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봄이 사는 마을

4. 정체성이 흐른다

- 봄봄(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

한 달에 두 번 쓰기로 약속한 날은 원고를 보내고 돌아서면 와 있었다.

위클리 수유너머에 원고를 쓰기로 결정했을 때는 이 맘 저 맘 오만 마음 가지들을 붙들고 그래도 써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 마감일에 받는 담당자의 전화는 반가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과 멋쩍은 마음들이 뒤섞여서 웃음만 나온다. 지난번에는 마감을 며칠 연장하며 이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우여곡절을 토로했다. 이번 글은 토로의 장이다.

며칠 전 지역의 사회학과 학생들이 인터뷰 요청을 해 왔다. ‘비혼’이라는 주제가 아직도 이슈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비혼의 삶이 일상이 된 지 오래되다 보니 나는 그냥 나의 정체로 살고 있는데 여전히 이슈가 되는 모습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비혼모임이 11년이 되어 가기까지 여러 차례의 인터뷰와 취재 요청이 있었고, 그에 응하기도 하고 거절하기도 했다. 위클리 수유너머에 글을 쓰기로 하며 가장 걱정한 부분은 지금-여기에서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가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었다. 왜냐하면 그간의 이야기는 반복적으로 많이 했고, 우리 모임은 자잘한 변화 속에서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어떤 뚜렷한 상을 보여 주기보다 조금씩 방향을 만들어 살아가는 생활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우리도 우리를 잘 몰랐다.

기업이 초석을 다져 성장을 하거나, 한 개인이 직장을 다니거나, 개인과 개인이 만나 관계를 형성하거나, 하나의 집단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10년’이라는 시간은 잠깐 멈추어서 지나온 삶을 반추하거나 제대로 잘 가고 있는지 둘러보고 앞으로의 10년을 그려보며 재정비와 재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2003년 2월28일 비혼모임을 시작하고 각자 독립을 하고 한 아파트에 따로 같이 살게 되면서까지 비혼여성공동체의 상을 계속해서 그려보았다. 그리고 2010년 6월 비혼들의 네트워크 공간을 마련하기까지 각자의 일터에서 일하며 그때그때 필요한 공동의 주제에 합의하며 우리의 30대를 보내고 40대를 맞이했다. 2013년 11월 현재, 우리를 규정하고 있던 일의 형태가 달라졌다. 2010년부터 공간을 함께 지키는 K와 J 그리고 Y가 있고, 뒤늦게 자신의 일을 찾아 농가레스토랑을 운영하는 H, 아직 30대인 두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다양하게 흐르고 있는 비비(비혼들의 비행)를 느끼고 있다. 우리는 계속 변화하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여성가구주가구의 주거실태 및 정책방안연구-도시지역의 비혼1인 가구 및 저소득한부모가구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인터뷰를 하러 온 적이 있었다. ‘비혼’이라는 개념은 계층의 범주가 아닌 한시적인 제스처로 인식된다. 미혼(未婚)이 아닌 비혼(非婚)이라는 언어를 찾아냈지만 결혼하지 않은 상황과 상태를 나타내는 비혼은 국가의 정책에서 ‘비혼1인가구’라는 타이틀 아래 열악하고 취약한 계층 대상으로 분리된다. 1인가구가 아닌 비혼세대는 국가의 정책에서 열외다. ‘비혼’의 개념에 중점이 아닌, 비혼으로 인해 발생한 ‘1인가구’에 방점을 찍는다. 혹시 언제든 결혼을 해서 4인가구를 형성하기를 바라는 것일까.

연구원이 물었다. 이 정책에서 어떻게 해 주었으면 하는 점이 있냐고. 국가의 정책에서 비혼을 배제하지 말라. 그렇다고 비혼만을 위한 공간을 만들기보다는 비혼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둬라. 비혼이 여타의 소수자운동과 다른 점이 있다면 당사자운동으로서의 어려움이다. 사회학과 학생이 물었다. 국가의 비혼정책에 대해서 1인가구로서 어필해보지는 않았냐고. 나는 물었다. 비혼에 대한 정책이란 것이 있었나? 우리는 어필하기보다는 공동체를 꾸리는 것으로 비혼을 살아냈다. 임대아파트에 들어가기 위해서 가장 먼저 세대주 분리를 했고, 청약을 들었고, 아파트 공고에 대한 정보를 교환했다. (지금은 1인비혼가구가 자신의 집을 갖기가 더 어려워졌다. 비혼과는 무관하게 가구수가 우선이다. 처음부터 1인비혼가구는 대상에 제외된 임대아파트도 많다. 아니면 저소득 계층이거나) 목돈이 급하게 필요할 때는 은행 대출이 아닌 모임회비에서 충당했다. 도서관 대출증을 만드는 데 가족란 전화번호에 서로의 연락처를 적었다.

며칠 전 우리는 앞으로의 10년을 맞이하기 위해 워크숍을 시작했다. 『무엇이 내 인생을 만드는가』를 읽고 현재 자신이 처한 조건 안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10가지 긍정적인 사실을 찾아냈다. 그리고 책에서 소개된 ‘산맥기법’을 이용해서 자신의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우리도 우리를 잘 몰랐다. 다음 시간에는 각자의 행복한 인생을 위한 방향을 설정한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하고 행동해야 할지 지도를 그리기 위해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를 읽고 토론하기로 했다. 워크숍을 준비한 K가 우리에게 전하는 말로 이 글을 마친다.

“우리의 이런 작업이 삶의 모든 시간들을 명확하게 보여 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지만, 적어도 서로에게 삶에 대한 열정을 전염시키는 시간들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하고 있다.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왜냐하면 우리의 삶은 결국 오늘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와 태도에서 나오는 것이고, 비비와 함께라면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그 속에서도 괜찮은 이유를 찾아낼 수 있을 테니까. ^^ 비비 모두에게 이번 워크숍이 자신의 성공을 부르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

 

2013. 11. 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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