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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주민대책위원장 김정회 씨 인터뷰

- 신광호

 1.    

밀양시 송전탑 설치 반대를 촉구하며 단식 농성에 나선 김정회 씨를 지난 9일 만났다. 몇 차례 서늘한 가을비가 지나고 강한 햇살이 내리쬐는 정오 즈음이었다. 우리의 첫인상이 맥없이 보였는지 그는 외려 이렇게 물어 왔다. 밥 안 먹고 왔습니까?”

부인 박은숙 씨, 그리고 조성제 신부와 함께 김정회 씨가 단식 농성에 나선 지는 당시 팔 일째. 그간 김정회 씨는 단식의 와중에 흔히 먹는 소금 등은 입에 데지 않은 채로 오로지 물로 버텨 왔다고 했다. 서울에 오니까 소금 먹는 건 또 상식이 되어 가지고. 사람들은 말할 때마다 소금 안 먹냐고 하는데. 단식은 소금도 뭐도 다 끊는 게 단식이잖아요.”

그는 누군가 매일같이 보내 온다는 보온병에 담긴 차를 세 잔 따라 우리에게 권했다. 단식 중인 사람에게 건네 받은 미지근한 차 한 잔. 우리는 그와 마주보고 앉아 차를 받아 마시며 어색함을 지우지 못한 채로 질문을 건네고 있었다. 김정회 씨와의 인터뷰는 이렇게 무언가 전도된 듯한 분위기로 시종일관 진행되었다. 지금에 와서 돌이키면, 그때의 분위기란 밀양 주민에 대해서 타지 사람이 느끼는 미묘한 정서와도 비슷하지 않을까.

 

2.     이렇게밖에 싸울 수 없는데

김정회 씨는 작년부터 대책위원장을 맡으며 밀양 송전탑 설치 반대 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때문에 고소와 고발의 표적이 되어 셀 수도 없이 많은 조사와 재판을 받으러 다녀야 했다. 얼마 전에는 긴급 체포되어 구속될 뻔하기도 했는데, 영장실질심사에서 기각되어 풀려 나오는 일도 있었다. 이러한 싸움의 국면들은 자신으로 하여금 서울로 향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리고 단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끌었다고 그는 말했다.

이번(10월 2일)에 작업 들어오면서 나는 현장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하더라고요. 이제 구속된다고. 경찰도 그렇고, 주민들도 그렇고. 그런데 싸우긴 싸워야 하는데, 현장 근처에 가면 싸울 방법이 없으니까.”

그렇게 서울의 한복판에서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싸움의 최선으로서 ‘단식’에 임했다. 부인 박은숙 씨와 조성제 신부도 동참했다. 단식 농성의 목표는 그의 또렷하고 거침없는 어조만큼이나 분명했다. 다른 이들에게 사실을 알리는 것. 다른 단체들과, 다른 투쟁들과 연대하는 것. 그리고 최대한 희망버스를 한 대라도 더 내려 보내는 것.

결국은 여론이 형성되어야지 위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한테도 압박이 될 테니까. 압박이 될는지 안 될는지는 몰라도. 여하튼 단식을 통해서 서울 사람들한테 한 명이라도 더 알리려고 해요. 그래서 조금 힘들어도 언론에서 오든 누가 와서 인터뷰하자 하든 전부 응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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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회 씨의 아들이 만든 피켓

 

3.     밀양

그날도 그는 밀양의 지인과 통화를 하였다고 말했다. 며칠째 서울 시청사와 대한문의 인근에 운신의 폭을 제약해 오고 있지만 마음은 밀양을 향해 온통 쏠려 있음이 그의 어조와 몸짓, 그리고 눈빛을 통해 전해졌다. 우리 가운데 한 명이 밀양에 다녀왔음을 알리자 미소 지으며 반가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자연스레, 밀양의 참담하고 무기력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는 흘러갔다. 눈앞은 온통 경찰. 그리고 그에 맞서는 몇 안 되는 밀양의 ‘할매’들. 그의 결연함이 조금 흔들려 보이기도 했던 순간이었다.

“유치장에 갇혀 있을 때도 단식하면서 아무것도 안 먹었거든요. 그때도 노숙하시면서 같이 해 주어 가지고. 그런 할머니들 힘 때문에 또 내가 구속되지 않고 기각되어서 다시 나오고. 이렇게 송전탑 (투쟁)하면서 할머니들 생각하고, 동네 사람들 생각하고, 싸움 과정을 생각하면 눈물부터 나지요. 이제 어디 가서 마이크 잡으면 눈물부터 나서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인터뷰하다가도 송전탑 싸움 과정에 대해서 생각하면 눈물 나고. 너무 힘든 과정이 작년부터 일어나 가지고. 할머니들이 평생 경찰서 갈 일이 있겠습니까. 경찰하고 대치할 일이 있겠습니까. 맨날 경찰하고 몸싸움 해대고, 경찰서 수시로 왔다갔다하고. 그러니까 너무 이제, 마음속으로 이제, 마음이 약해져서 그런 건가. 하여튼 격해져서 그런 건가…… 그런 면이 있지요.”

 

귀농한 그에게 밀양에서의 생활이란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지 새삼 궁금했다. 지금의 밀양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관해서도 도시의 생활과 농촌의 생활을 모두 경험한 그라면 감응이 남다르지 않을까. 도시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은 쉬이 이해하지 못할, 그리하여 오해하고 있을지도 모를 ‘내 땅’과 ‘내 삶의 터전’이란 감각에 대해 듣고 싶었다. 그는 조금 틈을 두었다가, 밀양 송전탑 건설 계획이 없었더라면 한창이었을 친환경 농사의 과정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했다. 조금은 들뜬 목소리로 이어지는 그의 설명은 위의 모든 궁금증에 대한 대답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귀농하기 이전의 삶을 회상했는데, 농사의 이야기를 할 때보다는 차분하였지만 이즈음의 사태와 관련 지어 생각한다면 ‘뼈’가 있는 말이었다.

“회사 다니는 건 아니더라고요. 회사나 하여튼 조직사회는, 조직이 필요할 때는 조직원한테 잘 대해 주는데. 필요 없을 때는 가차없이 자르잖아요. 그냥 뭐 물건 갖다 내버리듯이. 그런 생리를 알고 나서,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그만두고 내 살길을 찾자 생각해서 회사를 그만두었죠. 그러고 나서 귀농을 하고, 농사를 짓기 시작한 거죠.”

 

4.     거점

밀양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서울 한복판에서 기한도 없이 농성 중이지만 김정회 씨는 지금의 투쟁을 자신이나 밀양만의 문제로 국한시키지 않았다. 그는 ‘연대’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밀양의 이후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 밀양 송전탑 건설 문제는 더 이상 밀양만의 문제가 아니다. 때문에 누구든지 관심을 갖도록 알려야 한다. 밀양의 투쟁이 밀양의 너머에 가 닿아 영향을 주도록 하려면 어떻게든 이겨내야 한다. 밀양이 어떠한 ‘거점’이 되길 바라며 김정회 씨는 싸우고 있었다.

“할머니들이 싸워 주니까. 일반 사람들도 이게 맞나 저게 맞나 알려고 하고 관심을 가지려고 하고. 누가 거짓말하고 누가 진실을 말하는가 알죠. 알려지는 거죠. 송전탑이 전혀 필요가 없는 건데. 한전이나 정부는 돈 때문에 하는 거죠. 대기업은 이걸 해야지 안정적으로 고수입을 낼 수가 있는 거고. 또 대기업이 돈을 벌어야 정치자금 받아먹는 거고. 다 그런 거지요. 한전 산하 협력업체가 얼마나 많겠어요. 철탑 세우면 쇠 만들어 가지고 벌어먹는 사람도 있고, 전기선 만드는 데도 있고. 그런데 밀양에서 스톱 되면 전국에 있는 철탑 공사를 누가 하겠어요. 아예 못하는 거지. 밀양처럼 들고일어나면 어떻게 또 하겠어요. 그러니까 이제 정부나 한전에서는 죽기 살기로 하는 거죠. 경찰을 투입하면서. 이 싸움이 참 큰 계기가 되는 건데. 하여튼 이겨내야 되는 건데. 이런 사실이 알려지기만 알려져도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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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숙소에서 인터뷰 중인 김정회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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