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YN 청년 활동가 인터뷰

[BIYN 청년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 ‘두머리기획’ 달군

- 주온(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달군 메인

 

경제성장률은 바닥을 향하고 불황의 기운이 만연한 가운데, 활발히 치솟는 수치들은 다음과 같다. 고시 응시율, 대기업 입사 경쟁률, 청년 실업률, 청년 부채율. 주거비를 비롯한 생활비는 나날이 오르는데, 제대로 된 사회 안전망은 미비하고 계층 상승도 기대하기 어렵다. 현 세대의 불안은 윗세대의 욕망을 뛰어넘는 동력이 되어 청년들로 하여금 안정적인 생활 기반 선점을 위한 무한 경쟁에 매달리게 한다.

청년 세대의 삶의 조건 자체가 불안한 이때, 삶을 더 불안하게 만들 것만 같은 ‘활동’이니 ‘운동’이니 하는 길을 택한 이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이들은 행복한가? 아니 그보다 일단 힘들지 않은가? 왜 시작했으며 왜 계속하는가? 이들이 탐색하는 세계의 진실은 무엇이며, 이들이 일구어가는 활동의 질량은 세계의 관성에 맞서 달리는 열차의 속력과 방향을 어디로 어떻게 움직이고 있을까?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Basic Income Youth Network, 이하 BIYN)의 <2013 청년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는 각 분야의 청년 활동가들을 만나 지난 활동과 전망을 나누고, 기본소득과의 교차점을 살펴 본 기록이다. BIYN은 각 인터뷰이들이 걸어온 길의 가치를 믿고 이들의 서사와 메시지가 동시대의 친구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며 이 인터뷰를 기획했다. 또한 이 인터뷰가 늘 활동으로만 설명되어왔던 이들의 고유한 얼굴을 좀 더 자세히 그려내고, 더 나아가 곳곳에 흩어져 있는 활동들을 잇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작년 2012년 8월 6일, 행정대집행이 예고된 두물머리에는 불복종전야의 텐트촌이 등장했다. 도심의 더위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한강 상류는 두물머리의 밤을 지새우려 몰려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다음 날 새벽달을 보며 텐트촌 곁에서 미사를 드린 후, 뜨는 해와 함께 양손에 부들과 채소를 들고 국토해양부를 맞이하는 행진을 했다. 대오의 사이사이 하늘 높이 솟은 만장에는 “농사천하지대본”, “공사말고농사” 등이 적혀 있었다. 두물머리와 관련한 사진, 포스터 등 이미지로 된 온갖 것들에서 금세 찾아볼 수 있던 눈에 익은 글씨체였다.

이 글씨들을 쓴 달군이라는 사람은 누굴까 궁금했다. 도시 한 가운데에 투하된 ‘씨앗폭탄’이라는 흙덩이 속에도, 강정마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생명평화대행진의 수채화 속에도, 지금은 꽃밭이 되어버린 대한문 앞 쌍차 농성장의 알록달록 뜨개물 속에도, 여전히 두물머리에서 ‘두머리 작목반’이라는 이름으로 친구들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달군이 있었다.

인터뷰가 진행된 2013년 7월 4일은 두물머리 결전의 날로부터 거의 1년이 되어가는 때였다. 요즘에는 어떤 고민들로 어떤 새로운 활동을 일구며 지내고 있는지 듣기 위해 덕소역의 “이층카페”에서 달군을 만났다.

 

BIYN : 스스로를 어떻게 소개하고 싶으신가요?

 

달군 : 그 전까지는 두물머리에서 활동했으니까 두물머리 밭전위원이라고 소개했었는데, 지금은 물체주머니(*) 활동가라고 할까요. 농사도 짓고 있고 자립적인 생활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람이에요.

(*’물체주머니’는 문화로놀이짱, 청개구리제작소 등과 함께 농성장에서 뜨개질을 하며, 농성장과 그 주변을 꾸민다. 농성칠판도 설치하고 간의 의자도 만든다.)

 

BIYN : 두물머리 합의 된 이후 상황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요?

 

달군 : 합의라는 것을 거치고 난 것들이 늘 그렇듯, 이상적으로 되고 있지는 않아요. 논이 없어지고 산책로가 생기면서 흉측하게 변했어요. 가장 아름다웠던 미사 터에는 엄청 크고 이상한 기념비가 올라와 있고요. 합의 후 민관 협의체가 여태까지 두물머리 유기농 생태학습장에 대해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데, 민관 협의체고 전문가 협의체니까 저희도 내용을 많이 전달 받지는 못하고 있어요.

보통 이런 사업에 배치된 예산은 일회적인 시설비가 전부일 뿐이라서 장기적으로 운영을 어떻게 할지에 관해 양평군에서 골치 아파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지방에 보면, 예산도 없이 무작정 지은 후에 운영이 안 돼서 폐가가 되는 시설들이 많잖아요. 그런 신세가 안 되게 하려고 싸우고 있죠. 개입은 못하지만 지켜보는 사람들이 옆에서 계속 농사도 짓고 있고요.

 

BIYN : ‘물체주머니’는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요?

 

달군 : 장기 농성장이 매우 많은데, 여기에 보통과 다른 방식으로 개입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두물머리에서 목공하는 친구들이 굉장히 부러웠어요. 목공하는 사람들은 공간에 물질적으로 개입하는 거예요. 어떤 말이나 이론도 없이 스윽 들어와서 뚝딱뚝딱 만드는 게 부러웠고 그런 것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물체주머니’에는 뜨개질처럼 무언가를 만드는 물질적인 것과 신체적인 것이 결합하는 작업을 하는 그룹이라는 의미가 있어요.

‘뜨개 농성’을 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쌍차 ‘농성정원’이었어요. 그 때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바느질을 하는 날도 있었고, 농작물도 심고 꽃도 심으면서 농성장을 다르게 전유하자는 기획으로 이루어져 있었죠. 여기에 합류해서 쉽게 시작할 수 있었어요.

(*”대한문 농성장이 불타고, 새로 농성장이 생길까 화분을 그 자리에 주둔시켰다고 하죠. 그래서 삼 월 한 달간 매주 일요일 <농성정원> 만들기를 하자는 제안이 있더라구요. 첫 번째는 의자 만들기고, 다음 주 일요일엔 바느질을 한대요. 전부터 어떤 사진을 보고는 농성장에 뜨개질 움막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해보면 어떨까 해요. 안 되면 말고 일단 해보지 하는 정신으로다가.” <이어붙이는 뜨개 농성장>의 페이스북 소개글 :  https://www.facebook.com/events/1584772209775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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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YN : 삶에서 중요한 가치는 무엇이며, 그 가치와 지금의 활동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요?

 

달군 : 저는 그냥 산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해요. 요즘에 계속 살아있다, 산다는 게 뭘까 다시 생각해 봤어요. 그냥 이렇게 순간을 살아내다가 시대적인 문제든 개인적인 문제든 만나게 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렇게 우연히 연결되는 자극이나 기회와 만날 때도 있고 피할 때도 있는데, 그런 걸 받아들이고 자각하는 순간이 좋아요.

 

BIYN : 지금까지 활동을 하면서 힘들었던 것, 한계라고 느꼈던 건 무엇이었나요?

 

달군 : 시기적으로는 진보넷 나올 때였던 것 같아요. 그 전에는 분명한 가치가 있었던 것 같은데… 옳은 것에 집착하는 것 있잖아요. 스스로를 지탱해주던 그런 믿음들이 흔들리니까 허무했어요. 그 전까지는 ‘빌어먹을 허무주의’ 같은 구호를 써서 들고 거리에도 나가고 그러던 사람이었는데, ‘옳으니까 한다’는 당위가 어떻게 성립했었는지도 복기가 안 되는 때였어요.

촛불 시위가 과대평가되기도 했지만 그 때는 충격적이었잖아요. 자율적으로 보이고. 거기 가만히 서있는데 뒤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곳에 매일 가지만 관찰자가 되어 있을 뿐이었어요. 당시 활동가였던 사람들은 많이 그랬던 것 같아요. “이게 뭐지?” 하면서 보기 위해 간 거지 행동하러 간 건 아니죠. 그때 ‘이명박 퇴진’ 같은 구호 자체가 마음속에 확 오는 것은 아니었거든요. 굉장히 대중적이라 여겨진 이 사건에서 오히려 소외된 느낌을 받고 어떻게 판단할지 모르겠는 상황이 저에게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제가 가지고 있던 것은 어떤 당위들뿐이었고, 마주친 사건들에 대해 유연하게 행동하지 못하고 있었죠. ‘내가 뭘 할 수 있지?’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 즈음에 개인을 자각하게 되었어요. 그 전까지는 조직 안의 나 외에 개인적인 욕망을 가진 나를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당시에 그림을 조금씩 그려서 블로그에 올리니까 포스터를 그려 달라는 의뢰가 왔었어요. 그런 그림 작업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사회활동가로서의 삶과 내 개인적인 감정에 천착해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구가 충돌하는 순간이 촛불 시위를 맞닥뜨린 순간과 겹친 거죠. 진보넷에서 5년 동안 활동했던 것도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면서 그동안 가져온 가치들이 다 흔들리던 그때가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BIYN : 그러면 당위 말고 중요한 건?

 

달군 : 혼란 속에서 또 결국은 어떤 당위에 의해 움직여서 두물머리에 갔을 수도 있거든요? 그리고 그것이 유지되는 것일 수도 있는데, 의식하고 있냐 아니냐는 다른 것 같아요. 옳아서 이기거나 옳아서 계속할 수 있거나 옳아서 아름답지는 않고 그 외의 공간들이 훨씬 많은데, 그동안 나는 이것들을 전부 동일시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계에 단편적으로 곧은 직선이나 표현은 없는 것 같아요. 그런 게 있다고 한들 매우 좁은 것 같아요. 그 좁은 것에만 매달리기보다 순간순간의 복잡한 것들을 풍부하게 느끼면서, 그 상황에서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BIYN :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달군 : 깊이 얘기할 수 있는 깜냥은 안 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주면 좋지’ 이런 식이죠. (웃음) 소득에 대해서 고민이 많아요. 지금 도서관에서 일하는데 이것도 기간제라서 하는 것도 있어요. 잠깐만 해도 되니까.

이 의제 자체는 유의미하다고 생각해요. 기본소득을 제안함으로써 던져볼 수 있는 주제들이 많이 생기는 것 같아요. 지금 있는 문제들을 끄집어 낼 수 있는 단순하고 명료한 장치라고도 생각해요. 또 기본소득이라는 말 자체가 주는 환기도 꽤 중요한 것 같아요.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잖아요. 누구나 같은 소득을 받는 것, ‘기본’이라는 발상도 신선하고요. 그것에 대해 내가 어떤 태도를 가질 것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BIYN : 농사를 짓는다는 건 달군님에게 어떤 의미에요?

 

달군 : 두물머리 농부 중에 한 분께서 “제일 떳떳한 직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걸 한다”고 하셨거든요. 저는 직업적으로 농부가 될 자신은 없지만 적어도 내가 먹는 것의 일부를 어떤 식으로든 계속 생산하고는 싶어요.

농사가 대단한 게 농사를 제외하고 어떤 노동도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가 기획해서 하는 게 없어요. 분업화 되어 있는 공장식 농업도 할 수는 있는데, 대체로 농사는 어떤 땅에서 뭘 심을 건지 스스로 디자인 하고 생산물도 얻는 종합 노동을 하거든요. 그러면서 다른 사람과 협업을 할 수도 있고요. 자기 기획 하에서 전체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노동이고 그래서 예술적인 측면도 있고요. 예술가가 아닌 이상 이런 직업이 별로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꼭 농사를 안 짓더라도 그런 삶을 지향하고 싶어요.

‘활동’이라는 것도 그런 면 때문에 하지 않을까 싶어요. 모든 과정을 보거나 여러 방식을 자주 시도해 볼 수 있는 일 자체가 드문데, 활동에는 그런 측면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활동은 프로페셔널 해야 한다는 부담을 갖고 어려워하기보다는,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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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YN : 끝으로 자유롭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달군 : 사람이 표현을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두물머리 보면서도 그랬는데, 자기표현을 가지는 사람은 언어를 찾지 못한 사람에 비해 문제를 겪는 고통이나 삶의 고통이 다를 것 같거든요. 어려운 일이지만, 현장에서 자기표현을 촉진하거나 만들어 내는 게 활동가의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두물머리 농부들은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어요. 자기표현이 꽹과리를 잘 치는 것일 수도 있고 노래를 잘 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그런 것들로 순간순간에 표현하는 것들이 곧 그걸 사유하고 있다는 거니까요. 이를테면 인민배우 최요왕 씨가 장기하의 ‘별일 없이 산다’를 불러요. 되게 적절하게, 어느 순간에. “나는 사는 게 재밌다” 이러면서 막 불러요. ‘나는 이 투쟁이 힘들고 지랄 같지만 즐기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얘기하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자신에게도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게 다른 농성장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발굴되면 좋겠어요.

물체주머니 하는 것도 그런 맥락인데, 농성칠판을 만들 때도 상상했던 그림은 쌍용자동차의 노동자 한 분이 그냥 끄적끄적 쓰는 거였어요. 농성장에 매일 가더라도 저 사람들이 왜 농성을 하는지 잘 모르고, 농성이 곧 풍경이 되어 버리거든요. 그게 아니라 오늘은 어땠는지를 농성 중인 노동자가 직접 쓰는 거죠. 누가 종합해서 만들어준 인쇄된 활자체가 아닌 자신의 육필로 표현한다는 게 사소하지만 중요한 일일 것 같고, 그런 것을 만들고 싶어요.

 

BIYN : 무슨 책 좋아하세요?

 

달군 :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김선형·권진아 옮김, 책세상 펴냄). 다 있어요, 여기.

 

그리하여 여섯 달 전에 쓰인 달군의 블로그(http://2heads.tumblr.com/) 글 <‘다른 사람의 문제 자장’ 안에서의 봄날의 뜨개질> 중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인용한 부분을 재인용하며 이 인터뷰를 마치려 한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에 S.E.P 필드라는 게 나온다. SEP란 Somebody Else’s Problem의 약자로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의 문제’라는 뜻이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본문을 인용하면,

“SEP라는 건, 우리가 볼 수 없는, 아니 보지 않는, 아니 우리 뇌가 못 보게 하는 광경이야. 왜냐하면 다른 사람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SEP의 뜻이 그거야. ‘다른 사람의 문제’. 뇌가 그 부분을 편집해 잘라내기 때문에 눈에 안 보이는, 맹점 같은 거라고. 그게 정확히 뭔지 모르는 경우에는, 똑바로 쳐다보면 보이지 않아. 유일한 희망은 곁눈질로 어쩌다 재수 좋게 힐끗 보게 되는 거지.”

‘다른 사람의 문제’ 자장은 훨씬 간단하고 효율적이었으며, 무엇보다 손전등 배터리 하나로 백 년 넘게 작동시킬 수 있었다. 이 기술은, 보고 싶지 않은 것, 예기치 못한 것, 그리고 해명할 수 없는 것은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타고난 성향에 의존하고 있었다.

대한문 앞에도 “다른 사람의 문제 자장”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대한문 앞에 상당히 오랜 기간,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 죽음을 추모하는 분향소이자 농성장이 존재해왔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방화로 전소가 되었다가 다시 새로 농성장이 세워졌다. 그 자리에 잠깐만 머물러 보면 이 구역에 바로 그 SEP 필드가 강력하게 작동되고 있는 것을 누구나 확신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것을 켠 것은 소설에서처럼 우주선을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게 주차하기 위한 사람은 아닌 것은 분명하다.

(…)

 

그런데 이런 하찮은 일이 어떤 희망도 답도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어떤 봄날, 사람들은 그것을 직조한다. 실을 자아내고 관계들을 얽어내고 표현했다. 의미망을 만들어내 꾸준히 살아갈 토대를 터치한다. 게다가 그것은 즐겁고 아름다웠다. 단지 놀이였고, 거창하고 힘 있는 싸움은 아니지만, 순간 몇몇에게는 마음에 공간도 같이 만들어냈다고 확신한다 (들뜬 마음에 거창한 말만 바르고 있는 것은 아니길, 아니 뭐 그러면 좀 어떠랴).

돌아오는 길에는 흥분된 마음으로, 공간 ‘공작’을 계속 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 하지 않으면 근질거려서 살 수 없는 일들을 마음 맞는 친구들과 조금이라도 꾸준히 해나가면 어떨까.

쌍차 농성장이 있던 자리에는 여전히 중구청의 정원 가꾸기가 한창이며, 뜨개농성단의 편물도 농성장과 함께 늘 철거당하는 운명이다. 그러나 지금도 SEP 필드를 뚫기 위한 고민과 노력은 계속되는 중이며 그 과정에서 만들어질 네트워크(중의적 의미에서)들은 분명 즐겁고 아름다울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인터뷰 전문 보기 : https://sites.google.com/site/basicincomey/act/interview/dalgun )

 

기본소득은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조건 없이 보편적으로 지급되는 소득을 말합니다.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BIYN)는 기본소득이 실현된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모인 개인 및 단체들의 네트워크입니다. BIYN는 한국사회에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알리고, 신자유주의의 누적된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당사자인 청’소’년(0세~30대)이 먼저 그리고 같이 기본소득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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