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끝나지 않은 싸움

모두의 눈물, 밀양 송전탑 -밀양과 청도를 다녀와서

- 채동주(풀무농업고등학교 고등부)

8년간 진행되어 온 밀양 송전탑 공사를 10월 2일부터 재개되었다.

8년간 진행되어 온 밀양 송전탑 공사는 10월 2일부터 재개되었다.

 

밀양 송전탑 공사가 강행되고 있습니다. 8년간 진행되어온 밀양 송전탑 공사는 주민의 반대와 저항에도 불구하고 현재 진행 중입니다. 10월 2일부터 공사를 재개해 송전탑 부지를 에워싼 5,000명의 경찰이 밀양 할머니들과 대치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고, 곳곳에서 할머니들이 실신해 실려 갑니다. 이런 상황이니, 밀양의 슬픔에 공감해온 시민, 대학생, 환경단체 등이 버스와 기차를 타고 밀양으로 오고 있습니다. 고등학생인 저도 며칠간 학교에 휴가를 내고 밀양에 갔습니다.

 

반농업정책, 송전탑

 

농업학교에 다니며 농사를 기반으로 농업을 공부하는 저는, 농지를 빼앗아 세우는 송전탑 공사를 주의 깊게 봐왔습니다. 농업을 공부하며 도시와 농촌의 불평등 문제를 공부해왔기에, 농촌을 더욱 고립시키는 송전탑 공사에 반대해서 밀양에 달려갔습니다.

밀양 송전탑은 대도시로 핵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보내는, 가난한 지역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공사입니다. 이로 도시와 농촌간의 불평등이 더욱 커지고, 농업은 점점 축소됩니다. 밀양에 초고압 송전탑이 세워지면, 송전선 바로 밑(선하지) 땅은 토지가격의 28%에 달하는 보상이 주어지지만, 그 외의 땅은 보상하지 않습니다. 송전탑 건설이 본격화되자 보상 대상이 아닌 농지도 가격이 하락했습니다. 또, 송전탑 인근의 땅은 재산가치가 하락해, 이를 담보로 대출도 어려워졌습니다. 1년을 노력해 추수할 때에 현금수입을 버는 농민으로선, 농지를 담보로 대출받아야 한 해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밀양 송전탑 공사는 농민에게 농지를 빼앗은 상황인데, 이것보다 더한 반농업 정책이 있을까요?

송전탑의 역사는 더 위로 올라갑니다. 유신 말기인 1979년에 제정된 ‘전원개발촉진법’에 따르면 송전탑이나 전기를 생산할 핵발전소, 화력발전소가 건설될 때(전원사업), 19개 법규를 피해 토지를 강제수용할 수 있습니다. 대도시의 전력소비로 농지가 빼앗긴 게 지금까지의 역사입니다. 하지만 농지는 농민의 것입니다. 현행 헌법 121조에 명시되어있듯, ‘경자유전’의 원칙이 적용됩니다. 농사를 짓는 농민이 농지를 가져야 합니다. 각종 탈법으로 농사를 짓지 않고도 농지를 지닌 부재지주가 넘쳐나지만, 경자유전의 원칙은 지켜야만 합니다. 그러나 이 땅에 송전탑이 들어서고, 핵발전소가 가동되면, 계속해서 농민은 땅을 잃고 농촌은 허물어집니다. 국책사업이라는 명목으로 가난한 농민을 땅에서 추방하고, 밖으로 몰아내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밀양은 민주주의가 실종된 상태입니다. 하지만 이제 빼앗긴 민주주의를 되찾자고 전국 각지에서 밀양에 모였습니다. 저는 농민이 농사를 짓는 게 짓밟히면 안 된다고 말하기 위해 밀양에 갔습니다.

밀양 송전탑 자재 운송을 담당하는 헬기가 뜨는 금곡 야적장에서

밀양 송전탑 자재 운송을 담당하는 헬기가 뜨는 금곡 야적장에서

 

밀양에서

 

처음 밀양에 간 10월 3일, 저는 밀양 송전탑 공사 자재를 운반하는 헬기가 오가는 금곡 야적장에 도착했습니다. 할머니들은 제발 공사를 중단해달라고 손을 빌며 호소했습니다. 송전탑 공사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헬기는 계속해서 송전탑 공사를 위한 건설자재를 운반했습니다. 헬기가 뜨자 할머니 한 분이 통곡하기 시작했고, 이어 모두 할머니를 따라 도로에서 항의 의사를 펼쳤습니다. 그 상황이 계속되자 경찰과 마찰이 생겨 공사장 울타리 쪽으로 인파가 기울었고, 울타리 자체가 흔들려 야적장 안으로 제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연행되었고, 같이 밀려들어 간 10여 명의 사람이 모두 체포되었습니다. 저는 경찰 조사를 받고 풀려났지만, 이 중 한 분이 구속되었습니다. 대규모 공권력을 투입해 시민을 잡고, 체포하고, 조사하고, 구속하는 과정을 보며, 도대체 국가의 본질이 무엇인지 의문이었습니다.

공안정국사태 규탄 기자회견을 10월 5일 경남지방경찰청에서 열었다.

공안정국사태 규탄 기자회견을 10월 5일 경남지방경찰청에서 열었다.

경찰에서 풀려난 이후에, 10월 5일 밀양 송전탑 기자회견에 참석했습니다. 무리한 송전탑 공사와 반대하고, 밀양에 지지해서 온 ‘밀양의 친구들’을 모두 잡아 연행하고 외부세력이라 몰아세운 것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이었습니다. 밀양 송전탑 공사로 무리한 연행과 구속영장 신청을 규탄했습니다. 함께 구호로 “국민과의 소통 없이 강행하는 송전탑 건설 즉각 중단하라”고 외쳤습니다. 기자회견에 취재기자는 많지 않았지만, 함께 외친 밀양 주민분의 열기는 뜨거웠습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밀양에서 온 이남우 어르신께 식사라도 같이 하자고 했더니 “현장에 가야 한다. 살아생전에라도 밥 같이 무(먹어)나야지. 우린 내일이고 모래고 언제 죽을지 모른다.” 하십니다. 어르신은 그렇게 밀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 말을 들으며, 밀양 송전탑 공사가 얼마나 어르신들을 힘들게 하는 지, 더욱 느꼈습니다.

청도 각북면 삼평리에도 345kv 송전탑이 들어서려 한다. 송전탑 건설 반대 농성장.

청도 각북면 삼평리에도 345kv 송전탑이 들어서려 한다. 송전탑 건설 반대 농성장.

 

밀양과 같은 청도 송전탑

 

이후 저는 밀양에 희망버스 참가자들과 어울려 며칠 있다가 청도 삼평리에 갔습니다. 청도 삼평리도 밀양과 같이 송전탑이 세워질 상황이고, 345kV 송전탑 반대 싸움이 오래된 현장입니다. 저는 청도에도 송전탑이 들어선다는 것은 밀양 송전탑 문제를 알면서 자연스레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외할아버지가 청도에 사시는데도, 한 달에 한 번은 감을 따고 사과를 따러 청도에 오는데도 청도 삼평리에 송전탑이 들어선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바로 옆에서 고통받는 상황이 만연한데도 애써 외면했던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더 이상 고통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 청도 삼평리로 향했습니다.

삼평리 농성장에 찾아갔습니다. 마침 청도 할머니들이 식사하고 계셔서 함께 밥을 들게 되었습니다. 그릇에 밥을 꾹꾹 채워주시며, 젊은 사람이 많이 먹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밥을 맛있게 먹으며 할머니들의 지나친 환영에 응답했습니다. 밥을 먹은 후, 삼평리에 송전탑을 지금까지 막아온 할머니들에게 어떻게 싸워왔고, 앞으로 공사가 강행된다면 어떻게 다시 막아낼 것인지 말씀을 여쭸습니다. 한 할머님이 대답하셨습니다.

“혼자 막았으면 절대 못 막았을기라. 이렇게 젊은 사람들이 와가(와서) 이런 걸 밖에다 알리고, 같이 도와주니까 이렇게 온 거 아이가. 우리 할매들도 도움이 많이 된다. 이렇게 도와주고 있는데 어찌 우리가 못 막겠노. 철탑 이기는(이거는) 막아낼 수밖에 없다.”

저도 할머니께 꼭 함께 송전탑 막아내자고, 철탑 막아내서 이 땅을 지키자고 했습니다.

 

345kV 송전탑 반대 농성장에 모인 청도 할머니들

345kV 송전탑 반대 농성장에 모인 청도 할머니들

 

모두의 눈물, 밀양 송전탑

 

청도 삼평리를 마지막으로 하여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긴 여행을 다녀온 기분입니다. 돌아온 농촌의 풍경은 농사철이 돼 벼가 익어 모두 황금빛입니다. 추수할 때가 되어서 황금 들판입니다. 학교에 돌아오니, 한 해를 마무리하는 수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벼는 익는데, 밀양과 청도의 싸움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농번기가 되어 벼를 수확하지만, 밀양과 청도에도 감과 배추가 있고, 벼가 익어갑니다. 농번기인 지금, 밀양 할머니들은 송전탑 공사로 수확을 못 합니다. 일 년간 노력해온 결실을 눈앞에 두고도,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상황입니다. 추수할 벼를 놔둔 농민의 마음이 얼마나 타들어 가겠습니까. 밀양과 청도를 가시 농사를 짓고 사람이 살 수 있는 농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지금 이 송전탑 공사를 당장 멈추고, 송전탑을 뽑아내야 합니다. 위험한 핵발전소를 위한 송전탑 공사를 멈춰야 합니다. 이 땅의 산천초목을 지켜내 대대손손 물려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기는 밀양과 청도의 눈물을 타고 흐릅니다. 우리는 전기를 쓰고 살지만, 그 전기가 다른 이의 희생이 뒤따른 것이라면, 결코 정당한 것일 수 없습니다. 공사를 강행하는 한국전력과 동원된 경찰이 밀양을 울렸습니다. 주민을 ‘보상금 더 받으려 반대하는 세력’이라 매도한 보수언론이 밀양을 고립시켰습니다. 밀양의 눈물은 누구의 것일까요? 밀양을 울린 이들에게만 책임이 있을까요? 정부에서 전력부족을 얘기하면, 곧장 전기 코드를 뽑고 형광등을 끄면 될 문제라고, 에너지 정의가 아닌 단순한 가정에서의 전력 절약만 생각한 우리에겐 책임이 없을까요? 옆 마을이 고통받고 있는데, 단지 지역 이기주의로 치부한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지 않을까요? 밀양의 눈물은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밀양은 우리 모두의 눈물입니다. 무거운 양심으로 이 사실을 시인해야 합니다. 밀양 송전탑이 완공되면, 뽑을 수 없는 철탑이 우리 가슴에 박힙니다. 여기에 우리의 농업과 자연이, 상상력과 자유가 묶여 있습니다. 다시 울지 않기 위해, 이 철탑을 뽑아내야 합니다. 포기하지 않기 위해, 송전탑을 막아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송전탑을 막아냅시다.

 

 

응답 4개

  1. 말하길

    마지막 “이 철탑을 뽑아내야 한다”는 문장이 가슴에 콱 와 닿네요. 우리들 마음 속에 깊이 박힌 발전강박과 현실추수의 타성을 뽑아야 한다는 말처럼 들려서.

  2. 채동주말하길

    형, 강정에서 뵜을 때를 기억하죠! 잘 지내죠? 밀양도 다녀왔는데, 상황이 좋아지지 않아서 안타까워요…

  3. 오쟁말하길

    채소야 올초에 강정에서 만났던 오쟁 형이야 기억하니? 밀양 이야기 잘 읽었어 참.. 안타깝다.

    • 채동주말하길

      형, 강정에서 뵜을 때를 기억하죠! 잘 지내죠? 밀양도 다녀왔는데, 상황이 좋아지지 않아서 안타까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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