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봄이 사는 마을

5. 다시, 한 살을 먹으며

- 봄봄(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

외국인이 말했다. 자신의 나라에서 크리스마스에는 친구들을 만나지 않고 무조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연말이나 명절 때마다 가족이 없는 외국인들은 TV에 나와서 장기 자랑을 한다. 가족이 없는 비혼은 외국인도 아닌데 외계인 같은 느낌이 난다. 2003년 비혼 모임을 시작하면서 나는 어떻게 연말과 명절을 보내고 어떻게 나이를 먹었을까.

 

우리는 한동안 명절 때마다 외국으로 갔다. 결국 외국인이 되었다. 다행인 것은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 같은 친구들이 있었다. 부모님에게는 해외여행을 간다는 명분이 되었고, 우리에게는 친목의 기회가 되었고, 나에게는 선택이 되었다. 결혼을 선택할 것이냐, 결혼을 선택하지 않을 것을 선택할 것이냐.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 행동이 없는 행위도 의지의 한 모습인가. 명절 때마다 엄습하는 스트레스, 결혼의 적령기에 명제처럼 쓰여 있는 결혼을 하지 않고 나이를 먹어갈 때 사람들은 계속 질문을 한다. 왜 (이유가 뭐야)? 그럼 어떻게 (살 건데)? 대안은 (있나)?

 

당신은 왜 결혼했는가? 결혼할 나이가 되어 순리에 따라,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살고 싶은 욕망에, 행복한 삶을 위해서 등 여러 가지 답이 있을 것이다. 나는 왜 결혼을 선택하지 않았는가? 순리를 거스르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욕망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마땅히 행복하고자 한다. 다만 다른 방법을 보았다. 다르게 살면서 괜찮을 수 있는, 대안이라면 대안이 될 수 있는 방법 같은 것. 비혼이 공동체가 되는 지점 같은 것.

 

그것은 가보지 않은 길이다. 그래서 대안은 늘 위험하고 불안하고 위태롭고 희미하고 불확실하다. 사람들은 뚜렷하고 명확한 것을 보여 주기 전에는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타인의 대안이기 때문이다. 나의 대안이 될 때, 스스로가 찾아낸 대안이란 그것을 취하기 시작하면서 삶의 방식이 된다. 현재의 시점이 된다. 미래는 켜켜이 쌓여 가는 현재가 말해 줄 것이다. 조금씩 만들어 가는 방향이 말해 줄 것이다.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듯이.

 

다시, 또 한 살을 먹는다. 우리의 연말과 명절은 크게 다르지 않다. 연인처럼 영화를 보고, 친구처럼 술을 마시고, 가족처럼 모여서 떡국을 나눠 먹는다. 명절 전야에는 차례 상 대신 먹고 싶은 요리 몇 가지를 함께 만든다. 가령 잡채 12인분과 떡볶이와 김치전 같은 것. 음식을 함께 먹으며 다시 비혼의 한 살을 먹는다. 배부르지 않게, 배고프지 않게.

 

2013. 12. 然

 

응답 2개

  1. 봄봄말하길

    네. 그랬군요.
    함께 먹는 데에 있어서는 음식의 양보다는
    개인의 음식에 대한 욕구가 다 달라서 그 점을 합일하는 것이 더 관건이더라고요.
    저도 먹는 양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는군요.

  2. y말하길

    사람들과 책읽는 모임을 하게 되어 간식을 준비하면서
    함께 먹는 일에 대해 생각이 많았습니다.

    특히 “양” 의 문제에 대해서 였는데.
    모임의 성패? 우정의 질을
    “함께 먹는 음식의 양”으로 가늠하려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들더라구요.

    모임에,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정이 있으니 자꾸 좋은 음식도 해오고, 유명한 음식점 뭘 사오기도 하는데, 그게 지나치게 소비적인 방식으로 흘러갈때가 있어서 가끔 이게 맞나 싶을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우정의 마음을 훼손하지 않고 “조금 덜 먹고, 조금 아쉽게 만나고 싶다” 말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그렇다고
    “한덩이의 치즈, 한조각의 빵, 약간의 포도주만” 처럼 엄격하지 않은, 서로 다른 결을 가지고 살아온 우리들이 함께 먹을 “양”에 대해 어떻게 말을 꺼낼까 고민 중이었어요.

    “배부르지 않게, 배고프지 않게”
    봄봄님의 글을 읽고 다시 한번 함께 먹는다는 일을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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