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봄이 사는 마을

3. 담당이 뭐예요?

- 봄봄(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

“내가 할게.”

우리가 이구동성 하는 말이다. 전 직장에서 각자 베테랑급으로 일했던 우리는 제 나름대로 ‘열심’을 빼면 시체였다. 어지간한 ‘열심’으로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다.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성향,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태도, 몸에 밴 성실함, 그것이 우리가 가진 미덕이자 자부였다. 그러나 미덕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미덕이 필요충분조건이 되기까지 미세한 균열은 빨리 감지된다. 꼭짓점 세 개가 나란히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맞닿아야 삼각형을 이룰 수 있기까지 공동체의 역할은 무엇일까.

 

“담당이 뭐예요?”

우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여기(공간 비비)서 뭐해요? 라고 묻는 반면 우리를 아는 사람들은 너는 뭐해? 라고 묻는다. 간혹 통화중에 바빠? 물으면 안 바빠, 뭐해? 물으면 책 봐, 그러면 팔자 좋구나 라던가 부럽구나 라던가 스트레스는 안 받겠네 등등, 정규직들의 답변이 돌아온다. 공간에서 일상의 짧은 순간은 그렇다.

 

2009년 6월, K는 ‘비비 공동체 논의를 위한 워크숍’을 제안하면서 나중에 J는 무엇을 하면 되겠고, Y는 무엇을 하면 좋을 것 같고, 라며 각 개인의 능력이 발현할 수 있는 담당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 후로 1년이 지난 2010년 6월, 공간을 마련하면서 함께 읽은 책 『드림 소사이어티』가 생각난다. 기업에서 부족의 형태로 변화하고, 힘든 일에서 힘든 재미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그리면서 ‘미래의 직함들’을 상상하는 부분이 나온다. 책에는 마음과 기분 담당 이사, 지적 자본 담당 이사, 이야기꾼 실무자 등 소개되어 있었는데 우리도 각자 직함을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현재, 우리의 담당은 이렇다.

 

계획하는 자 K, 행동하는 자 J, 정리하는 자 Y가 있다. 큰 골격은 그렇다. 그렇다고 내 담당은 ‘정리’야 라고 말할 수는 없어서 그냥 홈페이지 관리해요, 순화해서 말한다. 프로그램명으로 말하자면 요가지도자인 J가 생활요가를 하고, 소설을 좋아하는 Y가 소설읽기 모임을 하고, K가 걷기여행과 공동체상영, 비혼여성들의 담론의 장인 비혼객잔을 담당한다. 손님 접대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친절담당은 J, 상담담당은 K, Y는 대면 정도를 담당한다. 공간 전체의 담당은 space와 link. 우리의 일상이 모여서 이루어진 모습은 대략 이렇다.

 

미세한 균열은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생긴다. 그것은 스타일에서 드러난다. 이 엄청난 취향과 방식의 차이라니. 내게 없는 것을 가진, 그래서 부러움을 주는 호감의 다름이 있는가 하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그래서 노력해야 하는 불편한 다름이 혼재한다. 어떤 것이든 상대방을 (이해할 수 없겠지만) 이해하고자 하는 ‘긍정적 사실’을 찾아내야 한다. 갈등이 점화하기 이전, 우리는 포착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비비만 아니면 젠작 얼굴 안 봤다.” 그간의 신뢰가 이 친구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가를 상기시킨다. 상대방도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 나또한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 우리는 많은 것을 파악하고 있다.

 

개인적이고 독자적으로 일을 진행하는 J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은 “하지 말라!”이며 해야 할 말은 “그렇게 해!”, 좋은 것을 함께 나누며 호응과 동참을 원하는 K에게 할 말은 “이렇게 하면 되나요?” 하지 말아야 할 말은 “관심 없는데요.” 나는 그들이 꽉 채우고 난 빈틈을 공략한다. 오늘은 비비의 구성원인 H가 운영하는 농가레스토랑에 일을 도와주러 간다. 일손이 모자라 K를 따라 동행한다. J는 요가를 하느라 공간을 지킨다. 비리비리한 나는 스페어다. 무거운 쟁반은 들 수 없어 화분의 먼지를 닦는다. 에어컨과 냉장고 위 먼지도 닦는다. 창틀의 먼지와 바닥의 얼룩을 닦는다. 말하지 않으면 알아볼 수 없는 청소를 한 후 K와 H에게 말한다. “제가 오늘 청소 좀 했습니다.” “어디?” 물어보기 전에 대답도 했다. 냉장고, 에어컨, 창틀, 바닥, 화분 등등. 오늘의 담당은 닦기. 마음은 갈고 닦아야 하고, 이름은 불러주어야 하고, 역할은 만들어 주는 것. 공동체의 역할은 각자에게 담당을 만들어 주는 것. 그 담당에서 긍정적 사실을 찾아내는 것.

 

2013.11. 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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