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빚쟁이, 행복을 찾아가는 길 1

- 말자 3

<말세 프로젝트 세 번째> 

*말자3의 세 번째 다섯 묶음의 글의 주제는 세상의 종말을 대비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찌질한 긍정에 대한 것이다.

 

올해 봄, 말자들이 뭉쳐 말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녀들은 같은 일터에서 “미스 김”(올해 방영되었던 ‘직장의 신’의 주인공)업무를 밤 12시까지 하면서 정이 들었다. 일터는 공장이 아닌 사무실이었지만 갑 님들에게 어마어마한 서류 더미들을 가지런히 철해서 합격 점수를 받아야 월급을 계속 받을 수 있는 곳이라 엄청난 서류를 한 번 더 복사하고, 종이에 구멍 뚫고, 철하는 업무가 많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명의 말자를 뺀 나머지 말자들이 모두 이 곳을 퇴사해서 대부분 백수가 되었다. 그 한 명의 말자는 약간의 학자금 빚이 있기 때문에 매일 꾸역꾸역 “미스 김”업무를 하고 있다. 그러나 빚을 청산하는 그날 멋지게 사표를 쓰고 ‘직장인’이 아닌 자기‘일’을 가진 사람이 될 거라고 다짐한다.

직장에서 좁쌀만큼의 보람도 못 느끼면서 살다가 불현듯 삶의 목표도 목적도 없는 자기 자신과 만나게 된다. 그녀는 하느님이 말씀하신 신성한 ‘노동’을 욕되게 하긴 싫었다. 그러나 노동은 자아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 아닌 단순히 빚을 갚기 위한, 그리하여 가난의 고리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구조 안에 갇히게 되는 그런 것이었다. 돈에 굴하지 않고 자기 길을 가기엔 그녀는 너무나 보통 사람이다. 다만 연습만이 살 길이다. 가난해지는 연습을 하자. 몇 백만 원 남은 빚을 청산하는 그날을 위해 가난을 연습하자.

 

♣ 말자의 남친 이야기 – 애인 집에 얹혀살기

 

집… 그것은 커다란 문제다. 고향을 떠나온 나로서는 이 많고 많은 서울 하늘 아래 마음 편히 지낼 집이 없다. 학교 기숙사, 친척 집을 전전하고, 결국 친구들이 구해 준 아지트를 빙자한 단칸 옥탑방에 얹혀산 지가 어언 5년째… 그러다 이제는 결혼을 빙자해 애인 집에 얹혀살고 있다. 신기하게도 집이 없는데, 학자금이 남아 있는데도 결혼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애인 하나는 최고다! 함께 생활하다가 보면 기쁨은 두 배가 되고 생활비와 빚(?)은 반으로 줄어든다. 고수들은 다들 자신의 빚을 반으로 줄일 줄 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런데 가끔은 내 집을 갖고 싶다. 손수 계획해서 가급적 지을 때 내 손길을 많이 탄 집… 그렇다면 오래 산 집 못지않은 애정이 쌓일 것 같다. 얹혀사는 건 아무래도 불편하니까… 여름에 마음대로 벗고 돌아다닐 수 없으니까… 가구들 기분 내키는 대로 옮겨 가며 기분 전환할 수 없으니까…

 

♤ 말자3의 취미생활 – 시식하면서 즐거워하기

 

대형 마트를 사랑한다. 일주일 치 식량과 생필품을 카트에 잔뜩 담아서 멋지게 카드를 긁지 않는다. 그저 요즘 신상으로 뭐가 나왔나, 못 먹어본 과자 브랜드가 있나, 야채 가격은 시장과 얼마나 많은 차이가 나나 확인한다. 그리고 고기와 가공식품이 파는 그곳에서 체계적인 시식을 한다. 처음부터 고기만 많이 먹으면 안 된다. 처음에는 가볍게 귤 두세 쪽을 먹은 다음 소시지와 불고기류를 천천히 흡입한다. 옆에 있는 새싹이 올라간 두부 조각을 반찬 삼아 근처에 있는 동그랑땡도 맛나게 먹는다. 배에 어느 정도 기름칠을 했다고 생각될 때 메밀국수로 입가심을 해 주고 몇 걸음 더 걸어가 와인 시음을 하면서 치즈를 먹어 주면 에피타이져부터 디져트까지 완벽하게 챙겨 먹을 수 있다. 놀랍게도 대형 마트의 시식으로만 5대 영양소를 골고루 갖출 수 있다. 시식을 하면서 딱 한 가지 기억할 것. 지금 바로 살 것처럼 행동하라. 식사를 마치고 2층으로 올라가면 쇼핑하느라 한껏 뭉친 근육을 마사지하는 곳이 있다. 마사지 의자에 앉아서 아무 버튼이나 눌러본다. 목도 주물럭, 허리도 주물럭, 등도 주물럭… 하루의 피곤이 싹 가신다.

 

♦ 빚 있는 말자의 아이디어 – 부채빙수와 고된김밥

 

친구들에게 사소한 빚도 지지 않았던 내가, 몇 백 원 빌리는 것도 마음이 불편해서 바로바로 갚았던 내가, 수천만 원대 빚을 져서 옛날 빅토리아시대 때 잉글랜드처럼 채무자 감옥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내 행동반경과 상상력이 제한되고 있다. 채권자는 4년제 대학이다. 졸업한다고 변변찮은 직업이 보장되지도 않는데 왜 나는, 그리고 왜 지금 대학생들은 대학 졸업장에 목을 맬까? 답은 못 찾았다. 하지만 질문만으로도 이건 내 문제가 아닌 걸 알았다. 그래서 내 빚을 알리고자, 그래서 함께 길을 찾아보고자, 아니 최소한 나랑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을 만나보고자 부채빙수와 고된김밥을 팔기 시작했다.

부채빙수는 기본적으로 팥빙수인데, 직접 팥을 졸이고 식용 착향료가 안 들어간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리고 손님이 없으면 옆에서 더 시원하시라고 부채질을 직접 해드린다. 그래서 그런 부채를 갚고자 하는 의지가 빙수에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고된김밥은 고추, 된장 김밥의 줄임 말이다. 오전에 일어나 그날 팔 김밥을 만드는 게 고되다고 생각하던 차에, 고추와 된장을 넣으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왜 고추와 된장은 쌈의 기본 아닌가? 만일 오이고추를 쓴다면 더 청량감이 더해질 거다. 이것들을 팔아서 빚을 갚겠다는 홍보 전략은 꽤 잘 먹혀들어 갔다. 특히 부채빙수는 교회 행사 때 특별 판매 요청이 계속 들어올 정도로 인기 있었다.

하지만 내가 처음에 바랐던 나랑 비슷한 이야기를 가진 채무자는 못 만났고, 빚 없이 제대로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만 제대로 호응을 해줬다. 이게 뭔가 곰곰히 생각해 보니, 이 빚 없었던 친구들은 부채 없이 학교를 다녀야만 했던 부채감이 있던 거다. 패밀리 장학금, 아빠 회사 장학금, 공부 잘해서 받은 장학금 등등… 솔직히 이 친구들의 호응과 도움은 감사하지만 학자금 대출 문제를 알리는 데 실질적인 도움은 안 된다. 당사자가 아닌데 어떻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겠는가. 빚 있는 친구들의 경우 요즘 같은 시대에 자기 빚을 알린다는 게 쉽지 않았나 보다. 어떤 친구들은 사실 빚을 얼마나 내느냐가 능력의 척도라고 하는데, 대학 학비 빚을 진다는 건 대외 비밀인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된다. 학자금 대출을 받는다는 건, 집안 형편이 좋지 않다는 거고, 요즘 사회에서는 계층이 거의 계급 차이를 낳으니까… 또 너무 개인 프라이버시를 강조하는 사회가 되다 보니, 그런 영역도 개인적 영역에 들어가나 보다.

어쨌든 학자금 대출 문제는 나만의 문제로만 본다면 아주 힘들어진다. 나의 빚을 널리 알리고 함께 연대하자고 제안하고자 부채빙수와 고된김밥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게 잘 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계속해서 나의 가난을, 우리의 가난을 널리 널리 알릴 것 이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