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배운 녀자’, 공동체를 말하다

- 재규어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를 기점으로 대규모 촛불집회가 일어났다. 당시 고3이었던 나는 언론의 왜곡적 보도에 분노하며 집회에 참여하였다. 내가 분노했던 이유는 언론의 모습이 보통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도덕과 역사의 모든 것을 거스르기 때문이었다. ‘어째서 저들은 뻔뻔하게도 국민을 대상으로 왜곡된 보도를 하는 거지?’ 그리고 ‘왜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거지?’ 이명박의 공약들은 다시금 그 실체가 낱낱이 벗겨지게 됐다.

 

부끄럽지만 나는 학창시절 공부를 안했고(못했고), 이상한 패거리와 어울리는 부류는 아니었지만 게임이나 인터넷만 하는 네티즌학생이였다. 항상 공부와는 다른 관심사에 열중하고는 했다. 그래도 고3이니 공부와 담을 쌓고 지내던 허송세월을 후회하고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고3의 초기 생활은 나름 잘 버텼다.

 

내가 거의 안주하다시피 하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한 카페가 있다. 이 카페는 20~30대 여성이 주축인 삼국카페중 하나인 곳이다. 앞으로 이 카페를 A라고 칭하겠다. A는 시국선언도 하고 언론에 직접적으로 지지를 표하는 정치적으로 실천적인 곳이다. 내가 촛불집회에 뛰쳐나간 동기는 바로 A를 통해서였다. 이명박정부의 공약들에 대한 객관적 자료들과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내게 일깨워준 곳이다. A가 아니었다면 지금 내가 이렇게 글을 쓸 수도 없었을 것이며 아마 지금도 나는 정치와 무관하다고 말하는 이른바 쏘쿨족으로 살 것이다(쏘쿨족이란 중립을 외치지만 사실은 자기 생각이 없는 무능한 사람을 일컫는다).

 

잠깐 삼국이 사회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였는지 언급하자면 삼국은 그동안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에 참여하고, 미디어법 반대 신문광고 모금 캠페인, 6.2 지방선거 투표 참여 독려를 위한 ‘NO VOTE, NO KISS’ 캠페인,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김장 담그기 행사인 ‘바보, 사랑을 담그다’, 4대강 사업 반대 바자회 등 사회문제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왔다.

 

이러한 삼국의 정치적 행위에 대해 월간조선에서는 악의적·왜곡적 보도를 한 적이 있다. 패션과 미용에 대한 정보를 나누던 2,30대 여성들이 정치집단으로 둔갑했다는 것이었다. 정치집단으로 둔갑한 것이 뭐 어때서? 민주주의가 이념인 나라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소리를 내는 것이 왜 좌편향 정치집단이라고 매도를 당해야 하는지 나는 당최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리고 모두가 좌편향인 것도 아니다. 우리는 각기 저마다 다양하게 좌, 우, 중도 그리고 정치와 사회문제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자발적으로 움직인 것이었다. 내가 고3때 중요한 6월 모의고사를 뿌리치고 집회에 참여했던 것은 누군가 나를 나가라고 부추겨서가 아니다. 공부와는 담을 쌓았지만 나름대로 수업시간 귓등으로 흘려들은 나지만 나도 생각이 있었고 상식이란 게 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상식과는 반대되는 일들이 벌어지는 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나? 나를 부추긴 것은 이들이 아니라 이들을 악의적으로 매도하는 바로 저들이었다. 그렇다면 그때 고3이었던 나를 정치세력에 선동하여 이끈 것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추진하였던 그들이 아닌가?

 

 그들의 역사

패션카페로는 1인자인 탑에 위치해 있던 A는 현재처럼 비공개가 아닌 공개카페였다. 그렇기 때문에 회원 수는 하루하루 항상 늘어가는 추세인 대형카페였다. 나는 중3에 처음 가입한 유령회원으로서 그 때를 추억하자면 대략 이렇다. 카페 대문에서부터 느껴지는 이국적이고 세련된 화보사진은 누가 봐도 패션카페임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카페 주인장의 센스가 돋보이는 배경음악은 카페의 느긋하고 안정적인 평화로운 분위기를 냈다. 시각적으로 느껴지는 분위기뿐만이 아닌 회원들의 사이가 정말로 평화로웠다. 그러나 그 평화는 금방 깨졌다. 카페 주인장이 카페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면서 몇몇 회원들의 돈을 실제로 갈취했다. 이 일로 작은 운영진들과 회원들이 합심해 새로운 카페를 개설하여 그 많은 회원들이 터를 옮기는 대이동이 나타났다. 눈팅족인 나도 마찬가지였고 그것은 실로 혁명이었다. 지금까지 이러한 중대하고 굵직한 일들은 따로 한데 모아 기록을 해두었으며 역사게시판이라고 하여 모든 회원들이 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배운 녀자들

사회문제에 큰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삼국은 이제 단순한 패션, 미용의 카페가 아닌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참 정치적으로 민감했던 때에는 사담자제를 하였다. 하지만 사담자제 기간이 길어지고 서로에게 엄격해지자 게시판에 글이 올라오는 수가 평상시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곤 했고 또한 내부분열이 매번 일어났다. 그로 인해 떠난 회원들도 많다. 시국에 맞서는 이 싸움은 장기싸움이라는 것을 알기에 우리가 지치지 않기 위해서 서로 어떻게 이 카페를 유지해 나갈 지 많은 회원들이 함께 오랜 기간 고민해왔다. 그것은 ‘배운 여자’로서 행동하는 것이다. ‘배운 여자’란 똑소리나게 지적이며, 개념있고 남을 배려하는 여자이다. 물론 패션카페답게 당연히 패션에도 남다른 센스가 중요하다.

 

천공의 성 라퓨타

 

만약 그 이전하기 전의 카페가 유지되어 지금도 내가 하고 있다면 그 카페는 내게 애정 깊은 곳일까? 아니, 그렇지 않다. 온라인을 통해 정치적 깨달음을 얻은 경험 덕분에 A는 적어도 내게 그 어떤 온라인 공간보다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시대가 변하고 시국이 불안정한 탓에 오히려 A에서는 연대와 결속이 더욱 끈끈해짐을 느낀다. 그것은 또 다른 안정감을 준다. 그리고 우스갯소리지만 나름 (A에서)‘배운 여자’로서의 자부심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나는 가끔 정신 차리고 보면 카페의 정치적 입장은 물론 패션을 포함한 미적인 취향까지도 닮아있다. 어느새 운동화조차도 혼자 선택하기 보다는 모든 나의 결정권은 회원들에게 투표로 맡긴다. 그렇다 나는 A의 죽순이다. 누군가 그랬다. A는 마치 어딘가 저 멀리 있는 천공의 성 라퓨타처럼 느껴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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