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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만필

우백당의 식구들 – 1. 닭과 오리

- 김융희

진즉부터 우리 집에도 가축을 몇 종류 길렀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으나, 마음뿐 실천을 못해 늘 아쉬운 마음이었다. 나처럼 산골짝 외딴 곳에 살면서 집을 자주 비우는 사람에게는 가축을 기르기가 쉽지를 않다. 한 식구가 된 그들에게 끼니를 제대로 챙겨 줄 수가 없는 것이다. 가축은 여건에 따라 자유롭게 풀어서 방목할 수가 없어, 가두어 길러야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챙기거나, 관리 조절하는 능력이 없는 그들이다. 그렇다고 마냥 굶길 수도 없다. 또 다른 이유도 있을 수 있으나 우리 집 사정으로는 무엇보다 식솔 관리가 절대적 불가 조건이었다.

이런 사정이 있음에도, 나는 늘 가축을 식구로서 맞아들이고 싶었다. 너무도 순수하며 정적인 식물들만을 가까이서 마냥 정성을 쏟기 보담, 생동하며 늘 곁에서 직접 교감하는 동물들과 어울렸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아내의 집요한 반대로 어쩔 수 없이 한동안을 지내 왔었다. 다만 집안의 보안을 위해 집 지킴이로 없어선 안 될 개들만이 진즉부터 함께해 왔다. 개들 넷이서 사방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집 동물 이야기라면 당연히 개들의 이야기가 먼저이어야겠지만, 오늘은 우리 집 닭과 오리들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야겠다. 

진즉부터 가까이서 꾸준히 지켜 보아 온, 그래서 그만큼 잘 알기 때문에 기르고 싶었던 가축이 닭이며 오리였다. 또 손쉽게 식탁에 올릴 수 있음도 이유이다. 그 닭과 오리가 우리 집 식구가 된 것은 벌써 일 년이 넘었다. 물론 그들과 함께하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맨 먼저 함께인 것은 토종 병아리였다. 시골 시장엘 갔더니 닭장수가 개 몇 마리와 함께 닭과 병아리를 팔고 있었다. 그토록 내가 기르고 싶었던, 시골에서 “토종닭이나 좀 길러보라”는 주위 사람들의 끈질긴 주문들, 여러 생각들로 나는 어언 닭장수 곁에 다가서 있었다.

병아리를 살려고 하는 나에게, 어린 병아리는 기르기가 까다로워 실패하기 쉽다며 닭장수는 결코 중닭을 권했다.

나는 큰 병아리(중탉) 열 쌍을 샀다. 큰 병아리가 값은 꽤 비쌌지만(가게에서 살 수 있는 거의 큰 닭 값이었다) 키우는 재미와, 늘 권했던 주위 사람들 생각에 잔뜩 부푼 마음이었다. 닭장이 준비 될 때까지 우선 비닐하우스에서 기를 생각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하우스의 닭들이 모두 죽어 있었다. 우리 집 사냥꾼 건우의 짓이었다. 건우는 사냥 교육을 받아 우리 집에 불이익이 되는 외부 침입자는 사람까지도 그냥 지나치질 않는 놈이다. 밤에는 인근을 순찰하면서 집과 밭 지킴이 노릇까지 빈틈이 없는 놈으로, 내가 그것을 미처 못 헤아린 것이 큰 실수였다. 건우가 순찰 중 전에 없던 놈들을 발견해 비닐을 뚫고 들어가 모두를 도륙시켜버린 것이다. 자기 임무에 충실한 건우를 나무랄 수는 없다. 이는 절대로 내 탓이었다. 이처럼 부푼 꿈은 하룻밤 사이에 허무하게 끝났다. 한사코 말려 왔었고, 이를 쭉 지켜보아 온 아내만이 더욱 의기양양해졌고, 나는 한동안을 또 기다려야만 했다.

다시 기회가 되어, 이번엔 오리 두 쌍을 맞아들였다. 가끔 찾아와 개울에서 놀기를 좋아한 손자놈들이 오리 얘기를 꺼낸 것이 성사를 이룬 것이다. 두 번 다시는 실패를 안 해야 한다. 먼저 완전한 축사를 마련했다. 건우에게 신고하여 우리 식구임을 알리면서 조심스럽게 지켜도 봤다. 성공이었다. 일부러 오리를 건우 곁에서 놀게 했지만 전혀 관심 없다는 표정이다.

오리는 아주 탐스럽고 씩씩하게 잘 자랐으며, 가끔 찾아온 손주들의 좋은 친구가 되었다.

손님들이 찾아오면 대뚱거림으로 제법 반길 줄도 안다. 이를 지켜보면서 또 ‘닭도 키우자’는 집착이 자꾸만 충동질이다. 결국 세 쌍의 닭이 우백당 식구로 합류했다. 토종닭 한 쌍, 오골계 한 쌍, 육계가 한 쌍이었다.

축사는 오리와 닭이 함께 살도록 했다. 그들이 그런대로 어울려 지내며 씩씩하게 잘 자랐다.

직접 기르는 경험은 처음이다. 가까이서 그들을 지켜본 것이 생소하면서도 여간 흥미로웠다. 오리는 넷이서 완전 짝꿍이 되어 사이가 아주 좋았다. 특히 리더가 있어 질서를 지키며 생활도 일사불란했다. 리더의 권위도 대단한 것 같다. 그에 비해 닭들은 동족도 리더도 우애도 없다. 오리들의 사이 좋게 어울림에 비해, 닭들은 항상 자기들끼리 맞서 싸우며 지낸다. 완전히 개인주의 사회였다. 닭은 리더도 없이 개인 본위의 끊임없는 분쟁이었다.

으레 그러려니 했던 생각이 차차 흥미롭게 지켜보게 되며 이제는 아니란 생각으로 지켜보기마저 딱하다. 그들이 점점 자라면서 암수가 분명해진다. 오리는 암컷 하나에 수놈이 세 마리였다. 그 동안 사고로 둘이 죽어서 네 마리가 된 닭도 암놈 하나에 수컷이 셋이다. 우연이지만 똑같은 가족 조건이었다. 자라면서 그들, 닭도 오리도 개성이 더욱 뚜렷해진다. 이제는 집단끼리의 분쟁도 있다. 완전히 크면서 몸체는 닭이 더 크다. 그런데 늘 오리에게 쫓긴다. 단체 분쟁도 개인 싸움도 닭들은 쫓기기에 정신이 없다. 매번 마찬가지이다.

이상했다. 등치도 크고 뾰족한 발톱까지 소유한 닭이 부리도 둥글고 발톱 같은 공격용 체격도 갖추지 않는 오리에게 정신 없이 쫓기며 학대를 당하는 꼴이 이상하고 가소롭다. 이제는 각각 나눠 준 모이도 밥그릇까지 빼앗는다. 특히 암탉 한 마리, 그는 오리에게도 쫓기지만, 동족인 닭들도 편애 학대가 심하다. 오계인 암탉은 지나친 편애로 성장도 못하여 애처로워 보여 불쌍하다. 동족 수탉들이 더욱 모이를 빼앗는 착취까지 일삼는다. 그에 비해 오리는 수컷 세 마리 모두가 힘을 합해 암컷을 돕고 있다. 모이를 줘도 리더의 비호 아래 암컷이 먼저 차지한다.

어느 놈의 짓인지는 모르겠으나 결국 암탉은 다리에 심한 상처를 입고 잘 움직이질 못한다. 안 그래도 약했던 체구에 거동까지 자유스럽지 못해 살지 못할 것 같아 없애버렸다. 가을 들어 오리들의 닭에 대한 횡포가 더욱 심해진다. 행여 수적으로 우세해서 일까도 싶고, 겨울이 다가오면서 사료도 아낄 겸 해서 오리 한 마리를 없앴다. 이제는 오리와 닭이 동수인 것이다. 그런데도 닭에 대한 오리의 횡포는 여전하다. 내가 그리 봐선지, 닭들은 여전하지만, 세 마리 오리들의 폐기가 줄어 우울해 보인다. 이외의 변화에는 토종 수탉이 오리들과 전혀 동거를 하지 않고 완강히 피하기만 한다. 마치 고집 센 사람의 반항처럼 느껴진다.

나는 닭과 오리를 처음 길러본 것이다. 그들의 습성을 전혀 모른다. 그들에 관한 책을 읽거나 경험자의 말을 듣는 기회도 없었다. 한 식구가 되어 매일 접하며 보고 느낀 것들일 뿐, 지식도 정보도 전혀 없다. 어쩌다 우리 집에서만 벌어진 일인지도 몰겠다. 비슷한 짐승의 짓들이 너무도 대조적이다 보니 나는 참으로 의아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우백당 식구들”이란 주제로 우리 집 동물들의 경험담을 몇 차례 적어보려 한다.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도 억울하게 살면서 스스로 불행해지는 닭들의 행태도 느낀 바 퍽 시사적이었기 때문이다.

오리의 리더 백조는 나에게 늘 도전한다. 접근하면 닭을 쫓듯 대뚱걸음으로 보란 듯 나를 향해 공격해 오곤 한다. 내가 쫓는 척하면 귀엽게도 달겨든 척하기까지 한다. 물론 건우는 가소롭다며 모른 척이지만, 어쩔 때는 지나는 건우에게도 오리는 도전한다. 행여 화가 나면 물어버릴까 걱정도 된다. 제 분수를 알아야지 어쩌자고 오리는 저처럼 기고만장일꼬? 분수 모르며 주책 떠는 저 오리 같은 인간 족속도 많다는 것으로, 오늘의 이야기를 끝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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