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일기

새해맞이 고양이 결산

- 송이

1. 고양이를 키울 때 들은 질문 중에 대답하기 어려웠던 것

 

Q. 고양이 키우는 데 얼마나 들어? (고양이 키우려면 돈 많이 들지 않아?)

고양이를 키우는 것도 애를 하나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 인간 아기도 싸게 키우려면 얼마든지 싸게 키울 수 있고, 비싸게 키우려면 얼마든 비싸게 키울 수 있다. 동물 의료(시장)은 공공 의료보험으로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 완전 의료 민영화 시장이기 때문에 어디가 어떻게 아픈가, 어느 병원에 가서 어떤 치료를 받느냐에 따라서 다르다. 물론 사람들이 많이 하는 예방접종이나 중성화 수술 비용 등은 평균가가 형성되어 있다. 주기적으로 사야 하는 고양이 화장실용 모래와 사료값은 담배값 정도가 든다. 나는 6kg에 6만 원 정도 하는 사료를 먹이고, 모래는 싼 것을 쓴다. 이렇게 계산하면 고양이를 키우는 데 달 평균 3만 원 정도 드는 것 같다. 가끔 고양이가 손톱을 긁고 놀 수 있도록 스크래쳐나 장난감을 사 준다든가, 캣타워를 놓는다든가 하면 1만 원부터 10만 원 정도가 들 수도 있다.

앞으로 고양이를 입양할 예정이 있는 사람에게는 얼마든지 이것보다 더 상세하게 설명을 해 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한 달에 3~5만 원 정도 드는 것 같아.”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고양이를 키우는 데도 돈이 들고, 애를 키우는 데도 돈이 든다. 생물이 살아가려면 돈이 든다. 내게 이런 질문을 했던 사람들에게서 받은 뉘앙스는 “그 돈으로 다른 걸 할 수도 있는데 (하다못해 담배를 더 많이 피울 수도 있는데) 왜 고양이를 먹여 살리는 데 돈을 써?”였다. 나는 고양이 한 마리를 입양해서 집에서 키우지만, 고양이를 여러 마리 기르는 사람도 있고, 집에 고양이를 키우지는 않지만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게 왜일까? 다른 소비생활을 할 수 있는데, 힘들게 노동을 해서 번 돈으로 별다른 대가를 주지 않는 고양이를 먹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2. 고양이의 학습

 

보통 고양이는 개처럼 훈련을 시킬 수 없다. 그러나 위대한 반복 행위를 통해서 무언가를 가르칠 수 있긴 하다. 그런데 이런 학습이 효과가 있으려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고양이 자신이 불쾌한 일을 겪거나, 좋은 일이 생길 때만 가능한 것 같다.

 

– 종을 치는 고양이

알던 사람 집에 개 한 마리와 고양이 두 마리가 있다. 전부 다 어디에서 주워 온 동물들이다. 한 마리는 원래 있던 집에서 거의 학대를 당했고, 한 마리는 동네 꼬마들이 괴롭히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엉겁결에 그 집 식구 중 한 명이 집으로 데려왔다. 다른 한 마리도 그렇게 그 집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세 마리 중에 고양이 한 마리는 자기가 배가 고프면 집에 있는 종을 친다. 어떻게 학습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배가 고프면 앞발로 종을 땡땡 치고, 그러면 엄마가 밥을 준다.

밥을 줄 때마다 종을 쳐서 나중에는 종만 쳐도 밥을 주는 줄 알고 침을 흘린다는 파블로프의 개와 반대되는 일로, 고양이가 종을 쳐서 인간이 밥을 주도록 훈련시킨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고양이를 키우는 집에서는 이렇게 인간이 훈련 당하는 일이 종종 있다.

석류는 초반에 집에 왔을 때는 낯설어서 아무것도 못하고 밥을 달라고도 못하면서 배가 고프면 다리에 온몸을 부볐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내가 늦잠을 자면 침대에 올라와서 얼굴을 툭툭 쳤고, 난 고양이 털이 입에 달라붙는 것을 못 참아서 일어나서 밥을 줬다. 요즘에는 석류가 아무리 내 얼굴을 앞발로 치고, 내 머리카락이나 귀를 핥고, 심지어 입술을 핥아서 꼼짝도 안 하고 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꾼 전략은 밥을 줄 때까지 옆에 가만히 앉아서 기다렸다가, 내가 눈을 뜨면 곧바로 사료통 옆으로 달려가서 온몸을 사료통에 부빈다.

 

– 바스락 바스락 봉지 부스럭거리는 소리

초반에 비닐봉지에서 사료를 꺼내 줘서 그런지, 아니면 동생과 내가 장을 봐 오면 봉지에서 음식을 꺼내 먹는다는 것을 보고 그런 건지 석류는 어디에서 봉지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면 번개같이 달려와서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쳐다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봉지에서 석류가 먹을 음식이 나오는 일은 열 번에 한 번쯤 될까? 인간이 먹는 음식 중에는 석류가 먹을 것이 많지 않고, 쓰레기통을 비우거나, 분리수거를 위해 봉지를 꺼낼 때도 많다. 그래도 불굴의 의지로 8개월째 봉지만 바스락거리면 일단 그쪽으로 달려오는데, 언제나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고 봐 줘야 할지, 아니면 그저 멍청한 것뿐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말 봉지가 바스락거리면 달려올까 싶어서 거실에서 비닐을 만졌더니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다가 덩치를 주체하지 못하고 그대로 냉장고와 부딪혔다)

 

– 발자국 소리

우리 집에서 시켜 먹는 거의 유일한 배달 음식은 치킨이다. 원래는 절대 주지 않았으나 언제부턴가 튀김옷을 벗기거나, 양념을 물로 헹궈내고 치킨 살을 잘게 찢어 주기 시작했다. 이렇게 가끔씩 사람 두 명과 고양이 한 마리가 둥글게 둘러앉아 치킨을 먹는다. 그 이후로 석류는 나와 동생이 집에 있는데 바깥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현관에 가기 시작한 것 같다. 그 발자국 소리가 행여 치킨 배달의 발자국 소리가 아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덤으로 택배를 시키면 박스가 생기니 발자국 소리를 기대한다. 그러나 그렇게 자주 치킨을 시켜 먹는 것도 아니고, 택배를 시켜도 그 박스가 자기가 들어가서 앉을 수 있는 박스인 것도 아니니 희망이 좌절될 때가 많다.

 

– 이것도 배워보는 건 어때?

고양이가 학습하는 건 주로 음식과 관련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8개월째 약 2주에 한 번 발톱을 깎는데, 여전히 적응하지 못하고 발버둥을 치는 석류를 보고 발톱을 깎은 뒤에 간식을 하사하기로 결정했다. 발톱을 깎는 고통을 참으면 간식을 준다는 상벌의 방침이 과연 좋은 것인가? 아니, 그 전에 통하긴 할까? 이제는 내가 많이 편해졌는지, 오른쪽 앞발을 잡고 발톱을 깎으면 왼발로 뺨을 치고, 왼쪽 앞발을 잡고 발톱을 깎으면 오른발로 내 뺨을 치는데, 올해엔 고양이에게 얻어맞지 않고 발톱을 자를 수 있길 바란다.

 

3.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동생,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끊임없이 빠지는 털과 배설물의 냄새. 고양이라는 생물과 함께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무뎌져야 하는 것인데, 이걸 싫어하면 근본적으로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게 된다. 동생은 올해도 여전히 석류를 좋아하지 않는다. 슬금슬금 동생에게 내가 없을 때 석류 밥이나 물을 챙겨 주는 일을 부탁했고, 이젠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하지만 화장실을 치우는 일은 언제나 내가 한다. 며칠 전 화장실 모래를  깨끗하게 비우고 새 모래를 채우는 일을 도와달라고 말했다. 후드형 화장실 덮개를 열자 동생이 욕을 했다.

“이건 집에 이동식 화장실을 두고 사는 거야. 모래를 돈 주고 사서 이런 짓을 하다니. 모래 사, 사료 사, 고생도 사. 아 진짜.”

악취를 맡았을 때 나는 신체의 반응과 혐오감은 쉽게 없앨 수 없다. 올해엔 동생과 석류가 얼만큼 친해지게 될까? 처음엔 석류를 만질 수도 없던 동생이 가끔 쓰다듬기도 하고, 신고 벗기 힘든 워커를 다 신었는데도 내가 문자를 보내서 물 좀 주라고 했을 때 꾹 참고 신발을 벗어 물을 주고 외출을 한 걸 보면 그래도 조금 나아진 것 같긴 하다.songc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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