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무대 안 진실과 무대 밖 허구

- 죠스(수유너머R)

<구일만 햄릿>1)을 통해 돌아본 콜트콜텍 투쟁

1) 2013년 10월 7, 14, 22-27일,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 소극장에서 공연. 자세한 정보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구일만 햄릿’ 검색.

 

# 사라진 집

 

부평 콜트콜텍 농성장 맞은편에는 LPG 충전소가 있다. 시선이 머물 수밖에 없는 그곳이 바로 7년 전까지 콜트 공장터였고, 올해 1월까지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의 집’이었던 곳이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지 않는 한, 이제 그곳은 LPG 충전소일 뿐이다. 내가 처음 콜트콜텍 노동자들을 만난 곳도 바로 그곳, 지금은 ‘사라진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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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일만 햄릿> 공연 영상 중, 부평 천막 농성장 맞은편 LPG 충전소 >

 

올해 나는 아마추어 밴드 일원으로 콜트콜텍 문화제에 3번 참여했다. 3번 모두 장소가 달랐다. 1월에는 옛 부평 콜트 공장 터에 자리한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의 집’, 3월에는 그 맞은 편 콜트콜텍 농성장, 그리고 7월에는 서울 홍대 걷고 싶은 거리 한 복판에서 우리는 “No Cort”를 외쳤다. 공간의 변화는 곧 상황의 변화였다. 그리고 점점 더 절실해지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했다. 올해 2월 부평 콜트 공장터에 강제집행이 시행되면서,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기타를 제작하던 공장이자 작년 4월부터 예술가들과 함께 점거하고 꾸며온 ‘집’을 잃었다. 상황은 점점 더 안 좋아지고 있었고, 콜트콜텍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다. 분명 노동자들의 속은 타들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7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리만큼, 농성장과 문화제에 찾아온 사람들을 대하는 그들의 표정은 밝고 따뜻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어찌 모를 수 있을까. 그렇게 사라진 집을 마주보며, 농성장에도 봄이 왔다.

 

연극 공연을 한 번 해보면 어떨까 하는 말은 4월에 나왔다. 처음 제안은 당시 내가 속한 프로젝트 그룹인 진동젤리2)가 하고 있던 연극을 농성장 문화제에서 해보면 어떨까였다. 밴드 공연 위주로 채워지던 농성장 문화제는 새로운 형식의 공연을 필요로 하는 시점이었고, 진동젤리는 농성장용 연극 공연을 구상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래서 진동젤리는 당시 하고 있던 공연을 농성장용으로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농성장이라는 공간의 특성 상, 답이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기존 공연을 변경하느니 차라리 공연을 하나 더 만드는 게 낫겠다고 투덜대던 찰나, 그렇다면 아예 농성장에 상주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연극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 곧 진동젤리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에게 연극 만들기를 제안했고, (우려와는 달리) 노동자들은 흔쾌히 그 제안을 수용했다. 노동자들은 콜트콜텍 상황을 알릴 수만 있다면 뭐라도 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콜트콜텍 상황을 연극이라는 형식을 빌려 관객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2) 2009년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는 작은 진동에 함께 공명하며, 젤리처럼 유연하게 진동을 전달하는 매질이 되고자 막무가내 종합예술집단 진동젤리 결성. 모든 작업은 그때마다 멤버를 모집해서 진행함. 현재는 <구일만 햄릿> 제작 및 공연 중.

 

# 현장이 된 무대

 

두 달에 걸친 연극 기획 단계에서 노동자들을 만나고, 여러 공연 장소들을 물색하면서, 진동젤리가 내내 가지고 있었던 화두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구호이기도 한 “노동자가 없으면 음악이 없고, 음악이 없으면 삶이 없다.”였다. 누구나 노동자들이 악기를 생산하지 않으면 음악이 만들어질 수 없고, 음악이 없으면 삶이 얼마나 팍팍할 지를 쉽게 연결 지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은 아무 설명도 없이 하루아침에 일터에서 해고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구호 또는 머릿속에서 당연한 듯 연결되어 있는 노동, 음악, 삶이 현실에선 철저하게 소외되어 있는 것이다. 때로는 무대 밖 현실이 무대 안 허구보다 더 환상에 의존한다. 사람들은 음악을 좋아하고 즐기지만, 그 음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노골적으로 보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싸고 질 좋은 기타, 사장의 권리, 뮤지션의 유명세는 쉽게 믿지만, 싸고 질 좋은 기타를 생산하는 공장의 열악한 환경, 해고 노동자의 파괴된 삶, 노동자의 목소리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노골적인 현실보다는 허구가 아름답고 편하니까.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이 외면하는 무대 밖 진실을 무대 안으로 불러들이고 싶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연극하면 보통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콜트콜텍 상황들을 무대에 녹여내고 이슈화시키기 위해서 색다른 장소와 실험적인 형식들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생전 처음 연기란 걸 해보는 노동자들에게 이번 연극이 배우가 되어보는 설레는 경험이기를 바랬고, 무대 위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열심히 연기하는 노동자들과 관객들이 만나는 것만큼 그들을 잘 보여줄 수 있는 형식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연극이 할 수 있는 일, 연극의 매력을 가지고 승부해보자고 맘을 먹고, 6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구일만 햄릿> 제작에 들어갔다. 셰익스피어 <햄릿>에서 9장면을 골라내고, 배역을 정하고, 왕비 역할을 할 문화연대 최미경 활동가까지 섭외한 후, 7월 우리는 매주 2회 본격적으로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단언컨대 이번 작업의 목적은 콜트콜텍 상황에 있고 노동자들에게 있다. 따라서 중요한 건 <햄릿>이 아니라 <햄릿>을 연기하고 있는 노동자들이다. 우리는 농성장, 연습실, 무대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햄릿>을 읽고 분석하고 연습하고 있다. 어떤 <햄릿>이 나올지는 아직 예상할 수 없으나, 아마도 우리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햄릿>이 나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곧 무대 위에서 생에 첫 연극 무대에 서는 배우들의 떨림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구일만 햄릿>을 통해 7년 째 거리에서 공장에서 그리고 농성장에서 일상을 이어오고 있는 노동자들과 연대 활동가들의 떨림이 관객들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10월 공연 제작 당시 작성한 글)

 

# 햄릿이 된 노동자

 

<구일만 햄릿>의 목적은 – 1) 콜트콜텍 상황을 이슈화 시킨다. 2) 관객들이 무대 위의 노동자들과 생생하게 만날 수 있도록 한다. 즉 왜 이들이 연극까지 하게 되었는지를 이해시키고, 생각하게 만든다. 3) 참여하는 이들에게 의미 있는 과정이 될 수 있도록 한다. – 였다. 사실 처음 <햄릿>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유명해서였다. 해고노동자들이 <햄릿>을 직접 연기한다는 사실을 가지고 연극계와 언론에 적극적으로 홍보해, 한 번이라도 더 콜트콜텍 상황이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강했다. 우리는 유명하면서도 잘 구성된 <햄릿>을 최대한 활용해서 콜트콜텍 상황도 알리고 노동자들이 배우가 되는 경험도 할 수 있기를 원했다. 그래서 <구일만 햄릿> 제작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한편으로는 홍보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햄릿>의 주요 장면들 사이에 콜트콜텍 상황을 어떻게 배치시킬 것인가였다. 애초에 진동젤리는 <햄릿>과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의 삶이 무대에서 유기적으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그 일이 일어났다.

 

우리는 되도록 많은 연습 과정을 촬영했고, 연극 작업에 임하는 노동자들의 생각을 영상에 담기 위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것이 최종적으로 무대에서 관객들이 노동자들을 만나게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렇게 힘들게 대사를 외우고 <햄릿>의 주요 장면들을 이해하고 연습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스스로 햄릿의 비극적 운명과 자신의 비극적 삶 사이의 공통점을 찾아냈다.

 

“햄릿이라는 연극하고 내가 처해진 연극하고 비슷하다고 봐.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그리고 어머니는 딴 사람이 품고, … 그런 걸 모르면서 (왕비가) 자식한테 꾸짖듯이 얘기하고 이럴 때는, 남들이 볼 때 우리하고 똑같은 거지. 지금 주위 사람들 내 식구들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건데,, 박영호(콜트콜텍 사장)가 뭔가 잘못했는지 얘기하면 왜 딴 데 가서 직장을 구하면 되지? 이렇게 생각하는 거지. 그거하고 그거하고 똑같은 거거든. 아무리 얘기해도 그 사람들이 이해하지 않고 들으려고 하지 않으면 그 사람들이 나를 손가락질 하는 거지. … 박영호하고 나하고, 왕과 햄릿과의 관계가 … 이게 왕이 햄릿의 아버지를 죽인거잖아. 그러니까 여기는 박영호가 노동자들을 정리해고 한 거고, 실질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살인인거거든. … 사회적 타살이라고 보는 거지.” (<구일만 햄릿> 중, 장석천(콜텍지회 사무장)인터뷰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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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트콜텍 투쟁 연보가 담긴 구일만 햄릿 웹자보>

 

그렇게 노동자들이 이해한 <햄릿>과 자신들의 이야기, 연습 과정, 7년간의 투쟁 기록들이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연기한 장면들과 맞물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더불어 7년 간 콜트콜텍 노동자들에게 있었던 일을 정리해서 관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우리는 인포그래픽을 제작했다. 우리는 7년 동안의 투쟁 기록을 그래픽으로 보기 쉽게 정리해 영상으로 만들었고, 그 영상을 극 초반에 배우들과 관객들이 함께 관람하도록 연출했다. 인포그래픽을 보면서 즉흥적으로 코멘트를 하는 배우들을 통해, 관객들이 콜트콜텍에 대한 정보와 함께 잠시나마 그들의 심경을 공유하게 하기 위해서.

 

배우들의 의상과 소품, 그리고 극 중 배경 영상 역시 모두 콜트콜텍 투쟁과 관련된 것들을 활용했다. 배우들의 모든 의상은 콜트콜텍 투쟁 소품들로 꾸며졌고, 극 중 유령 및 검과 같은 소품은 망가진 기타들을 활용해 제작되었다. 그리고 7년 동안 기록된 콜트콜텍 투쟁 영상들과 콜밴(콜트콜텍 기타노동자 밴드)의 공연 영상들이 연기하는 배우들의 배경으로 활용되었다. 또한 극에서 주요한 역할을 한 5개의 전면 스크린과 극의 분위기를 대표한 포스터와 웹자보들까지 모두, 콜트콜텍 투쟁에 동의해 모인 이번 진동젤리 멤버들의 아이디어와 노력의 산물이었다.

 

마침내 공연이 시작되고 무대 위 노동자들의 모습과 햄릿의 비극적 운명이 만나는 것을 목격했을 때, 그것은 공동연출자인 내게도 큰 감동이었다. 물론 연출의 입장에서 아쉽고 부족한 지점들이 많은 공연이었지만, 9일 동안 매번 다른 햄릿으로 변신하면서 관객들에게 아낌없이 자신을 드러낸 배우들에게 한없이 고마운 공연이기도 했다. 연습하면서 속상하거나 서운한 점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매 공연 배우들은 그 서운함을 싹 날려버릴 정도로, 모두들 멋지게 변신했다.

 

# 9일 이후

 

9일 동안 <햄릿> 속 인물로 변신했던 노동자들은 지금 다시 농성장에서, 집회 현장에서, 거리에서 자신들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괴롭히는 일들 역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 11월 1일, 7년째 여전히 해고 노동자들은 나 몰라라 하는 박영호 사장의 기업 콜트콜텍은 2010년에 설립한 콜텍문화재단이라는 단체를 이용해 열정, 가족, 사랑과 같은 기치를 내세우면서 ‘G6 콘서트(The Guitarist Six Legend Story)’를 개최 했고, 옛 부평 공장터 LPG 충전소 사장에게 충전소 인허가를 내준 공무원이 뇌물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름다워 보이는 공연과 자연스러워 보이는 LPG 충전소 건설 이면에는 더러운 현실이 숨어있었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싸움을 멈출 수 없는 이유와 우리에게 무대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무대 밖 현실은 자주 왜곡되고 감춰진다. 우리는 쉽게 보여주는 것만을 믿고, 믿고 싶은 것들만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럴 때 소외되는 것은 바로 우리 옆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고, 또한 우리 자신이다. 7년 째 싸우고 있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요구는 거창하지 않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콜트콜텍 상황을 알게 되는 것, 박영호 사장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 자신들이 믿는 신념대로 살아가는 것,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콜트콜텍 노동자들과 연대 활동가들은 오늘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을 꾸준히 해나가고 있다.

 

2014년 1월 콜텍 노동자 정리해고 대한 고법 판결이 다시 나온다. 2012년 대법원은 동일한 정리해고 사안에 대해 상이한 판결을 내렸다. 당시 부평의 콜트 노동자들의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는 사안은 승소했으나, 대전의 콜텍 노동자들의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는 사안은 고법으로 파기 환송되었다. 그 사안에 대한 고법 판결이 내년 1월에 나온다. 12월 17일에서 22일, 극장 측 제안으로 <구일만 햄릿>도 6일 동안 재공연을 했다. 우리는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는 ‘당연한’ 고법의 판결을 받아내기 위해, 법원 밖에서 또 다시 많은 일들을 기획하고 <구일만 햄릿>을 활용할 것이다. 무대가 필요한 이유는 무대 밖에 있다. 함께 사는 일이 욕심이 되고 허구가 진실인 양 둔갑하는 게 현실이라면, 우리는 가려진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끊임없이 무대를 만들어낼 것이다. 무대 안 진실이 무대 밖 허구를 부술 수 있을 때까지.

 

위의 글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월간지 <질라라비> 2013년 11월호에 실렸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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