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대 과학

지동설 대 천동설 (3)

- 박성관

1. 언제나 속도가 똑같은 물체가 있을까?

 

이번 주는 몇 주 전에 이야기하다 일시 중지했던 지동설 대 천동설의 마무리 편이다. 원래는 총 3회로 생각했었는데 3주차 글을 쓰던 중에 갑자기 몸살이 걸려버렸다. 견디며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진행될수록 정리가 더 안 되고 원고 분량이 늘어만 갔다. 급기야는 원고가 자기 증식하는 희한한 상태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급정거(!)가 불가피했다. 그러고는 미리 어느 정도 준비해 두었던 “지구 온난화론 재고”로 대체하였다. 그 뒤 몇 주 동안 골골거리면서 지구 온난화론 관련 번역 연재는 끝이 났고 그 사이에 몸이 그런대로 쓸 수는 있는 상태가 되었다. 이제 지동설 대 천동설 마무리를 짓자.

 

쾌조의 스타트를 어떻게 끊을까 생각을 굴려본 결과, 오늘은 퀴즈로 시작하기로 했다. 이 세상에 속도가 언제나 동일한 물체가 있을까, 그런 게 가능이나 할까? 이것의 오늘의 퀴즈다.

 

일단 우리의 상식을 재확인해 두자. 예를 들어 당신 앞에 어떤 예쁜 자동차가 시속 100Km로 달리고 있다고 하자. 땅 위에 서 있는 교통경찰의 속도 측정기에는 그 차의 속도가 당근 시속 100Km로 나온다. 한편 그 차와 나란히 60Km로 달리던 내게는 그 차의 속도가 시속 40Km로 보인다. 그리고 반대 차선에서 60Km로 달리는 자동차의 운전자는 그 차의 속도가 160Km로 보인다고 할 것이다. 물론 우리는 통상적으로 속도의 기준을 땅 위에 정지해 있는 관측자로 설정하기 때문에, 그 차의 속도가 시속 100Km라고 하는 데에 모두 동의할 터이다. 그렇지 않다면 교통경찰은 과속 딱지를 떼기가 불가능할 것이다(거꾸로 된 상황도 가능하다. 어떤 자동차에 대해서도, 심지어 정지해 있는 차에 대해서도 과속 딱지를 뗄 수가 있다. 교통경찰이 엄청난 속도로 달리며 속도를 측정한다면 말이다).

 

이처럼 어떤 물체의 속도라는 것은 측정자의 운동 상태가 어떤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기준을 정하지 않으면 속도를 말할 수 없다. 소위 “절대속도”란 없는 것이다. 이건 단지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니다. 내가 시속 60Km로 달리는데 뒤에서 오는 자동차가 시속 100Km로 달려오면 나는 머지않아 시속 40Km의 자동차와 부딪치는 충격을 받게 된다. 시속 50Km로 달리는 자동차라도 맞은편 자동차가 시속 50Km로 달려와 부딪치면 두 자동차는 모두 시속 100Km의 자동차에 부딪치는 충격을 받을 터이다. 속도는 상대적이지만, 그건 단지 인식론적인 것이 아니라 엄연히 물리적인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말했듯이 “총알 위에 앉아 있는 사람은 [자기가 앉아 있는] 총알이 발사되는 소리를 결코 듣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총에서 발사된 총알은 음속보다 훨씬 큰 속도”1)를 가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는 자동차의 예를 들어 갈릴레이의 상대성원리를 이야기해보았다. 물론 이 원리는 우리의 상식에 너무나도 잘 부합한다.

1) 두 인용문의 출처는 A. 아인슈타인, L. 인펠트 『아인슈타인이 직접 쓴 물리 이야기』(한울, 2006). p. 147.

 

자! 이제 당신에게 다시 물어보겠다. 관측자가 어떤 운동 상태에서 재든 늘 동일한 속도로 측정되는 물체가 있을까? 그런 게 가능이나 할까? 만일 그런 게 있다면 갈릴레이의 상대성원리는 무너질 것이다. 아니 그뿐이겠는가? 우리의 상식이나 논리 자체가 허물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존재는, 그런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무 놀라지 마시라, 20세기에 그런 존재가 발견되었다.

이게 얼마나 엄청나고 말도 안 되는 사태인지 이해가 되시는가? 우선 어떤 물체의 속도가 시속 100Km라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그것은 가장 쉽게 이야기하자면, 지금으로부터 한 시간 후에 나와 그 물체의 거리가 100Km라는 말이다. 자, 그럼 본격적인 예로 들어간다. 도로 위에 당신이 있고, 자동차가 한 대 있고, 자전거가 한 대 있다. 그리고 이 자동차의 속도가 바로 앞서 말한 경우, 즉 관측자의 상태가 어떻든지 간에 늘 동일한 속도로 측정되는 그런 신비한 차라고 하자(이런 근사한 차는 당연히 그에 어울리는 내가 타고 있다고 하는 게 자연스런 설정이겠다). 정각 2시에 땅! 소리와 함께 자동차와 자전거가 같은 방향으로 힘차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물론 당신은 제자리에 서 있다. 한 시간이 지난 뒤, 즉 정각 3시에 내가 탄 신비의 자동차는 당신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진 거리에 있겠는가? 당연히 당신으로부터 100Km 떨어져 있어야 한다. 짝짝짝! 잘했다. 두 번째 질문, 내 자동차는 자전거로부터는 얼마나 떨어진 거리에 있겠는가? 당연히 자전거로부터 100Km 떨어져 있어야 한다. 신비한 자동차는 모든 임의의 관측자에 대해서 속도가 동일하게 시속 100Km라고 했으니 말이다. 사실 벌써부터 말이 안 되는 상황이지만, 아직 벙벙하실 분들을 위해 하나 더 질문해보겠다.

 

당신과 자전거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이 자전거는 신비한 자전거가 아니고 평범한 자전거로 시속 20Km로 달렸다고 해보자. 그럼 1시간 후에 자전거는 당신으로부터 20Km 떨어져 있을 것이다. 자동차는 아까도 말했듯이 당신으로부터는 100Km 떨어져 있고. 그럼 자전거와 자동차의 거리는 얼마인가? 80Km라고? 그럼 자전거 운전자에게는 자동차의 속도가 시속 100Km가 아니라 80Km가 되지 않는가? 100Km라고? 그럼 이 자동차는 당신으로부터도 100Km 떨어져 있고, 자전거로부터도 100Km 떨어져 있게 되는데, 그럼 당신과 자전거는 동일 지점에 있어야 하지 않는가? (당연한 얘기지만 당신과 자전거와 나의 신비한 자동차는 모두 일직선 상에 있을 터이다). 그렇게 되면 자전거의 속도가 시속 20Km라는 건 어떻게 되는가? 자! 대답해보시라. 당신과 자전거의 거리는 얼마인가? 20Km인가 아니면 같은 곳에 있는가? 어떻게 답을 해도 말이 안 된다.2)

2) 이 이야기는 버트란드 러셀의 『상대성 이론의 참뜻』. p. 38-39를 약간만 변경해서 구성해본 것이다.

 

좀 더 생각해보면 실제 문제는 더 심각하다. 나는 당신의 상태가 너무 어수선해질까 봐 당신과 자전거와 자동차가 일직선 위에 있으며, 자전거가 자동차와 같은 방향으로 달린다고 설정했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 자동차의 속도는 관측자의 운동 상태가 어떻든지 간에 모두 동일하다고 했으니 꼭 그럴 필요는 전혀 없다. 자전거가 자동차와 정반대되는 방향으로 달려도, 혹은 자동차와 비스듬히 달려도 언제나 자동차의 속도는 동일해야 한다(여기까지 쓰고 잠시 쉴 겸 몇 주 전에 썼던 (2)편을 잠시 훑어본 순간…… 깜짝 놀랐다. (2)편에서 이 얘기를 이미 했다는 걸 발견한 것이다. 끌끌끌끌…… 그래서 이걸 어쩌나 잠시 고민했다. 그렇지만 그냥 가기로 했다. 지금까지 쓴 게 아깝기도 하고, 필자인 내가 썼다는 걸 기억 못했는데, 독자인들 잘 기억하겠는가…… 싶은 생각이 고맙게도 들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당신은 답을 찾아내야 한다는 강박에서 풀려나면서 이렇게 항의할 것이다. 문제가 잘못되었다. 어떤 관측자가 측정해도 속도가 동일한 신비한 차 따위는 불가능하다. 자동차는 물론이고, 비행기나 우주선, 우주선 할애비가 와도 안 된다. 그런 건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걸 전제하고 답을 찾아보라니…… 집어치워라! 당신이 이렇게 따지고 든다면, 나는 당신이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 분이라면 흠…… 이 글을 그만 읽으시는 게 좋겠다.

 

그런데 문제는, 앞서 말했듯이 그런 존재가 20세기에 인류에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누가 재도 속도가 동일한 그런 말도 안 되는 존재가! 물리학계를 온통 암흑 속에서 헤매게 만든 그자는 과연 누구였을까? 그것은 바로 바로 “빛!”이었다. 짜잔~!

 

처음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당연히 측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측정 장치를 더욱 정교하게 하고 이전보다 몇 배는 더 신중하게 측정을 했다. 측정에 측정을 거듭했다. 그렇지만 소용없었다. 측정치마다 아주 미미한 오차는 있었지만, 의미 있는 수준에서 그 놈의 속도는 언제나 동일했다. 그 놈이 관측자로부터 멀어질 때 측정해도, 관측자가 그 놈과 어긋나는 방향으로 달리며 측정해도 언제나 그랬다. 관측자가 정지했을 때야 말할 것도 없었다. 과연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이 대목에서 당신이 총명한 독자라면, 혹은 한 승질 하는 독자라면 고분고분 내 얘기에 따라만 오는 대신, 일거에 전세를 역전시킬 결정적인 반문을 떠올리셨을지도 모르겠다. 예컨대 이렇게.

 

좋다. 일단 그런 놈이 실제로 있다고 하자. 20세기에 발견되었다고 말하니 일단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면 앞에서 의기양양하게 제기했던 난문은, 그래서 우리 독자들을 궁지에 몰았던 그 난문은 어떻게 되는가? 신비의 자동차와 정지해 있던 사람과 자전거, 이 셋의 거리는 한 시간 뒤에 어떻게 되냔 말이다. 더군다나 자전거가 자동차와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면……

 

이렇게 쏘아대고 “음핫핫핫핫!” 포효하실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다. 그럴 만도 한 것이 20세기 초반의 과학자들 누구도 이 문제를 풀지 못했다. 오직 한 사람, 아인슈타인이 이 문제를 올바로 해결했다. 정말? 그럼 그 난문은? 물론 답을 했다. 아니, 그럴 수가! 어떻게 그런…… ?%@*## 우리도 같이 보았지만, 그 난문은 어떻게 답을 해도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데……

 

2. 다시 1905년의 아인슈타인과 만나자!

 

이 대목에서 「지동설 대 천동설」 (2)편에서 인용했던 아인슈타인의 1905년 논문, 그 유명한 논문의 한 대목을 다시 한 번 불러내기로 하자. 잘 들어보시라.

 

“우리는 이 추측(지금부터 그 내용을 ‘상대성원리’로 칭할 것이다)을 가정으로 삼을 것이고, 이 밖에도 또 하나의 가정을 도입할 것인데, 이것은 단지 겉보기에만 앞의 가정과 모순된다. 빛은 언제나 진공에서 방출하는 물체의 운동 상태와 무관하게 일정한 속도 c로 전파된다.

 

기억이 나시는가? 이게 바로 지금까지 내가 얘기한 내용이다. 아인슈타인은 먼저 상대성원리를 하나의 가정으로 제시한다(물론 이것은 갈릴레이의 상대성원리다). 그리고 곧바로 또 하나의 가정, 즉 빛은 언제나 진공 속에서 일정한 속도로 전파된다. 그 빛을 방출하는 광원이 정지 상태이건 고속 운동 상태이건 아니면 느릿느릿 움직이는 상태이건, 빛의 속도는 언제나 일정하다. 빛은 우리의 상식대로 c, 즉 초속 30만Km로 엄청나게 빨리 전파된다. 이 두 가지 가정 사이에 아인슈타인이 끼워 넣은 문장에 주목하라. “이것[광속 불변의 원리]은 겉보기에만 앞의 가정[갈릴레이의 상대성원리]과 모순된다.” 그렇다. 우리가 지독한 모순일 수밖에 없다고 했던 두 가지를 잇달아 제시하면서 아인슈타인은 태연히 이 두 가지는 “단지 겉보기에만…… 모순된다”고 말하고 있다. 말인즉슨, 자신의 새로운 과학, 즉 특수상대성이론을 통해 이 모순은 더 높은 수준에서 지양(止揚; Aufhebung)된다는 것이다. 과연 어떻게……?

 

다음으로 앞 인용문에 바로 이어졌던 인용문을 바로 불러내자.

 

 “이 두 가정들로부터 정지한 물체에 대한 맥스웰의 이론을 기초로 삼는, 간단하고 일관된 운동체의 전기역학 이론을 얻을 수 있다. ‘빛 에테르’의 도입은 불필요한 것으로 증명될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서 전개될 견해는 특별한 특성을 갖는 ‘절대 정지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며, 전자기적인 과정이 일어나는 진공 공간의 어떤 한 점과 속도 벡터를 연관시키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것이 운동하는 물체의 전기역학이 이제 싸워야 하는 근원적인 난제들이다.“(『100년만에 다시 찾는 아인슈타인』).

 

첫 번째 밑줄 좍!에는 “맥스웰”과 “전기역학 이론”이라는 말이 들어 있다. 두 번째 문장은 “‘빛 에테르’의 도입은 불필요한 것으로 증명될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여기까지는 대체 뭔 소릴 하시는 건지……다. 그러나 마지막 밑줄 좍!을 보시라. “특별한 특성을 갖는 ‘절대 정지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되어 있다. 우리가 누차 얘기해 온 내용이 아인슈타인의 음성으로 흘러나오고 있지 않은가! 뭐…… 아주 똑같은 건 아니지만, 쫌 비슷한 것도 같긴 허네…… 근데, 대체 이거랑 앞의 밑줄 좍! 두 문장은, 무슨 상관인가? 게다가 갈릴레이의 상대성원리나 광속 불변[혹은 일정] 현상하고는 대체 무신 상관이란 말인가? 궁금하실 터인데, 무신 상관 정도가 아니라 드라마틱한, 뜨거운 상관이 있다. 이제부터 우리는 이 모든 궁금증을 풀어 줄 사나이 맥스웰과 만나야 한다. 이름하여 맥스웰의 전자기 방정식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자! 맥스웰의 손을 잡고 전기역학 이론, 빛 에테르, 절대 정지 공간…… 나아가 상대성원리와 광속 불변 현상 등의 오리무중을 헤쳐 나가자. 그 짙은 안개를 뚫고 마침내 바깥으로 나아갔을 때 과연 어떤 새로운 우주가 펼쳐질는지 살짝 흥분하면서……

 

3. 전기와 자기? No! 전자기

 

지금부터 우리는 초고속으로 달린다. 우리의 얘기에 꼭 필요한 것만 추려 내어 전자기학(電磁氣學)의 발전사를 짚는다. 여러모로 고민해봤지만 이 발전사를 훑지 않고서는 아인슈타인을, 그 뜨거움과 절실함을 같이 흥분할 수가 없다. 불가피한 여정이므로 큰 사고 없이 목적지에 도달하길 바랄 뿐이다. 과연 그렇게 될까?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는 일단 시동을 건다. 그리고 곧장 질주한다.

 

일상적인 감각에서 볼 때 전기와 자기는 무척 다른 것처럼 느껴진다. 전선에 흐르는 전류와 철가루를 끌어당기는 자석이 다른 것만큼이나 그러하다. 실제로 182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전기와 자기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그런데 1821년에 외르스테드가 전류에 관한 시범 실험을 하던 중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는 학생들에게 도선(導線)에 전류가 흐르면 열이 발생한다는 걸 보여 주려고 준비하면서 실험대 위에 나침반을 올려놓았었는데, 도선에 전류를 흘려주는 실험을 하면서 우연히 나침반 바늘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무척이나 놀랐다.” 전류가 자석을 움직이다니…… 전류와 자석 간에 뭔가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거 아닌가! “그러나 외르스테드 자신은 이 사실이 어떻게 된 일인지 규명해 내지 못하였다. 그는…… 전류가 흐르는 도선과 자석 사이에 힘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아내려고 시도하였는데, 그의 예상과는 딴판으로 자침이 도선 쪽으로 끌려오거나 밀려나지 않고 항상 도선과 수직인 방향으로만 놓여 있었다. 그런데 당시에 알고 있던 중력이나 전기력 등 다른 현상에서 그렇게 이상한 방향으로 작용하는 힘의 예가 없었기 때문에 외르스테드는 무슨 영문인지 이해할 수 없을 뿐이었다.” (지금 이 대목은 기억에 남겨 두시기 바란다. 특히 “수직인 방향으로만 놓여 있었다”는 대목을) “이후 “비오와 사바르, 앙페르 등의 노력에 의해 전류가 자기장을 만드는 원리가 밝혀진다.”3)

 

한편 마이클 패러데이는 외르스테드가 발견한 것처럼 “전류, 즉 움직이는 전하의 흐름이 자기장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전지 같은 전원과 연결되지 않은 전선 고리 속에서 움직이는 자석이 전류를 만들어 내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로부터 그는 1831년 전자기 유도[electromagnetic induction; 자석을 움직여 전기가 만들어지는 현상] 법칙을 발견한다. 요컨대 전기와 자기는 전자기라는 단일 사태의 두 현상이었으며, 따라서 서로가 서로를 유도해 낼 수 있는 것이었다.4)

3) 차동우 『교양 물리』((주)북스힐, 2008) p. 325-326.

4) 패러데이에서 맥스웰에 이르는 전자기학의 발전사는 무척 흥미로운 주제로 여러 책에서 다뤄지기도 했다. 내가 읽은 것 중에는 데이비드 보더니스의 『일렉트릭 유니버스』(생각의나무) 전반부와 로빈 애리앤로드, 김승욱 역, 『물리의 언어로 세상을 읽다』 (해냄, 2011)가 좋았다.

 

4. 패러데이, 장, 힘 선

 

다음은 패러데이를 전자기학의 위대한 개척자로 만들어 준 장(場) 개념으로 들어간다. 우선 패러데이가 등장하기 전 서양 과학이 전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알아 두자. 당시 서양 과학자들은 전기에 의한 힘이 원격작용에 의해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전기를 띤 입자, 즉 전하(電荷)를 가진 입자는 그로부터 떨어진 물체나 입자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이지, 전기력을 전송하기 위한 중간 매개 과정도, 매개 물질도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건 물리적으로 매우 불만스러운 설명이었다. 아니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어떻게 여기에 있는 입자가 멀리 떨어진 입자에게 직접 영향을 미친단 말인가! 헌데 우리도 알다시피 이런 설명은 뉴턴의 중력 이론에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제시되었다. “태양의 주위를 도는 행성과 태양을 연결하는 ‘끈’” 따위는 없는 것이다. 물론 뉴턴의 중력 이론도 제안 당시부터 오래도록 커다란 수수께끼였고 라이프니츠를 비롯한 당대 과학자들의 격렬한 비판에 부딪쳤다. “하지만 중력의 이론이 믿을 수 없을 만큼 굉장한 성공을 거뒀기 때문에 이 문제는 곧 흐지부지되었다…… 그들은 중력이 직접적인 접촉 없이도 생겨나는 새로운 종류의 힘이라고 간단히 생각해버렸다.”5) 그렇다면 전기력이 전송되기 위한 중간 과정이나 매개 물질이 필요 없다고 해서, 힘의 전달에 시간이 전혀 걸리지 않는다고 해서 말도 안 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쿨롱의 법칙(Fe = (1/4πε⁰)q¹q²/r²)과 뉴턴의 중력 방정식(Fg = Gm¹m²/r²)을 떠올려보라. 방정식의 형식이 동일하다는 게 일목요연하지 않은가! 상수인 1/4πε⁰와 G를 제외해보라. q¹q²라는 것은 두 입자 각각의 전하를 말하며 m¹m²는 두 입자(물체) 각각의 질량을 말한다. 그걸 거리의 제곱(r²)으로 나누어 주는 것까지 동일하다. 두 입자 간의 중력도, 전기력도 거리가 멀수록 작아진다는 것이다. 두 방정식이 이렇게 비슷할 수밖에 없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쿨롱의 법칙이 뉴턴의 역학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이다. 두 입자 간의 중력에 대한 방정식이 거의 그대로 두 전하 간의 전기력에 대한 방정식으로 바뀐 것이다. 뉴턴 역학이 갈수록 지배권을 강화해 가던 서양의 “18세기와 19세기 초에는 최고의 수학자들이 힘에 관한 뉴턴의 수학적 정의와 멀리서 작용하는 힘이라는 개념을 중력은 물론, 새로이 떠오르던 전기와 자기에도 적용하게 되었다.”6)

5) 로빈, 앞의 책. p. 132.

6) 로빈, 앞의 책. p. 137.

 

패러데이는 이런 생각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원격작용이라는 게 도대체가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무슨 텔레파시나 흑주술도 아니고 말이야…… “다른 매개체 없이 먼 거리에서 진공을 뛰어넘어 한 물체가 다른 물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력이라는 생각이…… 내게는 엄청나게 어리석은 것 같다. 제대로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어리석음에 결코 빠질 리가 없다.”7) 당연한 말이다. 그래서 패러데이는 “중력과 전자기력이 어떻게 하면 실제로 전송될 수 있는지를 좀더 자세히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 전송 과정을 도와줄 (공기나 소용돌이 같은) 매개체가 필요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자석과 전선 사이의 공간에서 뭔가 물리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음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자석에서 나온 힘이 전선에 닿아서 전자기 유도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 ‘뭔가’를 ‘장’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장이 눈에 보이지 않는 ‘끈들’을 자석 주위의 공간 전체에 방출한다고 상상했다. 이 끈들은 ‘역선(力線; 힘의 선)’이라고 불렀다. 자석에서 나온 자력은 마술처럼 공간을 뛰어넘어 곧장 전선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역선을 따라 공간 속을 여행했다.”8)

7) 로빈, 앞의 책. p. 137.

8) 로빈, 앞의 책. p. 137-138.

 

1 2

 

이 그림은 일견 유치하게 보인다. 우리가 어렸을 때 철가루들이 자석 주위에 이런 식으로 실제 배열되어 있다는 걸 보지 못했다면, 몇 곱절 더 유치하게 보였을 터이다. 패러데이의 이런 그림은 당대에 그야말로 유치찬란하게 보였다. 사실 패러데이는 가정 형편 등으로 인해 제도 교육을 받지 못한 무식쟁이였다. 그러니 고상하고 복잡한 수학을 구사할 수 없었던 것이고 결국 할 수 있는 건 이런 유치한 그림밖에 없었다. 그러나 반면 그는 전문 과학자들의 편견에 사로잡히지도 않았다. 어린이들처럼 상상의 힘을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었다. 나쁜 의미에서도, 또 좋은 의미에서도 그의 모델은 어린애의 것처럼 느껴졌다. 패러데이는 위대한 실험가였기 때문에 그의 모델에는 대단한 힘이 담겨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전문적인 학자가 아니었다는 사실, 게다가 그의 모델이 뉴턴 류의 물리학에 정면에서 반한다는 사실 때문에, 당시 그의 이론은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아니 조롱당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때 새 시대의 영웅이자 아인슈타인의 영웅 맥스웰이 등장했다(참고로 나는 아인슈타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두 사람을 맥스웰과 에른스트 마하라고 생각한다).

 

5. 맥스웰, 패러데이의 그림을 수학으로 승화시키다

 

맥스웰은 (헌데 이 맥스웰과 커피 브랜드 맥스웰은 무슨 관계지?) 당대의 흐름을 거슬러, 패러데이가 제시한 힘의 선 및 장 개념을 수용하여 그것의 동력학적 메커니즘을 수학으로 기술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 수학의 핵심은 벡터 미적분이라는 것인데, 이건 자세히 얘기하지 말기로 하자. 대신 아까 기억에 남겨 두시라고 했던 대목을 다시 한번 불러오자.

 

“그[외르스테드]의 예상과는 딴판으로 자침이 도선 쪽으로 끌려오거나 밀려나지 않고 항상 도선과 수직인 방향으로만 놓여 있었다. 그런데 당시에 알고 있던 중력이나 전기력 등 다른 현상에서 그렇게 이상한 방향으로 작용하는 힘의 예가 없었기 때문에 외르스테드는 무슨 영문인지 이해할 수 없을 뿐이었다.”

 

물론 이것 말고도, 맥스웰이 패러데이의 장 개념을 역학적으로, 수학 방정식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난관을 돌파해야 했다. 물론 우리는 모두 생략한다. 그 난관은 돌파하기가 무쟈게 힘들었다는 점을 알고, 곧장 맥스웰이 마침내 돌파했다는 해피한 결말로 이행해 가자. 이를 과학사가 쿠싱은 이렇게 간단히 표현했다.

 

 “맥스웰은 결국 톰슨이 자기장(B)과 에테르의 회전을 연결시킨 것을 받아들였고, 나아가 그는 전기장(E)을 소스와 싱크를 갖는 비압축 유체의 속도로 보았다.”9)

9) 제임스 T. 쿠싱. 『물리학의 역사와 철학』((주)북스힐, 2006). p. 257.

 

대체 무신 말인지 같은 나랏말인데 도대체가 알아먹을 수가 없다. 나도 그렇다. 그렇지만 이 얘기의 개요는 대략 이런 것이다. 외르스테드를 비롯해 수많은 과학자들이 추정도 할 수 없었던 그 장은, 즉 그 장을 이루는 매질(媒質)은 “구성 요소의 회전에만 저항성이 있고 비압축적”인 것이어야 했다. 다시 말해서 이 장(의 매질)은 압축이나 휨에 저항성을 갖는 일반 물체와는 달리, 회전에만 의존하는 퍼텐셜 에너지를 가지는 것이어야 했다. 쿠싱의 훌륭한 책 『물리학의 역사와 철학』은 해당 내용을 13장 「에테르 모델」에서 훌륭하게 기술하고 있으니 관심 있는 분은 필독 바란다.10) 어쨌든 맥스웰은 톰슨 등 다른 과학자들과 의견을 같이하며 이 장(의 매질)을 에테르라 불렀다. 아직 그 정체를 알 수는 없지만, 심지어 그런 게 실존하는지도 알 수 없지만, 그런 것은 있어야만 했다. 맥스웰은 에테르에 대한 장문의 기사에서 “소용돌이 선들은 영구자석 주위에 무한히 긴 시간 동안 존재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소용돌이를 가질 수 있는 그 어떤 유체도 점성이 있어서 소용돌이는 결국 열로 흩어져야 하기 때문에, 그는 또 다른 특이한 성질을 지닌 에테르 관념을 수용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것의 존재를 확신했고, 오히려 단순한 물리 영역을 뛰어넘는 에테르의 기능을 제시하기도 했다.”

 

맥스웰은 기존의 방정식들은 물론이고 기존의 수많은 데이터들을 한꺼번에 통합할 수 있는 전자기 방정식을 도출해 내는 데 성공하였고 이로부터 전자기학은 탄생하였다. 아울러 뉴턴 식의 원격작용 같은 터무니없는 개념 대신 전기와 자기가 어떤 역학적 메커니즘에 의해 전파되는지도 성공적으로 설명하였다. 문제는 그런 장, 그런 힘의 선이 정말로 있는지, 진짜로 전기나 자기는 그런 것을 매개로 전송되는지, 그렇게 전파되는 전자기 파동이라는 게 과연 실재하는지, 였다. “전자기파가 물리적으로 감지되지 않는 한, 이 아름다운 이론은 추측의 수준을 벗어날 수 없을 터였다. 실제로 그런 상황이 거의 25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그런데 1888년에 독일의 실험 물리학자인 하인리히 헤르츠가 전자기파의 존재를 직접적으로 증명하는 최초의 물리적 증거를 발견했다.”11)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파동을 ‘전파’라고 부른다. 그 이전처럼 전선을 통하지 않고서도, 전파를 공간의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다른 곳으로 이동시킬 수 있게 되었다. 단단한 벽 따위는 문제없이 통과해서 어디든지 갈 수 있었다. 이처럼 전파를 어디든지 널리 뿌리는 것(broadcast)을 우리는 방송(放送)이라고 부른다. 패러데이와 맥스웰의 전자기장은 본래 쿨롱의 법칙에서 이해할 수 없었던 (뉴턴 식의) 원격작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지성의 산물이지, 현상을 관찰하다 보니 발견된 게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게 밝혀진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10) 쿠싱은 맥스웰이 변위전류(displacement current)에 도달하게 되는 결정적인 장면과 관련하여 14장 「맥스웰 이론」에서 다음과 같이 중요한 주장을 한다. “일반적인 주장은 수학적인 모순을 제거하기 위한 순수한 논리적 논증을 통해 도달했다는 것이다…… 확실히 이것은……. 매우 깔끔하면서도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는 재구성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역사적 기록도 그것과 일치하는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맥스웰은 그 어떤 수학적 불일치에도 초점을 맞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리학의 역사와 철학』. p. 266. 이런 과학사가의 설명을 들으면 현장 과학자들, 특히 물리학자들은 갑자기 화를 내며 그런 디테일한 역사가 어찌 되었든 간에 결과는 수학적 모순을 해결하려는 것이었다고 따지고 든다(내가 직접 본 건 아니고, 물리학자나 그런 마인드를 가진 과학 저술가들의 책을 보면 그들은 흔히 그렇게 한다), 물론 더 많은 경우는 주류 과학사가들이다. 과학의 발전이 모순의 해소를 통해 나아간다고, 특히 수학 방정식들 간의 모순의 해소를 통해 진전한다고 믿고 또 일반인들에게도 그렇게 주입하는 자들 말이다. 그런 사람들은 쿠싱의 앞 인용문에 바로 이어지는 단락을, 아니 13장과 14장 전체를 꼭 읽어보시기 바란다.

11) 로빈, 앞의 책. p. 272.

 

6. 맥스웰 방정식이 예언한 것

 

나는 조금 아까 맥스웰이 벡터 미적분을 이용한 수학 방정식을 가지고 전자파의 전송 메커니즘을 기술했다고 말했다. 이 방정식에는 그런데 놀라운 게 또 하나 들어 있었다. 이 방정식에 따르면 전자기파의 속도가 초속 30만Km라는 고정된 값을 갖게 된다. 물론 진공 속에서의 얘기다. 그런데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보던 속도 아닌가? 그렇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신기하게도 전자기파의 속도는 당시 여러 차례 관측에 의해 확인되었던 빛의 속도와 동일했다. 그래서 자연스레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혹시 빛은 전자기파가 아닐까? 우리의 시각 기관이 포착하는 가시광선은 어쩌면 전자기파의 넓은 대역 중 일부가 아닐까?

 

또 이런 어려운 질문도 떠올랐다. 헌데 이상도 하지, 어째서 전자기파의 속도는 초속 30만Km로 고정된 값을 갖는 거지? 이건 빛을 발하는 광원의 운동 상태나 관측자의 운동 상태와 무관하게 빛이 늘 동일한 속도를 갖는다고 할 때의 문제와 동일한 난문이었다.

 

7. 정리

 

지금까지 하도 얘기가 빨리, 난삽하게 진행되어 뒤죽박죽이 되어 있으실 분들을 위해 정리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맥스웰의 장은 매우 특이한 역학적 메커니즘을 가져야 했다. 그런데 그 장을 이루는 물질은 지금까지 알고 있든 어떤 물체, 그 어떤 유체(流體)와도 비슷하지 않아야 했다. 그래서 그 미지의 물체의 이름을 일단 에테르라 명명하였다. 여기에 전자기파가 곧 빛일지 모른다는 발상을 결합시킨다. 그럼 얘기가 어떻게 되는 건가? 빛의 속도가 늘 일정한 것은 빛의 속도가 우리가 흔히 아는 물질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건가? 뭐라구, 이건 또 무슨 소리?

 

예컨대 소리는 공기 중의 분자들을 통해 전달된다(사실은 소리가 전달되는 게 아니라, 내가 목청을 울려 내 앞의 공기 중의 분자들에 충격을 주고, 그 충격에 의해 떨리게 된 입자들의 떨리는 패턴이 상대방의 귀청에까지 도달해서 귀청을 떨게 하는 것이다. 그 떨리는 패턴이 화자가 내는 말의 종류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우리의 귀에 다양한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가장 쉬운 예를 들자면, 큰 공연장에서 엄청나게 큰 음악 소리를 들을 때 스피커 앞에 서보면 내가 입고 있는 옷이 떨리는 것을, 실제로 내 가슴에 뭔가가 부딪쳐 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충격에 의한 지진파는 땅을 통해 전달된다. 연못에 돌멩이를 던지면 파문이 연못 끝까지 전달된다. 아인슈타인의 말대로 “우리 모두는 돌을 웅덩이에 던졌을 때 점점 더 큰 원으로 퍼져 나가는 파동을 보았다. 파동의 운동은 물 입자의 운동과 매우 다르다. 입자들은 단지 상하 운동을 할 뿐이다. 관찰된 파동의 운동은 물질 상태의 운동이지 물질 그 자체의 운동은 아니다. 파동 위에 떠 있는 코르크는 이것을 명확히 보여 준다. 왜냐하면 코르크는 물의 실제 운동을 따라 상하로만 움직일 뿐 파동에 의해 운반되지는 않기 때문이다.”12)

12) 『아인슈타인이 직접 쓴 물리 이야기』. p. 93.

 

요컨대 소리는 공기 중 분자들에 의해 전달되고, 지진파는 땅을 이루는 입자들에 의해 전달되고, 연못의 파문은 연못 물의 입자들에 의해 전달된다. 다시 강조하지만 전달되는 것은 입자들이 아니라 입자들의 진동 패턴이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관중석에서 파도 응원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금세 이해된다. 관중들이 파도 응원을 할 때 어떤 패턴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거대하게 이동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이동이 관중들에 의한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분명한 사실은, 관중들이 결코 옆으로 이동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단지 위 아래로 일어났다 앉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 파도가 일렁이는 듯한 패턴은 옆으로 이동한다. 이때 관중들의 상하 운동을 입자 운동이라 부르고, 그들의 운동에 의해 옆으로 흘러가는 패턴을 파동이라 부른다(참고로 물리학에서는 모든 현상을 이 두 가지로 분류한다). 다시 한번 요약컨대, 입자의 운동은 입자가 직접 운동하는 것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고, 파동은 입자들의 운동을 매개로 발생하는 것이다. 다시 파도 응원을 예로 들자면, 이때 발생하는 파도는 관중들의 운동이 직접 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역으로 관중들이 없다면 아예 발생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자! 그렇다면 빛은, 전자기파는 어떤 파동인가? 우선 빛(혹은 광파)은 소리(혹은 음파)를 비롯한 다른 파동들과 크게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 소리는 공기 중의 분자를 매개로, 즉 분자들을 매질(medium)로 해서 전파된다. 그래서 우주 공간에서는, 진공 속에서는 소리가 전달되지 않는다. 그러나 빛은 우리도 알다시피 가지 못하는 곳이 없다. 거의 진공이라 할 수 있는 우주 공간을 가로질러 초속 30만Km의 속도로 질주하는 것만 봐도 분명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빛이 진공 속에서도 전달되는 것이라면, 빛의 매질은 공기를 이루는 입자들이 아님에 분명하다. 지진파와 같은 땅도 아닐 것이고, 파문처럼 연못 물일리도 없다. 과연 빛의 매질은 무엇일까? 지금까지의 얘기를 다시 한번 정리해보자.

 

 “빛이 전달되려면 결과적으로 그 광파를 추진시키는 매질이 있어야만 했다. 소리는 파동인데, 파동으로서의 소리는 매질(매개가 되는 물질-인용자)이 필요하다. 실제로 물질로 이루어진 모든 것들은 음파를 전달하는 매질 역학을 할 수 있다. 어쨌든 엄마의 입에서 아이의 귀로 음파를 전달시키는 것은 공기이다. 진공에서는 음파가 전달될 수 없다. 음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나아가 다른 모든 파동 현상의 경우에서처럼, 광파에도 매질이 필요하다고 절대적 확신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 어떤 다른 매질과도 달라야 했다. 즉 빛은 아주 별난 매질을 필요로 했다. 그 매질 이 바로 에테르였던 것이다.

 

광파에 필요한 매질이 그토록 별나야 했던 까닭이 무엇이었을까? 우선 빛은 아득히 먼 별들과 은하계들에서 지구로 도달하는데, 우리가 가진 최고의 지식에 다르면, 별과 은하들은 우주 전역 곳곳에 분포되어 있다. 따라서 빛을 추진시키는 매질은 광활한 우주 공간을 모두 채우고 있어야 했다. 더욱이 빛은 초속 30만Km라는 어마어마한 속력으로 이곳저곳에 전파되기 때문에, 그 매질은 지극히 희귀한 속성들을 가져야 했다.

 

마지막으로 지구를 비롯한 행성들은 태양 둘레를 공전하면서 널리 퍼져 있는 이 매 질 속을 헤치며 나아가는데, 그런데도 매질이 행성들의 운동에 미치는 그 어떤 효과도 관찰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수백만 년을 헤쳐 운동해도, 지구의 표면이 매끄럽게 ‘마모되지도’, 또 그 매질로 인한 그 어떤 감속 영향 때문에 공전 속력이 느려지는 일도 없다. 그 속성이 무엇이든 간에 편재하는 매질 에테르는 행성들에도, 행성들의 운동에도 아무 작용도 하지 않았다. 정말이지 에테르는 별난 매질이었던 것이다.”

 

이 에테르는 과학에 어려운 과제와 동시에 새로운 빛을 안겨주었다. 나는 앞에서 당시에 광속 불변이라는 현상이 반복되어 관찰되었다고 말했었다. 광속을 측정하는 관측자가 정지해 있든, 고속으로 운동하고 있든, 광속은 언제나 초속 약 30만Km로 측정되었다고 했다. 이처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빛의 현상에 대해, 즉 광속 일정 현상에 대해 에테르가 해결의 실마리를 던져준 것이었다.

 

“빛의 매질로서의 에테르는 빛의 속력에 의미를 주었다. 어떤 비행기의 주어진 속력이 시속 850Km라고 할 때, 물론 그 속력은 지구에 대해 상대적인 속력일 터이다. 다시 말해서 지구-기반의 좌표계에 상대적으로 주어졌다는 뜻이다. 속력은 오직 그것이 어떤 특정 좌표계를 기준으로 했을 때에만 의미를 갖는다. 빛이 초속 30만Km의 속력을 가질 때, 관련된 좌표계는 에테르와 결부된 좌표계였다.”13)

13) 존 S. 릭던, 염영록 역, 『1905 아인슈타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랜덤하우스중앙, 2006). p. 111~112.

 

어쨌든 이런저런 이유로 과학자들은 이 에테르를 찾고 싶어 했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상정한 에테르의 속성상 그것은 발견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적어도 인류가 발전시킨 과학의 수준으로는 당분간 요원한 것이었다. 그러나 과학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비록 에테르를 직접 검출하거나 그 거동을 파악할 수는 없어도, 에테르가 있음으로써 야기되는 효과들은 검출할 수 있지 않겠는가? 오호……

 

만일 그럴 수만 있다면, 범우주적으로 정지되어 있다고 상정되는 에테르를 기준으로 지구가 정말로 어떤 속도로 이동하고 있는지, 그 절대속도를 잴 수도 있다. 태양이 정지했다고 했을 때 몇 Km라느니, 또 뭐가 정지했다고 쳤을 때 속도는 몇이라느니 하는 스타일 구기는 소리 집어치우고 곧장 지구의 속도는 얼마라고, 태양이나 달의 속도는 얼마라고 선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광속 불변이라는 현상도 결정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었다. 나아가, 느끼신 분도 있겠지만, 이런 에테르가 발견된다면, 아니 그 효과가 간접적으로라도 측정된다면, 갈릴레이의 상대성원리는 과학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뉴턴의 절대시간, 절대공간은 유일한 과학의 보좌에 등극할 것이었다. 자! 이런 마당에 실험에 뛰어든 과학자들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실험이 바로 저 유명한 ‘마이켈슨-몰리’ 실험이었다.

 

긴 글 읽으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을 줄로 안다. 그리고 이쯤 되어 당신도 내가 왜 이렇게 길게 이야기를 해야 했는지 어느 정도는 공감하셨을…… 줄로 믿고 싶다. 마이켈슨-몰리 실험은 지금까지 얘기한 모든 내용이 한꺼번에 집약된 19세기말에서 20세기 전반까지 이어진 초정밀 실험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정녕 놀라운 것이었기에, 상식을 아예 초월한 것이었기에, 실행된 실험은 결국 모두 실패였다. 아무리 반복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상상을 초월한 결과였고, 이해할 방법이 없었다. 그 난국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아인슈타인이었다. 우리는 다음 주에 ‘마이켈슨-몰리 실험’을 보게 된다. 사실 그 내용 자체는 그리 복잡하지 않고 오히려 무척 간단하다고까지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실험을 왜 해야 했는지, 왜 과학자들이 그 결과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는지, 그리고 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혁명적인 것이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걸 위해 우리가 짧지 않은 길을 이제까지 걸어온 것이다. 수고한 만큼 다음 주에는 평탄 대로가 좍! 펼쳐질 것이다. 그렇게 기대해 주시기 바란다. 아니, 기도해 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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