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건우를 보내고…

- 김융희

 

겨울 산촌의 무료 한가로운 한낮이다. 산천이 백설로 뒤엎인 설원에 햇살이 반짝거리며, 가지에 메달린 마른잎이 바람에 살랑거린다. 냇가에선 얼음 트는 소리가 쨍! 쨍! 계속 들려오고, 산몰랭이에는 높게 떠 수리가 날고 있다.  오늘따라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도 뜸하다. 냇가 갈대숲에서 겨울을 지내는 멧새, 참새들도 적막이며, 우리집 진주들(백주, 황주, 흑주)도 침묵이다. 심란으로 책갈피를 접는데, 밖에서 인기척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당황한 모습의 이웃집 홍씨가 들어오면서 다급한 목소리이다. “추워서 꼼작 않고 있다가 지금에야 밖에 나왔더니, 건우가 마당에 죽어 있네요. 싸늘하게 얼어 있는걸로 보아선, 벌써 엊저녘쯤 죽은 것 같던 데요.” 추위에도 헐레 벌떡 먼 길을 달려온 그를 잊은 체, 나는 경황 망조(驚惶罔措)에 허둥데며 주섬 차림으로 급히 나섰다. 손도 마음도 떨려 운전도 불안하다. 마당에 들어서니 쌓인 눈위에 퍼져있는 건우의 애처로운 모습이 눈에 띄었다.

지친 모습으로 단짝의 집을 지척에서 바라보며 잠들어 있다. 주섬 만저보니 몸이 벌써 얼어 굳어있고, 대충 살펴보니 근래 봤던 상처 자국들 뿐, 별다른 외상(外傷)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행여나 싶어 자세히 살피려니, 오래 전부터 입은 흉터 자국들로 온 몸에 성한 틈이 없다. 조용히 잠들어 퍼져있는 건우를 지켜보려니 하염없이 계속 눈물이다. 지킴이로써 오직 주인만을 위해 침입자들과의 싸움으로 한 삶을 보냈던 놈이 우리 건우였다. 새삼 건우가 불쌍하다. 그래, 건우야. 그동안 너무 고마웠고, 많이 많이 미안하구나…
문앞에서 멍하게 넋을 잃고 기다렸던 아내는 안고 들어온 건우를 보더니 눈물을 쏟는다. 건우 앞에서 우리는 이렇게 눈물을 닦으며 한참을 넋두리였다. “정(情)을 아무렇게나 함부로 주면 안되는데… 더구나 말못하는 짐승에게 절대로 이렇게 정을 주면 안된다고 했는데…
그 놈이 어쩌다가 이렇게 인연이 되어… 아내의 계속 한숨 섞인 넋두리이다. 정은 잔인하다고 했다. 비록 짐승일망정, 그동안 한 집 식구로 매일 밥을 주면서 쌓은 정이란 더욱 간절할 것이다. 이런 우리의 넋두리를 멀리서 진주들이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건우는 강원도 평창의 섶다리 인근 외딴 산골에서 십여 년을 그의 짝 분이와 함께 살았다. 그리고 우리집에 온지가 벌써 십여 년이 넘었다. 십 년전, 그 때였다. 건우는 주인의 손에 끌려 보트를 타고 동강을 건너 내 차에 옮겨 태우는데 한사코 반항을 했다. 끝내는 그가 잽싸게 탈출하여 강물을 헤엄쳐 도망을 쳤고,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기 집에 가 있었다. 다시 잡혀온 건우, 이제는 모두 체념이라도 한 듯, 고분 고분 잠자코 따라왔던 그 때의 모습이 선히 떠오른다.
그동안 우리 식구가 되면서 건우는 생각할수록 우리에게 참 좋은 놈이었다. 우리집 처럼 별다른 피해 없이 집안이며 장포를 거느리는 집이 동네에서 우리집 말고는 없는것 같다. 외딴 산중에서 야생 동물들로부터 아무런 피해 없이 가축을 기르고, 작물을 경작하기란 참 힘든 일이다. 방지 철책을 치고, 곁에다 개도 키워보지만, 야생동물들 피해를 완벽하게 막아내는 일이 쉽지를 않다. 그럼에도 거의 유일하게 우리집 만은 별로 피해가 없었다. 모두가 건우의 지킴이 덕택이었다.
밤이면 홀로 장포와 집 주위를 돌며 이 일을 혼자서 감당하며 지켰던 것이다. 때로는 사나운 놈을 만나서 싸움이 벌어져 온몸이 만신창이로 피투성이가 된적도 다반사였다. 며칠 전에도 눈 주위에 심한 출혈자국을 냈었다. 한 때는 자기 몸집보다 더 큰 고라니를 간단히 해치웠고, 맷돼지도 번번히 퇴출시켰다.

이렇게 건강하고 용감했던 건우가 단짝과 사별하면서, 특히 작년부터 그의 노쇠한 모습이 눈에 띄게 역연했다. 힘없이 집주위를 어슬렁거리며 짖기만 했다. 그리고 낮이면 장포를 지나며, 냇가를 건너며, 앞집 짝궁을 찾는 것이 일상이였다. 저놈도 이제는 늙었구나 싶었는데 결국 이렇게 생을 마췄다. 겨울이 시작되면서 쌓인 하얀 눈 위에는 아직도 그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20여 년을 살았으니 개의 수명으로는 결코 짧은 생애는 아니었다.

그동안 우리에게 그들은 귀여운 강아지를 십여 차례나 선물해 주었다. 어릴 적 부터 짝궁이었던 분이와는 그렇게 금실이 좋았다. 그런데 2년 전 여름철에 식중독으로 분이와 갑작스럽게 사별을 했다. 한때는 바람둥이로 분이의 속을 그리도 많이 썩히더니, 기력이 붙이면서부터는 외출을 삼가며 짝궁인 분이 곁에서 꼭 합방을 하며 늘상 함께 지냈다. 그런데 단짝을 잃고 마음을 가누지 못해 한동안을 방황하더니, 앞집에 사는 암케와 다시 짝궁이 됐다. 이렇게 건우는 사랑을 나누며 그동안 잃었던 기력을 다시 찾아 함께 잘 지내고 있었다. 비록 짐승이지만 단란해 보여서 기특하고, 보기도 좋았다. 이런, 그런, 일들이 자꾸 떠올라 건우가 생각나며 더욱 가엾어진다. 끝내 못잊고 마지막 길에 단짝을 바라보며 그의 앞에서 눈을 감았다. 생각하려니 참았던 눈물이 계속 주책 없이 자꾸만 흐른다. 이제는 충직한 지킴이 건우의, 사방을 뛰어다니며 짖어데는 소리도, 그의 갸륵한 애정 행각도, 처연한 방황도, 모두가 멀리 멀리 사라져 버렸다. 꽁꽁 언 동토가 풀리면 건우를 따뜻한 양지에 묻어줘야겠다. 앞 전주에서 가마귀가 울어데는 “꽈왁 꽈악” 소리가 멀리멀리 퍼지면서 먼 산에 매아리기 되어 깊은 산골에 널리 멀게 퍼지고 있다.  건우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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