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일기

6. 석류에게 서운한 것 두 가지 (1)

- 송이

mimyo
석류에게 서운한 것 두 가지
_그중에 첫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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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이 흰 고양이가 양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엎드려 있거나, 몸을 꼿꼿이 세우고 앉아 있으면 작고 동그란 양발이 꼭 밀가루에 데굴데굴 굴린 찹쌀떡처럼 보인다. 발바닥에 있는 분홍색 혹은 까만색의 말랑거리는 살은 젤리 같다. 그래서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고양이의 흰 발을 찹쌀떡이라고 부르고, 발바닥은 젤리라고 한다. 고양이 발바닥에 있는 이 젤리는 피부 안쪽에 신경이 많아서 아주 민감하다. 또한 사뿐사뿐 조용히 고양이 걸음을 걸을 수 있도록 움직일 때 소리가 나지 않게 해 주고, 미끄럼도 방지해 준다. 도둑고양이라는 말, 고양이 앞에 도둑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도 이 젤리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물론 석류는 예외다. ‘에헴, 나 여기 지나간다!’라고 주장하듯 걸을 때마다 콩콩 소리가 난다. 밖에서 먹잇감을 잡기 위해 살금살금 걸어 다닐 필요가 없어서 그런 건지, 젤리가 고장이 난 건지 우당탕탕 소리를 내며 달리고, 펄쩍 뛰어오를 때도 있다. 밤에는 움직이는 소리가 더 잘 들린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우면 석류의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창가에 앉아서 꼬리로 낚시라도 하는 것처럼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살랑살랑 움직이다가도, 방구석에 있는 박스에 앉아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허공을 멀뚱멀뚱 바라보다가도, 갓 구워낸 식빵처럼 방석에서 웅크리고 있다가도 내가 불을 끄고 누우면 침대로 올라온다. 그럴 때 들리는 콩콩콩 발자국 소리가 반갑다. 너도 나와 함께 꿈을 꾸러 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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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는 찰싹 달라붙지도 않고, 폭 안기지도 않는다. 꼭 등이나 옆모습을 보여주며 은근하게 기어들어 와 몸을 기댄다. 다른 고양이들보다 덩치가 커서 묵직한 탓에 등을 바짝 붙이고 기대면 숨을 쉴 때마다 배가 들썩거리는 것도 느껴지고, 사람보다 체온이 높아 뜨끈뜨끈하다. 석류는 마침 쓰다듬기 적당하게 내 배 부근에 눕는다. 나는 가만히 머리를 쓰다듬다가, 등을 거쳐서 볼록 튀어나온 배를 통통 퉁기며 간지럼을 태우듯 손가락으로 살살 긁는다. 그러면 석류가 화들짝 놀라서 배는 만지면 안 된다고 손을 깨물려고 하는데, 몸이 길고 배가 나와서 그런 건지 얼굴이 채 손에 닿지 않는다. 사실 더 노력해서 허리를 굽히면 충분히 깨물 수도 있지만 시늉만 하면서 겁만 준다. 이때 좀 더 장난을 치면서 배를 마구 문지르면 낚시 바늘에 걸려 파닥거리는 생선처럼 고양이가 몸부림을 치고 깨물려고 든다. 마지막으로 엉덩이를 찰싹 때리면 움찔거리더니 포기하고 배를 마음껏 만지도록 내버려 둔다. 보통은 이렇게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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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하루는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는데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침대 위에 아무런 기척도 없다. 사람이 있는 것과 다르게 그것보다 모자라고 희미한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눈을 뜨니 석류가 창가에 계속 앉아서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어차피 방이 좁아 아무리 멀리 있어 봐야 내 옆에서 채 2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에 있다. 그런데 항상 잘 때가 되면 슬그머니 침대로 기어올라 오던 고양이가 2미터나 멀게 느껴진다. ‘내가 오늘 석류에게 뭐 잘못한 일이 있었나?’, ‘오늘은 석류가 혼자 있고 싶은 건가?’, ‘고양이의 앞발과 배를 너무 많이 만진 건가?’ 이렇게 여러 가지 이유를 따져보았다. 그날은 석류가 침대 위로 올라올 때까지 잠들지 않았다.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을 쩌억 하더니 나지막한 발자국 소리를 내며 침대 위로 기어올라 오자 그제서야 ‘얘가 오늘 나랑 각방을 쓰고 싶을 만큼 내가 크게 잘못한 일은 없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그러고는 괜히 서운해서 애꿎은 고양이 엉덩이를 팡팡 두드려 침대 밖으로 쫓아버렸다. 석류는 뒷발질로 나를 걷어차고 자기 방석으로 도망가서 분풀이를 하듯 그루밍을 해댔다. 이제야 평소랑 똑같다는 생각이 안심하고 잠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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