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끝나지 않은 싸움

밀양에서의 10일

- 김대환(청년좌파 대변인)

김민밀양사진7

 

 

10월 2일 / 오전 12시부터 한국전력 본사 앞에서 있었던 단식 농성에 참여한 후 탈핵희망버스를 타고 밀양으로 출발했습니다.

 

한국전력 본사 앞에서 있었던 기자회견과 단식 농성에 참여했습니다.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이신 지영선 님께서 “한 사람이라도 더 참여하는 게 좋다”고 말씀하시며 환영해 주셨습니다. 이후 김윤겸님과 김진서 님을 만나 함께 즐겁게 어울려 놀며 단식을 진행했습니다. 경찰들이 바닥에 깔고 앉을 깔개를 깔지 못하게 하자 함께 단식하던 사람들이 항의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김윤겸 님은 “경찰 아저씨, 왜 못 깔게 해요. 엉덩이에 흙 묻으면 아저씨가 털어 줄 거예요?”라고 항의를 하셨습니다. 김윤겸 님과 김전서 님은 아버지인 김정회 님을 따라서 서울로 상경해 함께 투쟁 중이셨습니다. 두 분이 있어 어두웠던 농성장이 밝아 질 수 있었습니다. 단식 중간에 국회의원들이 방문을 했는데, 그때부터는 깔개를 깔 수 있게 됐습니다. 어쩐지 씁쓸했습니다. 오후 7시가 되자 단식 농성장을 옮기기로 하고 단식 농성 참여자 분들은 변경된 장소로 이동하셨습니다. 김윤겸 님은 제 손을 꼭 잡으며 “꼭 다시 만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후 김민 회원과 함께 종합운동장에서 날토 회원과 만나서 탈핵버스를 타고 밀양으로 이동했습니다. 설렘과 불안이 동시에 마음속에 들어서 혼란스러운 감정이었습니다.

 

 

10월 3일 / 금곡 헬기장을 지켰습니다. 김민 회원이 연행됐습니다.

 

동화전마을에 도착한 후 마을 입구에 가까운 곳에 청년좌파가 준비해 온 “남의 피와 눈물로 내 미래를 만들고 싶진 않아. 밀양 송전탑 공사 강행 중단하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마을회관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버스를 타고 밀양시 단장면 미촌리에 있는 ‘765kV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 4공구 공사 장비 적치장’ 앞 움막으로 이동했습니다. 이곳은 ‘금곡 헬기장’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금곡 헬기장은 헬기에 중장비와 자재를 실어 송전탑 공사 현장으로 보내는 곳입니다. 금곡 헬기장은 철로 된 펜스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안에는 거대한 헬기 한 대가 서 있었습니다. 움막 안으로 들어가자 마을 주민들께서 기쁜 마음으로 밀양에 연대 온 사람들을 반겨 주셨습니다. 서로 가벼운 인사를 나눈 후 주민들께서 금곡 헬기장의 상황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내용은 10월 2일 오전 11시부터 공권력이 금곡 헬기장 앞 움막을 상대로 행정대집행을 진행했으나 주민과 연대 단위의 거센 저항으로 움막을 철거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간단한 상황 설명이 끝나고 함께 연대 온 단위들이 모여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크게 두 가지의 방법을 놓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첫 번째는 금곡리 헬기장을 점거하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움막을 행정대집행으로부터 지켜내는 것이었습니다. 헬기장을 점거하면 연행될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점. 헬기장에 사람들이 집중하면 움막을 지킬 사람이 줄어든다는 점을 이유로 첫 번째 대응 방법은 제외됐습니다. 그리고 연대 단위들은 움막을 보호하는 데 역량을 쏟기로 결정했습니다.

 

대응 방법을 결정한 후 “밀양 송전탑 공사 즉각 중단하라”는 내용의 피켓을 철로 된 펜스의 시작부터 끝까지 덕지덕지 붙였습니다. 공사 현장 간부로 보이는 사람이 출근하며 피켓을 붙이고 있는 청년좌파 회원들을 보며 물었습니다. “이건 뭐 하는 거냐?”라고 묻자 김민 회원이“예술 작품을 만들고 있다.”고 답했더니 “이런 것도 예술이구나.”라며 비웃지 않고 수긍하고 지나갔습니다. 중간에 접착제가 다 떨어져 바닥에 버려진 모기퇴치제를 사용해 공사장 정문과 모든 펜스에 피켓을 붙였습니다. 피켓을 다 붙인 후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어봤습니다. 대화 내용은 전쟁터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현장 분위기는 심각했습니다.

 

해가 뜨자 경찰들과 한전 직원, 공무원들이 금곡 헬기장 앞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언론사에서 온 취재 차량도 많았습니다. 기자로 보이는 사람이 계속 주민들과 연대 단위를 촬영하자 연대 단위 사람들은 찍지 말라고 부탁했지만, 부탁을 무시하고 촬영을 계속하자 사람들은 그에게 소속을 밝히라고 요구 했습니다. 그는 끝까지 자신의 소속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움막 앞에서 간단한 약식 집회가 진행됐습니다. 사회자는 연대 단위에게 밀양의 상황에 대해서 간단한 브리핑을 했습니다. 주민들과 연대 단위가 바드리마을 84, 89번 송전탑 근처에서 대치 중임. 산외면에서 50명의 사람들이 공사 현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입구에서 대치 중임. 상동면 126번 철탑 움막 앞에 불 피우려다 경찰이 불을 끄겠다는 이유로 소화기를 뿌리며 진압 시도. 부북면 평밭리는 주민들이 공사 현장에 움막을 짓고 대기 중인 상황이었습니다. 공권력은 들어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집회의 사회자는 송전탑 건설을 찬성하는 주민에 대해서 보상금을 위해 찬성을 하는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라며 어차피 공권력과 싸워봐야 질 것 같아서 포기한 사람들도 있다며 송전탑 공사 찬성 주민은 보상금을 위해 찬성표를 던졌다며 욕하는 실태에 대해 경계의 목소리를 표했습니다.

 

이후 발언자들의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발언은 공권력과 한전의 폭력적인 공사 강행을 규탄하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이후 경찰과 충돌이 몇 번 있었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 헬기가 자재를 공사 현장까지 나르기 시작했습니다. 밀양 주민 한 분은 도로에 쓰러져 흐느끼다 방패로 막고 버티고 있는 경찰들에게 절을 하시며 제발 헬기 좀 치워 달라고 빌었습니다. 너무도 고통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탈핵희망버스를 함께 타고 온 이보아 씨가 할머니께서 도로로 뛰어가 누우면 함께 누워 도로를 점거하자는 말에 함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누워서 도로를 점거한 후 “밀양 송전탑 공사 즉각 중단하라!”, “보상은 필요 없다! 송전탑 공사 철회하라!”를 외쳤습니다. 갑자기 경찰들이 어딘가로 몰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몇 명의 사람들이 펜스를 넘어 헬기 이착륙장으로 진입하고 있었습니다. 펜스를 넘어간 사람들은 모두 연행됐고, 청년좌파 회원인 김민 님도 함께 따라 들어가 사진을 찍다 연행됐습니다.

 

오후 4시 50분. 김준한 신부님께서 동화전마을로 저와 날토 님을 데려다 주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비오는 날에도 공사를 할 때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을로 들어와서 주민 분들과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김민 회원에게 면회를 갈 방법을 여기저기 수소문해 봤으나 면회에 가기엔 너무 늦은 시각이고 변호사 접견도 아직 하지 못한 상황이라 오늘은 면회에 가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이후 동화전마을 마을회관에 들러 마을 주민 분들께 간단한 인사를 드렸습니다. 마을 주민 분들은 농성장에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와서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0월 4일 / 연행당한 김민 회원 면회하고, 765kV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 4공구 공사 장비 적치장(금곡 헬기장) 앞 움막을 5일 새벽까지 지켰습니다.

 

김대환 대변인과 날토 회원은 밀양송전철탑반대대책위 상황실과 소통한 후 김해시 중부 경찰서에서 10월 3일 오전 단장면 미촌리 금곡 헬기장에서 연대 단위가 펜스를 넘어 헬기장으로 진입하자 함께 들어가 사진을 찍다 연행된 김민 회원을 면회했습니다. 쇠창살 너머로 나타난 김민 회원은 “시간이 너무 안 간다. 심심하다. 나가고 싶다.”, “카메라 배터리를 잃어버렸다.” “유치장에서 크레용팝 춤을 출 정도로 잘 지낸다.”고 말했습니다.

 

면회가 끝난 후 동화전마을에 잠시 들른 후 서울에서 출발하는 탈핵희망버스를 타고 5일 새벽에 도착 예정인 청년좌파 회원들과 초록농활대 대원들을 만나기 위해 금곡 헬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금곡 헬기장에 도착해서 헬기장 앞 움막을 지키고 있는 주민 분들과 활동가들을 만나 간단한 인사를 나눴습니다. 이치우 열사가 살던 보라마을의 이장인 이종숙 님을 만났는데, 이종숙 님은 이치우 열사가 분신하던 2012년 1월 16일 이후 매달 16일이 되면 이치우 열사가 생각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 주민 분들은 쉬러 집으로 돌아가셨고, 김대환 대변인과 날토 회원, 그리고 밀양에 연대 온 활동가 두 명이 남아서 금곡 헬기장 앞 움막을 지켰습니다. 연대 온 활동가들은 “오늘은 별 일 없었다.”고 이야기해 줬습니다. 이후 서울에서 내려오는 희망탈핵버스가 금곡 헬기장에 도착하기 전까지 활동가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체계가 잡혀 있지 않아서 소통이 잘 안 되는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 활동가 분도 있으셨고, “도로에 누워서 자동차의 통행을 방해하는 게 다른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는 게 아닐까?”라고 물어 오는 분도 있었습니다.

 

 

10월 5일 / 109번 공사 현장으로 진입을 시도했으나 실패했습니다. 김민 회원이 풀려났습니다. 84번 송전탑 공사 현장 근처 바드리마을 앞 천막 농성장을 보수하고 지켰습니다.

 

새벽1시. 금곡 헬기장으로 청년좌파 회원들과 초록농활대 대원들이 탈핵희망버스를 타고 내려왔습니다. 버스를 타고 곧장 109번 송전탑 공사 현장 근처인 모정마을회관으로 이동해야 했는데, 그렇게 되면 금곡 헬기장 앞 움막 농성장을 두 사람이 지켜야 하는 상황이 돼서 탈핵희망버스 담당자 님과 소통하여 금곡 헬기장 앞 움막 농성장을 지켜 주실 분들은 내리고 이동하게 됐습니다.

 

모정마을회관에 도착해서 청년좌파 회원, 초록농활대 대원, 밀양에 연대 온 사람들이 모여서 간단한 인사를 나눴고, 간단한 상황 브리핑을 진행했습니다. 이후 취침하였고 다음날 아침 7시에 기상 했습니다. 기상 후 모정마을 주민 분들이 제공해 주신 식사를 한 후 주민 분들로부터 109번 송전탑 공사 현장의 상황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한 주민 분은 “다리가 너무 아프다.”, “점점 송전탑 공사 현장에 안 온다는 사람이 많아진다.”, “농사일 해야 하는데, 농사일도 못한다.”, “철탑 들어오면 못 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09번 공사 현장 근처에서 투쟁하는 주민 분들은 “공사 현장 근처에서 비닐을 덮고 잔다.”, “들어가도 소용없다”, “다른 마을 소식은 잘 모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주민 분들은 먼저 109번 송전탑 공사 현장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청년좌파 회원들과 초록농활대 대원들도 차를 타고 109번 송전탑 공사 현장으로 갈 수 있는 산 입구로 이동했습니다. 차에서 내린 후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걸어서 공사 현장까지 40분 정도 걸린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산에 오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올라가는 길을 방패로 막고 있는 경찰들이 보였습니다. 경찰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해서 이유를 묻자 “미안하다.”라는 말만 할 뿐이었습니다. 잠시 후 경찰 무전으로 “긴장해라.”라는 말이 들려왔습니다. 이날 경찰들에 의해 막힌 곳에서 109번 공사 현장으로 진입을 시도했으나 경찰의 제지로 실패했습니다.

 

진입에 실패한 후 차를 타고 금곡 헬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이후 초록농활대 대원들은 밀양 송전탑 공사 강행을 규탄하는 발언을 했고, 준비해 온 공연을 주민 분들과 연대 단위에게 보여 줘 힘을 북돋아 드렸습니다. 연행당했다 풀려난 김민 동지도 합류해 힘들더라도 끝까지 함께 연대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이후 탈핵희망버스를 타고 온 청년좌파 회원들과 초록농활대 대원들은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남은 인원들은 동화전마을에서 제공해 준 차를 타고 84번 송전탑 공사 현장 근처 바드리마을 앞 천막 농성장으로 이동했습니다. 바드리마을 앞 천막 농성장은 원래 근처 언덕에서 지내다 겨우 올라와서 천막 농성장을 차린 곳입니다. 농성장에서 문정선 민주당 시의원을 만났습니다. 문정선 시의원은 “주민들이 많이 지쳐 있고, 신경이 날카롭다.”, “사람들이 지쳐 있어서 주민들이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나서서 도와야 한다.”, “경찰이 잘못할 때 지적하고 사진 찍는`게 중요하다.” “시간이 지나니까 몸이 힘들어서 머리를 못 쓰겠다.”, “한국전력이 사망 사고가 나도 공사는 재개되고, 사망사 고는 공사가 끝나고 나서 처리한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말씀해 주시는 등 진심이 담긴 조언과 좋은 정보를 전달해 주셨습니다. 이후 청년좌파 회원들은 마을 주민들과 함께 조금씩 쏟아지고 있는 비를 대비하기 위해 천막에 뚫려 있는 구멍들을 막는 작업을 했습니다. 당시 현장에는 테이프가 존재하지 않아서 파스와 밴드로 구멍을 막았습니다. 비 오는 날 밤 산에 있는 천막 아래에서 잠을 자는데, 정말 춥고 불편했습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하다 잠들었습니다.

 

 

10월 6일 / 84, 89 바드리마을 입구 앞 천막 농성장을 지켰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청년좌파 회원들은 언덕으로 올라오는 도로의 가드레일에 “밀양 송전탑 공사 즉각 중단하라”는 내용의 피켓을 도배하다시피 붙였습니다. 오전 7시 30분에 경찰이 교대를 시작했습니다. 산 위아래로 검정색 경찰복을 입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했습니다. 도로를 검정색으로 가득 채울 정도로 인원이 많았습니다.

 

바드리마을 입구 앞 천막 농성장에서는 경찰을 제외한 모든 자동차의 진입을 막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경찰차가 제외된 이유는 우리가 힘이 너무 약했기 때문입니다. 바드리마을과 84, 89번 공사 현장으로 방문하는 차를 막게 된 이유는 주민 차량에 한국전력 직원들의 식사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한국전력 직원들이 올라가서 공사하는 걸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꾸준히 올라오는 자동차들을 막아서고 “어디서 왔냐.”, “어디로 가냐.” 등을 물어보는 건 인권침해의 소지가 너무도 확실한 일이었습니다. 방문자들과의 싸움은 너무도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너무도 혼란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의심이 들게 만든 정부와 한국전력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방문자들이 송전탑 공사를 계획, 진행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 주민들을 미워하게 될까봐 걱정도 많이 들었습니다. 밀양은 사실상 전쟁 중이었습니다.

 

오전에 국가인권위원회 사람 7명이 와서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마을 주민 한 분은 “군인이 너무 많아서 위압감이 느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민 분들은 “우리가 화장실 가는데 경찰들이 계속 쫓아다녔다. 우리가 그 정도로 잘못했나?”, “경찰서장에게 주민이 항의하자 경찰서장이 웃었다.”, “한전보다 경찰이 더 밉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다녀가고 나서 이효수 밀양 부시장이 방문 했습니다. 부시장은 “주민들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왔다 간다.”고 말했습니다. 마을 주민 분들이 이야기를 하자고 하자 이를 부시장은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시청 직원들이 불법 채증을 시도하려 했는데, 겨우 제지했습니다. 문정선 민주당 시의원이 강하게 항의하자 시청 직원 중 한 사람은 “시의원이 그렇게 할 일이 없냐?”고 말했습니다.

 

낮에는 정의당 부대표를 포함한 사람들이 와서 공사 현장 진입을 시도하자 경찰이 “정당 활동 안 됩니다.”라고 거부했습니다.

 

그날 공사 현장으로 진입했던 어떤 기자가 한국전력 본부장이 현장에 있다고 스포티지 은색 차량에 타고 있을 거라고 주민 분께 귀띔해 줬습니다. 마을 주민 분은 어떻게든 한국전력 본부장을 막아 세우고 대화를 신청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부터 차를 막아서고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는 강도가 더 거세졌습니다. 방문자들과의 싸움도 더 거세졌고, 위에서 보고 있던 경찰이 내려와서 화를 내며 비키라고 우리들에게 명령했습니다. 나서서 항의하자 경찰은 몸으로 사람을 밀치는 폭력적인 행위를 했습니다. 이후 경찰들 식사를 실은 밥차들이 줄지어 올라왔습니다. 주민들과 함께 이 밥차를 막자 경찰들은 그래도 대원들 밥은 먹여야 하지 않겠냐며 인정에 호소했습니다. 어떤 주민 분은 “경찰이 자기 대원들 생각하는 것 반의반의 반만이라도 우리를 생각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씀하셔서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이날은 날토 회원님과 연대 온 활동가님의 생일이어서, 주민들과 함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농성장에 있는 양초에 불을 켜 바닥에 놓고 초코파이를 나눠 먹으며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습니다. “동지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비록 지금 우리들은 가진 것은 없어도 공사 중단 그날 끝까지 함께 투쟁할 수 있는 동지가 있다.”

 

 

10월 7일 / 동화전마을 이남이 할머님의 박근혜 정부에 대한 항의 메시지가 담긴 피켓을 함께 만들었습니다. 바드리마을 입구 앞 천막 농성장을 지켰고 태풍 다나스가 들이닥쳐 모두 마을로 피신했습니다.

 

아침 식사를 간단히 하고 도로 위에 깔판을 깔고 올라오는 차를 막기 위해 주민들과 함께 앉아 있었습니다. 경찰들이 대규모로 왔다 갔다 하는 건 이제 익숙하게 느껴졌습니다. 마을 주민 분 중 이남이 할머님이 박근혜 정부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고 하셔서 같이 온 활동가 슉슉 님이 말씀을 깔판에 받아 적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님, 주민 한 사람도 피해 주지 마라꼬 해 놓고, 765 송전탑을 세우면 우리가 몬 사니까 무조건 송전탑 세우지 마세요. 평생 모은 재산 다 물거품이 되니 할매들을 지켜주세요. 피해 주지 마라꼬 해 노코 송전탑 진행한다고 왜 말하노? 이상하데이.” 이남이 님은 “어린 시절부터 일하느라 공부를 못했다. 그래서 아쉽다. 남자 형제들은 모두 공부하고 잘 됐는데…”라고 말씀하셔서 마음이 많이 쓸쓸했습니다.

 

점심 이후 김민 회원이 서울로 올라가는 걸 배웅하고, 부산에서 오는 이문택 회원`님을 마중하기 위해서 금곡 헬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헬기장에서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성직자들이 밀양 송전탑 공사 중단을 촉구하고, 경찰의 폭력을 규탄하는 미사를 진행했습니다. 미사를 진행하던 신부는 천주교 성직자가 대치 중 폭행을 당해 계속 진정제를 먹고 있다고 알렸습니다. 미사 중간 중간 헬기가 자재를 싣고 오고 갔습니다. 헬기의 소리는 모든 것을 찢어 버릴 것처럼 시끄러웠고 그때마다 미사는 중단돼야 했습니다. 미사 중 참가자들은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눴는데, 그 인사말이 가슴 깊이 박혔습니다. “평화를 빕니다.”

 

미사가 끝나고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에서 제공해 준 차량을 타고 84, 89번 바드리마을 입구 천막 농성장으로 이동했습니다. 김민 회원은 서울로 가기 위해 밀양 시내로 떠났습니다. 3일 날 경찰에게 연행을 당해서 45시간 동안 유치장에 갇혀 있다가 나와서도 불편한 내색도 하지 않고 함께 활동한 김민 회원에게 제대로 된 식사 한 끼 대접하지 못한 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천막 농성장에 도착한 이후로는 계속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주민 분들이 올라가는 차량을 막기 위해서 경찰들 앞에서 연좌를 했는데 경찰들이 우르르 몰려와 주민 분들을 들고 천막 농성장 앞으로 옮겨버리는 일이 있기도 했습니다. 또, 대치 중 경찰에 의해 주민 두 명과 활동가 한 명이 고착당했다가 겨우 풀렸는데, 활동가 한 분이 폐쇄공포증이 있어서 엠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가게 된 일도 있었습니다. 어떤 자동차는 주민들과 활동가들이 올라가지 못한다고 길을 막자 차를 돌려 나가겠다고 잠시만 비켜달라고 한 뒤 그대로 올라갔습니다. 이를 본 주민 한 분은 “내일부터 전쟁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0월 8일 / 천막 농성장에 밀양시청에서 보내는 호소문이 도착해 주민 분들이 분노했습니다. 태풍을 뚫고 서울에서 밀양으로 온 청년좌파 회원들과 초록농활대 대원들을 만났습니다.

 

아침부터 시청 공무원 두 사람이 현장으로 올라가는 걸 제지했습니다. 주민 한 분이 태풍이 오늘 온다고 걱정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비가 꽤 내려서 우산을 쓰고 있어야 도로 위에 서 있었는데, 주민 분들이 비 맞으며 하루 종일 서 있는 경찰들이 불쌍하다고 비닐을 크게 잘라서 경찰들 위에 걸어 주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때 방문 온 밀양시 경찰서장이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며 비닐을 거는 것을 제지하자 주민 한 분은 “개같이 비 맞고 있는 경찰들이 불쌍하다.”고 항의했습니다.

 

잠시 후 밀양시청 공무원들이 밀양시장의 호소문을 주민들에게 전달하고 갔습니다. 호소문은 “양보해라.”, “밀양이 이념 투쟁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다.”, “외부 세력이 무엇을 원하는 건지 냉정하게 판단해 봐라 그들은 문제가 끝나면 떠난다.”, “주민들의 안전과 인권 외치는 외부 세력들이 무덤구덩이와 목줄, 휘발유 병을 준비한 게 말이나 되냐?”, “송전선로 지나간다고 모든 것이 다 무너지는 건 아니다”, “더 열심히 살아서 고통을 만회해라.” 등의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굉장히 분노했습니다.

 

경찰서장이 가고 주민 한 분은 “안 되겠다.”며 경찰들 머리 위로 비닐을 쳐 줬습니다. 경찰들도 자신들을 도우려는 의도라는 걸 파악했는지 작업을 함께했습니다. 경찰들은 고맙다는 말을 건넸습니다. 잠시 후 경찰들은 음료수 두 박스를 들고 왔습니다. 답례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음료수를 든 경찰 뒤에 있는 경찰이 동영상으로 그 장면을 촬영하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또 경찰은 기자에게 사진 한 장만 찍어 달라고 말했습니다. 주민 분들은 낌새가 이상하다며 음료수를 경찰들에게 돌려줬습니다.

 

태풍이 온다는 소식에 함께 다니는 활동가들과 회의를 했고, 밀양시내로 들어가서 재정비하는 시간을 갖고 동화전마을로 돌아와서 서울에서 2차로 오는 청년좌파 회원들과 초록농활대 대원들을 맞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마을로 돌아왔더니 농성장에 남아있던 활동가는 태풍이 너무 심해서 천막 농성장을 내버려 두고 마을 주민 분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내려 왔다는 소식을 전해 줬습니다.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가 심하게 오면 공사를 중단할 테니까요. 126번에서는 주민 분들이 못 간다고 말씀하시며 비닐을 덮은 채로 누워계신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습니다. 다행히도 반대대책위 사람들이 가서 설득해서 주민 분들은 내려오셨습니다.

 

동화전마을회관 2층에서 상황을 점검하고 있는데 반대대책위의 김보삼 님이 오셔서 잠시 대화를 나눴습니다. 김보삼 님은 상황실에 사람이 없었는데 덕분에 구할 수 있게 됐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해 주셨습니다. 전에 김보삼 님께서 상황실에 사람이 없다고 하셔서 sns로 광고를 해보겠다고 답변을 드린 후 지인에게 전화로 1시간 간격으로 상황실에 사람을 구한다는 구인 광고를 올려달라고 부탁한 게 효과가 있었습니다. 반대대책위 상황실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어 기뻤습니다.

 

김보삼 님이 상황실로 돌아간 후 청년좌파 회원들과 초록농활대 대원들이 내려왔습니다. 거센 태풍을 뚫고 밀양에 연대하기 위해 온 회원들과 대원들이 참 자랑스러웠습니다. 간략한 현장 상황을 공유하고 숙소를 분리한 후 곧장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10월 9일 / 95, 96번 송전탑 공사 현장 근처 움막으로 지지 방문 갔습니다.

 

토닥토닥 밥차에서 제공해 준 밥을 먹고 단위별로 나뉘어서 각각 바드리마을 입구 천막 농성장, 평리 입구, 동화전마을 뒤에 있는 95, 96번 송전탑 공사 현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올라가는 길은 매우 가팔랐습니다. 주민 분들은 많은 나이 든 몸으로 매일매일 이 산을 타고 올라 움막으로 가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조심조심 천천히 올라가니 경찰들이 보였습니다. 경찰들 맞은편에 황토 벽돌로 지어진 움막이 있었는데, 주민 분들은 거기서 지낸다고 하십니다. 움막 뒤에는 무덤구덩이와 목줄이 보였습니다. 마음이 싸늘해졌습니다.

 

움막이 있는 곳은 96번 공사부지였습니다. 산 위로 95번 공사 현장이 얼핏 보였습니다. 공사 부지에 돗자리를 펴고 주민 분들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한 주민 분은 8일 태풍이 들이쳤을 때 자기도 어떻게 내려갔는지 모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거센 비, 바람을 맞으며 가파른 산길을 내려가는 할머니의 모습을 상상하니 아찔했습니다. 주민 분들은 카메라를 찍어 줄 사람, 아침마다 식사를 들고 산으로 올라갈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마을에 농성장에 나가 있는 주민들이 많아서 대낮에 트럭을 대놓고 농작물을 훔쳐 가는 도둑들이 있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주민 분들과 함께 식사 중 한 할머니가 음식을 조금 집어서 공사 현장 쪽으로 “고시레이, 한전놈들 물러가라.”라고 말씀하시면서 던졌습니다. “고시례.”는 근처의 잡귀들에게 먹고 물러가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이후 주민 분들을 위해 안마를 해드렸고 장기자랑도 열어서 보여드렸습니다. 함께 꽃을 꺾어 팔찌와 반지를 만들어 보기도 했습니다. 당일 청년좌파 회원들과 초록농활대 대원들은 오후 12시에 서울로 올라가야 해서 아쉬운 마음에, 커다란 천에 “송전탑 대신 들국화를!”이라는 내용이 담긴 피켓을 색칠 도구로 꾸며서 농성장 근처에 걸어 놨습니다. 다시 오겠다는 말씀을 전하며 동화전마을을 향해서 이동했습니다.

 

청년좌파 회원들과 초록농활대 대원들이 서울로 출발했습니다. 2일 저녁부터 늘 함께였던 날토 회원이 올라간다는 소식을 듣고선 그와 함께 싸워 왔던 8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습니다. 너무도 부족한 저에게 큰 힘이 됐던 그에게 진심이 담긴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회원들이 서울로 올라가고 2시간 정도 지나서 청년좌파에서 기획한 일이 시작됐습니다. 청년좌파 대표와 집행위원장과 회원들을 포함한 5명이 한국전력 서울지역본부 처마 위를 점거하고 밀양 송전탑 공사 즉각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제 마음 속에는 알 수 없는 통쾌함이 일었습니다. 늘 정부와 한국전력 그리고 공권력에 얻어맞기만 했던 우리가 그들의 주요한 건물의 일부를 점거하고 송전탑 공사 즉각 중단을 외쳤다는 건 큰 의미가 있는 일이었습니다. 1시간 후 처마 밑에서 함께 시위를 하던 청년좌파 회원들을 포함한 10명의 사람들이 연행됐습니다. 이후 처마 위에 올라간 5명의 사람들도 경찰에 의해서 지상에 설치된 에어매트 위로 던져진 후 연행됐습니다. 그들이 너무도 자랑스러웠지만 끌려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싸늘하게 아파 와서 서글펐습니다.

 

저녁에 상황실에 사람이 필요하다는 김보삼 님의 말씀을 듣고 밀양에 남아서 연대하기로 결심한 고우정 님과 함께 상황실로 이동했습니다.

 

 

10월 10일 / 11일 밀양 상황실에서 일하고,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10일. 밀양 상황실은 아침부터 급박하게 돌아갔습니다. 전화가 쉴 새 없이 걸려 왔고 인원은 너무도 적었습니다. 상황실에서 일을 가르쳐 주신 곽빛나 님은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새벽까지 계속 일만 하셨습니다. 이계삼 님, 김준한 님도 바쁘신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여기저기서 전해져 오는 상황을 정리해서 올리고 잘못 보도된 신문 기사를 일일이 정정 요청하다 보니 하루가 금방 갔습니다. 함께 온 고우정 님께서 일을 적극적으로 훌륭히 잘해 주셔서 너무도 다행이었습니다.

 

11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서울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10일 동안의 긴 활동이 끝났습니다. 좌석에 앉아 흘러가는 풍경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어느 날 밀양시에 송전탑을 지어 올리겠다는 이유로 침공이 시작됐습니다. 아무런 소통도 없이 힘 있는 사람들은 공사를 강행했고 송전철탑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온몸을 던져가며 공격을 막아냈습니다. 힘 있는 사람들이 논바닥에 노인들을 패대기 쳐버린 것이 너무도 고통스럽고 화가 나서 자신의 몸에 불을 질러 돌아가신 분도 있었습니다.

 

전기를 서울, 수도권, 대도시로 보내기 위해서 양보하라는 그들의 말은 너무도 잔인했습니다. 밀양 송전탑 공사가 밀양 지역에만 국한된 문제라고 “나는 상관없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밀양 송전탑 공사 반대는 지역이기주의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밀양 송전탑 반대는 지역이기주의가 아닙니다. 송전탑 공사를 강행하자고 말하는 사람들, 밀양 주민들을 짓밟고 세워진 송전탑을 타고 오는 전기를 사용하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진정 이기주의입니다. 서울, 수도권, 대도시에서 이를 거부하는 움직임이 일어나야만 합니다. 더는 다른 사람을 짓밟고 세워진 송전탑을 타고 오는 전기를 쓰지 않겠다고 거부해야만 합니다. 이것은 그들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들의 문제입니다. 밀양 송전탑 문제에 대해 대도시 시민들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우리의 삶의 방향이 정해질 것입니다.

 

김민밀양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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