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대 과학

지구의 기온이 올라간다구?

- 박성관

지구온난화가 사실이라구?

 

올겨울 날씨 관련하여 예언 하나 하겠다!

만일 예년보다 기온이 높으면 언론에서 지구온난화의 증거라고 할 것이다.

반대로 예년보다 기온이 낮으면 지구온난화로 인해 북극의 얼음이 녹아서 기온이 낮아졌다고 할 것이다.

 

어떻게 아냐구?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에게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당신이 지난 10여 년간 반복해서 경험한 것인데 정말 모르겠느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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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이 상승해도 지구온난화의 증거고 기온이 떨어져도 지구온난화의 증거다. 이런 마구잡이 방식은 사람들의 일상적인 사고까지 바꾸어 놓았다. 올해 여름만 해도 그렇다. 나는 구체적으로 통계를 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서울과 경기의 여름 기온이 평년보다 매우 낮았을 거라 생각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경기 지역에 살고 있고 서울도 자주 왔다 갔다 해서 경험으로 아는데, 올 여름에 비가 많이 왔기 때문이다. 비가 많이 온 여름이, 비가 한 톨 내리지 않는 여름보다 덜 더울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런데 사람들로부터 이번 여름 정말 덥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다. 물론 체감적으로야 그럴 수도 있다. 그래서 내가 아마도 올 여름 기온은 매우 낮은 편이었을 거라고, 나는 그래도 꽤 견딜 만했다고 말하면, 깜짝 놀라며 그럴 리 없다는 표정을 짓곤 했다.

 

지구온난화라는 건 결국 따지고 보면 하나의 가설인데(물론 중요한 가설이다), 언론에 보도되는 과학자들은 실제 기온이 높든 낮든 늘 지구온난화를 지지하는 증거로 해석한다. 이렇게 되면 지구온난화는 반증 불가능해진다. 아니 어떤 경우에도 반드시 입증되는 꼴이다. 물론 각 경우의 진술은 모두 정당한 논리를 확보한다. 문제가 있다면(그런데 이것은 치명적인 문제이다) 두 경우 모두 정반대의 경우, 즉 지구 한랭화의 증거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혹은 지구의 기상이 예전보다 불규칙해졌다고 하는 가설을 지지하는 증거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이상하게 지구온난화론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별로 흔쾌하지 않았다. 나야 특별히 환경 운동을 하거나 생태 사상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우리의 미래가 생태적인 쪽으로 점점 가야 한다고, 그렇게 노력을 해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긴 하다. 그런데도(아니 나로서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구온난화 담론이 맘에 안 들었던 것 같다.

 

우선 종말론 냄새가 싫었다. 지금까지 지구 온도가 평균 얼마나 올랐는데, 이대로 가면 얼마 뒤에 어떻게 된다느니……. 그래서 언젠가는 지구가 멸망을 할 것처럼 얘기하는 게, 지하철에서 받는 <파수대> 같은 책의 내용과 다르지 않았다(방금 이 문장에서 <파수대>를 끌고 들어온 건 소수파 종교에 대해 무시하려는 의도와는 상관이 없다. 다만, 지구온난화론이 서구 종교의 종말론과 유사한 세계 인식을 하고 있는데(물론 어떤 종교가 그런 세계 인식을 하는 건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건 남들이 뭐라 할 수 없는 100% 그들의 자유다), 둘 모두 자기들이 주장하는 종말론적 내용을 과학이 데이터로 지지하는 것인 양 말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인간이 지구를 파괴한다는 얘기야 수사학 차원에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로 그렇게 믿는 건 문제가 다르다. 그런 믿음은 지구를 너무 연약하게 보고, 인간은 너무 대단한 존재로 보는, 그런 점에서 서구 백인 남성들이 그동안 범해 온 전형적인 인간중심주의와 다를 바 없다. 인간중심주의라는 게 꼭 인간이 주인이다, 인간이 가장 잘났다는 생각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자기가 가장 큰 죄인이라는 과대망상 또한 자기가 반성하는 것이 세계사의 결정적인 전환점인 양 착각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런 의문을 가질 분도 있을 것이다. 반성의 내용이 올바르다면 그건 좋은 거 아니냐고, 오히려 근본적인 반성일 수 있지 않느냐고…… 논리상으로는 그렇다. 그래서 나도 근본적인 반성을 하는 사람이나 그렇게 하자는 주장을 그 자체로 내치지는 않는다. 그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판단을 한다. 과잉 반성과 과잉 적대는 근본주의의 강력한 징표이며, 미국인들이 가장 잘 범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건대, 과잉 반성에 도달하는 사람들은 반성과 동시에 곧장 주변 사람들이 자기처럼 그렇게 반성하지 않는 게 지금 세상의 가장 큰 문제라고 보게 된다. 서구의 제국주의자들이 바로 그런 패턴을 가졌었고, 지금도 그런 식의 사고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어! 이거 나도 비슷한 사고를 하고 있는 건가?). 우리가 자주는 아니지만 환경이나 생태 쪽에 관심이 많은 사람 중에 종종 피곤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들의 회심은 참으로 훌륭한 것일 수 있다. 문제는 그런 것을 밀고 나가는 방향이, 이전보다 자연을 더 사랑하는 쪽이 아니라, 이전보다 자연을 파괴하는 사람을 더 미워하게 되는 쪽의 방향을 취하는 경우이다.

 

나는 지구온난화론이 지금까지 지나친 공포와 죄의식을 조장해 왔다고 생각한다. 언론 보도나 내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나는 그렇게 느끼게 되었다. 지구온난화에서 제기하는, 거기에 담긴 문제들이 매우 중요한 것인 만큼, 우리는 스스로, 그리고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서 함께 생각해야 한다. 공포나 죄의식이 우리를 지배해서는 곤란하다.

 

나는 지구온난화론자들 중에도 적지 않은 수가 지구온난화 담론에 부담을 느낄 거라고 생각한다. 실천적인 차원에서 중요하긴 하지만 그들도 내가 느껴 온 문제들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었을 테니까. 사실 지구온난화론이 지지받는 최대의 이유는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게 하는 데 아주 좋은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지구온난화론이 심지어 환경 문제에도 해를 끼치는 중이라면……? 최근에 가라타니 고진의 <자연과 인간> (도서출판b)가 출간되었다. 거기서 가라타니 고진은 “지구온난화 및 그 원인을 이산화탄소로 보는 이론”을 비판한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지역적 순환계의 경우, 개별적인 대책이 필요한데, 이제 그런 고안들이 필요 없게 됩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와 그 밖의 ‘사막화’, 농지의 황폐가 진행되고 있는데, 물론 이것은 온난화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도 온난화 탓이라 하여 결국 사막화에 대한 대책, 논지의 회복을 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지구온난화설은 매우 의심스럽습니다.”(<자연과 인간>. p.66)

 

관심 있는 분은 <자연과 인간>을 읽어보시기 바란다(단, 지구온난화는 이 책에서 아주 조금만 다루어진다).

 

이번 주부터 약 3주에 걸쳐 당신과 공유하고자 하는 글은, 세계적인 진보 잡지 일본의 <현대사상(現代思想)>에 실렸던 대담이다. 아마도 지구온난화론에 대해 단순히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가지고 스스로 사유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대담자는 생물학자 이케다 기요히코(나는 연전에 이 사람의 책을 번역한 인연이 있다. <굿바이 다윈?>(그린비))와 환경 과학자 이토 기미노리. <현대사상> 2007년 10월호에 실린 대담록 “냉정히 온난화를 사고한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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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온난화를 둘러싸고 현재 논의가 활발해지는 것은 역시나 전 미국 부통령 앨 고어의 <불편한 진실>의 출간이 하나의 기폭점이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은 뒤에 영화화 되었는데, 그것 역시 히트를 쳤지요. 이 책을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면 좋지 않을까요?

 

이토 : 고어의 <불편한 진실>에는 ‘불편한 진실’이, 즉 이상한 대목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고어의 스승인 레벨 교수가 나옵니다. 고어는 대학 시절에 그에게 배웠고 그를 크게 존경합니다. 고어는 바로 그 레벨 씨가 이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한 파이오니어라고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문가들한테는 잘 알려진 이야깁니다만, 처음 시작한 것은 사실은 킬링이라는 사람입니다. 킬링이 포닥(박사연구원) 시절에 측정을 독자적으로 시작해서 그것을 레벨이 알고 연구소에 고용했습니다. 고어가 쓴 대로라면, 이 사정을 오해하는 겁니다.

또 과학적인 기술에 관해서도 매우 문제점이 많은 책입니다. 그 문제점들을 따라가는 식으로, 온난화를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지 이야기해볼까 싶습니다.

책 안에는 ‘온난화의 증거’라는 게 많이 나옵니다만, 그게 상당히 수상쩍습니다. “신은 세부에 깃든다”든가 “악마는 세부에 깃든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기후 변동에 대해서는 대략적인 방식으로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기후 변동이라는 것은 로칼하게 일어나는 일이니까, 평균적인 기온이나 강수량의 변화를 보면 끝나는 얘기가 아닌 겁니다. 그 장소에서 어느 정도 내리면 안 된다든가, 어느 정도 기온이 오르면 안 된다든가, 세세한 곳까지 가지 않으면 진실은 포착할 수 없고, 진정한 대책도 세워질 수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는 의료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킬리만자로에서는 만년설이 점점 줄고 있다, 라는 기술이 나옵니다. 확실히 눈은 줄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최근까지도 이해가 안 되고 있는 현상으로서, 녹은 것이 아닙니다. 승화(昇華), 즉 주변으로 점점 증발해버린 겁니다. 증발하는 이유는 당연히 주변의 습도가 낮기 때문인데요, 어째서 습도가 낮아졌는가 하면, 확실히는 알 수 없습니다만, 어쩌면 주변의 나무들을 베어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기온이 원인이 되어 녹은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겁니다.

그 다음, 열파(熱波) 발생의 이유라는 것도 나옵니다. 유럽에서 1993년에 열파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기온이 통상 어느 정도로 달랐는가, 즉 아노말리를 조사한 데이터가 있습니다만, 유럽에서는 2003년 6월부터 8월이 엄청 더웠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프랑스는 조금 특수해서 바캉스로 모두 나가버리고 노인들만 남았기 때문에, 피해가 노인들에게 집중되었다는 측면이 있습니다만, 그래도 어쨌든 더워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그 근처(러시아 서부 등)는 낮아지고 있는 겁니다. 아프리카도 낮습니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 넓은 범위를 잡아 평균을 하면 그렇지 않은 겁니다. 지리적 불균일성이 나왔다는 게 원인의 하나인 것이죠. 사하라 사막의 뜨거운 대기가 유럽으로 흘러든 것이 원인일지도 모릅니다.

 

이케다 : 지구는 크니까, 로칼한 아노말리가 어째서 발생했는가 하는 그 원인은 진짜 어렵고, 간단하게는 알 수 없습니다.

 

이토 : 이해는 이제부터 앞으로의 문제이겠죠. 게다가 기온 측정 자체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이 책에는 전혀 안 나옵니다만, 최근 이미 이야기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기상 관측소의 기온은 수상쩍은 게 아니냐는 식의 조사는 꽤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도호쿠 대학 명예 교수 곤도(近藤純正) 선생이 일본 전국에서 조사를 해서, 홈페이지에 게재해 놓았습니다. 이걸 보면 기상청이 사용하고 있는 17 표준 지점의 데이터도 의심스럽습니다. 일본 내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세 지점밖에 없습니다. 홋카이도 슷쓰(寿都)와 도호쿠의 미야코(宮古), 시코쿠의 무로토곶(室戸岬)만은 관측소가 확실한 기온을 측량하도록 유지되고 있습니다만, 다른 곳은 전혀 아닙니다.

 

이케다 : 그 ‘전혀 아니다’라는 것은 도시 한가운데 있다든가, 뭐 그런 이유를 말하는 것입니까?

 

이토 : 그게 이상한 이야기인 건데요, 도시 안에 있다면 오히려 주변을 확실히 잔디밭으로 만든다든가 하기 때문에, 그래도 괜찮다는 겁니다. 옛날에는 주변 몇 십 미터를 잔디밭으로 조성했고, 백엽상(百葉箱)으로 칠하는 페인트도 확실한 것을 사용했었는데, 점점 그런 것도 잘 지켜지지 않게 됩니다. 예컨대 그 토지 옆에 건물이 서도 기상청은 불평을 할 수 없습니다. 자잘한 얘깁니다만, 예컨대 비닐하우스 같은 게 생겨도 달라질 겁니다. 바람이 약해져 기온 상승에 영향을 미칠 겁니다. 그걸 “양지 효과”라고 곤도 선생은 말합니다만, 그것을 일본 전국의 관측소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케다 : 그렇군요. 마이크로 클라이메터가 이미 완전히 바뀌어버린다는 거군요.

 

이토 : 예. 게다가 그런 일이라는 건 관측소의 이력에 쓰여 있지 않아요. 세계 각지도 그건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0.5~1°도 정도는 간단히 달라질 수 있는 것 같아요. 0.2°나 0.3°의 오차는 100년 뒤까지의 시점으로 외삽하면 2°나 3°가 되어버려요. 오차는 아무래도 나오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그런 일은 신문에는 나지 않으니까……

 

이케다 : 보통 사람들은 “지구 규모에서 평균 몇 도 올랐다”라는 것이 나오면, 확실한 데이터처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측정 장소 등에 따라 여러 가지로 달라져버리니까, 어려운 문제군요.

 

이토 : 가장 신용할 만한 것은 위성으로 전체를 보는 건데요, 그것도 역시 오차는 상당히 크니까 말이죠.

 

이케다 : 위성으로 봤을 때는 지상에서 실측했을 때와 비교해서 온도가 잘 올라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그건 진짜 맞는 말입니까?

 

이토 : 그것도 미묘한 이야기인 것이, 오차는 당연히 크다고 볼 수밖에 없어요. 다만 어느 정도는 올라가는 듯합니다마는.

 

이케다 : 역시나 남반구와 북반구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북반구 쪽이 상승 폭은 큰 겁니까?

 

이토 : 네. 위성 기온 측정으로 어디가 오르고 있는지를 본다면, 어떤 논문에 따르면 CO₂를 많이 내고 있는 곳이 올라가고 있다고 하는 것이죠. 그건 CO₂탓으로 오르고 있는 건 아닙니다만, 인간 활동으로 오르고 있다. 그러니까 어느 장소가 어느 정도 올랐는가라는, 각각의 원인을 확실히 조사해 가는 것은 앞으로 이루어져야 할 작업입니다. 지금까지는 온도 측정, 로칼한 온도와 평균 온도의 차이, 그리고 평균 온도의 오차 이야기입니다.

 

온난화 논의의 ‘조야함’

 

이토 : 그리고 유럽의 열파(熱波)와 관련해서는, 올해 재미있는 논문이 나왔습니다. 논문의 얘기인즉슨 2003년은 봄에 강수량이 줄었다는 겁니다. 비가 적으면 증발열에 의한 냉각이 감소되므로, 그것이 여름 열파의 커다란 원인이 되었다는 겁니다. 이런 원인을 찾는다는 것은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1년 지나면 알 수 있는 게 전혀 달라집니다.

다음으로, 허리케인과 태풍의 증가 이유인데요, 이에 대해서도 최근 <네이쳐>에 실린 논문이 있습니다. 2, 3년 전에 나온 논문에서는 대서양 표면 수온의 상승에 대응하여, 허리케인이 증가하고 있다고 되어 있었는데요, 새로 나온 논문에 따르면 예전의 허리케인 수를 적게 추산했던 것 같습니다. 옛날에도 현재와 차이가 없는 정도였는데, 1970년, 1980년에 줄고, 그 후 또 늘었어요. 즉, 원래로 돌아온 셈이죠. 허리케인 수라는 것은 지금은 위성사진을 보면 셀 수 있습니다만, 옛날 태풍의 수를 세는 것은 어려운 것이죠. 특히 상륙하면 분명해집니다만, 바다에서는 알 수가 없어요. 아무래도 그것이 이유가 되어 과소평가했던 듯합니다. 최근 논문에 따르면 허리케인이나 강한 바람이 불었을 때, 산호초 등에 기록이 남겨지는 듯합니다.

 

이케다 : 산호초는 계속 쌓여 가니까요.

 

이토 : 그렇습니다. 그해의 다양한 정보들이 축적됩니다. 재미있게도, 바람의 강도 등도 정보로서 들어 있는 것 같아요. 1970년, 80년대에는 바람이 약했던 듯합니다. 이 바람이 강하다거나 약하다는 것은 허리케인이 최초로 생길 때에 유효합니다. 바람이 강하면 허리케인이 알이 잘 형성되지 않아 더 크게 성장하지를 않습니다.

 

이케다 : 산호에 어떤 형태로 흔적이 남습니까? 성장 속도가 다르다든가, 뭔가 물질이 들어오든가 합니까?

 

이토 : 빗물의 양이 성분에 반영되나 봅니다. 그 다음에 바람이 크면, 소위 용승류(湧昇流)가 강해지고, 그것도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 같구요. 다음에, 플랑크톤의 분포나 구성 등에도 영향을 받는 듯합니다. 또 이 논문에서 재미있는 것은 바람이 70년대, 80년대에 약해진 이유로서, 태양의 자외선에 의한 오존층의 영향을 말하는 대목입니다.

 

이케다 : 그 무렵은 아주 조금만 지구가 차가워진 시기죠. 그것과 조금 관련이 있을까요.

 

이토 : 해면(海面)의 온도보다도 바람의 강도 쪽이 영향이 큽니다. 물론 해면의 온도도 틀림없이 영향을 끼치겠지요.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바람의 강도라는 것이죠. 오히려 이 논문이 재미있는 건 과거에 과소평가하던 허리케인 수를 사용해서 논의를 하고, 그렇게 해서 결론을 내는 걸 부정했다는 겁니다.

 

이케다 : 데이터가 상세하게 나오면 나오는 만큼 여러 가지 일들을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요. 지금의 논의는 대체로 ‘장사꾼 주머니’ 식이니까요(주 : 수중에 있는 돈을 장부에도 기입하지 않고 마음대로 쓰는 일. 지구온난화를 지지할 때의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어떤 현상이든 지구온난화의 근거로 갖다 쓰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이토 : 그것이 거친 수준의 논의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거칠지 않고 정확한 것이라면야 다행이겠지만, 거친 수준에서의 논의라고 했을 때, 문제는 거기서 무엇을 도출해낼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깥에서 보면서 생각하는 것은 사회의 취약성이나, 뭔가 일어났을 때에 회복하는 능력(즉 버네러빌리티와 레질런스(resilence))에 주목해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될 거라는 겁니다. 장기적으로는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해서 좋은 것은 아니니까, 훌륭한 에너지 등을 찾아가는 게 좋겠죠.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약한 곳을 강화하는 게 중요합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 등은 제방이 약한 곳을 방치하거나 해서 거의 인재(人災)니까요. 다음으로 태풍의 경우에도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태풍 수도 허리케인 수처럼 증가하고 있다는 논문도 있습니다만, 관측하는 기관에 따라 수가 다릅니다. 일본의 데이터나 홍콩의 데이터도 나왔습니다만, 최근 줄고 있다는 데이터도 있고 그렇습니다.

다음으로, 채드호(湖)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채드호는 아프리카에 있는 얕은 호수입니다. 이 호수의 물이 상당히 감소되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책에는 최근 수십 년의 일만을 쓰고 있어요. 채드호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고, 몇 번이나 말랐다가 줄었다가 반복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 것을 쓰지 않았어요. 게다가 그 원인은 관개(灌漑) 등이 큽니다(주 : 앨 고어, 김명남 역, <불편한 진실>(좋은생각, 2006). p.116-117을 보라. 물론 <불편한 진실>이 채드호가 마른 것을 곧장 지구온난화로 인한 결과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직접 읽어보시면 그 사악한 편집 방식에 전율할 것이다. 책 전체가 이런 식이다. 이 책은 불편한 진실이 아니라 불쾌한 미국식 종말론이다).

 

이케다 : 아랄 해(海) 등은 완전히 관개에 의해 말랐으니까, 온난화는 관계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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