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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 일상의 폭력을 저지하는 방법

- 지안

이 글은 작년 병역거부 소견서를 발표한 김성민 씨를 인터뷰한 것을 바탕으로 쓰여진 글입니다. 김성민 씨의 필명은 ‘들깨’입니다. 들깨는 위클리 수유너머 코너인 ‘수유칼럼’에서 칼럼을 연재해 왔습니다. 본 글에서 인용은 모두 들깨의 소견서입니다. 소견서 전문은 전쟁 없는 세상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1. 한 병역거부자

 

병역을 거부했을 때, 우선 병무청은 그 사람을 고발을 한다. 그리고 그는 형사재판을 받게 되고 형을 살게 된다. 그리고 출소 후 병역을 거부한 사람에게는 병역을 수행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회적인 딱지가 붙게 된다. 병역거부는 이런 형식적인 절차와 사회적인 시선을 견디어야 하는 일이다. 들깨는 병역거부 운동에 참여하는 것과 실제로 내가 병역거부를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고 말했다. 그만큼 병역에 관한 문제는 사회에서 민감한 문제이기도 하며 중대한 일인 것이다. “그것은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의 거리기도 하고 느끼는 것과 변하는 것의 거리이기도 했다.”(김성민씨 병역 거부 소견서) 사실 그렇다. 우리가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여러 가지겠지만 그중 실제로 실천하고 있는 것은 아는 것들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 앎이 실천으로 이어질 때, 그건 가장 긴급하다고 생각되는 순간에 가능하다. 들깨는 병역거부를 ‘선택’, ‘권리’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병역거부란 온갖 절차와 시선을 견디어야 한다는 점에서 꽤나 큰 책임과 피해가 따르는 ‘실천’이다. 그런 부담을 무릅쓰고 병역거부를 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우선 병역거부라는 것이 그에게 어떤 의미였기에 앎에서 실천을 결심하게 만드는 긴급한 사안이 되었을까?

 

2. 총을 잡는 것과 일상의 폭력

 

우선 그는 “병역거부는 일상 속 군기와 맞서는 일”이라고 한다. 정확히, 총을 잡는 것과 일상 속의 폭력이 만나는 것은 어떤 지점일까? 병역거부를 한다는 것이 일상의 폭력을 저지하기 위한 방법이 맞는 걸까?

먼저 그가 생각하는 일상 속 군기란 무엇일까. ‘짬밥 원산폭격, 군기 잡다’와 같은 군대용어들이 일상어로 쓰이는 것? 물론 이런 단어들은 가장 먼저 군기 잡힌 사회를 표현해 준다. 그러나 사실 이런 단어들은 군기 잡힌 일상들의 표현일 뿐이고, 우리 사회에는 군대 용어들로 표현된 수많은 질서 내지는 위계질서가 있다. 질서는 사람들을 나누고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 판단 내린다. 다양한 종류의 질서들이 있겠지만 그중 들깨에게 처음으로 민감하게 다가왔던 질서는 가령 남성성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남성으로 길러진 것들이 있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여성들에게 위협이 되는 일이라고 말한다. 또한 여성, 청소년, 성소수자, 저학력자, 혼혈인, 장애인 등등 한국 사회에서 배제되는 범주들을 보면, 그건 군대가 배제하는 집단과 상당히 유사하다고 그는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결국 군대라는 공간은 ‘정상 남성’들을 훈육하는 공간이고 그 안에서 ‘정상 남성’들, 이른바 “진짜 사나이”들은 강한 유대감과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학교에서든 직장에서든 위에서 시키면 뭐든 하는 것이 미덕이었다. 남자들은 남자들만이 하는 일을 감당하며 억울해하며 알량한 권력을 누렸다. 우리의 생각과 몸은 전사이기에 우리가 약한 자를 지키는 것도, 그래서 우월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살아온 곳곳이 군대였고, 삶은 전쟁이었다.” (김성민 씨 병역거부 소견서) 군대는 이런 종류의 동질감을 재촉하는 한편, 다른 쪽에서는 폭력과 경쟁을 내면화시킨다. “군대의 방식에 맞지 않은 이들은 도태되고 약한 자들은 낙오된다” 즉 들깨의 시선에서 “어디에나 군대는 있다”고 느껴진 것이고 일상의 삶들이 마치 전시상태처럼 유지된다고 생각된 것이다. 그는 한국 사회를 ‘군사 모델 사회’라고 표현했다. 빠르게 움직여야 하고 동일한 질서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동시에 서로에 대해 경쟁해야 하는 사회 말이다. 위계질서 역시 질서에 대한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의 존재 방식이 질서에 의해 나눠지고 배열되었을 때 질서끼리의 위계도 만들어진다. 특히 앞서 말했듯이 ‘군기, 짬밥, 계급장’ 같은 언어들은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것들이다. 선배는 후배에 대해 ‘군기’를 잡아야 하고, ‘짬밥’을 먹어야지만 어떤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할 때 있어서 자유로워진다.

그는 이러한 질서들에 맞선 어떤 평등이라는 형태를 꿈꾸는 것 같았다. 물론 그에게 평등이란 모두가 똑같은 위치에 서는 것은 아니었다. “서로 얼마만큼 다르고, 얼마만큼 다르도록 만들어지는지, 서로가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 그 차이를 민감하게 의식”하는 것 자체가 평등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가진 것들이나 가진 위치는 전부 다 다른데, 그것을 인정하고서 그 다음 단계를 생각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가 불평등하다는 점을 인정하고서 그 위에서 평등을 다시 건설하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병역거부를 고민하며 다양한 결의 폭력에 대해서 새삼 느끼게 됐고, 그것들은 내게 중요한 문제가 됐다. 폭력은 총으로서만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구성된 방식에도 있고 서로의 위치 때문에도 생겨난다. 살아가는 존재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고 그 관계에서 폭력이 생기기도 한다. 단지, 모르고 살았거나 무시해 왔던 것이다”

결국 그가 병역에 맞선 것은 일상 속의 폭력에 맞선 것과 동일한 일이다. 실제로 들깨는 지난 1년 간 인도 여행을 다녀온 후로 ‘병역 거부 운동’ 자체라기보다는 관계에서 벌어지는 세밀한 균열들,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폭력들에 대한 문제의식에 집중해 있는 것 같았다. 들깨는 인도로 여행을 떠나기 전 ‘빈집’이라는 생활공동체에서 살았다. 그리고 빈집의 리듬은 이제껏 그가 겪어 왔던 삶의 방식과는 차원이 다른 방식이었다. “빈집은 집이라는 공간을 소유하는 것이 아닌 사는 곳으로 만들고자 한다. 주인과 손님이 구분되지 않는 곳이다. 질서와 규율이 아니라 리듬이 흐르게 한다.” 단순히 사는 곳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을 공유하는 식구라는 것, 함께 리듬을 맞춰 나가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이때의 경험으로 인해 들깨는 관계에서 벌어지는 균열들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3. 병역거부라는 실천

 

병역거부가 옳은 일인가 아닌가, 의 문제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냈다고 한다. 그중 군대에 가서 군대를 바꾸라는 사람도 있었으며, 네가 얼만큼 군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가를 따져 묻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후회할 수 있다는 사람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들깨가 나중에 병역거부를 했던 사실에 대해 후회할 수도 있는 일이다. 들깨는 나에게 한번 영장이 날아왔다고 상상해보라고 했다. 그리고는 아마 쉽게 상상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역설적이게도 영장이 날아왔다는 사실 때문에 그는 군대에 대한 제대로 깊은 고민을 해 올 수 있었다고 한다. “병역거부는 군대를 거부하는 것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폭력을 줄여 가는 실천 중에 하나로 여겨졌다.” 들깨의 친구 중에 함께 병역거부를 고민하던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결국 그 친구는 입대를 하게 되었는데, 들깨는 군대라는 공간을 갔을 때, 그곳에 어느 정도는 적응하게 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조직은 그 일원을 조직의 일부로 만들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런 조직의 배치 속에서 신체 역시 어느 정도는 타협점을 찾게 되고 적응하게 된다. “나쁜 사람이 군대에 가는 것이 아니라 군대가 사람을 나쁘게 하는 것이다.”

들깨에게 수많은 조언이 있었겠지만 그가 병역거부를 실제로 실천하게 된 이유는 병역은 그가 타협할 수 없었던 마지막 선이었기 때문이다. 인터뷰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히려 “저는 되게 폭력적인 사람일 수도 있고, 마초성도 드러나는 사람”일 수 있다고. 그러니까 그는 군대에 가지 않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이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질서를 거부하는 실천을 시작하는 것이다. “완벽하고 분명하진 않지만, 군대에 가든 안 가든, 서로 관계 맺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고민을 쌓아갈 때, 전쟁의 위협도, 일상의 위계도 줄어들 것이라 믿는다.” 들깨라는 병역 거부자는 이렇게 질서에 맞서기 시작했다. 우리도 한번 우리의 방식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질서의 이름으로 억압하는 것들에 대해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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