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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문제, 식량 문제는 실재하는가? (2)

- 박성관

1. 너무 비싸면서 동시에 너무 싼 것

 

지난 주에 던진 마지막 질문에서부터 시작하자. 나에게 식량 문제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즉 당신에게 먹고 사는 문제가 뭐냐는 것이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흔히 물가 문제를 떠올린다. 소득 증가에 비해 물건값이 너무 빨리 오른다는 것 말이다. 물론 그거 참 문제는 문제다. 헌데 이 물가 문제라는 게 참으로 기묘하다. 물가가 비싼 것과 물가가 너무 싼 것이 모두 문제인 것이다. 물가가 너무 싼 게 문제라고? 그런 경우가 어데 있으며 설령 그런 경우가 있다 해도 그게 무슨 문제냐고? 자! 먹고 싸는 것과 관련하여 당신의 실제로 매일매일 어떤 고민을 하는지 다시 떠올려보시라.

주부들이라면 갈수록 비싸져만 가는 식재료들을 사기 위해, 거기에 약간의 과일이나 간식거리라도 좀 더 실하게 장만하기 위해 없는 돈을 쪼개야 한다. 돈이 별로 없는 청년 백수라면 거의 계절마다 한 번씩 오르는 식당 음식 가격이 심히 부담스럽다. 점심, 저녁을 모두 웬만한 식당에서 제대로 챙겨 먹기는 쉽지 않다. 이런 내가 시시콜콜 말하지 않아도 여러분 모두 매일 겪는 거니까 이만 얘기하기로 하자.

조금 아까 말했듯이 우리에게는 이와는 또 다른, 정반대의 고민이 있다.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상품들이 싼 가격에 너무 많다는 것이다. 우선 커피 같은 게 그렇다. 인스턴트커피는 거의 환상적인 가격이다. 대체 뭘 재료로 만드는지는 모르겠지만, 1, 2백 원이면 커피 한 잔을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하루에 자판기 커피를 3잔에서 5잔 정도 마시는 게 샐러리맨들의 하루 기본 음용량 아닌가? 포장 용지 만드는 비용보다도 적은 비용이 들어갔을 그 내용물들을 하루에 그렇게 마셔대는 거, 내 자신을 거의 학대하는 것 아닌가! (솔직히 말하면 나도 지금 인스턴트커피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다. 1주일에 한두 잔 정도 마시는 걸로 겨우 선방하고 있는데, 이 달착지근한 다방 커피 끊는 게 이리도 쉽지 않다니. 커피 중독!)

한편, 대형 마트에 가면 과일들이 넘쳐난다. 물론 단순히 가격상으로는 싸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왜 나는 싸다고 썼는가? 여러분도 함 생각해보시라. 마트에 그렇게도 많은 과일들이 넘쳐나는 게 대체 어떻게 가능한지를…… 단지 사과나 배 같은 과일들이 많은 게 아니다. 거의 계절과 무관하게 1년 내내 수많은 종류의 과일들이 대량으로 쏟아진다. 내가 싸다고 한 건, 그 어떤 종류의 과일도 1년 내내 크게 차이 없는 가격으로 공급된다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철보다 조금 이르거나 조금 늦게까지, 그것도 제철보다 꽤나 비싼 가격에나 겨우 맛볼까 말까 했던 과일들이었는데…… 그래서 예전에는 제철 과일 몇 종류 앞에서 잠시 잠깐 고민했을 뿐인데, 지난 주에 사 먹었으면 이번에는 거른다든가 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수많은 종류의 과일들이 매번 차고 넘치니 뭐라도 한 종류 사지 않으면 허전하다.

이런 방식으로 생각을 이어가 보면 빵도, 채소도 모두 그렇다. 그 결과 우리에게 생겨난 문제는 너무 많이 먹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에나, 우리가 살아 생전에 이런 세상을 경험하게 되다니……

며칠 전 뉴스를 보니 튀기지 않는 과자, 라면 등이 대인기를 끌고 있고, 이 추세는 점점 더 강화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보여 주는 도표가 튀긴 것과 구운 것의 칼로리 비교였다. 칼로리란 열량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즉, 그 음식(빵이든, 밥이든, 라면이든)을 섭취하면 얼만큼의 열을 흡수하는 셈인가 하는 것이다. 이 열량이란 곧 일을 할 수 있는 에너지이기도 하다. 그러니 같은 값이면 열량이 높은 게 당연히 더 좋다. 실제로 10, 20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런데 지금 현실은 어떤가? 정반대다. 열량이 높은 건 상품으로서 치명적이다. 그래서 좀 더 비싼 가격이라도 열량이 낮은 식품을 선호한다. 우리는 싼 가격에 더 많은 걸 사고 싶기도 하지만, 동시에 비싼 가격이라도 열량 등 함량이 덜 들어 있는 걸 사고 싶기도 하다. 왜냐하면 잘 먹는 것 못지 않게 덜 먹는 게 절실한 과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밤에 야식을 먹지 않기 위해 고투하시는 분들도 적지 않다. 난 전화로 야식을 시켜 먹는 습관은 없다. 하지만 밤에 밥이나 라면을 먹는 건 꽤나 오랫동안 행복한 고민거리였다. 4, 5년 전에 어떻게 하다 보니 끊게 되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밤 늦게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경우가 자주 있다 보니 밤에 뭔가를 먹지 않는 것은 아직도 힘이 많이 든다. 정말이지, 나같이 청빈한 사람도 이런 고민에 몸부림을 칠 정도로 먹거리들이 지천에 깔려 있다. 냉장고 안에도 이것저것 들어 있고(썩어 가는 음식과 함께), 집 대문에는 온갖 음식점 홍보 스티커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물론 큼지막한 전화번호와 함께.

먹고 살기 힘들어서 늘 돈에 쪼들리는 생활과,

덜 쳐먹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생활,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싸는 것보다 먹는 것 쪽이 대체로 넘치는지라,

각종 운동이나 아니면 최소한 걷기라도 꾸준히 해 줘야 하는 생활.

몇 십 년 전 같으면 먹은 게 아까워서라도 헛심 쓰지 말라고 했더랬는데,

이제는 짬만 나면 헛심을 써서라도 허리와 궁둥이 등지에 요새처럼 들러붙어 있는 살들을 태워버려야 한다.

이 모순에 찬 생활을 대다수 사람들이 매일 영위하고 있다. 이게 단지 돈 많은 사람들만의 얘기인가? 가난한 사람일수록 길거리의 포장마차나 빵집 등에서 파는 열량 높고 무자게 맛있는 음식들 속에서 허우적대지 않는가?

먹는 얘길 쓰다 보니 지식인으로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잠시 넘 감정 이입을 했던 것 같다. 흠흠…… 어쨌거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거다. 추상적인 차원에서는 인구는 많아서 문제고 식량은 적어서 문제 같지만, 그래서 이걸 합치면 맬서스의 얘기가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지는 것 같지만, 실제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너무 많은 것도 문제고 너무 적은 것도 문제다. 그래서 뭐가 문제인지, 해결 방향은 어느 쪽인지 알 수 없어지는 희한한 상황이다.

 

2. 거대 곡물자본들이 주입시키는 것

 

그래서 내 얘기는 인구 문제나 식량 문제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건 국가마다 지역마다 사람마다 모두 그때그때 다르고, 해결책도 모두 다르다는 얘기다. 너무 당연한 얘기라고?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인구 문제나 식량 문제가 곧장 실재물로 육박해 온다. 전지구적 해결책 따위를 시급히 요구하는! 예컨대 이 칼럼을 보자. <한겨레신문> 2011년 2월 7일(인터넷판 기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의 <90억 인구를 먹일 수 있나> 중 뒷부분이다.

 

사료용을 빼더라도 식량용 곡물 자급률은 51.7%로 절반을 겨우 넘어선다. 주곡인 쌀이 94.3%(의무수입 때문에 100%가 아니다)인 반면, 밀 0.5%, 옥수수 4.9%, 콩 류 29.5%에 그친다. 최악의 상황에서 단백질원인 콩의 자급률은 1970년까지 86%였다.

식량은 석유만큼이나 세계화돼 있다. 게다가 기후변화는 식량위기의 휘발성을 증폭시킨다. 레스터 브라운 지구정책연구소 소장은 최근 출간한 책 <벼랑 끝의 세계> 에서 “식량위기가 문명의 종말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세계 주요 곡창에서 최악의 흉작이 발생한다면 ‘식량 거품’이 터질 것이라며, 이상기후 – 대흉작 – 주요 식량생산국의 수출 중지 – 가격폭등의 연쇄반응이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러시아에 산불과 가뭄을 불러온 이상기후 탓에 밀 수확량이 40%나 줄었고, 러시아 정부는 밀 수출을 금지시켰고 국제 밀 가격은 폭등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는 기상청 표현대로 ‘이상기후 종합선물세트’였다.

이런 경고가 환경운동가들만의 목소리는 아니다. 영국 정부는 최근 발간한 <식량과 농업의 미래> 보고서에서 “앞으로 20~40년에 걸쳐 식량의 수요, 생산, 분배에 영향을 끼칠 여러 요인이 한데 모이는 역사상 보기 힘든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식량위기를 부르는 요인으로 기후변화, 인구 증가, 물과 에너지 자원 고갈, 소비 증가 등을 꼽았다.

이 보고서는 특히 대중의 반대가 극심한 유전자재조합 농작물, 복제 가축, 나노 기술 등의 신기술을 검토 대상에서 배제하면 안 된다고 밝혀, 식량위기가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대처해야 할 심각한 문제임을 분명히 했다.

세계 인구는 70억에 육박하고 2050년이면 90억에 이르게 된다. 식량과 관련해 세계는 이미 안녕하지 않다. 10억 명은 음식물이 부족한 ‘양적 굶주림’에, 10억 명은 영양분이 부족한 ‘질적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고, 또 다른 10억 명은 식품 과잉섭취로 만성질환을 걱정하고 있다. 이런 불공평한 세상에서 이상기후와 에너지·물 고갈 등 지구환경 문제를 이겨내고 90억 명을 고루 지속 가능하게 먹일 수 있을까. 식량문제는 지구촌 최대의 고민이자, 세계화의 격랑에 몸을 내맡긴 우리의 현안이기도 하다.

 

내가 쓴 거랑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들이 많다. 그런데 마지막에 쫌 이상하지 않은가? 먼저 기자는 전지구적으로 영양 결핍과 식품 과잉섭취가 문제라고 잘 지적했다. 그런데 그래 놓고 문제는 미래에 90억 명 수준으로 늘어날 인구들을 고루 지속 가능하게 먹일 수 있을까, 라고 정리하고 있다. 이 내용은 바로 앞 단락과 이어진 것임에 주목하자. “대중의 반대가 극심한 유전자재조합 농작물, 복제 가축, 나노 기술 등의 신기술을 검토 대상에서 배제하면 안 된다고 밝혀, 식량위기가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대처해야 할 심각한 문제임을 분명히 했다.”

내 관점에서는 있지도 않은 인구 문제와 식량 문제를 추상적으로 엮으면 어떤 쪽으로 결론이 나는지 잘 보여 준다. 결국 유전자 조작이나 가축 복제 같은 것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얘기다. 그만큼 인구 문제와 식량 문제가 심각해졌다는 게 그 근거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세계적인 범죄 조직인 몬산토의 홈페이지에도 같은 내용이 쓰여져 있었던 걸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이렇게 선전한다.

현재 인구 60억 명, 2050년 90억 명, 유전자 조작(거대 자본들은 교활하게도 유전자 변형이라는 용어를 개발했다)을 무조건 거부하는 건 비현실적이다.

현재의 농업은 지구의 토지를 마구 파괴하는 방식이다. 유전자 조작 농업을 잘 활용하면 생산량을 크게 늘릴 수 있기 때문에 지구를 “보호”하면서 농가의 소득을 최대한 신장시킬 수 있다.

우리 몬산토는 지구적 규모에서 온갖 선한 일들을 하고 있다. 등등(지금 ‘몬산토 코리아’에 들어가보니 “사회 공헌, 아이티에 종자 기부”라는 말도 쓰여 있다).

이 기업이 얼마나 잔학하고 교활한 현대의 악마인지, 얼마나 집요하고 정교하게 농민들과 소비자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고 있는지 알고 싶으신 분들은 『몬산토』(이레)를 읽어보시라(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좋은 책이 인터넷 서점 세 곳을 검색해도 모두 품절이다. 이유가 뭐지?). 어쨌든, 이들은 이미 우리나라의 많은 종자 기업들을 수하에 거느리며 사업을 확장해 가고 있다. 몬산토뿐이겠는가? 세계적인 거대 곡물 자본들은 대부분 대동소이할 것이다. 이들은 오늘도 이런저런 기관들과 연구자들을 동원하며(혹은 국정원 같은 기관처럼 트위터 등을 이용해서) 계속 인구 문제와 식량 문제가 전 지구적으로 절실한 문제라고 주입시키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고 내가 인구 문제나 식량 문제가 전혀 없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아까 인용한 <한겨레신문> 칼럼에서도 지적했듯이, 식량 자급률이 너무 낮다는 건 정말 문제다. 식량 안보라는 차원을 떠나서라도 그렇다. 어떻게 밀 자급률이 0.5%밖에 안 될 수가 있는가! 그렇게나 많은 곡물들을 외국에서 수입하는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일 수 있는가! 이런 사회의 농민이, 농토가, 그리하여 결국 전 국민의 몸이 정상적일 수가 있겠는가!

 

3. 우유를 끊자! 우유를 줄이자!

 

지난 주에 글을 쓰고 난 뒤, 지그문트 바우만의 『쓰레기가 되는 삶들』(새물결)을 좀 보았다. 예전에 인구 문제나 식량 문제는 실재하지 않는다는 게 내 생각이라고 말했더니 문탁의 이희경 선생님께서 바우만 책에 그 비슷한 얘기가 써 있다고 얘기해 주셨다. 그랬던 걸 내내 읽어보지 못하다가, 이번 주에야 반 정도 읽어보았다. 역시나 유익한 얘기가 많이 쓰여 있었다(인구 문제의 허구성과 어처구니없음에 대해서는 특히 2장을 보시라). 내가 구체적인 통계 없이 했던 얘기랑 상통하는 내용이 자료와 함께 제시되니 어처구니가 두 배로 없었다.

“아프리카에는 1제곱 마일당 55명이 거주하는 반면 스텝 지대와 러시아의 영구 동토 지대까지 포함하더라도 전 유럽에는 1제곱 마일당 평균 261명이 살고 있으며 일본에는 1제곱마일당 857명, 네덜란드에는 1,100명, 타이완에는 1,604명 홍콩에는 14,218명이 살고 있다…… 그럼에도 네덜란드를 ‘인구 과잉’ 국가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는 반면 몇몇 아태지역 경제 강국들을 제외한 아시아 전역이나 아프리카의 ‘인구 과잉’에 관한 경종은 끊이지 않고 있다.”(p. 86)

그런데 바로 다음 페이지에 눈이 번쩍 뜨이는 대목이 있었다.

“네덜란드가 기록적인 인구 밀도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수많은 다른 나라들이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p. 86-87). 이게 무슨 얘긴가? “예를 들어 1984~1986년에 네덜란드는 약 4백만 톤의 곡물, 13만 톤의 기름, 그리고 48만 톤의 완두콩, 강낭콩, 렌즈콩을 수입했는데, 이들은 모두 세계 상품 거래소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평가되는 품목들이다. 반면에 네덜란드는 수출 전용의 우유나 식용 육류를 생산해 지독하게 높은 가격으로 팔 수 있었다.”(p. 87)

제3세계에서 생산된 곡물들이 지독하게 싼 이유는 장 지글러도 말했듯이, 사악한 거대 곡물 자본들이 세계 상품 거래소를 장악하고 가격을 맘대로 주무르기 때문이다(『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이 사실이야 꽤 알려졌으니 그리 새로울 건 없었다. 문제는 네덜란드의 우유나 식용 육류가 지독하게 높은 가격에 팔린다는 대목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우유 가격은 계속 오르고 있다. 흔히들 완전식품이라고 부르는 우유! 설마 정말로 완전한 식품이라는 얘기는 아닐 터이고, 성분 대부분이 우리의 피와 살과 뼈에 모두 좋은, 정말 좋은 식품이라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통념과 상식과는 달리 나는 우유야말로 만병의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여러분 스스로 생각해보시라. 우유는 완전식품이겠는가, 아니면 만병의 근원이겠는가! 많은 경우에도 그렇듯이 이번에도 내 주장에는 권위 있는 자료에 의한 근거가 전혀 없다. 그렇지만 사람이 상식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보고 주변을 살펴보면 뭔가 아는 게 있어야지, 꼭 무슨 전문가들이 말해 주어야만 어떤 판단이나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인가!

구체적인 느낌을 가지면서 함 생각해보시라. 이 조선 땅에서는 몇 천 년 동안 우유를 거의 먹지 않았을 터이고 따라서 신체도 조선식으로 생겨 먹었을 터이다. 신토불이라고 하니 말이다. 헌데, 미국 소나 어쨌거나 그 외국 소들의 젖을 쥐어짜서 나온 물, 그 소젖을 그렇게 자주 먹으면 속이 어떻게 되겠는가? 어른도 그럴 터인데, 애기들이 갓 태어나면 소젖을 물리니 말해 무엇하리요(왜 갑자기 문체가 개화기식으로 변하지)? 이런저런 이유로 엄마가 없거나 아니면 있더라도 심한 환자라서 젖을 줄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왜 사람 아기가 사람 젖을 안 먹고 다른 짐승 젖을 먹어야 한단 말인가? 그건 애한테도 못할 짓이고, 그 소한테도 못할 짓이다. 젖 더 팔아보려고, 소고기 더 많이 생산해보려고, 아메리카 대륙의 수많은 초지들이 불태워지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육식의 종말』)! 광우병 문제로 소고기 수입이 주로 문제가 되었지만, 내 생각에 훨씬 더 심각한 것은 바로 우유다. 비정상적으로 많은 우유를 소비하는 건, 우선 소비자의 몸에 무지 안 좋고, 그 소에게도 안 좋고, 또 지구를 마구 태워버리니 지구에도 치명적으로 해롭다. 난 지구온난화론에 크게 관심이 없지만(별로 동의도 안 하고), 정말로 지구온난화가 걱정된다면, 우유를 끊으시라! 안 되면 줄이시라! 그게 사람과 지구와 소가, 곡물이 모두 사는 길이다.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분야를 이렇게 길게 쓴 이유는, 네덜란드 같은 나라의 유제품들이 높은 가격에 팔리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그것은 우유가 완전식품이라는 둥 하는 온갖 선전들 때문이다. 만일 우리에게 상식을 회복할 힘이 아직도 남아 있다면, 그래서 상식인의 평범한 눈으로 보면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까 거대 자본들이,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동원해서, 온갖 박사들이나 데이터를 내세워 가며 소위 건강 정보들을 무차별 살포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상식을 회복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 다시 한 번 말하겠다. 사람이면 사람 젖을 먹자. 이게 그렇게 복잡한 얘기인가? 이런 주장에 근거가 있어야 하는가?

사실을 말하자면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도 1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우유를 집에 사 오고 또 마시기도 한다. 엥? 너무 놀라지 마시라. 우선 내가 우유를 사 오는 이유는 내가 나 혼자 사는 게 아니고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들에게 내 의견에만 따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나도 종종 마시는 이유는 우유에 어느 정도 중독되어 있기 때문이다. 담배를 피웠다가 1주일에 두 갑 정도로 줄였는데, 더 줄이지 못하는 이유와 비슷하다. 고등학교 시절에 먹기만 하면 속이 불편했는데도, 건강에 좋다니까 꾸준히 마시고 또 마셨다. 그랬더니 언젠가부터는 그 아무 맛도 없던 흰 우유가 가장 맛있고 시원한 음료수 중 하나가 되었다. 몇 년 전부터 끊으려고 했더니, 커피나 담배처럼 끊기 힘들어진 것이다. 물론 줄이긴 많이 줄였다. 우유 중독! T.T

이 대목에 이르니 하나 꼭 덧붙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방금 내가 우유나 담배 같은 걸 계속 한다는 대목에서도 아셨겠지만, 나는 그런 게 안 좋다고는 생각하지만, 무슨 절대악 같은 것으로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우유는 본디 우리 몸에 잘 안 맞고, 우유를 통하지 않고서는 섭취할 수 없는 무슨 특별한 영양소가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빵을 포함해서 수많은 유제품들이 우리 일상에 이미 가득한데, 그 속에서 헤엄치는 내 몸에다가 우유를 아예 통째로 부어버릴 필요까지 있겠느냐는 생각 정도를 갖고 있다.

 

쓰다 보니 글이 좀 난삽해졌지만, 이미 원고 마감 시한을 많이 넘긴지라 얼추 수습해서 빨리 넘기는 쪽이 낫겠다. 지금까지 독자 여러분이 읽으시면서 스스로 잘 정리하셨기를 바랄 뿐.

 

Gallons of milk in the dairy products section can be seen on Display at a new Wal-Mart store in Chicago

 

응답 1개

  1. 곰곰말하길

    우유의 유해성에 대해선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고, 그 부분에 대한 얘기들이 점점 더 확산돼가고 있는게 현실인데 정작 그 유해성을 ‘해명’하는 기사는 단 한번도 본적이 없어요. ‘우유에는 몸에 나쁜 것 만큼이나 좋은 것도 많다’ 정도의 기사는 봤는데 ‘알려진 얘기들은 사실과 다르다…’라는 식으로 적극적으로 반박한 기사같은건 건강기사 어디를 봐도 찾아보기가 매우 힘들더군요. 결국 암묵적으로 우유의 폐해에 대해 인정하지만, 이미 거대해질대로 거대해진 낙농업과 유가공산업을 의식해서 눈감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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