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일기

4. 여자-마녀-고양이: 재수 없는 것들의 수난사

-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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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로윈데이는 지났지만 마녀와 고양이라는 주제로 인사드립니다.

* <마녀사냥>이라는 프로그램과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

 

 

애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에 나오는 그 까만 고양이는 재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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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머리 위에는 붉은 주둥이를 잔뜩 벌리고 눈동자가 불꽃처럼 이글거리는 그 끔찍한 짐승이 앉아 있었다. 그 짐승의 사악함은 나를 살인으로 이끌어 갔으며, 그 배신 같은 울음소리는 이제 나를 사형수에게 넘겨 주었다. 나는 그 괴물을 무덤 속에 함께 매장했던 것이다.”
포는 이 작품을 1843년에 발표했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세상에 내놓고, 맥스웰이 맥스웰 방정식을 수립했던 때와 같은 시대인 19세기에 나온 소설이다. 그런데 이 그로테스크한 소설에는 계몽의 빛이나 과학은 커녕 검은 고양이의 재수 없음과 사악함에 대한 악마적이고 악의에 찬 은유로 가득하다. 남자는 과도하게 고양이에게 집착하더니 마지막에는 살인과 정신착란을 전부 고양이 탓으로 돌린다. 고양이는 이름부터 플루토, 명계의 왕이다.
이 글에서는 12세기부터 18세기 중반까지 유럽을 중심으로 마녀사냥과 더불어 일어났던 고양이 대수난을 이야기할 생각이다. 물론 12세기 이전에도 악마적인 것은 처벌을 받았다. 그런데 12세기를 기점으로 수난의 양상이 바뀌었다. 12세기 이전 마녀사냥은 마녀에게 피해를 받은 사람이 있어야만 마녀를 고소할 수 있었는데, 12세기 이후에는 실질적인 피해가 없어도 고소가 가능했다. 이에 힘입어 1550년에서 1650년 사이에 중부 유럽에는 마녀사냥이 절정에 이르렀다. 오늘날 추정하기로 그 당시 희생자는 거의 50만 명이며, 이들 중 80퍼센트가 여자였다고 한다. 당시 고양이는 애완/반려동물이라기보다는 집에서 쥐를 잡는 동물이었기 때문에 주로 집에 있는 여자의 영향력 있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마녀가 화형을 당할 때 고양이는 마녀를 수행하는 존재로 여겨져서 같이 화형대에 올랐다. 어떤 점이 그렇게 불길하고 재수가 없어서 마녀나 고양이나 그렇게 조직적으로 학살 당했어야 하는지 몇 가지 결을 살펴보자.
당시 기독교적 관점에서 고양이는 조금 마뜩잖은 생물이었다.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리고 그가,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 사는 온갖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창세기 1:26)고 하셨는데 고양이는 인간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복종도 하지 않는다. 간혹 “하나님이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을 그냥 만들어 두셨을 리 없다”며 고기를 먹는 것을 거부하는 채식주의에 적개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입장에서 자연인 고양이에게 착취할 것이 하나도 없다니 무엄하다. 야생 동물이 인간에게 도움이 되려면 가축이 되어 길들여져야 한다. 집을 지키는 개처럼, 사냥감을 쫓는 사냥개처럼, 소나 닭, 돼지처럼 말이다. 그런데 고양이는 쥐를 잡기는 하되 길들여지지 않았고, 우유나 계란, 고기같이 식량을 주는 것도 아니다. 쥐를 잡는 것도 인간을 위한다기보다는 자기 밥그릇을 챙기는 행동이고,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다. 우연찮게 인간의 이해와 부합하는 쥐잡기 능력으로 고양이가 재산에 당당히 포함되기도 한다. 그런데 쥐를 잡지도 않고 동네를 어슬렁어슬렁 걸어다니며 밤에 노란 눈을 반짝이고 나타났다 사라지는 고양이는 악마가 되었다.

<풍요로움과 다산의 상징인 프레야 여신 :
프레야 여신은 동물 중에서 고양이를 가장 좋아하며 두 마리의 고양이가 끄는 황금 수레를 타고 다닌다.>

게다가 고양이를 숭배하는 문화도 문제였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고양이를 풍요의 여신인 바스테트의 화신이라고 생각했고, 게르만 신화에서 고양이는 프레야 여신과 함께 곡식의 수호신이 되었다. 기독교의 신봉자들은 이런 동물 숭배를 단지 우스꽝스럽게 보고 비웃은 게 아니라 칼을 들이댔다. 사람들은 곡식이 자란 들판에서 곡식의 수호신인 고양이 곁에다 우유를 제물로 바쳤다. 그리고 선교사들은 고양이의 이런 이미지를 이용해서 고양에게 음식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수확을 보장하기 위해서 검은 수고양이를 산 채로 들판에 매장하게 했다. 그것으로는 모자라 수확한 후에도 ‘감사’의 뜻으로 고양이를 제물로 삼았다. 또한 이교의 낙인이 찍힌 것은 아니었으나 별다른 이유 없이 성 요한의 축일에는 액막이를 위해 프랑스 곳곳에서 고양이를 축제의 모닥불에 던지고, 불기둥에 매었다.

다음으로 고양이 대량 학살은 기독교에서 차례로 마법을 단죄하고 마녀사냥을 부추기고 정당화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제부터 12세기 이전 마법을 대하던 태도와 뚜렷한 차이가 생긴다. 1215년 이단자들을 국가권력에 양도해서 처벌한다는 결정이 이루어졌으며, 1224년 이들을 화형으로 다스린다는 법이 도입되었다. 1326년 교황 요하네스 22세가 ‘마법사들’에 대한 무제한적인 종교재판을 적용하라고 명령을 내린 이후로 프랑스에서 대대적인 마녀사냥이 일어났고 이탈리아, 독일, 스위스로 퍼졌다. 조직적인 마녀사냥은 1484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8세의 칙령으로 시작되었다. 그는 고양이가 “악마와 계약을 맺은 이교도 동물”에 속한다고 선언했다. 이제는 재판 규정을 지킬 필요조차 없이 마녀와 고양이를 단죄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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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페데리치는『캘리번과 마녀』라는 책에서 ‘마녀’는 자본주의가 파괴해야만 했던 여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고 말한다. 그녀의 분석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여성들에게서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임신과 출산에 관한 통제력을 파괴하려는 이유에서 마녀들을 사냥했다. 말하자면 기독교에서 집단적으로 마녀를 사냥한 것이 시초축적의 시작이다. 이교도의 경우 여성의 피임을 허용했으나, 기독교에서는 피임하는 여성들을 마녀로 몰아 불살라버렸다. 이단과 이단 박해라는 단어는 중립적으로 들리지만 이단의 형상은 점차 여성의 모습을 띠고, 이단 박해는 마녀사냥으로 변해 갔다. 여성의 지위라는 관점에서 기독교와 이단의 가장 큰 차이는 여성의 권리 인정이었다. 마녀사냥을 통해서 여성은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노동력을 인정받지 못해서 빈곤해지고, 집에 유폐되어 자궁으로 축소된다. 루터는 여성이 “인류를 늘리는 데 필요하다”고 인정하면서 “여성들은 그들이 가진 온갖 약점을 전부 만회하는 한 가지 덕성을 갖고 있는데, 바로 자궁을 갖고 있으며 출산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잉글랜드 지방에서는 마녀들이 주로 생활보호 대상인 노파들이거나, 구걸하며 생계를 연명하는 여성들이었다. 기혼자들은 주로 남편이 일용직 노동자였는데, 대체로 과부나 독신이 많았다. 안타깝게도 남자를 유혹하는 미녀가 아니다.>

고양이 사냥과 마녀사냥에 관계가 생기는 건 집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여성과 고양이 사이에 연결 고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식적으로 “악마와 계약을 맺은 이교도 동물에 속한다”는 낙인도 찍혔다. 예를 들면 이런 일이 있었는데 1618년 두 명의 여성이 고양이를 손수건으로 쫓으려다 그 악마적인 동물과 ‘마법의 신호’를 써서 의사소통을 했다는 이유로 이들은 전부 사형선고를 받았다. 마녀의 삶에서 고양이, 개, 토끼, 개구리 같은 동물들이 악마의 도구 역할을 하기 때문에 동물 또한 재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었다. 마녀로 낙인 찍힌 여성들도 고문을 받다가 그저 시키는 대로 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동물이 어떻게 말을 할까. 결국 전부 죽여야 한다는 소리다.

고양이는 매우 적극적이고 성욕이 활발한 음탕한 악마로 여겨졌다. 요즘 집고양이들은 대부분 중성화 수술을 하지만, 고양이는 발정기에 엄청나게 울고 온갖 행동을 한다. 게다가 주기적으로 배란을 하는 인간 여자와는 다르게 암컷 고양이는 ‘교미배란’이라고 해서 발정기에 삽입에 의해 자극을 받아야 배란이 일어난다. 발정기의 암컷이 페로몬을 뿌리면 여러 마리의 수컷이 여기에 반응해 몰리는데 그중 가장 힘이 센 수컷과 교미를 하게 되지만, 그 후에 약삭빠른 다른 수컷이 암컷과 교미를 하면 이로 인해 수정란이 다시 형성될 수 있다. ‘아비가 다른 새끼’가 한 배에서 동시에 태어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보통 암컷은 수정이 끝나면 발정이 멈춰 수컷을 받아들이지 않는데, 교미배란의 특성상 경우에 따라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또한 약 10%의 고양이는 임신 중에도 발정을 한다. 당시에는 이런 과학적 사실을 몰랐겠지만, 무늬와 색이 제각각인 새끼 고양이가 동시에 태어나고 발정이 나 우는 고양이는 성적으로 부적절한 동물이었다. 야만적인 성행위, 음란함, 성적 능력은 악마의 특징이다.
마네의 (1862)에 있는 흑인과 까만 고양이는 그림에 있는 까만 오점이라고 평가받았다.

마네의 <올랭피아>(1862)에 있는 흑인과 까만 고양이는 그림에 있는 까만 오점이라고 평가받았다.

고양이가 중세부터 근대 초기까지 유럽에서 박해만 받던 것은 아니었다. 부르주아의 집에서 사랑받는 애완동물이기도 했고, 수도원에서 기르는 경우도 있었다. 고양이에게는 자유를 사랑한다는 이미지가 있었고, 쥐를 퇴치해 종이를 보호했기 때문에 인쇄업계에서는 고양이를 상징으로 삼을 정도로 사랑하기도 했다. 로버트 단톤이 쓴 <고양이 대학살 : 프랑스 문화사의 여러 사건들The great cat massacre : and other episodes in French Cultural History>에서는 바로 이런 배경에서 18세기 프랑스에서 일어난 고양이 대학살을 서술한다. 1762년 자크 벵상이라는 인쇄소의 장인 밑에서 일하던 도제 니콜라서 콘타트는 당시 주인의 아내가 고양이를 열정적으로 좋아해서 고양이를 스물다섯 마리나 기르고 있으며, 고양이들의 초상화를 그리게 하고 구운 날갯살을 먹이로 주기도 했다고 적었다. 이 점이 문제였다. 고양이 밥보다 못한 밥을 먹고, 그보다 못한 취급을 받던 도제들은 고양이를 괴롭히고, 마녀사냥의 화형대에 올렸다. 밤에 도제들이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서 주인을 겁먹게 하고, 고양이를 혐오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부르주아가 아니라 부르주아의 아내가 아끼는 고양이를 희생물로 삼았다. 이것은 분명 차별받는 노동자의 저항이다. 그러나 동시에 마녀사냥과 착취의 분위기에 편승하여 엉뚱하게 가장 약한 생물이 분노의 대상이 되었다.

고양이들은 많이 죽었다. 우선 중세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인간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 자연이기 때문에 평가절하 되었고, 이교도의 신으로 숭배를 받는다는 이유로 땅에 파묻히기도 했다. 인간과 가까이 있으면서 속을 알 수 없고 악마적이라는 이유로 마녀들과 함께 죽었다. 억울하게 부르주아인 주인 대신에 대량으로 죽기도 했다. 마녀사냥으로 죽어간 마녀들의 숫자도 정확한 것이 아니고 그저 추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고양이가 얼마나 죽었는지는 알 수 없다. 14세기 유럽에서 페스트 때문에 약 2,500만 명이 죽었다. 악마의 현신인 고양이가 페스트를 옮기는 원인이라는 누명을 쓰며 마녀사냥과 함께 죽었고, 페스트는 대부분 고양이가 없던 지역에서 나타났다. 집안일과 재생산 위해 여자를 남겨 둬야 했던 것과는 달리 고양이는 지역 단위로 쓸어버린 것 같다. 이렇게 서술하면 꼭 당시 사람들이 과학 지식이 부족하고, 이성적으로 사고하지 않아서 대학살이 일어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과학적 합리주의가 등장해 마녀나 마법이라는 환상적인 것을 없애서 온갖 주술적인 것에 대한 비합리적 박해를 끝냈다고 보는게 맞을까? 앞에서 인용한『캘러번과 마녀』는 이렇게 설명한다.
 “근대과학의 등장과 함께 나타나게 된 자연에 대한 기계적인 관점은 ‘세상을 마법에서 깨어나게 했다.’ 하지만 거기에 기여한 사람들이 마녀로 기소된 여성들을 변론했다는 증거는 없다 (…) 마녀사냥이 최후를 맞은 것은 승승장구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요구했던 사회적 규율이 가동되기 시작하면서 마녀의 세계가 소멸해 갔기 때문이다. (…) 좀 더 계몽된 세계관이 나타났기 때문이 아니라, 그즈음부터 지배계급이 자신들의 권력이 안전하다는 느낌을 분명히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꼭 고양이가 아니더라도 지금까지 일어난 대규모 폭력을 보면 대체로 그럴싸한 명분을 가지고 가장 약한 집단에게 잔인하고 체계적으로 일어났지 과학이나 합리성과는 별 상관이 없는 것 같다.
도도한 고양이와 남자를 유혹하는 마녀라는 이미지가 합해 만들어진 캣우먼.  ‘고양이-여자’가 합해지면 위험한(악마적인) 성적인 코드가 살아난다. 캣우먼은 창녀이기도 하다.

도도한 고양이와 남자를 유혹하는 마녀라는 이미지가 합해 만들어진 캣우먼.
‘고양이-여자’가 합해지면 위험한(악마적인) 성적인 코드가 살아난다. 캣우먼은 창녀이기도 하다.

 

<노트>


1. 『캘러번과 마녀』, 실비아 페데리치, 갈무리

2. 『The great cat massacre : and other episodes in French Cultural History』, Robert Darnton, Basic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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