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일기

#8. 석류에게도 친구가 있었으면

-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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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4층짜리 원룸 건물에 산다. 반지하가 1층이고, 무허가 간이 건물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건물에 붙어 있는 것 같지도 않은 옥탑까지 합쳐서 4층이다. 나는 2층에 살고 있다. 우리 집에 오려면 언덕을 올라와야 한다. 컨디션에 따라 다른데 그 어떤 날도 언덕을 오르는 일이 만만하지는 않다. 2년이 넘도록 동생 입에서는 언덕에 대한 불만이 마르지 않고 쏟아진다. 동생 방에 있는 창문에서는 언덕길이 내려다보인다. 인적이 드물지만 그래도 드문드문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이 길로 지나다닌다. 내 방에서는 다른 집 지붕이 보인다. 바로 앞에 주황색 지붕이 보이고 그 뒤로 옥탑방이 삐죽 솟아 있다. 내 방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면 지붕만 보여서 그런지 꼭 남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는 것 같아서 창밖을 보지 않는다. 전망 좋은 집에 살지 않아서 석류에게 미안하다. 그나마 동생 방에 있는 창문에 걸터앉을 수 있다면 골목길을 오가는 사람이라도 구경할 텐데, 동생은 절대로 석류를 방에 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지난 여름에는 동생이 엄마 집에 내려가 있는 동안 몰래 석류가 동생 방 창문에 앉을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놓았다. 방학이 끝나고 돌아온 동생이 “내 방에 왜 털이 있느냐”라고 말해도 시치미를 뚝 떼고 모른 척했다.

(이렇게 설명해 놓으면 달동네 꼭대기에 사는 것 같지만, 다음 지도를 이용해 언덕의 길이를 재본 결과 50m 정도다. 해방촌과 비교하면 언덕의 길이나 경사 모두 평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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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석류는 곧잘 내 방 창문에 앉아서 밖을 내다본다. 지붕밖에 볼 게 없을 텐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한참 앉아 있다가 어슬렁어슬렁 침대 위로 올라온다. 석류가 하루 가출을 했었을 때는 언제나 바라보던 그 지붕 위에 올라가 있었다. 그래서 석류에게 지붕을 보여 주면 안 되는 건가 싶고, 얼마 전 석류가 창문을 앞발을 걸치고 한참 큰소리로 울었을 때는 창문을 닫아 놓을까 생각도 했다. 그런데 석류가 우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CAM00697-c<친구가 생긴 석류>

자꾸 울길래 괜히 화가 나서 엉덩이라도 좀 때려 주려고 창가에 갔더니 붉은 지붕 위에 얼굴과 양발이 하얗고, 등에만 갈색 줄무늬가 있는 고양이가 석류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그 고양이는 나를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달아나버렸다. 친구 고양이가 사라지자 석류는 자기도 방충망을 뚫고 나가려는 듯 창틀에서 버둥거리고 더 크게 울었다. 그 이후로 석류가 울 때마다 유심히 관찰해보니 석류가 울면 희미하게 다른 고양이 소리가 들리고, 창가에 가보면 자몽이가(덩치가 석류와 비슷하기 때문에 크기가 비슷한 과일인 자몽이라고 부른다) 지붕에 있다가 나를 보고 도망쳤다. 그 뒤로 석류가 창가에서 울면 자몽이가 도망칠까 봐 사실 엄청 보고 싶지만 창문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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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몽이를 기다리는 석류>

가만 생각해보니 자몽이는 나와 안면이 있었다. 얼마 전에 집으로 들어가는데 건물로 들어서자 지하 1층에서 흰색에 등에 갈색 줄무늬가 있는 커다란 고양이가 사람 발자국 소리를 듣고 바람처럼 튀어나왔다. 인간이 현관을 가로막고 있으니 나가지도 못하고 계단에서 우물쭈물 버둥거리는 모습이 덩치와 맞지 않아 아주 웃겼다. 길을 내주니 고양이가 뱀처럼 빠져나왔다. 지붕에 있던 자몽이가 꼭 그때 그 고양이 같다. 생김새도 비슷하고, 출몰 지역도 거의 일치한다. 석류를 키우게 되면서 다 똑같이 생긴 줄 알았던 고양이가 저마다 다르게 생겼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비슷해 보이지만 서로 다른 고양이의 얼굴을 조금은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몇달 전 석류가 가출했을 때 지붕에서 자몽이와 이미 만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류가 아무 이유도 없이 우는 것은 아니고, 친구가 지붕 위에 와 있을 때만 운다는 것을 알게 되자 우는 이유를 알아서 속은 시원했지만 한편으로는 가슴이 답답하다. 석류와 자몽이가 둘이 친구인 것은 분명하고, 덩치도 비슷해서 같이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석류를 밖으로 풀어놓을 수도 없고, 자몽이를 우리 집에 데려와 키울 수도 없다. 내 입장에서야 고양이 한 마리 키우나, 두 마리 키우나 다를 게 없어서 농담을 가장하고 동생에게 석류에게도 친구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넌지시 말했다가 “누나와 석류 둘이 나가서 살아라. 나가서 살면 누나 혼자 고양이 50마리를 키워도 신경 쓰지 않겠다.”라고 단칼에 거절을 당했다. 고양이 한 마리는 독단적으로 들였지만, 이미 석류 한 마리와 같이 사는 것도 충분히 고깝게 생각하는 동생을 무시하고 한 마리를 더 입양할 수는 없었다. 동생은 내가 석류를 예뻐하는 것마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연기같다’고 의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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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몽이, 자몽이와 석류>
이 다음부터는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길냥이들을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날씨가 추워지니 길에 사는 동물들에게 더 마음이 쓰이는 것도 있지만, ‘우리 석류와 잘 어울리고 사이좋게 지낼 것처럼 보이는 고양이’를 찾는 눈으로 고양이들을 본다. 여태 자몽이만큼 적합하게 생긴 고양이를 본 적이 없다. 물론, 동생과 같이 사는 한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입양 계획이지만 말이다.
* 고양이 입양 *

사실 고양이 입양에는 같이 사는 사람의 의견도 있지만, 고양이의 입장도 중요하다. 간혹 자기 영역에 대한 관념이 아주 강해서 다른 고양이가 들어올 경우에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방광염이 생기는 고양이들도 있다. 그런데 인간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엄마 말에 따르면 3살 터울인 남동생이 태어났을 때 내가 엉엉 울면서 보자기에 동생 기저귀와 옷을 전부 싸서 밖에 내다버리는 바람에 도로 주워 와야 했다고 한다. 동생을 길바닥에 버리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다. 석류가 창가에 앉아 자몽이를 보며 꺼이꺼이 우는 것과 별개로 실제로 낯선 고양이가 들어올 경우 무척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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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나는 자몽이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길 바라는 망상으로 위의 그림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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