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일기

고양이의 뱃살

-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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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힐을 신고 서 있어서 발이나 종아리가 퉁퉁 붓거나, 저녁에 라면을 먹고 자서 다음날 아침 눈이 부어 있는 것과 달리 정말 살이 찌는 것은 서서히 일어난다. 어지간히 예민하지 않고는 매일 얼굴을 보는 사이라면 어느 정도 체중이 불고 나서야 살이 쪘다는 것을 알지, 시시각각 몸이 불어나는 것을 느끼지는 못한다. 석류가 이런 식으로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 어느 날인가 전용 방석에 엎어져 있는 석류를 보니 전자레인지에 조금 오래 데워 늘어진 인절미처럼 그렇게 뱃살이 늘어져 있었다. 예전에는 번쩍 들어서 끌어안고 배를 만지면 조금 볼록 튀어나오긴 했지만 팽팽하게 가죽을 당긴 북처럼 통통 튕기는 맛이 있었다. 요즘에는 배를 만지면 찹쌀떡처럼 흐물흐물 말캉거리는 뱃살이 만져진다. 동생은 지난 중간고사 때 밤늦게 시험공부를 하다가 내 방에 와서 괜히 석류에게 시비를 걸다가, 석류의 뱃살을 만지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 공부를 마저 했다.

 

집에 있는 고양이 양육에 관한 책에서도 고양이의 비만을 다룬다. 인간과 비슷하다.

– 비만은 건강에 해롭다 (당뇨병 관절염, 고혈압, 심장병 위험 등 다양한 질병의 위험이 높아진다)

– 비만의 원인은 대부분 과식이다

– 중성화를 하면 사료급여량을 줄여야 한다

– 다이어트에 들어가기 전에 얼마나 살이 쪘는지 평가해야 한다

– 목표 몸무게를 설정하고 다이어트를 시작한다

– 사료급여량을 줄이고, 활동량을 늘리는 환경을 만든다. 저칼로리 다이어트용 사료가 도움이 된다.

 

고양이에게 옷을 입하는 것도 아니고, 웨이트트레이닝을 시키지도 않으니 고양이의 몸 상태는 야윔/저체중/정상/과체중/비만으로 나뉜다. 인간으로 치면 44사이즈/55사이즈/66사이즈/77이상이 될 것이다. 처음 이 책을 봤을 때 석류는 ‘정상’에 속했다. 책에 따르면 위에서 봤을 때 허리 라인이 보이고, 뱃살이 약간 있는 것을 정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제는 뱃살이 뚜렷이 보이는 과체중이 되었다.

처음에는 찹쌀떡 같은 뱃살이 생겨서 석류가 더 귀여워졌다고 좋아했다. 좀 무거워지긴 했는데, 6kg이나 7kg이나 비율로 따지면 60kg이 70kg으로 바뀐 것이지만 1kg쯤 더 쪘다고 갑자기 고양이를 안지 못하게 된 것도 아니어서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석류의 뱃살을 고민하게 된 것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였다. 집에 문제가 생겨서 위층에 사는 건물 주인 아줌마가 방을 살펴보다가 석류를 보고 “어머 고양이가 왜 이렇게 배가 나왔어? 임신했나 보네.”라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나는 아니라고 했는데, 아줌마는 “임신한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일단 석류는 남자 고양이이고, 중성화 수술(거세)까지 했기 때문에 전혀 임신한 게 아니라고 말했다. 아줌마는 마지막까지 ‘배가 너무 많이 나왔다. 운동을 좀 해야겠네. 덩치가 큰 게 아니라 그냥 배가 나왔다.’고 말하고 갔다.

산책을 데리고 나갈 수 있는 강아지도 아니고, 요즘엔 뜨끈한 전기장판 위에 엎드려서 하루 평균 15시간을 자는 고양이의 뱃살을 빼는 가장 쉽고도 어려운 방법은 사료를 조금만 주는 것이다. 가장 쉬운 방법인 이유는 그냥 덜 주면 되기 때문이다. 어려운 이유는 지금도 아침에 사료를 먹고 빈 그릇을 아련하게 쳐다보거나, 이미 다 먹어놓고 밥을 안 먹은 척하고, 아침에는 밥을 달라고 앞발로 얼굴을 치거나 혀로 입술을 핥아서 사람을 깨우는데, 과연 이런 고양이에게 어떻게 모진 맘을 먹고 밥을 덜 줘야 하는지 막상 실천하기 힘든 까닭이다. 석류를 보면서 사료량을 줄이는 것에 대해 동생과 잠깐 이야기를 해보았는데 동생은 “배가 나온 건 맞는데, 그렇게까지 돼지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사료를 줄이는 것은 석류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다.”라고 했다.

사실 석류는 처음에 다이어트를 잠깐 했다. 동물병원에서 데려오는 날부터 덩치가 크단 소리를 들었고, 중성화 수술을 하면 살이 찌기 쉬우니 먹이는 양을 줄여야 한다고 해서 일부러 다이어트용 사료를 구입했다. 그리고 석류 몸무게에 따라 책에 나온 대로 적정량의 사료를 줬다. 어릴 때부터 집에서 길렀던 고양이가 아니라 길고양이의 경우에는 사료 급여에 신경 써야 한다. ‘니블링’이라고 해서 고양이는 하루 9~16회 조금씩 나눠서 먹으며 소식을 해서 스스로 날씬한 몸매를 유지한다고 말하지만, 밖에서 오래 자란 길고양이의 경우 언제 음식을 먹게 될지 알 수 없으니 ‘있을 때 먹는다’는 식으로 하루 분량의 사료를 그릇에 담아놓으면 한 번에 다 먹어버린다. 이렇게 홀랑 다 털어먹지 않아도 언제나 밥이 있다는 인식을 심어 줄 경우 고쳐진다고 하는데, 몇 번 시도를 해 보았으나 석류는 하루 분량을 한 번에 먹어버리고 다음날 밥을 줄 때까지 굶어서 식사를 두 번으로 나눠 준다. 다이어트 사료 한 봉지를 다 먹이고 나니 고양이까지 ‘정상 체중’ 유지를 위해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나 싶어서 보통 사료로 바꾸었다. 그러고 나니 다이어트 사료를 먹을 때와는 다르게 까만 털에 윤기가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석류도 먹던 사료의 맛과 식사량이 바뀌는 것을 느낄 것이다. 나는 석류가 까다롭게 굴지 않아서 사료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고, 고양이의 의사 표현을 알아듣지 못하는 탓에 ‘고양이가 뱃살이 너무 많이 나왔다’라고 생각이 들면 다이어트 사료로 바꾸기도 하고, 식사량을 줄인다. 그러다가 ‘이건 너무 가혹하다. 고양이가 배가 조금 나올 수 있지’라고 생각하면 캔간식을 주기도 하고, 책에 적정량이라고 말한 대로 사료를 준다. 배가 나왔다고 판단하는 것, 그런 판단에 따라 사료를 줄일지 말지 결정하는 것 모두 내 손에 달려 있다. 정상 기준이 실려 있는 고양이 양육에 관한 책에 따라서, 사람들의 말에 따라, 가끔은 내 기분이나 편의에 따라 석류의 식사에 관한 것을 결정한다. 한낱 고양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떤 생물의 생활이 전적으로 내 손에 달린 문제라는 것을 느끼면 내가 좋은 판단을 하는 게 맞는 건지 확신을 할 수가 없다. 여러 번 느끼지만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다른 존재와 한집에 산다는 것은 쉽게 내릴 결정이 아니다.

 

+ 덧붙이는 이야기

인간도 그렇지만 체중은 ‘건강’이라는 문제와 직결되면서 어느 정도는 관리하는 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에 ‘미용’이 붙으면 지난한 다이어트 고행길이 시작된다. 기초대사량이나 근육량,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몸매에 따라 어떤 고통을 얼마나 감당해야 하는지가 달라진다.

한 2년 전에 아주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어떤 할머니가 길고양이에게 엄청나게 욕을 퍼부었다.

“이놈의 괭이 새끼가, 누가 도둑고양이 아니랄까 봐 뭘 그리 훔쳐 먹었는지 살이 피둥피둥 쪘다. 이렇게 고양이가 뚱뚱하다니. 이런 도둑고양이 새끼가 동네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전부 찢어놓는다. 왜 이렇게 뚱뚱해.”

아직도 정확히 기억나는 단어들은 ‘뚱뚱하다’, ‘도둑고양이’, ‘피둥피둥’ 등이다. 그런데 골목길 계단에 가만히 앉아 있는 뚱뚱한 고양이에게 욕을 퍼붓는 할머니는 고양이보다 더 뚱뚱했다.

괜한 고양이가 욕을 먹는 것도 이상하고, 뚱뚱하다고 욕을 먹는 것도 이상하고, 그렇게 욕을 하는 할머니는 고양이보다 더 뚱뚱해서 이상했다. 물론 뚱뚱하다고 욕을 먹어야 할 이유 자체가 없지만, 반드시 날씬한 사람만이 그렇지 않은 생물에게 욕할 권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이는 사람이 남 흉을 보는 모습이 이상하다. 그날 그 광경이 너무 웃겨서 할머니가 욕을 하는 바로 옆자리에서 웃지는 못하고 간신히 웃음을 참은 뒤에 혼자서 낄낄거리며 웃었다.

길고양이가 살이 찌는 이유는 보통 염분이 많은 인간의 음식을 먹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사람이 신장 기능에 이상이 생기면 붓듯이, 그렇게 퉁퉁 부은 것이다. 정말 살이 찐 건지, 염분 많은 음식을 먹어 부은 건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지만 뚱뚱하다고 신나게 욕을 퍼부을 수 있는 것을 보면 이 사회에서는 인간이 아니어도 날씬해야 하는 것 같다. 그러니 윗집 아줌마가 남의 집에 와서 남의 고양이를 보고 임신을 했다고 단정을 짓고, 저건 너무 뚱뚱하니 살을 빼야 한다고 자동적으로 말을 했겠지. 게다가 길고양이들을 귀여워해 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찢는 범행 현장을 목격하지 않더라도 그냥 보기만 하면 욕을 하며 쫓아버리는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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