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방큰돌고래의 노래

진정한 돌고래 정신

- 조약골(핫핑크돌핀스 활동가)

새해 들어 한 보수언론에서 논설위원 기명칼럼으로 ‘돌고래 정신’을 내세우고 있다. 내용을 보면 “작지만 강인하고 지능이 우수한 돌고래와, 수천 년 지적· 문화적 전통을 지닌 우수한 한민족은 닮은 점이 많다.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성은 ‘돌고래 정신’과 닮았다”는 것이다. 민족성을 내세우기 위해 돌고래를 무단으로 가져다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미, 중, 일의 패권경쟁 갈등 속에서 돌고래 정신으로 무장하고 재도약하자는 선동적 주장으로 끝을 맺는다. 칼럼에 붙은 그림에는 기괴하게도 돌고래 등지느러미에 태극기까지 꽂아놓았다. 요즘 돌고래가 인기는 인기인 모양이다. 앞으로 우익인사들 앞서서 돌고래를 자기네들 아이콘으로 내세우지 말란 법도 없다. 지적인 민족, 강한 국가를 내세우는 자들이 돌고래를 앞세우는 것을 보면, 까딱 잘못하면 귀여운 이미지의 돌고래가 태극기를 앞세운  수구세력의 전유물로 넘어가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핫핑크돌핀스는 2011년부터 돌고래 쇼 중단과 쇼돌고래 해방운동을 펼쳐왔다. 바다에 살던 멸종위기 돌고래를 불법으로 잡아와서 쇼를 시키는 것이 잘못된 것이고, 당연히 바다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다행히 많은 시민들이 지지해주어 2013년 마침내 제돌이, 춘삼이, 삼팔이 등 세 마리의 남방큰돌고래들을 고향인 제주 앞바다로 돌려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돌고래 정신을 내세우는 수구세력들은 지금까지 돌고래 쇼 중단을 요구하는 외침에 대해, 박원순 서울시장을 지지하기 위한 음모라고 싸잡아 비난을 해왔다. 핫핑크돌핀스는 제주 지역에만 백여 마리 남아 있는 남방큰돌고래의 서식처가 제주도의 무차별적인 연안 개발과 쓰레기 해양투기, 그리고 제주해군기지 공사 등의 요인으로 인해 파괴되고 있다고 주장해왔고, 이에 따라 과도한 개발과 공사를 멈추고 돌고래를 보존하는데 노력하자고 주장해왔다. 그런 핫핑크돌핀스에게 종북이라는 딱지를 붙여 공격해온 자들이 이제는 유행에 슬며시 편입해 자기들 이데올로기를 슬쩍 끼워 넣어서 돌고래에 주입한다는 것이 정말 역겹지 않을 수 없다.

돌고래 정신이란 말 자체가 해병대 정신 같은 낱말처럼 우스운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정말 돌고래를 통해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지금까지 멋대로 자연을 착취해온 산업자본주의를 겸허히 반성하고, 앞으로는 인간과 자연이 공생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자’ 정도가 아닐까 한다. 이를 위해서는 쓰레기 해양투기 금지와 돌고래 쇼 금지, 고래류 혼획 근절대책 마련, 싹쓸이식 어업 중단, 제주해군기지 공사 중단 등이 실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조치들이 취해질 때 우리는 진정으로 돌고래 정신을 본받는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돌고래들이 제대로 살 수 없는 해양환경을 만들어놓고, 무슨 돌고래를 본받는단 말인가. 미 해군은 소나 등 군 장비에서 발생하는 소음으로 연간 25만 마리 이상의 고래 등이 청력을 일시적 또는 영구히 상실하고 있으며 갈수록 그 숫자가 늘고 있다고 추산하고 있다. 특히 미 해군이 2012년 7월에 공개한 태평양·대서양 상 작전의 환경영향평가 초안에 따르면 계획대로 합동군사훈련 등 해상에서의 작전을 늘릴 경우 청력을 상실하는 고래 등이 연간 100만 마리 이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우리는 이와 같은 연구조사 결과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지금 이미 제주해군기지 공사 강행 등으로 멸종위기 남방큰돌고래들은 제주도 남쪽 해안으로는 내려오지 않고 있는데, 기지공사가 완공되어 해군 함정이 정박하게 되면 영구적인 피해가 나타날 것으로 우려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세계 6위의 강한 군대를 보유한 한국이 앞으로 더욱 강한 군사력을 키우자고 선동하는 수구세력이 돌고래 정신을 운운할 자격이나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 한국의 해양생태계는 망가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은 지난해 말 유럽연합으로부터 예비 불법어업국으로 지정되었는데, 이는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 등의 문제를 심각히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어선들의 싹쓸이 조업방식과 무차별적이고 공격적인 어업만 일삼아왔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돈벌이만을 위해 해양환경을 착취해온 한국의 어업방식에 세계가 지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돈벌이에만 눈이 어두워서 아무런 반성을 하지 않는 한국의 모습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만이 해양투기를 허용하다는 점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난다. 애초에 한국은 2013년까지 산업 폐기물의 해양투기를 허용하고 육상처리로 가겠다고 했다가 대기업들이 육상처리 비용이 많이 든다고 반발하자 방침을 슬쩍 바꿔서는 다시 2016년까지 기업들의 해양투기를 허락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오는 2016년까지 해양 생태계 오염이 계속될 것이 확실시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서해와 남해, 동해 등에 살고 있는 상괭이, 긴부리돌고래, 참돌고래 등의 개체수가 급감하는 것은 당연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지적이나 성찰 없이 돌고래 정신 운운하며 자신의 국가이데올로기를 주입하려는 것은 바다에 살던 돌고래들을 멋대로 잡아와 쇼를 시키는 업자들의 욕심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우리는 돌고래 정신 운운하기 이전에 먼저 기업의 이윤추구를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해야 했던 존재들의 고통에 공감하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강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 돌고래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래들이 바다에서 멸종되지 않고 인간과 공존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겸허히 되돌아보는 자세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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