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무소불위의 ‘전원개발촉진법’

- 신광호

밀양을 알기 위한 하나의 ‘키워드’

 

‘전원개발촉진법’은 1978년 유신정권 말기에 제정되었다. 전원개발사업자의 선정부터 전원개발사업 실시계획의 승인과 주민 등의 의견 청취, 그리고 사업 시행에 이르기까지 온갖 부조리로 점철되어 있는 이 법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밀양 송전탑 건설의 법적 근거가 된다. 때문에 전원개발촉진법을 파악함은 밀양에서 벌어지고 있는 절차상의 문제를 드러냄과 같다.

또한 제2의 혹은 제3의 밀양 사태를 예상할 때에 전원개발촉진법은 마찬가지로 법적 근거로서 뿌리의 역할을 할 터이기 때문에 이러한 앎은 더욱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개발독재 시대에 오로지 사업자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법이 지금에까지 와서 피해 주민들에게 어떠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 그런 메커니즘을 드러내는 일은 밀양의 사태(혹은 이와 유사한 사태)의 본질에 한 발짝 다가서는 일이 되리라고 기대된다. 그리하여 ‘밀알: 밀양 알기 프로젝트’는 밀양을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 가운데 하나로 ‘전원개발촉진법’을 택하여 우선 살펴보고 이러한 법이 실제 밀양에서 절차상의 문제로 어떻게 드러나고 작용하였는지를 알아보기로 하였다.

 

전원개발촉진법이란

 

“이 법은 전원개발사업(電源開發事業)을 효율적으로 추진함으로써 전력수급의 안정을 도모하고,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는 전원개발촉진법 제1조인 목적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전원개발사업(전원개발촉진법 제2조-2-가. 전원설비를 설치, 개량하는 사업 / 나. 설치 중이거나 설치된 전원설비의 토지 등을 취득하거나 사용권원(使用權原)을 확보하는 사업)은 전기사업법 제7조에 따라 허가를 받은 발전사업자, 송전사업자 및 방사성폐기물 관리법 제10조에 따른 방사성폐기물 관리사업자(이하 전원개발사업자)가 시행한다.

전원개발사업 실시계획의 승인과 관련한 ‘전원개발촉진법 제6조’에 들어서면 절차상의 부조리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전원개발사업자는 전원개발사업 실시계획(이하 실시계획)을 수립하여 산업통산자원부장관의 승인만 받는다면 19개의 다른 법령(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도로법, 사도법, 하천법 등등)에서 다루는 인허가를 전부 거쳤다고 인정받게 되어 지방자치단체나 주민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도 일방적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된다. 도로법 등은 다른 부처나 지방자치단체로 하여금 인허가 과정을 통해 여러 문제를 검토하도록 하는 기회를 제공하지만, 유독 전원개발촉진법만은 이러한 과정을 원천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깊이 나아가서 토지와 관련한 제6조2와 제6조3를 살펴보면 실시계획의 승인이 떨어진 후에 전원개발사업자는 전원개발사업에 필요한 토지 등을 수용하거나 사용할 수 있다. 또한 ‘타인의 토지에 출입하는 행위’와 ‘타인의 토지를 일시 사용하는 행위’, 그리고 ‘나무, 흙, 돌이나 그 밖의 장애물을 변경하거나 제거하는 행위’가 가능하다.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법이다.

입지 선정 절차와 피해 보상과 관련해서도 전원개발촉진법은 문제가 된다. 송전선로 설치 지역 선정에 관련된 관련 법률은 전원개발촉진법 내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한전의 내부 방침에 의해서 결정된다. 한전은 내부 관계자, 사업 관계자, 주민 대표, 지역 전문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갈등조정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입지선정자문위원회’를 구성하여 운영하는데, 위원회의 결정은 아무런 강제력이 없다(위원회의 설치를 아예 생략하는 일조차 가능하다). 2009년 개정에 의해 주민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하는 내용이 추가되었지만 이마저도 한전의 결정에는 영향을 크게 미치지 못하는 요식 행위로서 진행될 따름이다.

피해 보상과 관련해서는 ‘전기사업법’에 따르게 되는데, 여기에 규정된 내용은 매우 협소하다. 밀양의 전원개발사업자인 한전은 사실상 법률적 근거가 아닌 내부 규정에 따라 진행하여 왔다. 이러한 보상은 간접적이고 임의적이기 때문에 엄밀한 기준이 되지 못한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이는 사업에 찬성하는 주민과 사업에 반대하는 주민을 적대하도록 하여 내부에 분열을 일으키는 수단이 된다. 이와 같은 ‘보상’은 공동체 내에 균열을 일으키고 일부 주민들을 고립시키는 ‘무기’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돈은 필요 없으니 이대로만 살게 해달라!” 밀양 주민들의 외침은 오랫동안 일구어 온 밀양에서의 삶을 지켜 내려는 간절한 요구임이 분명할 테지만 보상 제도가(내용은 차치하더라도) 성격에 있어서부터 불온한 의도를 내포하고 있음을 표출하고 있다.

 

밀양에서의 비극

 

”내가 죽어야 해결된다.” 이치우 할아버지의 분신은, 위의 문제들이 불러일으킨 비극이다. 2012년 1월 16일 이치우 할아버지는 용역들과 승강이를 벌이다 분신 자살을 했다. 이날 오전 4시, 이치우 할아버지와 그의 형제들이 함께 일구어 온 논에 오십여 명의 용역과 굴착기가 들이닥쳤다. 주민들은 영하의 추위가 몰아치는 논바닥 위에서 막아섰고, 용역들은 저녁이 되어서야 내일 다시 돌아오겠음을 알리며 중장비들을 그대로 두고 돌아섰다. 그리고 이치우 할아버지는 보라마을 어귀 다리에서 분신했다. 이후 한전 등은 과실사와 같은 터무니없는 의혹을 제기했다.

절차상의 문제들이 피해 주민들을 어떻게 극단으로 몰아가는지를 보여 주는 참담한 사건이라 하겠다. 전원개발사업 실시계획의 승인을 받은 한전은 전원개발촉진법 제6조2에 의해 이치우 할아버지의 토지를 수용할 수 있었다. 또한 제6조3을 근거로 하여 용역들은 언제든지 토지로의 출입이 가능했다. 내일 돌아오겠다는 용역들의 선포는 그날 온종일 이어진 승강이가 송전탑이 결국 들어서게 되는 날까지 끝나지 않으리라는 절망적인 심정을 이치우 할아버지와 주민들에게 심어 주었을 터였다. ‘전원개발촉진법’으로 인해, 전원개발사업자는 모든 물리적인 행동들을 거리낌없이 행할 수 있고 시간적인 주도권까지 쥐게 된다.

 

지속과 확장: 새로운 전선(戰線) 형성

 

현재의 긴박한 상황을 보았을 때에 밀양의 싸움은 송전탑 건설 저지에 초점을 맞추어 이어 나가지 않을 수 없다. 공사를 강행하여 밀양의 사태를 이미 끝난 일로 서둘러 선포하기를 바랄 터인 정부와 한전에 맞서기 위해서는 ‘송전탑’이라는 최전선에 서서 적극 대항해야 한다. 밀양의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소리 높여 외쳐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중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밀양의 사태가 정부와 한전의 의도대로 끝을 맺게 된다고 하여도 제2의 혹은 제3의 밀양 사태를 또한 염두에 두고 싸움을 지속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보아 전원개발촉진법의 전면 개정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업자의 편의만을 오로지 고려하여 만들어진 전원개발촉진법은 개발독재 시대 유신 악법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유신정권에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녹슨 쇠사슬 다발 가운데 하나를 끊어 버리려는 이와 같은 시도는 밀양 사태를 이미 종결된 일이라는 틀에 가두려고 하는 정부와 한전에 반하여 새로운 전선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모른다. 지금의 싸움을 지난날의 악법과의 절연으로, 그리고 군사정권의 어떠한 정당성을 부여하려 하는 현정권에 대한 저항으로 확장할 수 있을 때에 밀양 사태의 근원적인 뿌리를 잘라 내고 나아가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일로 밀양의 사태를 만인에게 각인시키려는 정부와 한전의 의도에 포섭되지 않은 채로 새로운 전선(戰線)에서 이전까지의 싸움을 지속할 수 있을 터이다.

밀양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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