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끝나지 않은 싸움

희망을 기다리며

- 상빈

 

<이 스케치는 2차 탈핵희망버스가 밀양을 찾기 1주일 전인 2014년 1월16일과 17일 양일간 밀양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그린 글 입니다.>

 

고답마을/115번 송전탑 현장

‘외갓집’을 상상할 때 우리는 어떤 영상들을 떠올릴까. 찐 옥수수, 할머니의 주름진 손, 논두렁 밭두렁, 기와지붕, 온돌방과 가마솥, 집과 집을 잇는 흙담, 누렁이, 뒷뜰 고추밭, 멀미약, 푸세식 화장실, 핸들을 쥔 아빠의 긴장 가득한 손, 덜컹거리는 차 뒷좌석 등등.

밀양시 상동면에 위치한 고답마을은 지방도변 산자락에 50가구 정도가 옹기종기 모여 구성된 작은 마을이다. 완만하게 굽이치는 산세가 온 도시를 휘감고 있는 밀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을의 모습이다. 산세를 타고 오르는 집집의 모습은 정겹기 그지 없다. 우리가 쉬이 상상하곤 하는 그런’외갓집’의 정다운 정경. 그러나 고답마을은 어딘가 다르다. 누렁이가 없는 것도, 논두렁 밭두렁이 없는 것도, 뒷뜰 고추밭이 없는 것도, 할머니의 주름진 손이 없는 것도 아닌데.

처음엔 큰길과 가까워서 그런가 싶었다. 그러나 산골짜기 가장 깊은 곳 구석구석까지 덜컹임 없이 큰 트럭도 오갈 수 있게끔 잘 닦여진 길. 그 깨끗하게 닦인 길의 목적은 조금 다른 것 같아 보였다. 털털대며 기어내려올 경운기를 위한 것도, 산나물 한 바구니 캐 담아 머리위에 이고 내려올 할머니를 위한 것도 아닌 것 같아 보였다. 그 것이 첫번째 이질감의 까닭이다.

산자락 기슭에 자리잡은 마을은 도로 너머 논밭과 산 중턱의 과수원을 가꾸며 사는 듯 보인다.산과 산 사이의 틈을 비집고 볕을 바라는 나무들에게서 과실을 따다 밥과 찬을 마련하는 사람들의 마을이다. 나무들은 옷을 벗고 겨울을 꿋꿋히 나고 있었고, 흙은 메말라 먼지가 날렸으나, 할매 할배들의 애정어린 손길은 다시 올 봄을 위해 분주히 다듬고 매만지고 준비하고 있다. 그런 마을을 관통하는 그 깨끗한 길은 나무들의 밭을 지나 산 중턱까지 뻗어 있다가 돌연 끊어져 버린다. 그리고 거기에 움막이 있다. 두번째 이질감.

비닐하우스의 뼈대를 얼기설기 얽은 뒤 몇 겹의 비닐과 넝마 천조각들로 뒤덮인 움막에는 사람이 살고 있을까. 영하 10도 언저리를 맴도는 수은주는 사람이 살 수 있을까 라는 질문으로 질문을 번복하길 원하나 보다. 온돌방도, 기와지붕도, 가마솥도, 흙담도, 뒷뜰 고추밭도 없는 거기에, 그러나 사람은 살고 있었다. 아니 지키고 있다. 할매들과 할배들이 그들의 땅과 마을을 지키고 있다.

115번 송전탑은 바로 그 움막이 있는 자리에 들어설 예정이었다고 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사는 집과는 직선거리로 불과 백여미터 떨어진 곳이고, 봄이 오고 여름 지나 가을이 되면 주렁주렁 과실들이 열릴 나무들이 빽빽한 그런 곳이다. 잎사귀 없는 나뭇가지들을 헤집고, 경계하는 누렁이 짖는 소리 지나면 움막에 닿는다. 움막에 닿아 문을 열어 본다. 할매들 서넛이 담요를 둘둘 두르고 전기장판 위에서 버티고 앉아 있다. 입에서는 하얗게 입김이 나온다. 안과 밖의 수은주는 별반 차이가 없다. 쌓여 있는 생수통에 살어름이 파리하다. 생수통 옆엔 밥솥, 밥솥 옆엔 라면박스와 믹스커피 박스, 귤, 휴지, 김치통과 반찬통. 그리고 그 옆에 지하 땅굴로 내려가는 사다리가 있다. 이른바 대피소.

“갱찰들 몰려 내려오면 절로 내려가 숨어야 안카나.”

“하모, 여따 불질라삐고 냉큼 쫓아 내려가 숨어야제.”

여기 이 땅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걸까. 여기는 이제 이름모를 누군가의 ‘외갓집’이 될 수조차 없게 되어버린, 그런 이질적인 마을이다.

 

도곡마을/111~113번 송전탑 현장

고답마을에서 차를 타고 5분 정도를 간다. 차창 밖 산자락들이 유려하게 흐른다. 끊어질 듯 이어지고 다시 합쳐졌다 갈라지는 산줄기의 움직임에 취할 즈음, 네모 각진 뚱뚱한 경찰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 순간 여흥은 깨진다. 한 대 두 대 손꼽아 세어보기 힘들었지만 어림잡아 열 대 가까운 버스들이 왕복 2차선 도로의 한 차선에 붙박혀 줄지어 있다. 그러나 도곡리로 가는 길이 불편한 이유가 비단 차도가 버스에 틀어막혀 있어서만은 아니다.

경찰버스를 지나쳐 산간 굽은 길을 가다 보면 농로로 내려가는 길목들 마다 형광색 점퍼를 입은 시커먼 남정네들이 서 있다. 20대 초반에 불과한 그들은 맞춰 입은 옷의 힘을 빌어 모든 길목들을 틀어막고 서 있다. 차도, 인도, 농로 할 것 없이 모든 길 길목엔 그들이 있다.

그렇게 경찰버스를 피해, 또 길목의 형광색 점퍼들에게서 도망쳐 도곡리 마을회관에 도착한다.할매 할배들은 마을회관 앞 마당 찬 바닥에 앉아 밥을 먹는다. 회관 옆 길, 농지로 산으로 들어갈 수 있는 그 길엔 수십개의 형광색 점퍼들이 지키고 서 있다. 눌러 쓴 모자 틈새로 보이는 앳된 피부가 할매 할배들의 쭈글한 피부와 비교된다. 줄지어 벽을 만들어 세운 방패 앞엔 커다랗게 ‘인권보호’라고 쓰여 있다. 집으로, 논으로, 산으로 가는 길을 틀어 막고 서 있는 ‘인권보호’의 형광색 벽.

“저 짝에 산자락 보이제. 우에서 쭉 내리오다 움푹 패인 곳 있제. 저가 113번이다. 또 저 짝에 저 크다랗게 나무 싹 밀린데 저 보이제. 저가 112번이고. 저 짝 보믄 갱찰들 지키고 서 있는 길 우에 다 파헤쳐 논데 있제. 저가 111번이다.”

흘러내리는 산자락 허리를 싹둑 잘라 그 곳에 송전탑이 들어설 것이다. 빽빽한 나무 숲 한가운데 밑동까지 싹둘 잘려나간 시체들 위 그곳에 송전탑이 들어설 것이다. 산, 길, 계곡 모두 파헤쳐진 그 곳에 아파트 40층 높이의 철탑이 들어설 것이다.

마당에서 끼니를 다 때운 할매 할배들은 이윽고 자리를 정리한다. 털고 일어나 어디로 가나 했더니 ‘인권보호’의 형광색 벽 앞에 진을 친다. 그러나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바라보는 일 뿐. 믹스커피를 타서 마시고 유자차를 끓여 마신다. 휴대용 스피커에서 트로트가 흘러나온다. 신명나는 리듬과 비트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어깨춤도 보이지 않는다. 유난히도 볕이 좋은 날이다.모두가 볕을 쬐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즐길 수 없었다. 그 곳의 모두는 사실 엄청난 추위나 추위가 아닌 그 비슷한 것에 떨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할아버지 한 분이 경운기를 끌고 와 벽 앞에 선다. 땔감을 가지러 가는 길이 ‘인권보호’ 앞에 막혀버렸다. 나무하러 가는 길을 어째서 막느냐는 호통에 벽이 움찔한다. 형광색은 일렁이다 벽이 잠시 열렸다 닫힌다. 경운기는 땔감을 가지러 갔다가 다시 나오는 그 긴 시간 내내 감시당한다.

앞 유리창에 ‘765kV반대’라는 스티커가 붙은 주유소 차량이 그 앞으로 다가온다. 할매 한 분이 차를 막고 세운다. 아랫마을에서 주유소를 하는 50대의 남자는 왜 길을 막느냐 따진다. “니 그래 반대한다 캐노코 사실은 찬성이었다매! 니가 우애 그랄 수 있노! 니 몬간다! 니 어디갈라꼬! 한전놈들한테 기름 퍼다줄라카나! 니 몬간다!” 할매의 울부짓음은 형광색 점퍼들에 의해 제지당한다. 바라보아라. 그러나 오로지 바라보기만 해라. 할매 할배들은 엄청나 추위나 혹은 추위가 아닌 그 비슷한 것에 모두 떨고 있다. 도곡리로 가는 길이 불편하지 않을래야 불편하지 않을 수 없는 그 까닭.

 

평밭마을/127번 현장

도곡리가 기대고 있는 자락 너머엔 평밭마을이 있다. 산을 건너면 있는 마을. 그러나 거기에 닿기 까지는 그 산을 아예 빙 에둘러 가야 했다. 시내길을 지나 30분 가량 차를 끌고 가면 닿을 수 있는 곳이다. 게다가 ‘평밭’이란 그 이름과는 달리 산길을 타고 산중으로 들어가야 있다. 그리고 들어서는 길목은 단 하나. 평밭마을이 요새처럼 되어 지난 시간 동안에 그렇게 정력적으로 철탑을 막아설 수 있었던 이유는 그런 지리적 요인도 분명 없지 않다. 그러나 지리적 요인보다 더 주요한 요인이 거기에 있다.

평밭마을 산골짜기로 들어가는 단 하나의 길목에는 초소처럼 움막이 버티고 서 있다. 여러 깃발들과 플래-카드로 치장된 움막이다. 지나오던 시간 동안 연대하러 왔다 간 이들의 흔적을 외투처럼 걸치고 있는 움막이 있다. 차를 타고 길을 오르면 움막에서 할배 한 분이 나온다. 연대자임을 확인하면 환히 웃는 얼굴로 맞이해 준다. 해가 서쪽 산 너머로 기웃기웃 넘어가려 한다. 흰 머리 길게 길러 뒤로 질끈 묶은 할배의 몸엔 흐르는 투기가 눈에 보이는 것만 같다. 9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맞서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과 맞서느라 자연스레 변한 기운 때문일 거다.

움막 주변 나무에는 동앗줄이 칭칭 감겨있다. 작년 여름 가장 격렬하게 투쟁했던 흔적이다. 길 따라 오르는 차들을 가로막던 그 밧줄들은 누군가의 날카로운 칼날에 이젠 다 잘려 나가고 흔적만이 남아 있다. 그러나 나뭇가지에 밧줄 걸어 만든 교수대는 서려있는 섬찟한 그 기운 그대로 아직까진 살아 있다. 그 동그란 구멍에 누구의 머리를 집어넣어 대롱대롱 달리려 했을까. 당신들의 의지로 집어 넣을 수 있는 머리는 오로지 당신들의 머리 밖에 없다는 사실은 너무나 당연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움막 안으로 들어가 본다. 고답마을의 115번 현장 움막의 절반 크기이지만, 시멘트로 온돌을 깔았고 나무를 떼서 바닥을 데우니 버티고 앉아 있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세월은 사람을 너무 쉽게 지치게 만든다. 9년이란 지리멸렬한 시간은 버티고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무너뜨릴 수 있을만한 세월이다. 그러나 평밭의 파수꾼 할매 할배들은 그저 거기에 버티고 앉아 있다. 시간은 무기력을 선물하지만, 당신들은 투기와 의지로 시간을 새롭게 빚어낸다.

“예는 마 고마 초소일 뿐이다. 고개 넘어가믄 127번 현장 나오는데 거가 진짜제.”

이장님의 안내를 따라 127번 현장을 찾는다. 고개는 경사가 꽤나 가파르지만, 역시 포장이 잘 되어 있어 차를 끌고 산 깊숙히까지 들어가는 일이 전혀 무리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고개 넘어가는 와중에 길가에 깨끗하게 지어진 빈집이 하나 있다. 방치된 지 꽤나 오래 되어 보인다. 인부들의 숙소로 쓰려 했던 집일까. 깨끗하게 올라가고 칠해진 그 세련된 공간은 외로이 홀로 비어 있다. (얼기설기 쇠파이프와 비닐과 넝마 걸쳐 올린 움막은 따뜻하게 사람 오고 가건만.)

127번 현장에 닿으니 해가 떨어져 사위가 캄캄하다. 송전탑이 들어설 예정지 바로 그 자리에 할매들은 구덩이를 파고 옷을 벗고 드러누웠다. 기름통과 라이터를 들고 들어가 지키지 못할 바엔 불지르겠다며. 그렇게 지킨 땅이고 산이다. 그렇게 지키고 있는 움막이 127번 현장에 있다. 그러나 움막 바로 맞은편 건넌산엔 산허리를 끊어버린 거대한 송전탑 한 기가 괴팍한 고요함을 지닌채 서 있다. 캄캄한 사위에도 불구하고 그 외양은 압도적이고 어쩌면 폭력적일만큼 너무나 잘 보인다. 여긴 지켰지만 거긴 지키지 못했다. 솟아오른 철탑은 그 위용만으로도 사람을 얼마나 괴롭힐 수 있는지.

움막 옆에는 한전이 버려놓은 포크레인이 홀로 녹슬고 있다. 새삼 지난 투쟁이 얼마나 격했을까를 상상한다. 움막 안으로 들어가 본다. 나무난로로 충분히 공기를 뎁혀 놨는지 훈훈하다. “여든이 넘은 할매가 마시고 움직일 공기인데 아무렴 이 정도는 데워 놔야지.” 움막 안에는 부산에서 연대하러 온 이들과 평밭마을 여든 할매가 서로 의지하며 함께 있었다. 부산과 울산에선 매일같이 당번을 정해서 연대자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평밭마을 뿐만 아니라 고답, 바드리, 여수 아니 거의 모든 마을 모든 움막에 매일같이 연대자들이 찾아온다. 그래서 그나마 외로움이 덜어지나 보다. 움막 벽엔 쇠사슬이 치렁치렁 걸려 있다. 포크레인 밑바닥과 몸을 칭칭 걸었던 그 쇠사슬이다. 스스로 쇠사슬을 몸에 묶은 여든 할매의 새까맣고 투박한 손마디는 딱딱한 고목같기도 하다. 아니, 흙과 물과 땀과 시간이 만들어 낸 그 온 몸이 고목이다. 이 땅에 뿌리내리고 뽑히지 않기 위해 소리치는 살아있는 고목이다.

“내 말이다. 여서 이불 깔고 잘라고 누우면 저짝 산에서 부엉이가 부엉 부엉 우는 소리가 들리거든. 쌔까만 밤에 부엉이 혼자 부엉 부엉 울면 내 얼매나 아쉬운지 모른다. 글이라도 알았다면 부엉이한테 편지 물려가 저기 서울 나랏님한테 보낼껀데. 부엉 부엉 우는 부엉아, 내 몸띠 위에서 우는거면 차라리 나을텐데. 내 얼매나 아쉬운지 모른다.”

 

고정3거리/한전 직원들 출근 막기 싸움

동이 트지도 않은 애새벽. 상동면 고정3거리엔 불이 지펴진다. 하나 둘 트럭과 승합차가 모여들더니 빨간 조끼를 입은 할매 할배들이 모인다. 각자가 트럭 뒤켠에 땔감을 들고 와 조그맣게 지펴진 불을 키운다. 삼거리 아스팔트위 한 가운데에 꽤 큰 모닥불이 만들어 진다. 삼삼오오 모닥불 주위에 모인 할매 할배들은 해 뜨기 전의 어두움과 시린 공기를 달랜다. 자기 몸을 데우고 서로를 데운다. 한전 직원들이 출근하지만 않는다면 공사도 하지 않으리라. 땅이 감옥이 되지 않으리라. 앉은 채 그저 앉아 죽기만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리라. 얕은 희망이 모닥불의 불씨처럼 할매 할배들 사이를 떠돈다.

해가 모습을 드러낸다. 날이 밝아온다. 하나 둘 차가 다니기 시작한다. 할매 할배들은 어느 차가 누구의 차인지 다 아나보다. 차량 몇 대를 그냥 흘려보내다, 당신들이 갑자기 우르르 몰려간다. 한전 직원들이 타고 있는 차를 용케도 잘 알아본다. 오직 그 차만 가로막는다. 차창 안의 한전 직원은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할매들이 본네트에 등을 기대고 버틴다. 엔진 열 때문에 본네트는 따뜻하게 데워져 있다. 뜨끈한 온돌방에 허리춤 지지는 듯, 흐뭇한 표정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이내 경찰버스가 도착한다. 할매 할배들은 경찰버스도 막아 세운다. 경찰버스에서 형광색 간부 몇 명이 내린다. 도로교통을 방해하는 행위를 그만두라며 협박한다. 등산복 차림의 채증조는 할매 할배들과 연대자들의 얼굴, 행동, 말 하나 하나를 쉴 새 없이 기록한다. 할매들도 소리친다.공사의 부당함을 온 몸으로 드러낸다. 한전 직원들과 경찰들이 그간 얼마나 당신들을 기만했던지를 하나 하나 꼬집어 소리친다. 한참을 서로 목청 세우기만 한다. 대화가 되지 않는다. 서로가 일방적인 이야기만을 할 때에는 물리적으로 힘이 센 이들이 이긴다. 의견 대립에 있어서 물리력은 전근대적 힘이 아니다. 여전히 유효하고 실재하는 힘이다. 경찰버스 세대에서 백여명의 경찰들이 우르르 내린다. 그들은 타인의 논을 밟고 정렬한다. 대오가 가지런하다. 경찰 간부들은 할매 할배들을 자꾸 압박한다. 결국 경찰의 모든 차량들을 보내준다. 국지적 싸움들이 지리하다. 형광색 점퍼를 입은 경찰들은 가지런히 대오를 정렬한 채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경찰 버스 세 대와 방송차, 조명차를 결정적으로 보내준다. 어떤 지시가 떨어졌는지 타인의 논에 정렬해 있던 경찰 무리들이 도로변에 일렬로 줄지어 선다. 방송차에서 나즈막하게, 그러나 묵직한 목소리가 뿜어져 나온다.

“고착시켜.”

어느 새 벽이 된 형광색 점퍼들이 할매 할배들을 밀어붙인다. 서서히 다가오는 벽은 당신들을 반대쪽 도로변까지 완전히 밀착시켜버린다. 당신들이 몸부림친다. 보내주면 안된다고 울부짓는다.온 몸으로 무기력함을 고함친다. 나풀대는 몸부림은 벽이라는 불가항력 앞에 사그라든다. 때때로 벽을 피해 도망치는 몸부림이 있으면 형광색 점퍼 서넛이 달려가 그들의 몸으로 감옥을 만든다. 몸부림은 완전히 갇혀버린다. 한전 차량이 지나간다. 공사 현장으로 한전 직원들이 출근한다.

벽은 다시 대오를 갖추어 버스에 탄다. 방송차, 조명차, 버스가 차례로 떠난다. 할매 할배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몸이 되어 주저앉는다. 몸부림과 고함이 한숨과 열패감으로 전화한다. 당신들은 겨우 그 정도의 성과를 가져 보고자 애새벽부터 그렇게 설쳤나 보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