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일인 시위 이후, 단상

- 신광호

지난 11일 밀양 송전탑 반대 일인 시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뒤편 오십여 미터 떨어진 데에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서 있고 정면으로 횡단보도가 좌우에 자리하는 지점이었습니다. 주변의 빌딩들이 어딘가에 위치할 소실점을 따라 정연하게 이어지는 모습이 시야 한눈에 들어와, 정말이지 도심(都心)에 서 있음을 실감케 했습니다. 두 시간 정도 같은 자리에 있었던 듯합니다. 바람이 많이 불어 두 손에 쥔 피켓의 귀퉁이가 조금씩 부수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한 시간쯤 서 있었더니 다리도 아프고 해서 마지막 한 시간은 그냥 앉은 채로 보냈습니다. 바람에 날아가려는 피켓을 움켜쥐어 무릎 위에 걸치고 쪼개진 조각들은 외투 주머니에 하나씩 넣어 가며 그렇게 앉아 있었습니다. 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오후였습니다.

대단한 결의라도 지니게 될 줄 알았습니다. 현관문을 닫고 나서던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여기고 있었던 듯합니다. 인터넷 기사의 사진을 통해 종종 접하게 되는 일인 시위하는 사람들. 그들의, 시야 너머 어딘가를 향하고 있는 듯한 응시는 자신의 이상을 향한 올곧은 사명감의 반영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의 경우, 피켓을 들고 있는 내내 사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더군요. 지루함조차 느끼지 않았습니다. 다만 어떤 생경한 느낌에 사로잡혔는데, 그런 체감의 결들을 헤아리던 와중에 두 시간은 이미 지나 있었습니다.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제자리’를 찾아가려는 분명한 움직임과 저는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정면의 도로로 수많은 차들이 지나고 곧이어 좌우의 횡단보도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눈앞에서 교차해 지나갑니다. 그들은 어지간하면 저를 쳐다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흐름, 도로를 지나는 차들과 바로 앞을 스쳐 가는 인파를 몇 번이고 바라보며 어느 순간 느낀 바는 참으로 이질적인 놀라움이었습니다. 서울의 한복판에서, 뚜렷한 목적을 지닌 이동의 한가운데에서, 그저 멍하니 한자리를 차지하고 멈추어 있는 일이 가능하다니! 그것도 두 시간이나! 분명 당연한 이야기일 텐데, 저로서는 쉬이 믿기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어째서 지금까지 그러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을까.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찌 보면 당연한 상황을 뜻밖의 낯섦으로 느끼게 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그리하여 일인 시위 이후로 하나의 화두가 저의 머릿속에 박혀 버린 듯합니다. ‘우리는 몇 시간이든 길 한복판에 가만히 서 있을 수가 있다’ 언뜻 선언처럼 보이지만 그러한 의도는 사실 조금도 없습니다. 다만 지극히 개인적이고 그러나 새로운 가능성의 차원이 저에게 열리지 않았는가 하는 소박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느낀 이러한 감응이 저로 하여금 또 다른 가능성의 문을 열어젖히도록 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는지 하는 기대를 또한 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감각’이 열렸다, 라는 표현은 조금 진부하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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