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끝나지 않은 싸움

밀양의 송전탑

- 이종현

저에게 밀양은 낯선 곳입니다. 저는 밀양 박 씨도 아니고, 밀양 박 씨를 애인으로 둔 적이 한 번 있기는 하지만 그마저도 성공치 못한 연애로 끝났고, 저의 증조할머니께서 밀양 박 씨였다는 것을 벌초하러 갔을 때 묘비를 통해 본 적은 있지만 전 한 번도 그 분을 직접 뵌 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실 저와 밀양은 그다지 잘 어울리지 않는 쌍으로 보일 수 있겠습니다.

 

지난 10월 명동 한전 사옥 앞에서 밀양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했습니다. 전날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지 한 시간 정도 서 있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한전 건물 벽에 기대서 “밀양! 죽음의 송전탑”이라고 제가 직접 쓴 피켓을 들고 지친 모습으로 서 있었나 봅니다. 베레모를 쓴 할아버지 한 분이 대뜸 저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셨습니다. 밀양이 고향이야? 아뇨, 전 서울 사람인데요. 근데 왜 이걸 해? 글쎄요…

 

글쎄 말입니다. 저는 서울 사람인데, 밀양과 별 상관없는데 밀양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1인 시위를 왜 했을까요? 저는 서울 사람이므로 밀양의 문제에 대해 한마디 보탤 수 없는 것일까요? 그래서 한번 밀양에 직접 가 보기로 했습니다. 이제는 신문이나 뉴스에도 밀양의 이야기가 잘 나오지 않기 때문에 페이스북에 친구들이 올리는 사진으로만 자세한 상황을 볼 수 있었습니다. 1인 시위를 하는 친구들이 모여 있는 카톡 단체 채팅방이 밀양의 소식을 전해 주는 가장 빠른 언론이었지요. 그러나 술도 독한 술을 좋아하고, 고기도 가장 기름진 고기를 좋아하는 저의 무딘 취향에 남이 전해 주는 이야기는 그저 남이 전해 주는 이야기였습니다. 몇몇 충격적인 소식도 있었지만 역시 남이 전해 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전 베레모 노인에게 글쎄요 라고밖에 대답하지 못했었나 봅니다.

 

우리는 렌트카를 빌려서 기사를 대동하고 밀양으로 갔습니다. 송전탑이 들어설 부지였던 곳에 당당하게 비닐하우스를 지어 농성장이 마련된 곳에서 잠을 잤습니다. 시골 생활이 익숙하지 않은 저에게 그 비닐하우스는 거의 노숙과 다름없었습니다. 여러 명과 함께 있으면 잠을 잘 자지 못하는 저는 펄펄 끓는 전기장판에 누워 차가운 공기를 코로 들이마시며 마치 겨울에 노천온천을 하듯 몸을 뒤척였습니다. 사실 첫날에는 잠을 거의 자지 못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튿날 밤에는 경남의 소주 화이트를 맥주 글라스로 한 잔 마신 덕분에 푹 잘 수 있었습니다.

 

비몽사몽으로 잠을 자고 있는 척했던 첫날 새벽에 저는 매우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를 잠결에 들었습니다. 저희가 지낸 농성장의 바닥은 밖에서 사람이 지나가면 출렁거렸습니다. 경찰이 잠입하면 그 진동을 재빨리 느껴 방비 태세를 취하려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지혜였을까요? 출렁거리던 바닥은 상당히 유쾌한 기분이었습니다. 그 출렁거리던 바닥에 누워 있는 저는 거의 외계어에 가까운 밀양의 사투리를 발사하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신기하게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비닐 하우스 벽 쪽에 누워 있었는데 바로 바깥에 있는 어느 할머니께서 경찰들과 그들의 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계셨습니다. 경찰들은 송전탑 건설 현장을 지키기 위해 밀양의 논두렁, 밭두렁에 서 있었습니다. 밤에도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무엇이 그리워 그렇게도 아련히 서 있는 것일까요? 죽은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망부석들의 대열일까요? 아무튼 그렇게 밀양의 산골 곳곳에는 마치 서울 산동네에 교회의 빨간 십자가가 곳곳에 꽂혀 있듯이 그렇게 경찰들이 박혀 있었습니다. 그런 경찰들도 아무래도 사람이다보니 밥을 먹으면 똥을 누어야 했나 봅니다. 그런데 밤이 되면 화장실을 찾기 어려우니까 경찰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논과 밭에다 막 똥을 누었다고 합니다. 한 번 상상해보면 정말 무시무시한 광경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논과 밭에 나가보면 똥덩어리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습니다. 다음날 아침 또 일어나서 논과 밭에 나가보면 똥덩어리들의 수는 늘어나 있습니다. 저는 다행히도 그 똥덩어리들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 똥덩어리들을 직접 목격한 할머니의 분노와 경악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맛있게 먹을 야채와 과일이 자라나는 밭에 형광색 망부석들이 눈 똥덩어리들이 반짝이고 있다니. 야채와 과일에게 미안하고 저도 선뜻 그 야채와 과일을 먹기가 꺼려집니다(아무래도 하루 종일 무의미하게 서 있는 그들의 장은 아무리 젊은이의 것이라 하더라도 튼튼하지 못할 것이고 무기력할 것이므로 좋은 거름도 되지 못할 것입니다). 아무튼 그 참상을 매일 아침 일과처럼 보시는 할머니께서는 경찰들에게 합리적인 분노와 증오를 표출하셨다고 합니다. 니들 똥은 거름으로도 못 쓴다. 다 주워 가라 문디자슥들. 그 망부석들은 저의 식량주권도 침해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고 실소를 금치 못한 그날, 우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113번 공사 현장 앞에서 돗자리 깔고 경찰들을 깔보며 뻗대었습니다. 햇볕이 정말 좋았습니다. ‘빽빽한 볕’이라는 밀양(密陽)의 이름은 허명이 아니었습니다. 예전에 겨울에 스페인에 갔을 때, 우리나라도 이렇게 겨울에 볕이 따뜻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세뇨리따들을 부러워한 적이 있었는데 돈 들여 스페인까지 갈 필요가 없겠습니다. 밀양에 가면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가마솥에 커피 끓여 마시며 햇빛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날 저녁, 우리는 또 가장 굳건하게 싸우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계신 평밭마을 127번 농성장을 찾았습니다. 비포장 산길을 한참 들어갔습니다. 어슴푸레한 저녁, 옆마을에 이미 세워진 송전탑을 처음 보았습니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두 개의 탑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사루만과 오크들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높은 철탑을 세울 수 있는 것일까요? 놀라운 인류의 능력이 발현된 것일까요? 그런데 우리는 단지 에펠탑이 처음 세워졌을 때, 철탑이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만으로 에펠탑을 반대했던 파리의 예술애호가들처럼 송전탑을 반대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러한 미학적 이유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송전탑에는 표정이 있었습니다. 뿔이 두 개 달려 있고 눈은 위로 쫙 찢어졌으며 웃을 줄 모릅니다. 그냥 지지직댈 뿐입니다. 무엇이 그렇게도 화가 나 있을까요? 그 높은 전압을 견디느라 고단한 것일까요? 그렇게 아무 이유도 없이 화가 나 있는 녀석들이 대오를 이루어 서 있으려고 합니다. 문득 전도연이 나온 영화 <밀양>이 떠오릅니다. 영화의 줄거리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전지연이 연기한 주인공은 부조리한 세상에 복수하려고 하늘이 잘 보이는 곳에서 섹스를 하며 하느님에게 욕을 합니다. 그런데 송전탑이 세워진다면 밀양에서는 그런 신성모독적 야외섹스마저도 즐길 수 없게 됩니다. 하늘이 탁 트여야 햇빛도 들고 하느님도 우리를 봅니다. 그런데 잔뜩 뿔이 나 있는 송전탑들이 하늘을 가리고 하느님의 시야도 가린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그놈들은 관음증적인 시선으로 우리를 훔쳐봅니다. 에펠탑은 하나지만 그놈들은 여럿입니다. 하나의 에펠탑은 파리의 낭만이자 명물이 되었지만 여럿인 그놈들이 이룰 세계는 상당히 그로테스크합니다. 우리는 아직 그 정도로 미래적이고 첨단적인 우주 도시를, 고압의 전기가 사방팔방에 흐르는 신세계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었나 봅니다.

 

아무튼 우리는 127번 농성장을 지키고 계신 할머니를 찾아뵈었습니다. 농성장 안에는 쇠사슬이 시래기 대신 널려 있었습니다. 농성장 앞에는 구덩이가 파져 있었고 경찰들이 쳐 들어오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쇠사슬로 몸을 묶고 그 구덩이에 내려가 온몸에 휘발유를 뿌리고서라도 농성장을 지킬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비닐 하우스 안에서 우리는 맛 좋은 사과와 찰진 고구마도 먹었습니다. 작은 체구의 할머니 한 분이 부처님같이 앉아 계셨습니다. 며칠 전에 파마를 하셨는지 머리칼이 빠글빠글 살아있었습니다. 철재를 나르는 헬리콥터가 하루에도 수 십번 왔다 갔다 하는 소리에 무슨 일이 없어도 습관적으로 깜짝깜짝 놀라신다고 합니다. 이상하게도 기억력이 갑자기 안 좋아지셨다고 합니다. 주무시고 계실 때도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합니다.

 

할머니께서는 글을 못 배운 게 한이라고 하셨습니다. 글을 배웠더라면 속사정을 편지에 써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셨을 거랍니다. 밤에 주무실 때면, 숲에 부엉이가 퍼덕거리고 운다고 합니다. 부엉이가 부럽다고 하십니다. 부엉이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부엉이가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할머니의 마음을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부엉부엉 부엉새야 내 속 좀 들어다오. 그래서 부엉새를 닮은 저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부엉새 흉내를 내며 어두운 방에서 이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상하게도 밀양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투리들은 알아듣는 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점샌무? 이 말은 정말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다시 여쭤보니 점심 먹었나라는 뜻이었습니다. 알아듣기 어려운 말은 다시 물어보면 되고 이해되지 않는 말은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면 됩니다. 그렇게 해서도 뜻이 통하지 않는다면 빙긋 웃으면 됩니다. 그럼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서로 약속이나 한 듯 그 내밀한 잔여는 남겨 두십니다. 저도 밀양의 송전탑과 경찰들의 똥과 할머니의 부엉새 이야기 말고도 더 할 말이 많지만 내밀한 잔여는 남겨 두렵니다.

 

응답 2개

  1. 편집자말하길

    글을 올리면서도 전지연이 뭔가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는데….퍼뜩 생각이 안나더라구요. 수정했습니다.

  2. id말하길

    전지연이 아니라 전도연….

    이상하게 아무 내용 없는거 같은 종현의 글이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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