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공명을 넘어서는 <구일만 햄릿>

- 이수정(다큐멘터리 감독)

2013년 10월, 소극장 혜화동1번지에서는 이 소극장 역사 20년 만에 처음으로 한 작품의 공연이 전회 매진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단 9일 동안만 공연한다고 해서 <구일만 햄릿>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연극. 햄릿도, 셰익스피어도 잘 모르던 해고 노동자들이 무대에 서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을 연기한 것이다.

<구일만 햄릿>은 <햄릿> 원작을 축약, 각색하였으나 원작 번역본의 대사를 대부분 그대로 사용한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연극’ <구일만 햄릿>은 기존의 어떤 <햄릿> 공연과도 다른 독특한 것이다. 그것은 원작에 무게 중심이 실리는 것이 아니라, 즉 원작을 어떻게 재해석하고 변형시키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현실에 수백년 전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어떻게 소환되었는가이다.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들의 7년 장기 투쟁이라는 현실이 낳은 기획은 어떻게 <구일만 햄릿>이 되었나?

우선 이 공연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7년째 해고 노동자로서 질기게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들은 2007년 대전 콜텍과 인천 콜트악기에서 공장 폐업, 정리해고를 당한 기타 노동자들이다. 2011년부터 이들은 인천 콜트악기 폐공장으로 거점을 합쳐 공동투쟁을 시작했다. ‘콜트콜텍 기타노동자의 집’이라 불리던 폐공장에서는 매주 문화제가 열리며 200여명이 넘는 인디뮤지션들이 이 곳을 찾아왔다. 2009년과 2011년에 만들어진 <기타 이야기>, <꿈의 공장>이라는 다큐멘터리는 이런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영화이며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의 상황과 투쟁을 알리는 데 기여했다. 나 역시 콜트콜텍을 알게 된 것이 2009년 <기타 이야기>를 통해서였고, 폐공장을 처음 가게된 것은 2012년 폐공장의 ‘이웃집 예술가’ 전시회 <갈산동 421-1> 때문이었다. 영화의 관객이었고, 미술 작품의 관람객이었던 나는 자연스럽게 그 공간과 그 공간에 놓인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관심은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는 나로 하여금 콜트콜텍에 관한 또 다른 다큐멘터리를 기획하도록 이끌었는데, 이 기획을 제작으로 이어지게 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것은 ‘콜밴’의 존재였다.

콜밴은 콜트콜텍 기타노동자 밴드를 줄여서 부르는 이름이며, 대전 콜텍에서 올라와 공동투쟁을 하고 있는 4,50대 아저씨 네 명으로 구성돼 있다. 기타 공장에 다니면서도 기타를 칠 줄 몰랐던 사람들이 해고된 후에야 비로소 기타를 배워 연주하게 된 것이다.

투쟁 5년 째 되던 해 밴드를 결성하게 된 배경에는 본사 점거, 고공 농성, 해외원정투쟁 등 해고노동자로서 할 수 있는 투쟁들은 다 해 본 뒤라는 시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폐공장 문화제, 다큐멘터리 상영회를 통한 문화예술인들과의 만남이 있다. 즐겁고 유쾌한 모습의 그들은 사람들을 모이게 했으며 노동자들만의 집회가 아닌 확장된 장을 가능케 했던 것이다.

하지만 중년의 해고노동자들이 매월 신곡을 익히고 연습해서 대중들 앞에서 노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코드와 박자는 틀리기 일쑤고 그럴 때마다 부끄럽고 민망하지만, 오히려 웃고 박수쳐주며 호응하는 연대 동지들 덕분에 이 밴드 역시 2년을 넘어 지속되고 있다. 2013년은 매주 금요일 서울과 인천을 오가며 유랑문화제라는 이름으로 인디 뮤지션들과 함께 거리 공연을 해왔는데 그런 과정에서 이들은 어느덧 무대에 서는 게 익숙해지고 때론 능청맞은 멘트를 날릴 수도 있게 되었다.

이렇게 무대가 무엇인지, 청중이 누구인지, 박수 갈채의 맛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 네 명의 노동자들은 어쩌면 이런 연극 공연을 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가 돼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연극 제의가 들어왔을 때 선뜻 하겠다고 답했다. 더구나 그 제의를 한 사람 역시 자신들과 마찬가지인 아마추어 밴드 ‘어쩌다 마주친’의 멤버이고 가끔 폐공장에 찾아왔던 연대 동지이기 때문에 일정한 신뢰가 뒷받침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덥석 연극을 하겠다고 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문화예술인들의 기획을 받아 무언가를 했을 때의 파급 효과를 이미 터득해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연극에 애정이 있다거나 배우로서 주목받고 싶은 욕망과는 거리가 있다. 이들의 이유는 분명하다. 오로지 자신들의 상황을 보다 널리 알리는 것이다. 연극을 한다면 다시 한번 콜트콜텍 상황이 기사화 될 것이고, 신문이나 TV에 나옴으로써 부당한 정리해고와 폐업에 대한 여론을 형성시킬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구일만 햄릿>은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의 7년 투쟁 과정에서 생겨난 또 하나의 공명에서 출발했다. “공명이란 ‘함께 울린다’란 뜻인데, 어떤 소리의 파동에 다른 것이 동조하여 소리를 내는” 것이며 “누군가의 발언을 나에 관한 것으로 동일시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이 공연을 기획하고 성사시킨 <막무가내종합예술집단 진동젤리> 는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는 진동에 공명하며 젤리처럼 유연하게 진동을 전달하는 매질이 되고자’ 하는 것을 표방하는 집단이다. 그동안 이주노동자들과의 연극 워크샵(2010), 도시 영화제(2011) 기획, 까페 연극 (2012~현재) 등을 진행해왔던 ‘진동젤리’는 “어떤 공연을 만들 것인가라는 두 달 간의 고민 끝에, ‘노 콜트’ 이름 아래 모인 이들이 함께 호흡을 맞추면서 재미있게 ‘연극 한 편’을 만들자는 결론에 도달”한다. “연극이 할 수 있는 일, 연극의 매력을 가지고 승부해보자고. 여전히 연극 작업이야말로 사람/사물들과 가장 ‘잘’ 만나게 해주는 장이다.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관객과 만나는 그 순간까지, 끊임없이 서로 소통하기 위해 노력해야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는 실제로 친해지고 더 많이 알게 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단순하게 평가내릴 수 없는 서로의 ‘날 것’을 보게된다. 서로의 ‘날 것을 보게된다는 점’에서 연극 작업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그리고 이 과정을 이 작업에 참여하는 이들이 함께 경험하고, 그것을 무대 위에 올려놓고자” 하였으며 그러한 기획은 <구일만 햄릿> 연극에 오롯이 담겨있다.

콜트콜텍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인 나는 이 연극의 준비 과정과 공연 장면 역시 기록해야만 했는데, 다큐멘터리 연극 안에 있는 나의 주인공들을 촬영하면서 몇 개의 스크린이 중첩되는 재밌는 경험을 하였다. 가령 무대 위에서 햄릿을 연기하는 배우로서의 장석천이 있으며, 동시에 무대 뒤 편 스크린에 투사된 콜텍 해고자 장석천이 있고, 그 영상은 연극을 위해 새롭게 촬영된 것도 있지만 이전에 만들어졌던 다큐멘터리의 한 부분이기도 한데, 이 모든 것을 하나의 프레임 안에 담고 있는 나의 촬영분은 앞으로 완성될 다큐멘터리의 한 부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무대 뒤의 스크린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분할 이동 가능한 다섯 조각의 하얀 천 파티션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러한 스크린의 설계는 <구일만 햄릿>을 더욱 풍부한 다큐멘터리 연극이 되도록 만들었다. 배우들이 연기하는 극장 안 무대 뒤 보조 장치로서만 영상을 투사하는 스크린이 아니라 배우들의 등,퇴장 통로를 만드는 무대장치가 되기도 하며 조명 연출과 함께 그림자 효과를 내는 휘장이 되기도 하고 하는 스크린은 7막에서는 아예 배우들을 다른 장소로 공간 이동시키기도 한다. 그렇게 경계를 허물고 연극과 영화를 넘나드는 <구일만 햄릿>은 단지 콜트콜텍 상황을 알리고 노동자들의 처지에 공명하는 것을 넘어서 관객에게 또 다른 응시의 경험을 선사한다.

그리하여 이 연극에서 노동자들이 연기를 잘 했다거나, 어색하다거나, 대사를 틀린다거나 하는 것은 이 연극의 평가 기준이 아닌 것이다. 또한 연출자들이 <햄릿>이라는 비극 속에 관객의 감정이입을 의도하는 것이 아님도 분명하다. 그럼에도 연극의 작업 과정에서 연출자들은 이를 숨긴 채 해고노동자들로 하여금 연극 배우라는 경험을 하게 하였다.

우연히 결정되었다는 연극의 제목처럼, 이들은 딱 9일‘만’ 연극을 하기로 했었다. 햄릿 역을 맡은 장석천은 “9일도 길어~” 라고 극 중 인터뷰 영상에서 말한다. 긴 대사를 외우는 데 곤욕을 치르고, 감정 이입이 안 된다며 차라리 콕 집어서 가르쳐달라고 요구하는 그는 연출자와 갈등을 빚는다. (이러한 연극 연습 과정 역시 무대 배경 스크린에 영상으로 보여진다.) 이는 석천 만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연출자들은 그러한 한계 자체를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평소에 말을 자주 더듬으며 같은 단어를 빠르게 반복하는 습관이 있는 재춘(오필리어/레어티즈 역)의 인터뷰 영상, 연극 연습 장면 영상과 실제 연극의 장면을 반복해서 교차하는 4막이라든지, 콜텍 사무장으로 집회에서 발언하는 일이 많은 석천의 발언 말투를 햄릿이 그대로 쓰게 한다든가, 느릿느릿한 이인근 콜텍 지회장의 말투나 몸짓을 왕의 그것으로 끌어오는 것 등이 그 예이다. 한편, 궁정극이기도 한 이 연극을 TV 사극과 연결시켜 해석한 김경봉(선왕의 망령/폴로니어스 역)은 연극적 대사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간 듯하다 (어떤 관객은 그가 전문 배우인 줄 알았다고 한다).

이렇듯 연극 작업 과정에서 어떤 이는 저항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어떤 이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며, 또 어떤 이는 배우에 근접하기도 한다. 물론 이들은 처음에 자신들의 투쟁의 한 방식으로 연극을 받아들였으며 그렇기에 입에 붙지 않는 긴 대사들을 끙끙거리며 외우고 연극이 어떠한 형태가 되는 것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한 채 자신의 배역 연습에 충실했다.

그 과정에서 연출자들의 의도대로 그들은 서로의 ‘날 것’을 조금 더 보게 되었으며 밴드 활동과도 다른 체험을 하게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이 서로의 눈을 마주보며 말을 해야만 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자기 대사만 외워서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이는 상대방의 대사와 감정까지도 알고 느껴야 한다는 것에서 어려워하기도 했다. 어찌보면 7년 동안 늘 붙어서 함께 투쟁을 해온 동지들이며 밴드 활동도 하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소통이 원활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이들에게 동지애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기타 공장에서 일할 때 각자 다른 파트에서 일하던 사람들이다. 동료들과 대화할 시간 조차 없이 주문 물량을 채우기에 바빴던 이들은 공장이 문을 닫고 함께 싸워야할 관계가 되면서 ‘발언’이라는 걸 하게 됐다. 저항하는 삶을 선택하자 이들에게 말할 권리가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경청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 ‘발언’은 무엇보다 그들을 거리로 내몬 회사와 그런 정리해고가 가능한 시스템을 만든 국가를 향한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은 정작 당사자에게 공명되지 못한 채 벽에 부딪쳐 떨어지곤 했다. 그러기를 7년 세월이다.  소통되지 못한 말은 연대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다른 형태로 발화되기 시작했다. 음악으로, 영화로, 미술로, 연극으로…그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시작한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여전히 낯선 세계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연극 작업은 이들에게 있어 그동안 서로에 대해 몰랐던 것을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했고, 낯선 언어로 소통하면서 뜻밖의 감정을 일깨우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탈구된 세상이라는 <햄릿>의 세계는 이들에게 공명을 불러 일으켰다. 이들은 공연을 거듭하는 과정 속에서 점차 이 세계에 물들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인근은 “어떤 행운이 온다 해도 나는 즐거움을 모를 것이다”라는 왕(죄인)의 대사를 전유해 자신의 것으로 가져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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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밴이 그랬듯이 이들의 목적은 물론 다른 데 있었지만, 음악이나 연극 작업의 과정은 이 노동자들에게 예기치 않았던 것들을 안겨준 게 분명하다. 그것을 ‘치유’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나는 그것이 이들에게, 도저히 사유할 수 없는 것이지만 피해갈 수 없기에 사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어떤 것이 되길 바란다. 그것은 사후적으로 구성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랬을 때 흔히들 얘기되는 ‘노동과 예술의 만남’은 단순히 노동자가 예술 행위를 하는 것을 넘어서, 혹은 예술가가 노동자를 만나 무언가를 함께 한다는 것을 넘어서 그 주체들 각자를 변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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