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음악애 이년에 풍월…

- 김융희

나는 아직도 “도, 레, 미, 파, 쏠, 라…” 그 음계를 잘 읽지 못한다. 글을 읽히면서부터 벌써 초등학교때에 배우기 시작한 음계를, 나는 때를 놓쳐서 못 배웠다. 또한 지독한 음치로 거의 일생을 지냈다. 어쩌다 어울리면서 노래방을 가면 부를 노래가 없어 겨우 구닥다리 옛노래를 불러 남들의 좋은 분위기를 망가뜨리는 경험도 많다. 그런 내가 합창단에 끼어 노래를 하고 있다. 요즘 나는 음악이 좋와 노래를 즐기며 살고 있다. 그러다보니 음악적인 실수도 없지 않다. 음악을 자주 떠올려 입에 오르내리며 떠죽거리는 나의 꼴이 하도 가당찮아 많이 민망스럽다. 그러나 좋은걸 어쩌나싶어 노래를 일상에 끼워 주저없이 즐기려니, 때로는 주책망나니 꼴이되어 당황스럽기까지 한다.

요즘 나는, 미루어 온 집수리, 그리고 한창인 가을걷이들로 너무 바빠서, 무얼 먼저 해야 할지를 모르게 경황이 없다. 그런데 오늘도 합창 연습을 위해 외출중이다. 음악회 공연이 끝난 것이 불과 한 달 전이었는데, 또 12월에 공연이 있어, 매 주말이면 연습을 해야 한다. 12월 7일 오산 예술 문화 회관에서 주최한 “청소년 합창단”과 일본 “JAL 합창단” 그리고 한국의 우리 ”노아 남성 콰이어“가 ”오케스트라“와 함께 협연을 한 것이다. 더욱이나 프로들도 부르기가 쉽지 않다는 베토밴의 “사랑의 송가”를 원어로 부르는 순서가 있어, 과연 우리가 해 낼 수 있을까 염려하면서,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매월 한 차례씩 예배를 위한 특송이 있고, 내년 여름엔 해외 공연도 정해져 있다.

이처럼 우리 근황을 늘어 놓으니 마치 유명한 프로들의 공연 행사처럼 보일 것 같다. 그러나 전혀 그것은 아니다. 다만 주책 없이 떠죽거리는 나의 경망스런 자발이 지나쳐 음악계에 누를 끼친 것 같다. 콧노래를 부르는 나의 소갈머리 없음을 지켜본 아내의 심사도, 그의 눈 흘김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모른 척 내 멋이다. 음악을 내가 어떻게 알며 무엇을 한다고 이런 오만 방정을 떨며 설쳐대는 지를 아내는 내심 많이 비웃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인들 다 그렇겠지만, 할 봐엔 지나치다 싶게 좀 빠져야 함도 음악적인 경험에서 알게 되었다. 노래를 불러도 좋지만, 가사의 내용을 음미함도 재밋고, 음악 감상은 음악의 꽃일듯 싶다.

요즘은 헌책방에서 구입한 서양 음악사를 재밋게 읽었다. 이번 공연 레퍼토리에 들어있는 교향곡 제9번「합창〈op.125〉은 진정한 낭만주의자요 고전 음악의 최고 완성자인, 악성 “Ludwig van Beethoven”의 작품이다. 프로이센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폐하께 경의를 표하기 위해 만들어진 교향곡」이다. 이 곡은「실러의 송가(頌歌) ‘환희에 붙임’을 마지막에서 대관현악, 4성의 독창, 4성의 합창을 위해 작곡되었다. 베토벤은 1793년부터 이 곡을 구상해 왔었는데, 1822년 10월 10일 런던 필하모니협회(1813년 설립)에서 교향곡의 작곡 위촉장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이미 구상해왔던 합창 교향곡을 즉시 실현하게 되어 1823년 말이나 1824년 초에 완성되었다. 이 작품은 작곡 구상에서 완성까지 30여년 동안의 결실로 이루어진 위대한 악성의 최고의 역작이요 대표작인 것이다.

1824년 5월 7일 빈의 ‘케른토나토르 극장’에서 베토벤 자신의 총감독에 ‘움라우프’의 지휘로 초연되었을 때에 있었던 일이다. 〔등을 지고 서있던 베토벤이 청중들의 열광적인 박수소리를 듣지 못하자(그는 1820년에 이미 완전 귀머거리였다), 알토 가수인 웅가르가 팔을 잡아 끌어 알려 주었고, 그가 돌아서서 답례를 했을 때 청중들은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더욱 열광의 박수를 보냈다.〕는 일화를 나는 이번에 읽었던 서양 음악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처럼 구수한 일화나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아니라며 외면하면 전혀 알(할) 수 없는 것도, 관심을 갖고 애착을 갖게 되면, 알(하)게 되고 흥미를 불러 일으켜 즐거움까지도 얻게 됨을, 음악을 즐기면서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할련지?
그뿐인가! 음악을 보면 세상을 읽을 수 있다. 지난 군부 독제시대, 민중이 숨죽이며 살아야 할 때에 우리는 정통이며 보수적인 클래식 음악이 주류를 이루었었다. 그때엔 대중 음악이란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는 변방의 서민을 위한 위로음악의 수준이었다. 그러나 문민 정부의 민권이 점차 회복되면서 권위 보수적인 클래식 음악은 팦인 대중 음악에 자리를 내어주는, 그래서 지금은 팦이 해외까지 진출하여 한류 열풍의 국위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타고 행여 지금 내가 클래식 음악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아니다. 이것도 분명 음악적 실수요 주책일 것이다. 지금 해외에서의 한국 음악의 위상은 팦의 한류 인기보다 클래식 음악, 특히 오페라의 왕국인 유럽에서의 오페라계에 한국 가수들 활동은 절대적이라 한다. 오늘날 나날이 쇠퇴하고 있는 이테리의 음악을 비관하며 걱정하는 것을 보면서, 세계적인 테너 ‘파바로티’는 “걱정할 것 없다. 이테리가 없으면 다음엔 한국이 있다.”고 했다지 않는가! 정말 음악은 국력을 나타내기도 한다. 전통 음악을 비롯한 한국 음악의 더욱 큰 발전을 기원한다.

음악 창작을 보면서, 음악을 들으면서 새삼 우리 인간의 무한 능력에 감탄한다. 특히 베토벤을 보면서,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더욱 그가 작곡한「합창」을 배우고 익히며, 그의 오묘한 영감과 무한의 창작 능력과 놀라운 천재성을 실감한다. 부를수록 즐겁고 아름다운 노래, 그러면서 부르기도 참 어려운 곡이 ‘사랑의 송가’이다. 어쩌자고 베토벤은 이런 어려운 곡을 작곡하여 우리를 이토록 힘들게 만드는가? 우리는 계속 불평하면서 즐거워서 또한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다. 이같은 짖은 분명 주책망나니 꼴이지만, 이런 주책이라면 계속해도 무방하리란 생각이다. 참으로 말도 안되는 소리로 너무 말이 많았다.

그저 音樂愛 二年에 風月이려니 여겨, 많은 아량을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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