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꼰대와 미래세대

일베와 안녕세대(1)

- 김환희(‘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활동가 / 교사)

이번에 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일종의 ‘세대론’이다. 소위 386세대, x세대, 88만원세대, 촛불세대, 안녕세대까지 각종 ‘세대론’들은 너무나 손쉽게 생겨나고 너무나 손쉽게 사라진다. OO세대라는 신조어들이 불편한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뭐 툭하면 반복되는 신세대(new generation)타령이냐?’와 같은 세대론에 대한 불만들 말이다. 하지만 세대론에서 중요한 것은 드레스코드처럼 주기적으로 도래하는 ‘반복’ 그 자체가 아니다. 들뢰즈는 차이 나는 것만이 반복되어 돌아온다고 했다. 즉, 차이의 반복에서 중요한 것은 미세하게 변이를 일으키며 나타나는 ‘새로운 생성’들이다. 이론, 운동정치, 의회정치 차원 모두에서 반복되는 실패만을 겪는 것처럼 보이는 좌파가 주목해야 할 것도 이러한 ‘새로운 생성’들이다. 이 글에서 나는 관성적으로 반복되는 지루한 패턴 뒤에 숨어있는 미미한 변화의 조짐들, 희망의 싹들을 ‘세대론’을 통해 부각시켜보려 한다.

 

386의 숭고한 대의

 

우리는 지금 좌파프레임 자체가 완전히 무효화된 시대를 살고 있다. 역사의 어느 지점에서 ‘민주화’라는 낡은 프레임으로는 더 이상 해석할 수 없는 단절이 생겨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회운동의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386들은 그 단절점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저기 괴물이 있다”라고 과거에 숭고‘했’던 대의(기의/메세지)를 외치지만 끓어오르는 정의감으로 반응해야 할 88만원세대들이 보는 것은 오히려 괴물과 싸우다 어느새 괴물을 닮아 버린 그들의 꼰대적인 정서(미적 감각/스타일)뿐이다. 사회를 바라보는 프레임, 즉 이를테면 피아를 구분하는 방식, 운동을 조직하는 방식, 대중을 이해하는 방식이 더 이상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작업은 현시대를 다르게 분석해 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지금 이곳의 시대정신1)을 담지하는 주체들을 추적해 보는 것이다.

 

신인류(New Gen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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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아비에게 잡아먹히느냐, 자식들에게 잡아먹히느냐

왼쪽 그림은 고야의 〈사투르누스〉라는 작품이며, 오른쪽 그림은 일본과 한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진격의 거인〉이라는 애니메이션의 팬이 만든 포스터이다. 〈사투르누스〉는 그리스․로마신화를 바탕으로 한 그림이다. 사투르누스는 하늘인 우라노스와 땅인 가이아가 만나 낳은 막내아들이자 신들의 왕인 제우스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는 예언자가 자신의 자식 중 하나가 왕위를 빼앗을 것이라고 예언하자 불안한 마음에 아내인 레아가 아이들을 낳자마자 삼켜 버린다. 한편 〈진격의 거인〉은 인류의 가상적인 미래상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어느 날 인간을 잡아먹는 다수의 거인(신인류)이 출현하고 구인류는 절멸의 위기에 처한다. 살아 남은 인간들은 삼중으로 지어진 거대한 성벽 안에서 사는 것으로 일시적인 안전을 얻게 되나 끊임없이 위협에 처한다. 〈진격의 거인〉은 연재 직후부터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으며, 2013년 12월 기준으로 2,800만 부라는 판매 실적을 기록해 만화 왕국인 일본에서조차 전무후무한 인기를 얻고 있다. 한국에서도 포털 사이트 다음이 2013년 올해의 검색어 1위로 선정할 정도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진격의 거인〉이 오타쿠들의 집단 무의식, 더 나아가 한일 양국의 젊은 세대들이 느끼는 절망적 고립감을 심리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새로운 시대는 항상 전 시대의 피를 먹고 자라난다. 이른바 우리는 주체로서 독립되어 가며 모두 ‘부친 살해’의 욕구를 가지게 된다. 이렇게 아버지 세대를 극복하고 새로운 역사를 열어 가려 하는 아들들의 필연적인 욕망이 바로 시대정신이다. 나는 작금의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시대정신을 담지한 주체들이 2002/2008년 촛불세대와 일베2), 그리고 2013년의 안녕세대라고 생각한다. 즉 역사의 종언이라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도래에 따라 모던적 ‘아비’의 언어로는 이해되지도 소통할 수도 없는 ‘자식들’이 갑자기 출몰한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종류의 인간 유형을 기존의 그것과 구별하기 위해 ‘신인류’라고 명명하고 지금부터 양쪽의 차이점에 대해서 서술하고자 한다.

 

신인류는 누구인가?

신인류가 ‘모던보이/걸’들과 대비되는 점을 표로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화니짱글

 

 ‘거대 서사’가 누락된 스타일리스트

신인류는 역사 속에 나의 위치를 해석해 줄 “거대 서사가 없이도 재미있게 살 수 있는 인간”3)이다.즉 신인류는 거대 서사 속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을 엄숙하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삶의 자족적 만족이라는 미시 담론을 추구하게 된다. 이러한 미시 담론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역사의식과 같은 상징적 대타자의 질서가 아니고, 사적 즐거움私心이라는 감성적 가치이다. 따라서 인물 평가에 있어서 ‘진정성 주체’4)는 그 사람이 어떤 ‘이데올로기’를 선택했느냐에 대해 ‘대의’라는 잣대로 판단한다면, 신인류는 그 사람이 어떤 ‘스타일’을 선택했느냐에 대해 ‘미학적 감각’이라는 잣대로 판단한다.

 

㉡ ‘엄숙주의’를 넘어선 유희왕

진정성 주체의 인생은 대의라는 역사적 판단에 의해서 판결되기 때문에, 그들은 한없이 비장하고 “병적일 정도로 진지”할 수밖에 없다.5)마치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적의 본진에 잠입하는 홍콩 느와르 액션물의 영웅들처럼,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독재자라는 단단한 바위에 내던져 균열을 도모했던 것이다. 반면에 신인류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자족적 만족감이므로, 그들은 대의라는 거추장스러운 저울추에서 벗어나 한없이 가벼울 수 있다. 오히려 신인류에게 진지함이란 나의 사적 즐거움을 억압하는 방해 요소처럼 느껴지므로, 그들에게 진지한 사람들은 불가촉천민처럼 기피되고 만다. 더 나아가 이들은 자신들의 불운한 개인사마저도 ‘병림픽’6)과 같은 유희의 대상으로 전환시켜 버릴 만큼 타고난 유희왕인 것이다.

 

 ‘전위주의’를 거부하는 평등주의자

진정성 주체들은 필연적으로 거대 서사나 대의와 같은 대타자적 관점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지적인 선생(이데올로그7))들을 필요로 한다. 다른 사람들을 계몽시켜 사회가 실제로 돌아가는 현실(실재계)에 대해서 각성하게끔 하는 사람, 이른바 ‘전위vanguard’들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반면에 신인류에게 전위라는 계몽가의 존재는 필요하지 않다. 어차피 미학과 감성의 영역은 개인 내면에 존재한 호불호라는 취향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누구도 자신의 가치 지향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 이들은 자신을 계몽하려 하는 엘리트들에게 본능적으로 적개심을 가진다. 그들과 나는 평등한 위치에 서 있으며, 누구도 자신의 ‘미적 감각이라는’ 무의식적 판단보다 우위에 서 있지 않기 때문이다.

 

 ‘도덕주의’를 거부하는 자유주의자

진정성 주체의 세계관은 기본적으로 선악의 이분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그들이 “타자와의 대립과 투쟁 속에서 자신의 존재 근거를 정립하는 헤겔적인 주체”8)이기 때문에 그렇다. 즉 과거의 운동은 정치적 적을 절대적 악의 현현으로 선언하고, 이에 대한 의로운 저항을 해야 한다는 ‘도덕주의’적 강박에 바탕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적대의 정치’는 결국 “적을 단순화―일원화하고, 그것에 대항하기 위해 자기편도 집중과 통제를 통해 군사 조직과 비슷한 균질적인 것으로 환원해” 버린다.9)여기에서 인민들을 동질화시키는 테크닉을 갖춘 이론가, 활동가 전위들의 지휘가 매우 중요하게 부각된다. 반면에 신인류는 타인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개취존’10)이라는 에티켓을 중시하므로, 최소한 도덕적 선악 구도를 노골적으로 내세우진 않는다.11)오히려 “옳고 그름에 대한 천부적인 도덕관념을 부여받”은 것처럼 행동하는 ‘참꼰대’들을 접하고는 운동권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가지게 된다.12)

 

 

[2편에서 계속.]


1) ‘시대정신’은 문자 그대로 어떤 특정 시대를 풍미한 감정 상태와 사고 경향을 의미한다. 특히 여기서는 헤겔의 정의를 따른다. 그는 시대정신을 “역사의 과정과 결부시켜 그것을 개개의 인간 정신을 넘어선 보편적 정신세계가 역사 속에서 자기를 전개시켜 나가는 각 과정에서 취하는 형태”로 보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2) 일베는 ‘일간베스트저장소’라는 인터넷 유머 커뮤니티이다. 가입자 수만 해도 백만 명에 육박하고 동시 접속자 수는 평균 1~2만 명이다. 일베는 국내 최대 유머 사이트인 동시에 뚜렷한 보수우파의 정치 성향을 띤 인터넷 커뮤니티다. 일베는 그동안 공격적이고 과격한 언행으로 인해 자주 사회적 물의를 빚었다. 일례로 故노무현 대통령을 코알라와 합성한 사진(일명 노알라)을 자신이 일하는 컴퓨터 매장에 진열된 모니터 배경화면으로 띄운다든가, 시위에 나선 여성의 신상을 털고(인터넷에서 개인 정보를 해킹하여 퍼뜨리는 행위) 성추행성 발언을 해 왔다. [박가분, 《일베의 사상》, 2013, 8~9쪽]

3) 김홍중, 《마음의 사회학》, 2009, 410쪽.

4) 김홍중은 ‘진정성 주체’를 “전근대적 도덕”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옳다고 판단하는 진실한 삶”을 추구하는 윤리적인 주체라고 본다. 진정성은 저항 세력에게 하나의 이상적인 윤리 모델이며 주체 모델이었던 것이다. 물론 진전성 모델은 전근대적 도덕 모델인 신실성과 비교하자면 스스로 옳다고 판단하는 근대적 삶의 태도로의 변화를 함유하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는 “언제나 특정 공동체의 정치적 프로그램과 분리할 수 없는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규율 권력에 대하여 음각적인 방식으로만 존재하였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즉 진정성이 “언제나 저항의 다른 이름으로 인식되었던 것”은 개인에게는 규율 권력에 따르냐 혹은 진정성의 주체화를 택하냐의 2지선다형적인 답만이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김승환, 〈신자유주의 시대의 공공성 위기와 ‘새로운 운동 주체’의 도래〉, 2013, 38쪽] 이 글에서는 ‘진정성 주체’라는 의미를 386운동 주체의 특성을 집약한 명칭으로서 사용한다.

5) 김홍중, 앞의 책, 2009, 43쪽.

6) ‘누가 누가 더 병신 같은지, 더 불행한지를 가리는 올림픽’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어떤 갤러리에서 자신의 인터넷 게시물을 차별화하고 더 웃겨 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더 막장으로 보여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자조적이고 자기 비하적인 표현 양태는 인터넷 커뮤니티 상주자들이 스스로를 ‘잉여’라고 지칭하는 것과도 연관되어 있다. 잉여인간으로서 자신의 한심함과 막장의 정수를 보여 주는 것은 다른 인터넷 잉여들과 자신을 차별화하는 동시에 다른 잉여들에게 ‘이만 하면 나는 정상이야’라는 안도감을 주어 묘한 호혜적 동류의식을 얻는다.” [박가분, 앞의 책, 2013] 여기서 ‘병신’이라는 용어 자체가 장애인들을 배제하고 비하하는 의미로서 사용된다는 측면에서 ‘일베’의 소수자 혐오와 맥락이 닿는 부분도 있다.

7) 특정의 계급적 입장이나 당파를 대표하는 이론적 지도자를 이르는 말.

8) 김홍중, 《속물과 잉여》, 2013, 48쪽.

9) 김승환, 앞의 논문, 2013, 48쪽.

10) ‘개인적 취향을 존중해 주세요’라는 인터넷 약자.

11) 물론 신인류들도 미학적 판단 기준에 의해서 타자에 대하여 혐오나 안티의 정서를 가지게 되고 이를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들의 ‘호오’의 문제인 것이지 ‘옳고 그름’의 객관적 판단 영역이 아닌 것이다.

12) 김홍중, 앞의 책, 2013, 41쪽.

응답 4개

  1. 노주희말하길

    잘 읽고 갑니다. 기성세대가 가진 유익한 가치도 있을텐데 이것을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가 난망합니다

  2. 김환희말하길

    두 단어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위 아래로 다르게 적는 실수를 했네요. 꼼꼼히 읽어주시고 감사합니다. 편집자분께서, 아래단어를 평등주의자로 바꿔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3. ejeffect말하길

    표에는 평등주의자인데 밑에는 나르시스트네요ㅎ 수정부탁드립니다~ 다음편 기대되네요!!ㅋ좋은 글 감사드려요

  4. hwannyjjang말하길

    중간에 ‘신인류의 특성’에 관한 표가 깨졌어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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