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우백당 식구들(3) 랱 엔 써펀트(a rat & a serpent)

- 김융희

세 번씩이나 우리 집 식구들 소개를 보면서, 믿기가 조금은 의아스럽고 수긍이 잘 가지 않을 것 같습니다. 통상 시골에서 기른 가축이라면, 함께 생활하는 개를 식구로 여김은 납득이 될 수도 있겠으나, 닭과 오리를 식구로 대접하여 표현함에는 거부감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더구나 세 번째 이야기로 “쥐와 뱀”을 식구라고 우기는 저를 보면서 결코 정상으로 보지 않을 듯 싶습니다. 저역시 이같은 생각에 충분히 공감하면서 그냥 이해를 바랍니다. 어차피 꺼낸 이야기로 우리 집 식구 소개를 요번까지로 끝낼까 합니다.

알다 싶이 랱은 토실한 집쥐이며, 써펀트는 뱀들을 가리키는 영어입니다. 한 집안에서 먹고 생활하는 식구들을 소개하면서, 썩 좋은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 어쩐지 혐오스런 어감으로  “뱀과 쥐”란 말을 피하려는 의도에서, “마우스와 스네잌”도 아닌 “랱 엔 써펀트”로 표기했음을 미리 밝힘니다. 제가 썩 반갑지도 않는 서생원과 배암을 이처럼 굳이 식구로 받드는 까닭을 밝히기 전, 미리 하나의 부연 설명을 드려야겠습니다.

이웃에 사는 친구가 스스로 자기를 사단장이란 호칭을 써서 늘 듣기가 좀 거북했습니다. “시인이나 농부라면 모르겠지만, 왠 사단장이냐”고 했더니, 왈 “자기 식솔들이 사단 병력이라며, 자기는 사단 병력의 식솔을 거느린 사단장”이란 것입니다. “소대도 아닌 부부 단 둘이 산골에서 농사를 짖고 가축이나 기르며 사는 주제에 무슨 사단장이냐”는 내 핀잔을 그는 우습게 받아드리며 식솔들을 쭉 소개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사단장에 참모인 아내, 대대장 급의 황소를 비롯한 소들, 그리고 중대장 급의 돼지들, 하급 장교인 닭과 오리들, 기타 기간병들, 그리고 은폐 잠복 근무중인 쥐와 뱀들이 모두 자기 예하에 소속된 식구들이며, 그 규모가 사단 병력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저는, 사실이야 어떻든 말이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떻실지?

시골에는 여러 가축들을 키우지만, 직접 기르지 않더라도 알게 모르게 함께 어울려 사는 생명체들이 많습니다. 음식물에 붙어서 먹고 사는 파리 때나, 여름철이면 우리들을 괴롭히는 모기들같은 작은 곤충에서, 수시로 날아드는 맷새들, 둠벙에서 해염치며 놀고 있는 붕어며, 미꾸라지, 피라미들, 그리고 집안 곳곳에 숨어 살고 있는 쥐가족과, 풀숲에 살고 있는 뱀무리들. 이 모두가 서로 의지하며 함께 살아가는 식구들인 것입니다. 뱀은 잘 모르겠으나, 쥐의 가족들은 정말 사단 병력입니다.

친구로부터 들었던 말을 떠올리면서, 이처럼 집안에서 함께하는 많은 생명체들. 오늘은 그 세 번째로 “쥐와 뱀”에 대해 이야기를 드리려 합니다. 이 시간에도 바로 곁 벽새에서는 쥐가 벽재(壁材)를 갉고 있는 소리가 저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습니다. 벽체인 벽돌과 합판 사이에 보온재로 끼운 스티로폴을 예리한 이빨로 계속 갉고 있는 것입니다. 콩크리트와 벽돌로 막혀 있는 벽체를 어떻게 들어왔는지도 의문이며, 고요한 방안에서 날카로운 이빨로 갉아데는 예리한 소리를 계속해 듣는 고통은 참으로 지겹습니다. 벽체를 힘껏 두들기면 잠깐 멈춘 듯 하다가 금방 다시 계속되는 지겨운 예리한 소리..  당장 벽을 뚤어서 쥐새끼를 잡아버리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는. 지금도 끝이 없이 그 상황이 계속 지겹게 진행중입니다.

아마 어찌해 들어오긴 했지만 나가질 못한 듯 싶습니다. 배가 고파서 스티로폴이 먹이가 되고 있겠고, 쥐의 이빨은 계속 자라기 때문에 쉼없이 갉아서 이빨을 갈아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소음을 언제까지나 들으며 지내야하는 나의 고통이란, 특히 잠을 자려는 밤이면 꼭 전장(戰場)터같은 기분입니다. 쥐의 피해는 이 것 뿐만이 아닙니다. 쥐는 식성이나 종족 번식이 매우 강하며, 너무나 영특한 동물입니다. 변장술에 아주 능하며, 음식탐이 많아 무엇이든 아무렇게나 무차별 갉아데고, 먹어치우는 정말 밥 맛 없는 놈입니다. 그렇타고 쥐약을 놓으면 개들이 위험합니다. 쥐덪이나 끈끈이를 놓았더니 처음 한 두 번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금방 그가 알아 체고 잡히기는 커녕 오히려 갖고 노는, 그의 작난감이 되버림니다. 정말 쥐는 영특한 짐승입니다.

이런 고약한 쥐들의 소탕을 위해 계속 많은 노력을 했었습니다. 그런데도 효과 별무입니다. 결국 천적을 도입하는 수 밖에……먼저 고양이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형편이 고양이도 문제가 있습니다(여기서 문제는 생략합니다). 제2의 천적은? 뱀의 먹이가 쥐임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뱀은 무서운 독을 갖고 있습니다. ‘차라리 쥐가 낫지’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목제 가구며, 책 등,  집안 곳곳의 피해로 인한 쥐의 꼬락서니를 계속 지켜보면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뱀은 그놈의 독과 혐오의 모양만 아니면, 다른 피해를 전혀 끼치지 않는 동물이었습니다. 결국 나는 뱀에 관심을 갖었습니다.

관심을 갖고 지켜본 뱀은 처음 내가 생각했던 그런 동물이 아니었습니다. 행동거지가 경솔한 쥐처럼 함부로 불쑥 나타나 어디서나 설치지 않으며, 흔적도 없이 지극히 낮은 자세로 조용히 이동하는 겸손과 배려는, 우리들이 배워야 할 모범입니다. 혐오스럽기 보담 전혀 아닌, 매우 우아한 품위와 기품의 예쁜 모양새를 갖춘 동물이 뱀의 외모였습니다. 태초에 인간을 유혹했던, 지금도 남을 유혹하는 말로 쓰이는 “꽃뱀”은 그냥 하는 표현이 아니었습니다. 천경자 화백이 그 자태에 반해 며칠을 뱀집에서 뱀을 보면서 그린 작품이 그 유명한 “화사도”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명화 “화사도”를 이제야 좀 이해할 것 같습니다.

뱀은 대부분이 무서운 독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두려워하며 미워할 것입니다. 그러나 미워하기 전에 이해하고 배려해야 할 것입니다. 결코 뱀은 자기가 부당한 침해를 받아 위기를 느꼈을 때를 말고는 절대로 자기의 무기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조용히 풀숲에서 안식을 취하거나 용무가 있어 옮길 때도 가능한 몰래 그리고 낮게 조용히 이동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지레 겁을 먹고 먼저 건드려서 그를 화나게 했을 때, 또는 절대 위급한 경우가 아니면, 그는 비상 수단을 쓰지 않습니다. 이같은 그를 이해하고 나면서, 뱀이 나에게 계속 하는 말이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이유도 없이 자기를 그리도 미워하느냐고!

뱀은 결코 인간에게 어떤 피해도 끼치지 않고 가능한 눈에도 잘 띄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도, 이해 하기는 커녕 마구 죽이려 드는 우리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억울해 합니다. 세계 평화를 책임진다며 최고 성능의 무기를 갖춘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이 때로는(수시로) 평화가 아닌 자기 이익을 위한 무력을 사용하는 일은 많이 보와왔지만, 정말이지 뱀은 무서운 독을 갖었다고 결코 자기 이익을 위해 독을 부당하게 함부로 사용한 사실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제는 보면 죽이다 못해 뱀이 몸에 좋다는 보신용으로 전업 뱀잡이 ‘땅꾼’들이 있어 종족 전멸 위기의 지경에 놓인 것이 지금의 뱀의 신세입니다.

나는 뱀과 더불어 살고 있습니다. 생각을 바꾸며 식구로 맞아 함께 살고 있는, 이제는 그들도 나를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조용히 숨어 살면서 거의 눈앞에 나타나지도 않습니다. 여름철 몹시 덮고 습기가 많을 때면 견디다 못해 잠깐 밖에를 나오지만, 그것도 지극히 은밀해서 눈에 잘 띄지를 않습니다. 물론 어쩌다 눈에 띄이더라도 이제는 거의 개의치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집에 온 손님들에게 들키는 일이 가끔 있습니다. 아주 가끔 있는 일이지만, 그 때마다 뱀은 무척 당황하고 미안해서 자리를 얼른 피해 줍니다. 그런데도 자기를 저주하고 미워하는 손님들, 그럼에도 그는 사람들을 결코 원망하지 않습니다.

뱀을 가까이 하면서, 우리집 쥐들은 개체 수가 많이 줄었습니다. 덕택에 쥐의 피해는 거의 없어졌습니다. 아마 벽새에서 나를 괴롭히는 쥐는 뱀을 피하려다 어쩔 수 없는 피신처로 알고 잘못 든 것 같습니다. 이 정도의 피해는 나도 감당해야겠습니다. 문제는 우리집 오는 손님들, 가끔 나타난 땅꾼들입니다. 지난 여름철, 집앞을 흐르는 개천가에서 열심히 계속 무엇을 주시하는 낯선 사람이 있어서 ‘무었하느냐’고 물었더니, ‘뱀을 잡으려 한다.’는 대답이었습니다. 이처럼 땅꾼들이 뱀의 씨를 말리고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사실입니다. 쥐도 씨를 말리면 안될 것입니다. 뱀의 양식이 없으면 뱀들도 우리 곁을 떠나겠지요. 우리는 쥐도 뱀도 함께 어울려서 더불어 함께 살아야 합니다. 이기와 오해와 욕심으로 가득 찬 우리의 욕망은 결국 우리 인간들까지도 자멸해야하는 스스로의 불행을 맞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인간의 현명한 이성을 되찾을 절박한 시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