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솔의 공공공(公共空)

한국 동시대 미술에서 ‘공공미술’이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 이솔

이 글은 건축신문 6호 (2013.6)에 기고되었다.

 

…주류 인사의 입에서 “요즘 ‘공공’이란 말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그게 무슨 의미인지 진짜 모르겠다 (김선정)”거나 “<공공의 순간>에서 발행한 텍스트를 보면 전 도통 무슨 주장을 하는 것인지 잘 이해를 못하겠다 (임근준)”는 불평이 터져나오는 사정은, 햇수와는 무관하게 가시적 성과물로 기억되지 못하는 공공 미술운동이 ‘운동같지 않은’ 해프닝에 대한 회의감 때문은 아닐까. 즉 누구도 거역하기 힘든 명분(공익)에 기대어 조형적 무사안일주의에 빠졌던 건 아닌가 하는 점이다.

–    반이정 (국제작가포럼AFI 공공의 순간, 2006)

 

오늘날 한국에서 작가, 미술행정가, 큐레이터, 비평가가 언명하는 ‘공공미술public art’이란 무엇일까? 사실 공공미술에 대한 출판물과 기록은 그 양이 지나치게 방대한데, 관련 기사, 논문, 보고서 등을 훑어보면서 드는 의문은 ‘왜 이렇게 많은 자원과 재원이 투자되는 데도 불구하고 공공미술이 속 빈 강정처럼 느껴질까’이다. 사실 지난 30, 40년간 한국에서 공공미술이라함은 민주주의적 정치개념이나 건축공간적 키워드, 즉 도시환경urban environment, 공간 정치학politics of space, 공공성publicness, 시민사회civil society, 지역local/community, 공동체collective, 공중public, 민중people, 시민citizens 등으로 풀어 서술할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조금이나마 구체적이고 명확해진다. 그리고 1980년대 민주화운동 전후, 1990년대의 세계화와 소비사회로의 전환, 2000년대의 신자유주의 물결로크게짚어볼수있는정치,사회, 문화환경의 변화가 이 다수의 개념에 대한 인식전환의 배경으로 작동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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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의 ‘장소특정성site-specificity’을 분석해서 잘 알려진 미술사학자 권미원Miwon Kwon은 공공미술을 크게 세 가지 패러다임으로 구분한다. 첫 번째 패러다임은 ‘공공장소에 위치한 예술art in public space’로 주로 광장, 관공서, 기업체 빌딩 등을 장식하거나 예술로 풍부하게 만드는 모더니스트 오브제를 포함한다. 두 번째는 ‘공공장소로서의 예술art as public space’로 도시계획자(건축가, 조경 전문가, 도시 관리자 등)와 예술가가 협력해서 건축과 풍경의 조화를 추구하기 때문에 첫 번째 패러다임보다는 덜 오브제적이며 장소특정성site specific을 띈다. 세번째는 ‘공중의 이익을 위한 미술art in the public interest’, 즉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new genre public art’이라 불리는 주위 환경이 아닌 사회문제에 초점을 둔 것으로, 일시적으로 실천되며 “정치적으로 올바른” 태도를 중시해서 주로 소외된 사회 집단(노숙자, 청소년, 감옥수 등)에 초점을두고지역에기반을둔예술 프로그램을 지칭한다.2 이 세 가지 패러다임은 시간을 두면서 진화한 ‘발전 단계’로 이해하기 보다는, 공공성과 미술에 대한 서로 다른 목적을 지닌 예술가와 이해집단의 활동이라고 봐야 되는데, 이러한 패러다임 구분은 주로 조형적인 면에서 구분한 것이므로 한 장소에서 동시에 나타날 수 있으며 한국의 공공미술에도 적용 가능하다. 하지만 이글은 최근 십여년간 한국미술계가 비판 없이 수용한 공공미술과 그 언저리 예술활동에 대한 이론 -즉, 미국에서 활동하는 비평가들이 주로 서유럽과 미주의 그들이 말하는 ‘퍼블릭아트’의 예를 바탕으로 발전시킨 이론- 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하고자 한다. 물론 권미원을 비롯해 수잔 레이시Suzanne Lacy의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 그랜트 케스터Grant H. Kester의 ‘대화의 미학dialogical aesthetics’, 클레어 비숍Claire Bishop의 ‘적대적인 미술antagonistic art’이 끼친 영향을 간과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정해놓은 틀을 잠시나마 벗어나서 한국의 정치, 역사, 미술사학적 환경요인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공공미술을 ‘텅 빈 기표empty signifier’로 사용하지 않고 공공미술이 의미하는 다층적인 면모가 한국 미술계의 어떤 증후로 작동하는지를 탐구할 것이다.

앞의 인용구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에서 ‘공공’이 ‘공익’이란 명분으로 통용된 전례가 많지만, ‘공공’은 마치 이미 정해져 있는 공동체, 즉 나라, 국가, 마을, 시, 구, 도의 눈에 보이는 이익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실제로 ‘공익’이라는 가치를 앞세워 상업적 이익을 챙긴 이들 또한 수두룩하다. 그래서 이글은 공공미술이란 이름, 혹은그 계열의 명칭을 걸고 전시장 밖의 조형물 제작이나 미술실천을 주도한 다양한 주체를 명명하면서 한국에서 관찰되는 공공미술의 세 가지 패러다임을 구축한다. 공공미술을 둘러싼 이해관계와 주체/대상의 관계가 추상적인 의미의 공익과는 다른 면모를 띈 점을 역사적인 시점에서 밝힌 후, 2000년대 이후에 나타난 공공미술의 새로운 국면을 살펴볼 것이다.

 

역사적 관점: 공공미술은 누가 누구를 위해 만드는 것인가?

한국의 공공미술의 역사를 살펴보면, 먼저 유신정부 때부터 현재까지 공공장소에 설치된 기념비적조각을들수있다.국가주도로제작된 이들은 주로 남근 형태와 전근대적 모형을 띄며 광장 및 공원에 영구 설치되는데, 대표적인 예가 바로 광화문광장의 충무공 동상이다. 1968년 4월 27일제막식을갖은김세중작의이청동동상은 무게 8톤에 높이가 7미터인데 좌대만 12미터여서 당시 새로 조성된 100미터 길이의 세종로 광장의 규모에 걸맞은 크기였다. 독재정부는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개인들을 국민으로 호명하기 위해 조선시대 장군을 현대의 영웅으로 부활시켰고 작가는 민족국가의 이데올로기를 극대화해서 표현했다.3 비록 공공장소에 위치한 미술품이지만 세종로 개발계획과 동시에 기획되었고 충무공이 없는 세종로는 이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조형적, 상징적 기능을 한다. 첫 번째 공공미술의 주체가 국가 이데올로기를 머금은 독재정부였다면, 두 번째는 이러한 국가에 대항하며 미술관 밖의 공적 공간에서 예술실천을 했던 작가군이다. 그 예로 1980년대 데모 현장에서 구심점 역할을 한 걸개그림이나 영정그림, 벽화운동, ‘시민미술학교운동’ 등이 있다. 작가를 중심으로 일반인의 참여를 유도하기도 했던 1980년대 현장미술은 걸개나 벽화를 함께 생산하는 과정과 이미 생산된 작품을 ‘소비’하는 과정에서 소비-참여자 주위의 공간을 활성화activation하면서 일시적인 공동체를 형성하는 역할을 했다. 이런 이유에서 현장 참여미술 중 대부분은 평면그림의 조형적 가치보다 그 그림이 특정한 공간space과 장소site에서 작동하는 메커니즘이 중요하며, 작품생산을 주도한 주체와 작품의 소비대상자가 이분법적 관계를 넘어선다. 여기서 작가와 시민들은 독재정치에 대한 대항을 통해 당위성을 가진 또 다른 국가nation를 민중이라 호명했고 민족 단위의 공동체를 상상했다. 비록 당시에는 시위미술, 현장미술 등의 이름으로 불렸지만 1980년대의 미술운동은 우리나라 공공미술 역사의 중요한 챕터이다. 물론 이때 ‘민중’과 ‘공공’의 차이를 간과하면 안 된다. 대한민국 곳곳에 설치된 또 다른 종류의 공공미술은 구 건축물미술장식제도 (현 문화예술진흥법 제9조의 ‘건축물에 대한 미술작품의 설치’ 등)에 의해 탄생했다. 이 제도는 일정 크기 이상의 건물을 신축할 때 도시환경의 미관향상을위해공사비의1%이하금액을 미술품에 사용할 것을 국가가 법적으로 제도화한 것이다. 미국(1934년)과 프랑스(1951년)에서 국가 소유 공공건물에 적용했던 법안을 한국에서는 1972년에 민간인 소유 건물에 한해 권장사항으로 소개했다.4 88올림픽 전에 일부 지역에서 의무화가 되고, 1995년에 대통령 공약사항으로 전국적으로 의무화가 된 일명 ‘1%법’ 혹은 ‘관료적 공공미술’의 폐단은 여러 가지이다. 예를 들어, 1995년부터 2008년까지 총 10,684개의 환경조형물이 설치되었고 5,461억 원이 사용되었는데, 이러한 금액은 시각예술계에 환원되는 국가기금과 비교해서 천문학적인 숫자이다.5 결국 미술투자를 명문화한 제도장치로서 미술의 ‘공공성’이 아닌 ‘시장성’에 불을 붙인 셈이다. 대부분은 분수나 상징물 등 기념비적 동상이나 서구 모더니즘을 모방한 추상조각이고, 건물주와 고용된 작가 혹은 상업화랑이 수천만 원 혹은 수억 원 대의 거금을 리베이트하면서 횡령, 뇌물 등의 부정부패의 원천지로 작동하기도 한다. 이 제도에 의해 제작된 상당수는 사기업, 상업화랑 및 개인의 이윤창출을 도모한 실험정신 없이 반복 제작된 문패조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싶다.

사실 이미 1980년대 말부터 수많은 건축인과 미술인이 ‘1%법’을 비판했으나,6 2011년에 와서야 비로소 과거의 ‘건축물 미술장식’을 ‘건축물 미술작품’으로 바꾸며 예술작품으로서의 가치를 도모했고, 건축주는 작품 설치 대신 문화예술진흥기금에 출연하는 방식으로 선택의 폭도 커졌다. 가장 큰 규모의 공공미술 자금이 국가 산하 단체로 환원되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뒤늦은 ‘1%법’의 개정보다 더 의미심장한 정책적, 예술실천적 변천이 2000년대부터 활발하게 일어났고, 이러한 변화는 앞에 열거한 공공미술의 세 가지 커다란 패러다임에 전환을 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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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임의 전환: 2000년대 이후 도시공간의 정치학

2000년대 들어서자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new genre public art의 범주에 드는, 주민을 위한 성격을 띤 실천들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이러한 미술실천의 주체로는 작가나 기획자 집단 (작가그룹 플라잉시티의 2003년 《청계천 프로젝트》, 인사미술공간 주도의 2007년 《동두천 프로젝트》 등)과 정부부처(문화체육 관광부의 2006-2007년 《아트인시티》와 2009년 《마을미술 프로젝트》, 서울시의 2008년 《도시갤러리 프로젝트》)가 있다. 이런 프로젝트 및 사업의 성격을 요약하면, 첫째로 공공미술의 활동영역이나 공중public에 대한 인식이 예전의 국가 규모(대통령의 법률제정이나 대한민국이라는 민족국가를 호명하는 동상, 혹은 민중을 위한 미술)에서 지자체와 동네 단위(안양, 마석, 청계천, 성산동 등)로 파편화, 지역화된것이다. 둘째로 작가들의 관심이 도시와 지역에 관한 공간의 정치와 담론으로 확장한 동시에, 지자체와 정부의 관심사 또한 도시디자인이라는 후기산업형 환경조형으로 방향을 틀은 점이다. 즉, ‘도시’라는 키워드가 미술실천자와 문화행정자의 공통분모로 등장했다.7셋째로 작가가 주도하는 미술실천도 정부나 지자체의 기금을 받는 기류를 들 수 있다. 민주화 이전에 목격했던 국가이데올로기와 민중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아닌 문화를 통한 공생의 방정식이 성립된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기류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한국 발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이 중요시하는 ‘정치적 올바름’이나 ‘주민과의 소통’이라는 가치는 일부 작가군 뿐만이 아니라 IMF 이후 신자유주의의 옷으로 갈아입은 참여정부와 그 이후 정부의 복지국가 정책이 추구하는 일종의 문화복지에 기여하며 지자체가 지역 경쟁력을 공언하기 위한 문화전략, 도시디자인이 되었다.8수행자(작가, 정부기관)와 수혜자(주민, 일반인, 소외계층)의 거리가 유지되는 구조인데, 우리는 공공성이 단지 어떤 특정 커뮤니티의 이익과 혜택을 추구하는 데서 발생하는가치가아님을잘알고있다.참된 민주주의적 이상이 대다수의 의견을 수렴하는 데서 생성되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은 맥락이다. 공공성은 누가 누구에게 건네줄 수 있는 가치가 아니고 서로 다른 주체들이 상호주관적으로 의견의 (불)일치를 언어적, 감성적, 신체적인 방법으로 소통할 때 출현하는 시공간적 현상이며 장sphere인 것이다.9 그런데 이러한 공공성은 우리가 여태껏 알아온 공공미술로서 획득 가능할까? 지면상의 이유로 이 글에서는 조형적 미학적 분석을 생략하고 한국 공공미술의 도식적 이해를 도모했지만, 진정한 공공성을 순간순간 획득한 미술실천의 예가 없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소수의 미술실천은 오늘날 한국미술계에 또 다른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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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장언, _상징과 소통–지금 한국에서 공공미술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_, Visual, Vol. 7, 2010.

2

Miwon Kwon, “For Hamburg: Public Art and Urban Identities,” Public Art is Everywhere. ex. cat. ed. Christian Philipp Muller (Hamburg, Kunstverein Hamburg and Kulturbeh rde Hamburg, 1997), pp. 95-109.

3

박계리, _충무공동상과 국가이데올로기_, 『한국 근대미술사학』 제12집, 한국근대미술사학회, 2004, pp. 139-175.

 

4

박찬경, 양현미, _공공미술과 미술의 공공성_, 『문화과학』 53호, 문화과학사, 2008, p. 98.

5

『공공미술 진흥산업 운영방안』, 한국문화예술 위원회 예술정책연구 편찬, 2009. 12.

6

1986년 한국건축가협회가 주최한 토론회 <도시환경과 환경조형>에서 성완경은 “환경미화보다는 도시의 인간화, 살아있는 거리를 만들기 위한 예술품으로 주민과의 소통을 넓히는 시민예술적 측면이 강조돼야한다”며 미술의 공공적 가치를 상호소통에서 찾았다. 1990

년대 말에 이르면 도시 곳곳에 우뚝 선 조형물이 흉물 취급을 받기 시작하고 1998년 8월에는 정부규제개혁추진회의에서 건축물 미술장식품 설치의무조항 폐지안이 거론 되었으나 안타깝게 백지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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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문화이론과 소비문화의 영향을 받아 도시를 예술실천의 장site으로 수용하고 활동을 한 작가군이 등장했다. 《한 도시 이야기》(1994)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기억과 일상생활을 기록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으며 영화인, 미술인, 시민들의 합작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제작: 신씨네, 감독: 이재용, 아트 디렉터: 최정화, 오형근). 그 이후 《성남프로젝트》(1997-8), 《공공의 꿈, 종로》 (2002) 등이 있다.

8

《아트인시티》의 사업목적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소외계층이 거주하거나 활동하는 지역의 생활환경을 미술을 통해 개선함으로써 문화적 삶의 질을 제고”하는 것이었다. 이때 공공미술은 소외계층를 위한 복지의 일부 혹은 대체 역할을 한다. 《도시갤러리》 사업은 작가들을 용역업체처럼 고용하여 도시 구석구석의 미관을 살리는 데 목표를 두면서 “공공미술은 비인간적이라 불평을 듣는 도시환경을 문화적으로 치유”한다고 정의 내렸다.

9

나는 여기서 하바머스Habermas, 아렌트Arendt, 프레이저Fraser, 워너Warner 혹은 라클라우 Laclau와 무페Mouffe 등의 이론에 근거하고 있고, 이에 관해서는 웹진 <위클리 수유너머> 에 연재중인 컬럼 ‘이솔의 공공공公共空’에 밝힌 바 있다. 박찬경도 하바머스의 공공장 이론을 정리하며 ‘공공성’의 개념을 발전시킨다. 「‘공공의 순간’을 위한 발제」, 『공공의 순간』 (국제작가포럼 AFI 2006 조직위원회, 2006), pp. 10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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