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YN 청년 활동가 인터뷰

[BIYN 청년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 자립음악생산조합 장성건

- 주온(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경제성장률은 바닥을 향하고 불황의 기운이 만연한 가운데, 활발히 치솟는 수치들은 다음과 같다. 고시 응시율, 대기업 입사 경쟁률, 청년 실업률, 청년 부채율. 주거비를 비롯한 생활비는 나날이 오르는데, 제대로 된 사회 안전망은 미비하고 계층 상승도 기대하기 어렵다. 현 세대의 불안은 윗세대의 욕망을 뛰어넘는 동력이 되어 청년들로 하여금 안정적인 생활 기반 선점을 위한 무한 경쟁에 매달리게 한다.

청년 세대의 삶의 조건 자체가 불안한 이때, 삶을 더 불안하게 만들 것만 같은 ‘활동’이니 ‘운동’이니 하는 길을 택한 이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이들은 행복한가? 아니 그보다 일단 힘들지 않은가? 왜 시작했으며 왜 계속하는가? 이들이 탐색하는 세계의 진실은 무엇이며, 이들이 일구어가는 활동의 질량은 세계의 관성에 맞서 달리는 열차의 속력과 방향을 어디로 어떻게 움직이고 있을까?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Basic Income Youth Network, 이하 BIYN)의 <2013 청년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는 각 분야의 청년 활동가들을 만나 지난 활동과 전망을 나누고, 기본소득과 교차점을 살펴본 기록이다. BIYN은 각 인터뷰이들이 걸어온 길의 가치를 믿고 이들의 서사와 메시지가 동시대의 친구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며 이 인터뷰를 기획했다. 또한 이 인터뷰가 늘 활동으로만 설명되어왔던 이들의 고유한 얼굴을 좀 더 자세히 그려내고, 더 나아가 곳곳에 흩어져 있는 활동들을 잇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유튜브에서 ‘밤섬해적단(Bamseom Pirates)’을 검색해보면 2인조 밴드의 공연 영상이 뜬다. 베이스를 연주하면서 마이크를 먹을 것처럼 노래하는(소리 지르는?) 자가 바로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인 장성건이다. 자립음악생산조합이라는 곳에서 운영위원을 겸하고 있다. 또한 그에게는 무대 위 모습과는 다소 괴리가 있는 직업이 있는데, 바로 ‘생협 일꾼’이다. 한국 인디음악 신 위키백과인 크르르르 ‘장성건’ 페이지(http://krrr.kr/wiki/index.php/%EC%9E%A5%EC%84%B1%EA%B1%B4)에 따르면 2011년 5월 2일, 홍대 앞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곳에 취업함으로써 “생활협동조합의 앞잡이가 되었다”는 서술이 나오는데, 그곳을 그만두고 난 뒤 현재는 비영리 생활협동조합 한살림에서 ‘앞잡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와 협동조합 운동은 어떤 관계인지 들어보고자 일요일 아침 이화여자대학교 인근의 카페 체화당에서 그를 만났다. 인디 뮤지션이라면 아마도 토요일 저녁 홍대 근처에서 술을 마셨을 테니, 이른 아침 인터뷰 약속은 펑크 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을 했지만 제 시간에 나타난 그는 매일 아침 다섯 시 반에 눈을 번쩍 뜨고 출근한다는 믿기지 않는 얘기를 했다. 물론 전날 홍대 근처에서 술은 마셨다고 한다.

 

sg1

BIYN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장성건 : 저는 장성건이고요. 자립음악생산조합에서 작년까지 총무를 하다가 지금은 운영위원을 하고 있어요. 한살림 성남·용인에서 공급팀 막내로 일하고 있습니다. (2013년 7월 인터뷰 진행 당시)

 

 

음악 향유자들의 자립을 위한 공동체

 

BIYN : 자립음악생산조합은 어떤 단체인가요?

 

장성건 : 자립음악생산조합은 음악가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만든 협동조합이에요. 조합원을 모으고 공연 기획을 하고 소규모 음반 발매를 지원해왔습니다.

 

BIYN : 자립음악생산조합에는 어떤 사람들이 모여 있나요?

 

장성건 : 음악을 자립적으로 계속 하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처음에는 한받(인디 뮤지션) 씨가 제창해서 사람들이 모였어요. 한받 씨는 시인에 가깝다고 할까요.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고 이것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하자는 식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원대한 이상을 품고 굉장히 많은 얘기를 해요. 그중에서는 ‘팔도 자립음악가 연합’을 만들자는 이야기도 있었고요.

대다수 사람들이 현실적인 문구보다는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문구에 더 빨리 반응을 빨리 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예를 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연설하는 것을 보면 신자유주의 같은 얘기는 안 하고 ‘정권을 심판할 때가 됐습니다. 1987년의 물결이 이어져서 민주화의 열망, 힘을 보여줄 때가 됐습니다.’ 이런 식으로 뭉뚱그려서 말하잖아요. 한받 씨가 그런 경향이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긴 했는데 그 목적은 잘 알 수가 없죠. (웃음)

 

BIYN : ‘자립 음악가’들이 1년에 한 번 크게 개최하는 페스티벌로 알려져 있는 ’51+(플러스)’는 어떻게 시작됐나요?

 

장성건 : 두리반이라는 철거 농성장이 있었잖아요. 칼국수집이었는데, 재개발 문제로 농성을 시작했고요. 마침 (음악가들이 주로 활동하는) 홍대 근처이기도 하고 그들이 철거민의 처지에 공감해서 이 공간에서 공연을 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어요. 철거를 막으려면 일단 사람들이 많이 모여야 하기 때문에 매주 공연이 필요하기도 했고요. 그러려면 공간과 장비, 기획자가 있어야 해요. 공간은 두리반을 쓰면 되고, 장비는 누가 가져온 것들을 이용하고, 매주 모여서 기획도 함께 했어요. 그때 이미 공동으로 운영하고 소유하는 협동조합적인 냄새가 났던 것이죠. 거기 모인 음악가들은 선후배 관계 같은 것도 싫어하는 사람들이었고요.

사실 51+가 자립음악생산조합보다 먼저 탄생했어요. 딱 누구라고 특정하기 어려운 여러 공연 기획자들이 어느 날 모였고, 한받 씨가 ’51개의 밴드를 불러서 개판을 치자’고 했어요.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하니까 되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서 그치지 말고 계속 이어가자며 주최한 사람들을 가칭으로 ‘자립음악생산자모임’이라 불렀어요. 지금은 약간 변형을 거쳐 자립음악생산조합이 되었지만, 이름은 잘 지었다고 생각해요.

 

BIYN : 원래 사업자로 정식 등록된 협동조합은 아니었잖아요. 그런데 최근 등록을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장성건 : 2012년 말, 협동조합법이 발효된 당시에 관인 협동조합으로 등록할지 한 번 검토를 했어요. 그런데 허가 받아야 할 게 너무 많고 세금도 내야 해서 안 하는 게 낫겠다 싶었죠. 그런데 지금 다시 추진하려는 이유는 조합원이 200명 정도로 규모가 좀 커지기도 했고,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있었던 이 바닥의 어떤 조류 때문이기도 해요.

2011년에 두리반이라는 자율 운영 공간이 없어지고, 그 맛을 본 사람들이 각지로 흩어져서 몇 개의 공간을 만들었어요. 그 맥락 안에 있는 공간이 문래동의 로라이즈, 이태원의 꽃땅, 석관동 한국예술종합학교의 대공분실이었어요. 각각 사정은 다르고 망했다고 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지만, 이 세 곳이 2012년 말부터 한꺼번에 없어졌어요. 우리가 자유롭게 쓸 수 있던 공간이 갑자기 다 없어져버리니 공간이 절실하게 된 거죠.

인디 음악 사업은 특히 공간 사업이 중심이 되어야 해요. 음악 공연은 기본적으로 무대 위 퍼포먼스니까 공간이 필요하고, 노래를 만들어도 집에서는 제대로 못 만들잖아요. 하다못해 회의를 할 때도 공간이 필요하니까요. 독자적인 공간을 만들려면 보증금, 월세, 사업자 명의가 필요해요. 그래서 명의를 협동조합으로 하고, 보증금은 출자금으로 하고, 월세는 조합비로 충당해서 공간을 만들자는 구상이에요.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BIYN : 교육 사업은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나요?

 

장성건 : ‘왜 협동조합을 해야 하는가’ 또는 ‘왜 협동을 해야 하는가’와 같은 물음들이 해소되지 않으면 조합원들이 직접 운영하는 구조일지라도 일반 기업과 다를 게 없어진다는 우려가 있었어요. 그래서 교육을 하기로 했는데, 막상 협동조합에 대한 교육보다는 음악과 관련된 교육에 사람들이 더 많이 오더라고요. 어쨌든 이런 교육들을, 음악가뿐 아니라 음악 향유자들이 음악으로 자립할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하자는 취지로 ‘자립의 기적’이라고 이름 붙였어요. 자립할 수 있는 기적을 낳는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처음 ‘자립의 기적’을 할 때 이런 에피소드가 있어요. 하승우 선생님(<민주주의에 反하다> 저자, 한양대학교 제3섹터연구소 연구교수)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서 ‘자립에 협동이 필요한 이유’라는 주제로 특강을 부탁드렸었는데, 그 강의를 맡은 관리자도 안 오고 저만 왔어요. 음, 그때 30분이 지나도록 기다렸는데 아무도 안 왔네요. (웃음) 음악 하는 애들이 다 ‘그지 깽깽이’들이라서 그런가 봐요. 철제 책상 안에다 마이크 쾅쾅 두드리는 홍철기 노이즈 특강 때는 15명이나 왔는데….

 

sg3

 

 

“협동조합? 좋은 거라고?”

 

BIYN : 협동조합에 특별하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장성건 : 저는 처음에 사회를 바꾸고 싶다는 열정 비슷한 것을 품고 대학교에 들어갔어요. 1학년 때는 운동권 조직에서 시키는 거 다 하다가, 2학년 때는 대충 하거나 안 하고 혼자 놀러 다니고, 중간에 아나키즘에도 관심을 가졌다가 군대에 갔어요. 군대에서는 사람들이 머리가 썩는 느낌이 드니까 이해도 못할 거면서 어려운 책을 괜히 많이 읽어요. 그때 마르크스는 대놓고 못 읽었고, 읽었던 것이 하버마스? 지금 봐도 모를 거예요. 칸트? 하나도 몰라요.

대부분은 게워내고 그 와중에 소화가 된 게 있다면 가라타니 고진의 <트랜스크리틱>이었어요. 이 책에 왜 꽂혔냐면, 다른 책들은 다 ‘뭐뭐해서 뭐뭐다.’, ‘그러므로 이러하다.’, ‘이런 논증으로 귀결됐다.’ 이래요. 이러면 저는 ‘뭐 어쩌라고’ 싶거든요. 그런데 가라타니 고진은 답을 확실하게 주는 편이었던 것 같아요. 책 말미에 “협동조합 해라” 이런 게 나오는데, 보다가 뭔가 확실한 결론이 나오는 책이 처음이었으니까 인상 깊었죠.

그때 잘 이해도 못했으면서 “협동조합? 좋은 거라고?”하면서 학교로 돌아와서 보니까 여기에도 협동조합이 있는 거예요. 대학생협이죠. 그전까지는 있는 줄도 몰랐어요. 대학에서 파는 물건이 세븐일레븐보다 싸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당연히 학교의 지원금을 받아서 싼 건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대학과 대학생협은 완전 별개의 조직이더라고요.

만약 생협 대신에 세븐일레븐이 들어와 있으면, 우리가 뭔가를 사줄 때 생기는 잉여금이 우리와 상관없는 세븐일레븐 본사의 주주들에게 가게 되는데, 대학생협에서 사면 다시 우리에게 이익이 환원되는 거예요. 이 발상이 너무 맘에 들어서 ‘아 어떻게 세상에 이런 게 있지?’ 했죠.

당시(2009년) 학교로 돌아왔을 때 그나마 남아 있던 학내 주사파 세력도 완전히 와해돼서 자기들끼리 싸우고, 비운동권 세력이 프랭클린 다이어리나 128메가 USB 나눠줘서 당선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대학생협은 이런 흐름이랑 전혀 상관없이 너무 잘 운영되는 게 신기했던 거죠. 1980년대부터 생긴 학내 정치조직들은 완전 망해버리고 대학생협은 사업체처럼 엄청 커진 걸 보면서 이게 경제운동의 힘이구나 하는 걸 느꼈죠.

그런데 대학생협도 딜레마가 있었어요. 대학생협이니까 학생들이 주체가 돼서 운영해야 하는데 전혀 아니거든요. 처음에 만들었던 사람들이 아직도 그 자리에 있어요. 학부 다니면서 생협을 만들어서 직원이 된 건데, 자기 평생 일자리를 자기가 스스로 창출한 거죠. (웃음)

 

 

노동보다 중요한 ‘생활’이라는 가치

 

BIYN : 살면서 중요한 가치는 무엇이고, 지금의 이런 일들을 한다는 게 본인한테 어떤 의미를 주나요? ‘시인처럼’ 말해주세요. (웃음)

 

장성건 : 지하철 스크린도어처럼요? (웃음)

20대 초반에는 내가 되게 전투적이고 급진적인 줄 알았는데 몇 년 더 살아보니까 아니더라고요. 내가 중요시하는 건 ‘생활’인 것 같아요. 내가 원하는 시간에 쉴 수 있고 내가 원하는 시간에 음악하고 놀 수 있고, 생활을 빼앗기지 않는 것. 어떻게 보면 되게 보수적인 건데 나는 그게 모든 사람에게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인터뷰하는 것처럼 노동인지 생활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것도 있지만, 사실 우리가 하는 일은 대부분 노동 아니면 생활인데요. 저는 노동보다 중요한 게 생활이라고 생각해요. 노동도 결국 생활을 위해 있는 거고요. 노동과 생활은 완전히 분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노동이 신성하다는 말이 이해가 안 가요. 노동이 어떻게 신성할 수 있지? 신성한 게 이렇게 하기 싫은 건가? 난 노동이 너무 싫어요. ‘왜냐면’이 뭐예요. 노동인데 어떻게 좋아요. 한국 사회가 워낙 노동 과잉 사회이라서 사람들이 이런 생각 자체를 이해 못하는 것 같은데요. 우리가 일하려고 태어났나? 놀려고 태어났지.

노동자로서 왜 자부심을 가져야 하는지는 알겠어요. 나는 일함으로써 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거죠. 내가 노동자A인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해서 혁명 주체가 되고 노동자 세상이 왔어요. 그럼 뭐해요. 혁명하느라 과로사로 죽을 텐데.

 

BIYN : 활동해오면서 힘들었던 점이나 한계라고 느꼈던 것들은 무엇인가요?

 

장성건 : 요즘 들어 자주 드는 생각은 음악가들이 협동조합 한다는 게 본질적으로 힘들구나 하는 거예요. 협동조합은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인데, 음악가들은 민주도 싫어하고 사업도 싫어해요. 자기만 알고 게을러 빠졌다는 얘기인데, 시간도 잘 안 지키려고 그러고요. 물론 자기만 안다는 것은 음악가로서 갖춰야 하는 소양이기도 해요. 미적으로 프라이드가 있어야 자기 작업에 자부심을 갖고 좋은 작업을 할 수 있으니까요.

음악가가 협동조합을 만든다는 것을 작은 지점부터 다시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이에요. 음악가를 지원하는 요람 정도로 생각해야겠어요. 애초에 너무 원대하게 생각하다가 점점 현실적인 것만 바라보게 되는데요, 그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당연히 필요하다고는 생각해요. 나 자신부터 공연할 공간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한살림에서는 그냥 일이 힘들죠. 배달하는 일이니까. 노동은 생활을 위해 존재하는 거니까 어쩔 수 없어요

 

sg5

 

BIYN : 기본소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장성건 : 저야말로 기본소득이 굉장히 필요한 사람이에요. 왜냐면 저는 최소한의 노동만 할 거거든요. 그러면 좀 더 행복하게 살 것 같아요.

저는 음악의 경우는 노동이라고 보지 않아요. 51+ 첫 번째 캐치프레이즈가 ‘음악가도 노동자다’였는데 말이 안 되는 얘기죠. 왜냐면 특히 임노동자 같은 경우는 고용주가 있고 노동자가 노동을 해서 임금을 받는 형식인데 음악가는 음악이 좋아서 하는 거잖아요. 음악으로 돈 버는 경우는 저랑 관련 없는 얘기라고 봐요. 프로듀서나 세션맨 같은 사람들은 노동자로 봐야 되는데, 자기가 좋아서 음악을 만들어서 올리고 해외에 보내는 사람들을 음악 노동자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나 싶어요. 의견이 좀 분분하죠.

단편선(그의 동료 뮤지션 회기동단편선을 말한다.-편집자)만 해도 음악가를 노동자라고 보고, 전업 예술가를 하고 싶어 하니까 저랑은 굉장히 다르죠. 그런데 단편선은 자기 ‘생활’이 되게 없는 편이에요. 약간 워커홀릭 같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워커홀릭이었어요. 그런데 말아먹었잖아요. 새벽 4시부터 집무실에서 일하고, 신문에 자기 이름 안 나오면 불안해지고요. 강준만의 <한국 현대사 산책> 보면 나오는 내용인데… (웃음) 아무튼 어쩌다보니까 제가 굉장히 반노동적인 사람이 됐는데, 생활을 지탱할 만큼의 노동만 하자는 주의에요.

 

BIYN : 협동조합과 기본소득을 연결해서 생각해볼 수 있을까요?

 

장성건 :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좀 더 재미있는 협동조합들이 많이 생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세탁기 협동조합 같은 말도 안 되는 것도 생길 수 있고요. 협동조합도 어떻게 보면 하나의 일인데, 사람들이 몰라서 안 하는 것도 있지만, 알아도 바빠서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자기 생활에서 노동만 하기에도 힘들고, 시간을 많이 뺏기니까요. 저도 한살림에서 일하면서 활동이 많이 뜸해진 편인데,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저는 파트타임 일을 하면서 자립음악생산조합 일에 좀 더 매진할 수 있게 되겠죠.

 

BIYN : 중장기 계획은 뭔가요?

 

장성건 : 주 3일 근무 정도로 노동을 줄이는 것이 목표에요. 노동 너무 싫어요.

자립음악생산조합에서 공간 관리직을 하게 된다면, 그때도 노동이 싫을까? 그건 좀 긴가민가한데요. 대공분실 운영할 때는 재밌었거든요. 제가 약간 농부 기질이 있어서, 내 구역 지키는 것을 재미있어 해요. 농부들이 기본적으로 굉장히 보수적이거든요. 왜냐면 자기 땅 일구고 그걸 지키면 그만이니까. 내가 약간 그걸 닮지 않았나 해요.

아무튼 임노동 시간을 좀 줄이는 것. 그리고 음악을 계속하는 것. 또 사회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는, 항상 환기시키는 상태를 지속하고 싶어요.

 

BIYN : 활동가로서 목표는 무엇인가요?

 

장성건 : 유지 그리고 확장. 확장은 다른 사람이 해줬으면 좋겠고, 누군가 일을 이만큼 벌여 놓으면 나는 그 벌인 것을 정돈하는 사람 쪽인 것 같아요. 그런 게 좋더라고요. 그래서 저 같은 사람은 한받 같은 사람이 와서 이야기 좀 해줘야 자극이 되고, 권용만(밤섬해적단 멤버) 같은 사람이 이상한 소리를 하면 반쯤은 듣고. 그런 게 필요하죠. (웃음)

 

BIYN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해주세요.

 

장성건 : 기본소득 빨리 좀 어떻게 좀….

 

사진 속에 보이는 모자에 박힌 한살림 로고는 그가 손수 스텐실 작업하여 손바느질로 박은 것으로, 회사 사람들로부터도 제작 주문 요청이 쇄도하는 인기 아이템이라고 한다. 과연 자신의 ‘생활’을 충실히 꾸며나가는 청년이다. 그만한 성실이라면 생활의 시간을 자꾸만 축내는 노동 시간이 야속할 법도 하다. 그의 ‘생활’을 응원하며, 정말이지 “기본소득 빨리 좀 어떻게 좀!”

 

(인터뷰 전문 링크 : https://sites.google.com/site/basicincomey/act/interview/jarip)

 

 

기본소득은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조건 없이 보편적으로 지급되는 소득을 말합니다.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Basic Income Youth Network, 이하 BIYN)는 기본소득이 실현된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모인 개인 및 단체들의 네트워크입니다. BIYN는 한국사회에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알리고, 신자유주의의 누적된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당사자인 청’소’년(0세~30대)이 먼저 그리고 같이 기본소득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