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끝나지 않은 싸움

빚쟁이의 일기 – 밀양에서

- 몽상가

 

– 같이 갈래 밀양?

– 밀양? 갑자기 왠 밀양?

– 송전탑때문에… 내일 공사 시작한다. 그거 막으려고.

 

그 때였다. 빛조차 들지 않는 나의 작은 방에 화염병이 던져진 때는. 내 방은 어두웠지만 밝은 등이 있었고 등이 비추는 곳에서 나는 나를 즐겁게 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나의 하루는 등이 내뿜는 옅은 빛 아래서 나만을 위한 유희방식에 따라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방문을 닫으면 세상에서 떠드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침대에 누우면 나를 질식시킬 것 같았던 세상의 흐름도 멈추는 듯 했다. 책들, 책상, 거울, 공기조차도 수면중인 듯한 방안에서 나는 항상 몽롱했고 잠에 취한 듯 했지만 내 방안에서 느껴지는 반수면의 분위기, 졸고 있는 공기가 좋았다. 그 공기가 피부에 스미고 방 안의 분위기에 내 몸이 동화되면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엄마의 뱃속이 이런 느낌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곳은 따뜻했고 포근했다. 그 안에서 나는 안전했다.

 

– 나 밀양에서 공사가 시작된 날,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

 

뿌리가 뽑힌는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내가 나를 품었던 땅을 눈 앞에서 잃는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모르겠다. 그렇지만 한 가지는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충격일 것이라고. 상처가 될 거라고. 치유될 수 있는 상처일까? 글쎄. 마음이 아팠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의 세계가 부서지는 아픔을 겪는 이들의 오늘과 어제와 다름없는 나의 오늘 사이의 빈 공간이. 부채의식이랄까, 죄책감이랄까. 하여튼 마음이 무거워지는 이 느낌은 나더러 무언가를 하라고 계속 재촉하고 있었다. 마침 그 때 밀양에 다녀온 친구는 밀양과 관련된 글을 웹에 올릴 계획을 하고 있었고, 나는 그에게 지키지 못할 약속을 했다. 한참이 지난 후에 친구는 물었다. 쓴다고 했던 글은? 나는 절반의 진심을 담아 답했다. 글이 전혀 써지지 않아. 아마 난 아직까지 내 방 안에 있기 때문인 가봐. 먼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내게 너무 아득해. 따뜻하고 아늑한 방 안에 앉아 글을 쓴다는 게 굉장히 오만한 일처럼 여겨져. 난 아무것도 모르잖아. 알지도 못하면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니. 그래서….

 

나는 밀양에 갔다. 그것도 아주 우연히.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몇 시간이라 얘기될 수 있을 만큼 꽤 오래 차를 타고 간 곳은 달이 있고, 달을 비추는 강이 있고 신령같은 나무가 있고 새 색시같은 산들이 겹겹이 있는 곳이었다. 산이 뿜어낸 입김은 차갑지만 신선했다. 그 공기 속에서 정다움을 느꼈던 나는 몸 속의 잠들었던 감각들이 살아나는 듯 했다. 깨어난 감각들로 느낀 그 곳은 고향과도 같았다. 별들. 밤하늘을 수놓는다는 표현이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로 사람들의 입을 통해 반복된 이유가 있구나. 이런 곳에 헬기를 타고 와서 철근을 내려놓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얼굴을 한 사람들일까?

 

– 아이고 어서 온나. 어디서 왔노? 서울? 멀리서 왔네. 고맙다 고마워. 밥은 묵나?

 

웃는 얼굴들. 얼굴에 자리 잡은 단단한 주름들. 웃고 있는 주름들에서 나무냄새, 흙냄새가 나는 듯 했다. 내 할머니에게서 나던 냄새. 어렸을 땐 좋은 줄 몰랐던 그 냄새. 세월의 냄새가 나는 그 주름들을 햇볕 아래서 바라보면 그 곳의 역사, 그 사람들의 역사가 보이는 듯 했다. 눈 언저리에 깊이 패인 주름에서는 나무하러 가는 길목들이 보이는 듯 했고 입가의 주름에서는 자연의 힘에 순응하며 곡식을 여물게 했던, 헤아릴 수 없는 날들이 보이는 듯 했다. 그들의 얼굴은 한 권의 역사책이었고, 그것을 읽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밀양의 볕과 산이 내뿜는 공기, 흙과 강을 참조할 때뿐인 듯 했다.

 

– 옥산 주유소 그 놈들 기름 안 쓰면 된다. 우리 쓰지 마입시도. 지들이 우리가 기름 안 팔아주면 밥 먹고 살 줄 아나. 여기서 팔아주는 기름이 얼만데.

 

얼굴에 오직 밀양 시골마을의 역사만을 담은 그들의 저항은 소박했다. 공사현장에 연료를 공급하는 읍내 주유소차의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저기서 기름 사지 말자며 다짐하는 게 그들이 저항하는 방식이었다. 쭈글쭈글한 손, 구부러진 허리. 그들이 가진 신체조차 소박한 방식 외엔 다른 식으로 저항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데, 이들을 상대로 건장한 신체를 가진 의경들을 버스에 가득 실은 채 이 곳을 찾은 이들은 어떤 얼굴을 한 사람들일까?

 

-내가 저 소리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 우우웅. 저 놈의 새끼들은 잠도 없나 밤에도 저런다. 밤에도 나무를 벤다. 할 수만 있다면 확 도망 가버리고 싶다.

 

타타타타타타. 우우우우웅. 아름다운 햇빛이 있는 그 곳은 불쾌한 소리들의 향연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쿵쿵쿵쿵. 시간에 맞춰 의경들은 발소리를 내며 보초교대를 했고 우리의 발이 닿을 수 없는 곳에 헬기는 철근을 내려놓았다. 의경들의 발소리와 헬기의 소리. 그 사이의 공백을 채우는 것은 전기톱소리였다. 우우웅 우우웅. 눈 앞에서 그 광경을 봤더라면, 덜 슬펐을까. 나무들의 공포. 소리로만 닿을 수 있는 그 곳은 내게 잔인한 학살이 일어나고 있는 곳처럼 느껴졌다. 나무와 풀들의 소리없는 비명이 피부에 닿는 듯해, 정신이 멍했다. 나무들의 두려움을 보지 못하고 살생을 자행하는 이들의 얼굴에는 어떤 주름이 자리잡고 있을까?

 

-우리는 돈 때문에 이러는 기 아니다. 내 얼굴이 돈 좋아하게 생겼드나. 돈 먹은 사람들은 얼굴부터가 다르다. 그냥 여기서 농사짓고 살겠다고 하는데 왜 그라는지 모르겠다.

 

저녁 어스름에 만난 평밭마을. 생선굽는 냄새로 진동하는 움막 안.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을 띄우신 이장님은 밀양시청, 한전직원들과 씨름하며 지냈던 시간들을 우리에게 풀어놓으셨다. 돈으로 매수하려 했던 일, 거짓말로 마을 주민들 이간질 시켰던 일, 이장직을 물러나라고 압박한 일. 그래선 안 되었지만, 나는 밀양에서 절망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바라보는 것 – 헬기가 떠가는 것을, 나무가 베어지는 산을, 그리고 길목을 막고 있는 의경들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더러운 공권력을 경험하고 무기력해지는 것 밖에 없는 것 같았다. 응시밖에 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나는 혼자 조용히, 도인이 된 심정으로 절망을 삼키는 법을 터득하고 있던 중이었다.

나는 이장님의 웃고 있는 얼굴을 보았다. 얼굴에서 느껴지는 단단함은 희망을 적어보기도 전에 절망 먼저 배워버린 나를 호되게 꾸짖고 있었다. 그 앞에서 나는 차마 ‘ 이 싸움에서 패하신다면 어쩌실 생각이세요?‘ 라고 물을 수 없었다. 나를 바라보는 눈은 이미 현재형의 대답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듯 싶었다. 그 눈은 내게 말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는 거라고. 아직 오지 않은 패배를 생각할 여유는 없다고.

“오늘도 굴 파다가 왔다. 한전 놈들이 공사하러 올라오믄 우리는 굴 속에 쇠사슬 묶고 있을 끼다.” 이 땅에서 전처럼 농사짓다가 생을 마쳤으면 한다는 이장님 그리고 마을 어른들.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하는 오늘이 하나의 해프닝으로 그들 주름 속에 새겨졌으면 하고 바랐다. 진심으로 바라는 만큼 나는 우선 내 눈 속에 드리워진 절망부터 걷어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두번 째 움막은 저 위로 올라가야 한다. 차 타고 쭉 올라가면 된다. 조심히 가래이.”

 

평밭마을 두번 째 움막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상하지 못했던 충격과 마주했다. 굽이굽이 흐르는 능선 위로 우뚝 솟은 거대한 철탑. 나무들의 무덤에서 철탑은 자라났다. 묘비라도 되는 듯이 세워진 철탑을 보자 뜨거운 화가 식도를 타고 입으로 나올 것만 같았다. 차갑고 위협적인 그 모습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지금도 모르겠다. 해가 남긴 빛의 잔상이 능선 위에 하얀 띠처럼 자리 잡은, 그 날의 하늘을 배경으로 철탑을 상상하면 아직도 심장이 기분 나쁘게 뛴다.

 

-여기 뒷 산에 밤마다 부엉이가 부엉부엉 운다. 내가 글자만 알면 종이에 적어서 부엉이 입에 물려가 서울사람들한테 보낼텐데, 배우지를 못해서 이렇게 속이 탄다

 

두 번째 움막에서 나는 평밭마을 할머니를 만났다. 바싹 마른 손, 굽은 허리, 왜소한 몸. 신문 기사에 난 사진 그대로였다. 할머니는 마른 손을 연신 바쁘게 움직이셨다. 어느 샌가 몸의 일부가 된 불안이 출구를 찾지 못해 그런 식으로 자신을 배출시키는 듯 했다. 할머니는 고달픈 음성으로 방문한 이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야기에는 고향을 향한 애착이 있었고, 불안이 있었고, 연약함이 있었고, 강인함이 있었다. 할머니의 손길과 눈길이 나에게 닿을 때 그 안에 담긴 따뜻하지만 어쩐지 슬픈 감정이 마음에 닿아 눈물이 고였다.

 

평밭마을은 강렬했다. 그래서 불편했다. 이장님, 할머니 그리고 움막에서 바라본 철탑. 이들은 내 안에서 고정된 이미지가 되었다. 내가 느꼈던 감정을 부풀리기 위해 소비되고 있는 듯한 이미지들을 떠올리며 나는 억눌러왔던 질문과 대면할 수 밖에 없었다.

스펙터클. 나는 나를 잠에서 깨워줄 스펙터클이 필요해 이 곳으로 온 것이 아닌가? 이들의 불행을 나는 기회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루한 일상을 가리고 있는 환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이들이 겪고 있는 일들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변화가 필요했지만 스스로 그럴 수 없었던 나는 변화하기 위해 이들의 아픔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 얼굴에 필연적으로 생길 주름에 하나의 역사를 담고 싶다는 욕심때문에, 이 사람들의 불행이 내게 의미있는 주름을 만들 스펙터클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며 이 곳에 온 것이 아닌가?

…. 아니라고도, 맞다고도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얼굴들, 근거를 알 수 없는 힘의 논리로, 밀양을 이 지경으로 만든 사람들의 얼굴들, 얼굴들에 새겨진 주름을 보기 전에는.

 

 

-저거들 말을 어찌 믿나. 또 속았지 싶다.

 

몇 대의 경찰버스가 왔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하여간 정말 많이 왔는데, 그렇게 많은 경찰들이 밀양의 작은 마을에 왜 왔을까? 넓은 차도를 막고 있는 시위대는 평균연령이 60-70세이고, 그 수도 30명을 넘기지 않는데. 게다가 이들이 원하는 건 그저 얼굴 보면서 얘기나 좀 하자는 건데. 이들만큼이나 나도 ‘한전 직원’이라 칭해지는 그들과 마주하고 싶었다. 그들의 얼굴이 궁금했다. 밀양을 이렇게 난도질해놓은 사람들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어쩐지 내 삶을 난도질해놓은 사람과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장난같은 바람이 있었다면 그 얼굴이 마귀처럼 생겼길, 주름하나 없는, 사물같은 얼굴을 하고 있길. 만약 나의 바람이 현실이 된다면 나는 그들을 아무런 연민도 없이 미워하고 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새벽바람이 찼다. 손과 발이 시려워 나무로 땐 불을 쬐고 있는데 경찰 한 무더기가 몰려왔다. 그리고는 벽을 만들어 길을 냈다. 그 길을 한전 직원들을 실은 차는 빠르게 지나갔다. 진실은 속고 또 속고 또또 속고 또또또 속은 밀양 노인들을 외면한 채, 경찰들의 호위 속에서 멀어져 갔다. 얼굴들. 결국 보지 못했다. 언제나 그렇듯 얼굴을 볼 수 없는 그 곳에는 허공을 향한 외침만이 있을 뿐이었다.

 

– 밀양 다녀오니까 어때?

– 그냥… 다양한 감정이 마음 속에 일더라.

 

덧붙여야 겠다. 감정은 다양했을 뿐 만 아니라 강렬했다고. 일상으로의 회귀을 알리는 도시의 소음과 마주했을 때 나는 정신이 혼미했다. 정신의 어지러움을 틈 타 다양하고 강렬했던 밀양의 감정들은 도시의 먼지숲 사이로 흩어졌다. 그 감정들이 차지했던 자리가 차츰차츰 비워져갈 때마다 나는 서글퍼졌다. 강렬해서 잊을 수 없을 거라고 여겼던 감정들도 이렇게 사라지는 구나. 그래도 아주 작은 흔적은 남겠지. 이 감정들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퍼즐 한 조각을 손에 쥔 채 잃어버린 나머지 조각을 찾아 헤매는 아이가 된 듯한 기분이 들 것 같았다. 친구는 내게 말했다. 슬픈 얘기네. 슬픈가? 아니다. 궁금한 것이 많은 나는 하나 남은 퍼즐조각을 보며 나머지 조각들의 빈 자리를 상상할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를 채울, 잃어버린 조각들을 찾아나설 것이다. 이 조각들을 찾아나서는 여정은 밀양노인들의 삶의 자리를, 그들의 주름 속에 담긴 밀양의 역사를 지키는 여정이 될 것이다.

 

퍼즐 한 조각이 내 손에 있는 이상 나의 방은 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이다. 이미 그것은 안전하지도, 포근하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곳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로 밀양노인들의 불행을 잠에서 깨어나기 위한, 나를 변화시키기 위한, 기회로 이용한 것인가? 솔직히 어느 정도는 나의 죄를 인정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밀양의 스펙터클이 만들어낸 내 얼굴의 주름 속에 밀양을 담는다면, 더 나아가 밀양과 비슷한 아픔을 지닌 타인을 담는다면 내 몫의 죄는 용서받을 만한 것이 아닐까? 내 몫의 죄? 그럼 남은 죄가 더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밀양에서 보지 못했던 얼굴들을 마주하는 날 묻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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