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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문제, 식량 문제는 실재하는가?

- 박성관

인구 문제나 식량 문제는 인류의 대표적인 근심거리 중 하나로 간주되곤 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그런 문제 따위는 실재하지 않는다. 수많은 미디어에서 이 문제를 계속 떠들어대고, 사람들도 진심 어린 근심과 걱정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는 한다. 그렇지만 그건 지루한 이데올로기 드라마일 뿐이다.그것도 몇 백 년도 더 된 드라마의 재탕 삼탕! 조금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건 우리의 현실적인 걱정거리가 아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그 문제를 스스로 걱정한다고 여기며, 또 실제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도 믿는다. 내가 보기에는, 정말이지 이데올로기적 실천의 전형적인 예이다. 매트릭스도 이런 매트릭스가 없다.

나는 인구나 식량 분야에 관한 전문가도 아니며, 굳이 따지자면 보통 사람보다 지식도 적은 편에 속한다. 그렇지만 나도 수많은 인구 중 한 명이고, 날마다 많은 음식을 먹고 마시며 살아가는 사람임에 분명하다. 그러므로 내게는 이 “문제”에 대해 말할, 사람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충분한 자격이 있다. 물론 당신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인간이 아니거나 혹은 솔방울하고 이슬만 먹고 사는 인어가 아니라면 말이다. 들어보면 아시겠지만 나의 견해는 특별한 데이터나 어려운 책을 읽어서 얻어진 게 아니다. 당신과 마찬가지로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갖게 된 느낌과 의구심일 뿐이다. 그러니 우리 상식적으로 함 토론해보자.

 

1. 인구 “문제”?

 

우선 인구 문제부터. 나는 일단 이 인구 “문제”라는 표현이 늘 맘에 걸린다. 사람들이 문제라니…… 그래선 안 될 이유는 없지만, 사람만이 특별한 존재는 아니라는 게 내 소신이기는 하지만, 별 근거 없이 생명체들 자체를 문제라고 명명하는 게 난 싫다. 노인 문제, 이주 노동자 문제 같은 말도 그렇다(나는 이것이 사회, 개인, 문제, 이렇게 세 가지 항 속에서 작동되는 사회과학의 기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은 이 문제는 더 건드리지 말기로 하자.

심각하다고 하는 인구 문제로 바로 들어가 보자. 자! 당신께 물어보겠다. 인구 문제란 뭔가? 당근 인구가 너무 많고 앞으로도 점점 더, 그것도 빠른 속도로 많아진다는 것이겠다. 이번에는 당신께 그런 추상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질문 대신, 실제 질문, 현실적인 질문을 해보겠다. 지금 결혼하는 신혼부부들은 평균 몇 명의 자녀를 두는 게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겠는가?

나는 어린 시절에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를, 그 뒤에는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는 구호를 듣는 데 익숙했다. 인구 폭발이라는 표현이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오르고, 지구를 그린 어떤 포스터에서는 버러지처럼 빽빽한 인구들에 찡겨 과잉 인구들이 지구 밖으로 떨어지기도 했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러니 요즘과는 사뭇 다른 풍경 속에서 자란 셈인데, 몇 십 년 만에 세상이 변해도 참 많이 변했다. 정관수술을 하면 예비군 훈련에서 빼 주던 게 엊그제 같은데, 또 몇 년 전부터는 자녀가 많은 사람에게 무슨 혜택을 준다나 뭐라나 하는 식으로 상황이 정반대가 되었다. 웃기면서도 슬픈 ….. 어쨌든 간에 다시 한 번 질문해보겠다. 지금 결혼하는 신혼부부들은 평균 몇 명의 자녀를 낳는 게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겠는가?

30년도 더 이전의 과거였다면, 제 먹을 건 타고난다며 다다익선을 다복한 것으로 권하였을 터이다. 뭐 20년 전이라면 아마도 두 명 정도? 그 이후 얼마 전까지는 은근히 좀 덜 낳았으면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럴 때는 애를 서넛 낳았다 하면 여자를 무슨 개나 그런 짐승처럼 여기고, 집 안에 틀어박힌 조선 시대 여편네 보듯 하기도 했다. 무릇 모던한 여성이라면 애는 한둘만 낳고 출산을 졸업한 다음, 얼른 캐리어 우먼이 되어 자아를 실현할 일이었다. 그런데 이후 또 사회 분위기는 일변하였다. (초)고령화 사회로 가는 추세와 함께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흐름이 조성되면서 아이를 많이 낳는 게 애국이라느니 하는 황당한 구호까지 등장했다. 어쨌거나 아이를 너무 적게 낳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신혼부부라면 몇 명의 자녀를 낳는 게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겠는가?

어떤가, 좀 헷갈리지 않는가? 인구 문제가 심각한 걸 생각하면 적게 낳아야 할 것도 같고, 또 아이를 너무 안 낳는 추세를 고려하면 능력 닿는 한 많이 낳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하다. 당신께 질문을 드렸지만,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소위 추상적인 “인구 문제”가 아니라 구체적인 문제로, 바로 나와 이웃의 문제로 생각하면 그리 간단치만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얘기를 들으시고도, 그렇지만 인구 문제가 심각하다는 건 어쨌든 사실 아니냐 싶은 분들이 많을 것같다. 뭔가 심각한 인구 문제가 있다는 느낌! 그건 과연 무엇일까? 잘 생각해보면 결국 문제는 애는 줄어들고 늙은 것들은 많아진다는 것으로 압축된다. 설마 이렇게 직설적으로 표현할 사람들은 없을 테지만, 까보면 결국 그런 문제라는 거 아닌가! 만일 그렇다면, 우리가 인구 문제, 인구 문제 말하지만, 사실은 인구가 많다는 것보다도 늙은이들이 빨리 안 죽고 버티고 있는 게 부담스럽다는 말이겠다. 반대로 젊은 부부들은 점점 더 아이를 안 낳는 경향을 보이니 걱정이라는 것이고……

그런데 어떨까, 당신은 혹시 인구 문제가 심각해서 실제로 불편하거나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가? 구체적으로 당신에게 말이다. 누가 내게 묻는다면 글쎄…… 당장 떠오르는 것은 교통 지옥, 전세든 자가든 살 집 구하기 힘들다는 것…… 대충 이런 것들인데…… 뭐가 더 있는진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이미지를 떠올릴 것 같긴 하다. 일단 그런 게 문제라고 해보자.

그런데 그게 인구가 많아서 생기는 문제인가? 우리나라의 인구가 너무 많아서 생기는 문제인가? 정확히 말하자면 서울 등 대도시에 사람들이 과잉 밀집되어 발생하는 문제 아닌가(사실 교통 지옥 문제에는, 필요 이상으로 차를 많이 생산하고 필요 이상으로 차를 많이 사대는 폐해도 크게 관련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말로 인구가 국토 크기에 비해 너무 많은가? 나는 이에 대해 뭘 읽어본 적도 없고, 공부해본 적도 없어서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렇게는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인구 문제라고 말하면서 실제로 떠올리는 영상들은, 추상적인 인구 문제와는 꽤나 거리가 먼 것들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마치 자기의 진짜 근심사인 것처럼 인구 문제를 걱정하고 토론도 하는 것은 왜인가?모든 인간들의 근원적 반성과 전 지구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하느니 어쩌느니 하며 호들갑 떠는 건 왜인가?

나는 방금 우리의 주요한 문제가 추상적인 인구 문제이기보다는 대도시 과잉 밀집 문제라고 말했다.아마 동의하시는 분도 계시고, 달리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이에 대해 더 깊이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다른 방식을 택해보자. 둘 중 어느 한쪽이 맞다고 가정해보는 것이다.

우선 우리의 진짜 문제가 대도시 과잉 밀집의 문제라고 해보자. 그럼 어떻게 되나? 나나 당신의 삶에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가 있느냐는 것이다. 이것이 정말 심각한 문제고 근심거리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여 해결하거나 최소한 개선해야 할 것이다. 특히 대도시에 들어오려고만 하고, 한번 들어오면 안 나가려 하는 나나 당신들 대다수가 그렇게 해야 한다. 어떤가? 상당히 부담스러운 결론 아닌가?

반면 우리의 문제가 추상적인 인구 문제라고 해보자. 사람 수가 너무 많은 게 문제라고 한다면, 현재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은 이 문제에 대해 책임이나 잘못이 없고, 딱히 뭘 할 것도 없다. 대부분 둘 이내로 자식을 낳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인구 문제는 심각하다는 공감대가 널리 퍼져 있다. 그렇다면 그 심각하다는 문제는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가난한 주제에 계속 애만 많이 낳을 것 같은 저소득층 혹은 가상의 “농촌”? 뱃가죽이 등에 붙어 쓰러져 죽어 가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사진(수많은 국가들이,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도, 통상 그냥 아프리카라고 불리는 그곳)? 이 경우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필요는 거의 없으면서도, 자신은 매우 중대한 문제를 걱정하며 살고 있다고 자위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런 매트릭스가 형성되고 또 강화되는 데 무의식적으로 공모하고 있다.

 

2. 인구 문제와 식량 문제의 결합

 

여기까지만이라고 하면 문제는 그리 심각하지 않다. 그러나 현실은 여기서 몇 걸음 더 나아간다. 목사였던 토마스 맬서스 이래로 인구 문제는 늘 식량 문제와 결합되어 사람들을 죄의식과 공포, 그리고 긴박한 해결책으로 내몬다. 맬서스는 저 유명한 저작 『인구론』(1798년)에서 식량은 등차수열적으로 증가하는데 인구는 등비수열적으로 증가한다는 원리를 제시한 바 있다(흔히 이 두 수열이 산술급수와 기하급수라고 번역되곤 하는데, 수학 용어에 대한 기억을 잠시만 떠올려보면 잘못된 번역임을 금세 알 수 있다). 맬서스와 『인구론』은 대부분의 경우 이렇게 간단히만 요약 소개된다. 그러다 보니 이 목사가 무슨 심모원려(深謀遠慮)라도 한 듯 보이지만, 진실은 그와 딴판이다. 그는 당시 최저한의 사회복지에 해당하는 구빈법 등에 결사반대하면서 가난한 자들은 애 좀 작작 낳으라는 타박을 한 것에 불과하다. 그가 보기에 정부에 의한 사회보조나 지원은 당장 중단되어야 할 것이었다.

당시 영국은 자본가들의 탐욕에 의한 맹목적 자본 축적이 빈곤층의 목을 조이고 있었다. 그런 것을 맬서스의 『인구론』이 등장하여 마치 자연의 섭리인양, 그리고 수학적인 자연법칙에 의한 것인양 포장해 준 것이다. 당시 유럽의 지배층에게 열렬히 환영받았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내가 무엇보다도 황당하고 분개하는 것은 이런 자가 기독교 목사라는 사실이다. 기독교도들이 절대시하는 하나님이 세상을 짓고 만물을 창조하시면서 뭐라 하셨던가!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시지 않았던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기독교 목사라는 자가 하나님의 지상(至上) 명령을 이렇게 생까도 되는 것인가! 물론 그는 『인구론』에서 수많은 사례들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 사례들은 대부분 맬서스의 지독한 계급적, 인종적 편견이 흠뻑 배어 있었다. 『인구론』 얘기는 이만 하도록 하자. 당시 현실을 거꾸로 왜곡했다는 점에서 반(反) 인간적이고, 그 뒤로도 예측이 틀린 것으로 유명해진 이 반 과학적인 책! 그걸 뭐 200년도 더 지난 뒤에 우리가 굳이 반박할 필요까지 있겠는가(물론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내가 말한 것과는 반대로 대단한 사상서인양 요약 소개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고전은 남의 말(특히 인터넷) 듣고서 그런 내용일 거라 지레짐작해선 곤란한 것 같다. 내가 직접 읽어보기 전에 속단하지 말자)! 우리의 구체적인 현실을 가지고 얘기해보자.

 

3. 왜 사람들은 굶주리는가?

 

그 누구더라, 현빈인가가 나왔던(잘 기억이 안나네……) 드라마에서 자주 노출되어 더 유명해졌던 책.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갈라파고스)를 읽어보셨는지? 아들과의 대화 형식으로 쓰여진 그 책에서 지글러는 이렇게 말했다. “현재로서는 문제의 핵심이 사회구조에 있단다. 식량 자체는 풍부하게 있는데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확보할 경제적 수단이 없어. 그런 식으로 식량이 불공평하게 분배되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매년 수백만의 인구가 굶어 죽고 있는 거야.” 그러자 아들이 곧장 이렇게 질문한다. “그러니까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먹여 살릴 만한 식량은 충분히 있다는 건가요?”

 

“그뿐 아니란다. 지구는 현재보다 두 배나 많은 인구도 먹여 살릴 수 있다. 오늘날 세계 인구는 60억 정도(세계 인구는 2006년 2월 26일 현재 65억 명을 넘어섰다)되지. 하지만1984년 FAO의 평가에 따르면, 당시 농업생산력을 기준으로 계산하여  지구는 120억의 인구를 거뜬히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거였어.”(p. 37).

 

당신도 얼추 아시다시피 현재 세계의 식량 문제 또한 농업 생산성이 낮아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농업 생산성이 높아서 식량은 늘 남아돌고 있으며, 세계적인 식량 자본들은 그런 남아도는 식량을 마구 버리고 있다. 그건 자국 농산품의 가격 폭락을 방지하기 위해서기도 하지만, 남쪽 국가들이 싼 가격에 농산물을 구입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인위적인 가격 조작이기도 하다. 왜 이 놈의 자본가들은 자기들이 그토록 신성시하는 수요-공급의 법칙이 자연스레 흘러가도록 하지 않고, 가격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걸까? 자기들이 계획경제 신봉자들이야? 무슨 사회주의자들도 아니고 말이야…… 그럼 유럽이나 미국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아예 모르고 있을까? 그럴 리가 없다. 여기서 지글러는 나와 비슷한 얘기를 한다.

 

“맬서스 이론은 근본적으로 틀렸지만, 심리적 기능을 충족시키거든. 날마다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구호시설에서 웅크린 채 죽어 가는 아이들. 수단의 덤불 속을 마른 몸으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는 것은 일반적인 감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일이거든. 그래서 양심의 가책을 진정시키고, 불합리한 세계에 대한 분노를 몰아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맬서스의 신화를 신봉하고 있어. 끔찍한 사태를  외면하고 무관심하게 만드는 사이비 이론을 말이야.”(p. 42~43)

 

물론 다양한 식량 문제들을 순전히 자본의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식량 문제를 농업 생산성 문제와 곧장 등치시키는 건 현실하고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 거 아닌가! 막연히 인구 문제가 어떻고, 식량 문제가 어떻고 할 게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자신의 주변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할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본가들이 만든 매트릭스 속에서, 미디어들이 연료를 공급하는 매트릭스 속에서 울고 웃으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다음 주에 우리는 그 매트릭스에서 벗어나 이렇게 물을 것이다. 나에게 식량 문제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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