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지금도 한전은 “전력수급불안”을 핑계로 공사를 강행해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밀양 밖의 시민들은 신고리원전발전과 세계 최대의 초고압 송전탑, 그리고 밀양의 눈물을 통해 전달된 전기를 누릴 생각이 없습니다. 더구나 위조부품이 탄로난 원전이라면요. 자꾸만 공익을 사칭하며 밀양엔 지역이기주의란 누명을, 연대시민에겐 외부세력이란 타이틀을 뒤집어씌우려 하는 한전과 정부와 언론에게, 우리 모두 밀양과 똑같은 이해 당사자로서 대화를 통한 해결을 원한다는 것을 보여줍시다. 한전이 초고압 송전탑의 타당성 검증을 위한 테이블에 앉을 때 까지, 우리는 계속 밀양의 친구들로써 곳곳에서 마주칠 것입니다. 밀양의 삶과 우리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서요.

응답 1개

  1. gusv말하길

    ““먼 데서 우리 마을을 지키러 와줘서 고맙다”는 말씀에는 “밀양에서 우리 모두를 지켜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이라도 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신고리원전과 초고압 송전탑으로 다음세대에 위험을 떠넘기며 전력 문제를 수습하려는 정부와, 보상금은 필요 없으니 사회적 공론화로 문제 해결하자며 대안을 제시하는 밀양의 주민들을 나란히 봤을 때, 정말로 미래를 생각하는 쪽이 어느 쪽인지는 너무 자명하게 드러나니까요.”

    먹고 살기에 급급하면 현실 밖을 상상하지 못하는데
    밀양 문제는 ‘미래’를 향해 있다는 점에서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새롭고, 그래서 더욱 방어해야 할 문제인 것 같아요.
    그를 위한 어떤 활동이든, 지속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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