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일기

중성화 수술이라고 해도 될까?

-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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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키우면서 받았던 질문 중에 기억나는 것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 질문은 고양이를 키우려면 돈이 많이 들지 않냐는 것이었다. 가난한 나의 경제 사정을 뻔히 아는 사람 둘이 물어봤다. 이 질문이 대답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내가 물리학을 전공했을 때 “물리는 뭐하냐? 그거 하면 벌어먹고 사냐?”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와 같은 막막함과 먹먹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우선 이 두 사람이 내게 질문을 한 의도는 뻔하다. 혼자 먹고 살기도 빠듯한 애한테 더부살이 식구가 생겼는데 왜 그런 짓을 했느냐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묻는 사람에게는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정말 고양이를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이 궁금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양이 사료나 모래를 사 줄 것도 아니다. 나는 제 살을 파먹는 것 같은 쓸모없는 짓을 많이 해 왔고, 앞으로도 할 테지만 아마 이 둘은 먹고 살 만하든 그렇지 않든 고양이 같은 것은 키우지 않을 것이다.

 

오늘 할 이야기는 대답하기 힘들었던 두 번째 질문에 관한 내용이다.

중성화 수술을 마친 고양이를 입양하는 날, 이동장에 고양이를 넣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버스에서 친구와 “흑흑, 우리 석류는 고자구나.”라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자임’, ‘생식능력상실’이라는 의미에서 농담으로 석류를 ‘이년, 저년’이라고 했더니 어떤 친구는 석류를 암컷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가끔 남녀 상관없이 남동생을 말할 때도 동생’년’이라고 하고, 성별에 상관없이 ‘-년’이라는 접미사를 붙인다. 이 말을 듣고 누군가 자연스레 내가 말하는 대상을 여자라고 받아들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렇게 나처럼 카라와 같은 동물 보호 단체를 통해 입양을 하면 무조건 중성화 수술을 한다. 모 동물보호협회는 반려묘와 인간 모두의 행복을 위한 길이라고 하면서 중성화 수술을 강력하게 권한다. 사전에 중성화 수술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었든, 입양 조건으로 중성화 수술이 포함된 단체에서 입양을 한다는 사실이 결과적으로는 수술에 동의한다는 말이다. 누군가 중성화 수술을 할지 말지 혹은 수술 그 자체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는 것은 수술을 받지 않은 고양이를 입양해서 살다가 문제를 겪을 때인 것 같다. 나는 뒤늦게 중성화 수술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 것이다.

중성화 수술이란 정확히 말하면 불임수술이다. 수컷 고양이는 전신마취를 한 뒤에 음낭을 절개하고, 그 안에 있는 고환을 절제한다. 간단히 말하면 거세수술 혹은 고환제거수술이다. 암컷 고양이는 난소자궁적출수술을 한다. 복부를 절개한 후 난소와 자궁을 제거한다. 내가 중성화 수술에 관심이 가는 부분은 인간 마음대로 이렇게 동물의 생식능력을 제거해도 되는가 하는 동물권이나 윤리의 문제가 아니다. 왜 중성화 수술일까? ‘중성화’라는 언뜻 온건해 보이는 표현으로 전신 마취 후 거세(난소자궁적출)라는 말이 주는 폭력성을 가리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 제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생식능력을 잃으면 암컷/수컷은 neutral해지는가? 비성적, 탈성적, 무성적 존재가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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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 고양이의 불임수술: 자궁>

 

아무 생각 없이 고환을 제거한 석류를 ‘년’이라고 했지만 말도 안 되는 표현이다. 전혀 생각도 하지 않다가 ‘중성화’라는 단어가 문제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누가 내게 “중성화 수술을 했으면 석류는 이제 중성이 된 건가요?”라고 물었을 때였다. 이런 질문을 받고서야 고환을 제거하면 더 이상 남성(수컷)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혹여 그렇다고 하면 ‘중성’이란 무엇인지 생각을 해보게 되었고 어떤 것에도 쉽게 답할 수 없었다. 나는 소위 ‘생물학적’이라는 과학의 탈을 쓴 언어로 생식기와 재생산을 중심으로 한 이분법적 젠더 개념 자체에 반대한다. 그러니 상대방에게 생식능력을 잃었으니 수컷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그대로 수컷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결국 “하하… 글쎄요.”라고 얼버무리며 화제를 전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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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nino, Scene of a cat castration, 1531–32, Castello del Buonconsiglio, Trento

동물 거세 수술은 역사가 깊은 것 같다. 16세기 그림이라니…>

 

중성화 수술은 영어로 neutering이다. 라틴어 neuter에서 비롯되었는데, 남성도 여성도 아니라는 의미이다. 흔히 neutering은 수컷을 수술할 때를 말하고 암컷은 spaying(난소적출)이라고 하기도 한다. 나는 중성화 수술이 아니라 ‘불임수술’(그 외 생식 기관 제거를 의미하는 단어들)로 부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수컷 고양이의 경우 불임수술 권장 시기는 생후 6~8개월로 성묘가 되기 전이다. 불임수술에서 기대하는 것 중 하나는 고양이가 갓난아기 울음소리를 하루 종일 내서 민원이 들어온다든가, 스프레이라고 해서 아무 데나 오줌을 싸는 등 발정기의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행동을 하기 전에 불임수술을 시켜야지, 이후에 하면 수술 전의 행동을 계속 해서 고양이가 고자가 된 의미를 상실할 수 있다. 호르몬 분비에 따른 성적 행동을 포함시킨다면 분명 성묘 이전에 불임수술을 한 고양이와 이후에 한 고양이가 다를 테니 이런 상황 모두 일괄 ‘중성’이라 부르기도 힘들다.

불임수술을 당한 고양이가 스스로 젠더 정체성을 주장하거나, 법적으로 성별 정정을 신청하는 등의 성소수자 운동을 할 리는 없으니 동물의 성별 문제에 대해 과하게 받아들인다고 비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동물의 성별을 말한다는 것은 결국 젠더와 사회적인 의미,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생물학적 성에 대한 관념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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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임수술을 권하는 사회적인 측면도 상당히 흥미롭다. 가장 재미있게 생각하는 부분은 늘어나는 고양이 숫자를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정에서는 중성화를 시키지 않은 암컷 고양이와 수컷 고양이가 같이 있을 경우 번식 숫자를 따라갈 수가 없어서 결국 유기묘를 만들 수밖에 없으니 애초에 암수를 섞어 기르는 경우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적으로는 TNR(trap-neuter-return), 길고양이를 포획-불임수술-재방출시키고, 이렇게 불임수술을 시킨 고양이의 한쪽 귀를 조금 자르는 제도가 있다. 길고양이들의 번식과 발정기에 내는 고양이 울음소리를 막는다는 취지이며 지역사회에서 현재 TNR을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사진을 뒤지다 못 찾았는데, 내가 사는 동대문구에서는 구 차원에서 TNR은 사랑이라고 하면서 길고양이와 인간의 아름다운 공생을 이야기한다.

다음 번에는 TNR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겠다.

 

응답 1개

  1. ㅇㅇ말하길

    사진 내용은 굳이 있어야하나요?

    제목으로라도 주의 표시를 해주어야하는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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