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봄이 사는 마을

6. 장단 맞추기

- 봄봄(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

문호 개방을 했다.

2013년 12월 31일 밤, 비비는 송년의 밤을 맞이했다. 비비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는 비비 아닌 다른 비혼 친구들도 살고 있다. 당일에는 자체적으로 토론해야 할 몇 가지 안건이 있었다. 오늘 같은 날은 외롭다며 문호를 개방하라는 한 친구의 말에 ‘너는 외로워라’ 막말을 하고 난 뒤 찔린 마음을 주워 담아 여기저기 저녁식사를 함께 하자는 문자를 돌렸다. 결국 외롭다던 그 친구만 왔다.

 

2003년 비비(비혼들의 비행)라는 소모임을 만들 때, 제안을 받은 나는 이 모임이 이렇게 오래 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모임이 잘 되고 조금씩 주변에 알려지면서 ‘비비가 있었더라면’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기혼 여성도 있었고, 비비에 들어오고 싶다는 비혼 친구들도 있었다. 비비는 폐쇄적인가? 우리는 쉽사리, 아무나, 회원을 받지 않았다. 이미 안전한 공간, 안전한 관계가 된 비비는 견고했다. 밖에서 봤을 때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비비의 구성원이 되는 것보다 비비를 통째로 선물 받고 싶은 친구들도 있었다.

 

2004년 9월, 비비를 확대하는 것보다는 비비와 네트워크 할 수 있는 비비 같은 소모임 비비2기(가칭)를 만들기로 합의하고, 각자 지인 중에서 1명씩 데려오기로 했다. 정작 주변에서 찾아보니 쉽지 않았다. 비혼으로 살고 있지만 모두가 이러한 모임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몇 명은 어렵사리 데려왔고, 몇 명은 거절당한 내용을 전했다. 결속력이 중요했다. 혜안이 필요했나? 2기는 곧 해체되었다. 남은 1명을 비비로 영입했다. 그 후 2009년 8월, 다시 비비2기를 추진했다. 이번에는 주변에 관심을 보이는 친구들로 구성했다. 심혈을 기울였다. 초반에는 모임 진행을 함께했고, 차후에는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왔다. 1주년이 되었을 때 적은 메모가 생각난다.

 

“벌써 1주년이라네요. 보살핌에 굶주린 아이들 마냥 비비를 원하고 있는 친구들, 내릴 사랑의 자식이 없는 비비는 비요나(비비2기 명칭)를 당분간 잘 돌봐야 할 듯, 마침 곧 누구 생일이어서 촛불을 밝혔습니다. 아무쪼록 그들이 잘 자라길.”

 

그들은 약 2년간 잘 자라다가 말았다. 그들 스스로 서로에게 선물이 되었으면 좋으련만 쉽지 않았다. 해체의 원인은 뭘까? 지속의 요건은 뭘까? 이상한 것은 비비만 존속했다. 그들은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그즈음 2004년 비비에 영입했던 친구는 결혼을 했다. 시간을 공유하는 범위가 다름에서 오는 간극,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부분과 해 줄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개인의 욕망이 우선이었다. 2011년 2월, 이번에도 남은 1명을 비비로 영입했다. 해외여행을 한 번도 가지 않은 이 친구에게 비비가 해 줄 수 있는 선물, 이미 시간과 여행을 함께 나눈 비비가 다 같이 가기는 어렵고, 열심히 일한 당신 J가 동행하기로 했다. 그들은 곧 터키로 떠난다.

비비는 K가 본인이 아는 사람 중에서 거절하지 않을 것 같은, 삶에서 각자의 고민을 가지고 열심히 사는 친구들을 모았다. 우리는 서로 모르는 친구도 있었고, 조금 아는 친구도 있었다. K는 모두를 알고 있었다. 나중에 회고하기를 성품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지나고 나서 든 생각들,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들을 보면 각자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주장이 강하다고 말하는 지인이 있는가 하면 어떤 친구는 우리는 모두 쉬운 사람이 아니예요, 아, 애교도 없네. 내가 찾은 비비의 공통점은 자신만의 세계가 있는 개인성(특이성)이 강하다는 점과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고자하는 의지와 독립성이 강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 특이한데 괜찮은 사람. 이 평범하지 않는 개인의 독특함들이 어떻게 불화하지 않고 한데 섞여 공동체를 유지해 가는가?

 

리더가 있었다. 혜안이 있는. 앞서 고민하는. 개인이 있었다. 개인성이 강하지만 전체의 의견에 따르려고 노력하는. 50%를 동의하더라도 그만큼의 책임을 질 줄 아는. 비비가 있었다. 개인의 의견을 존중하는. 되도록 만장일치의 합의를 요하는. 12월 31일 밤, 식사가 끝난 후 초대 손님 한 분이 와 있는 자리에서 회의를 진행했다. 안건은 지역 대학에서 비혼여성공동체 ‘비비’를 논문의 주제로 삼고 싶다는 것에 대해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밤은 깊어 가고, 새해는 밝아 오고, 의견은 계속되었다. 100% YES인 사람, 100% NO인 사람, NO에 가까운 물음표인 사람, 딱 반반인 사람, 조건부를 단 세모인 사람, 대의에 따르겠다는 세모인 사람. 확실한 결정을 내린다기보다는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이런저런 심경들을 나눴다. 안건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웃었다. 결정은 다음날 새해 첫날 떡국을 먹고 나서 결정하자고 했다. 초대 손님은 이 모임 참 독특하다는 소감을 남겼다.

 

우리는 평범하지 않다. 인정한다. 그렇다고 비범한 사람도 아니다. 결혼 안 한 것만 빼고는 대체적으로는 평범하게 살아왔는데, 앞으로도 조용하게 살고 싶은데, 쉽지 않다. 쉽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서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비비를 유지해 나가는 것은 각자 자신을 지키는 생존 전략이 있기 때문이다. 단점을 커버할 수 있는 미덕 같은 것. 그것이 누구에게는 친절함이기도 하고, 누구에게는 성실함이기도 하고, 누구에게는 노력하는 자세이기도 하다. 오늘밤, 나의 전략은 무엇이었나, 문득 골똘해진다. 전략이, 미덕이 없는 사람이 공동체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냉정함에 자각한다.

 

공간 비비에서 식사를 함께하고 난 후, K는 남은 음식을 버리기를 원한다. J는 남은 음식을 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이 글로 대신한다.

 

‘만약 같이 살 거면 상대를 그냥 날씨나 꽃처럼 생각하세요. 피는 것도 저 알아서 피고, 지는 것도 저 알아서 질 뿐, 도무지 나하고 상관없이 피고 지잖아요. 다만 내가 맞추면 돼요. 꽃 피면 꽃구경 가고,추우면 옷 하나 더 입고 가고, 더우면 옷 하나 벗고 가고, 비 오면 우산 쓰고 간다고 생각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법륜, 『스님의 주례사』 113p]

 

나의 전략은 장단 맞추기다.

 

2014. 1. 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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