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봄이 사는 마을

2. 공간을 공유하는 삶

- 봄봄(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

K가 서울로 출장을 간 날 아침, 햄을 꺼낸다.

 

오늘의 요리는 햄이 들어간 김치찌개. J가 좋아한다. 채식을 하는 K는 본인은 하나도 먹고 싶지 않으니까 괜찮다고 말한다. 나는 안 괜찮다. K가 없을 때를 골라서 먹는 것도 썩 괜찮은 것은 아니지만 얼마 전 채식을 풀고 고기를 잘 먹는 J가 있어서 조금 괜찮다. 공간에서 함께 먹는 점심시간, 한 식탁에서 같이 밥을 먹는데 K는 먹지 않는 음식을 나는 맛있다며 먹는 행동이 멋쩍은 것인지, 아니면 무엇이든 K도 함께 맛있게 먹었으면 하는 바람인 것인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그 상황이 나에겐 썩 유쾌하지 않다는 것이다. 3년 전 J와 K와 함께 채식에 도전한 지 이틀째 되던 날, 어느 회식 자리에서 얼굴은 우거지상, 젓가락질은 코앞의 반찬만 집어 먹으며 소극적으로 찔찔댔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못하겠네, 라고 외쳤다. 다시 묻는다. 나는 왜 안 괜찮은가?

 

공동체 생활에서 가장 첨예하게 부딪히는 것은 거대한 신념의 차이가 아니라 사소한 일상에서의 제스처들이다. 2003년 비혼 모임 비비(비혼들의 비행)를 시작하고 약 7년가량 모임을 지속하기까지 (그들이 보기에) 이상하다 싶을 만큼 해체되지 않고 잘 지내는 비비에게 그들이 물었다. “갈등은 없어요?” “니들은 안 싸우니?”

 

2009년 지역 여성 옴니버스영화 <오이오감>을 찍으면서도 감독님은 뭔가 임팩트 하면서도 영화적으로 그림이 그려질 만한 사건을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우리는 조촐한 생일파티를 하면서 ‘우리가 갈등이 없다고, 영화가 심심하다고, 그런다고 머리끄덩이라도 잡고 싸울 수도 없고 말이야.’ K가 말했다. 영화는 심심하지 않고 재밌게 그려졌다. 갈등의 장면을 보여줄 수 없었지만 말이다.

 

비비의 일상이 바뀌었다. 7년 동안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각자 독립을 해서 지금은 한 아파트에 다른 집에서 살고 있다는 점이다. 작은, 아파트 마을이 되었다. 우리는 시시때때로 스프가 식지 않을 만큼의 거리에서 동을 넘나들며 지내고 있다. 피곤하면 ‘전 오늘은 숙면이 필요합니다.’ 라는 멘트를 날리면 된다. 그리고 3년 전, 각자의 일터가 아니라 우리의 일터,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에서 일상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예전과는 다른 방식, 지금까지는 시간을 공유했다면 이제부터는 공간을 공유하는 삶으로 바뀌었다. 지금까지는 만남을 가져왔다면 이제부터는 생활이 펼쳐졌다. 결혼 생활과 직장 생활의 그 사이쯤, 결혼 공동체와 직장 공동체가 뒤섞인 형태로 존재한다.

 

지난 3년 동안, 우리의 문장은 대략 이런 식이었다. 그런 거였어? 나는 정말 몰랐네. 아, 그렇군요. 알겠어요, 다음부터는 그렇게 하지요. 내 말은 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이런 거거든. 그래도 난 싫으네요. 오케이. 그려 그려. 그것은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몰랐던 것은 너무 많고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것도 많다. 무엇보다 내 맘이 아니라 네 맘을 알아야 한다는 것, 알아채야 한다는 것. 그것은 타인을 이해한다기보다는 타인을 취하는 방식의 태도가 아닐까.

 

나는 왜 안 괜찮은가? 공동체라고 하면 뭐든 같이 하고 싶은 본능적인 사명감 내지 욕구가 작동하는 걸까. 같은 방향과 같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사소한 일상은 부딪힘의 연속이다. 그 과정들을 봐주지 못한다면 갈등은 사건이 된다. 나와 같지 않은 타인과 무엇을(삶을) 함께 한다는 것, 그때 자동적으로 상대방과 같은 행동을 하려고 몸이 움직이거나, 상대방도 나와 같은 행동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움직인다. 나와 다른 타인을 보는 것이 불편한가, 내가 타인과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 불편한가. 공동체 생활에서 가장 먼저 인식해야 할 점은 타인은 나와 많이 다르다는 것. 아니 같지 않다는 것. 그 점을 알아채야 한다는 것이다.

 

에필로그

 

건강과 다이어트를 위하여 그 좋아하던 밀가루를 먹지 않기 시작한 J가 외부 강의를 나간 날, 나는 K와 외식을 하러 나간다. 채식을 하는 K에게 외식의 폭은 좁다. 국수 아니면 콩나물 국밥, 우리의 선택은 당연 국수다. 이제 K와 J와 모두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밥, 그것뿐인가. 서운한 맘을 달래기 위해 휴일엔 집에서 삼겹살을 구웠다. 그리고 고기녀들에게 문자를 보낸다. 저녁 6시, 삼겹살과 된장찌개, 우리 집으로 오시오.

 

2013.10. 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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